‘서울대 10개 만들기.’ 이름부터 도발적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교육정책의 최전선이자 향후 5년간 교육 판도를 뒤흔들 핵심의제다. 대학입시와 대학 구조개혁은 물론 초·중등교육까지 연쇄적으로 변화를 예고한다. 지방대 몰락을 막고 수도권 쏠림을 완화하며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연구 중심 대학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과연 현장의 저항을 뚫고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여전히 물음표다. 어쨌든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순한 선거용 구호에 그치지 않고 향후 5년간 교육정책의 중심축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학 입시와 대학 개혁은 물론 초·중등교육에도 큰 파장을 예고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이 구상의 밑그림을 그린 인물은 홍창남 부산대 교수다. 그는 국정기획위원회 사회2분과장을 맡아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설계의 핵심 역할을 했다. 홍 교수는 “대학이 바뀌지 않으면 초·중등교육도 달라질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역대 정부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차례 개혁을 시도했지만, 결국 ‘대학 입시’라는 벽에 막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것이다.
“대학이 변해야 초·중등도 변한다”
홍 교수는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이 정책의 핵심을 “교육정책의 무게중심을 고등교육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과거 정부들이 초·중등교육에 집중한 반면, 이번 정부는 대학 혁신을 선행조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실제 정책 아이디어는 김종영 경희대 교수로부터 나왔지만, 국정기획위에서 이를 구체적인 청사진으로 다듬었다.
그렇다고 모든 지방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분리해 지원하는 방식이 논의됐다. 학부과정은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전원 기숙사 제공이나 RC(레지덴셜 칼리지) 운영,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 지원 등을 통해 학생 경험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그러나 진짜 승부처는 대학원이다. 정부는 대학원 중심 특성화를 통해 연구 경쟁력을 키운다는 복안이다. 각 거점국립대는 반도체·인공지능 등 전략 분야 세 곳을 집중 육성하는 모델을 적용한다. 이 가운데 두 곳은 이공계, 나머지 한 곳은 인문·사회계로 배정해 균형을 맞춘다. 사회적 난제 해결이나 글로벌 이슈를 겨냥한 융합 연구가 대상이다. 이렇게 특성화된 대학원과 국책 연구기관을 연계하면 “적어도 특정 분야에서는 서울대 이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지방대 죽이기 아닌 살리기”
정책 발표 직후 가장 많이 제기된 비판은 ‘지방대 죽이기’ 우려였다. 10개 대학에 예산을 몰아주면 나머지 100여 개 지방대는 도태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홍 교수는 정반대라고 반박한다. 기존 고등교육 예산을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교육세 증세를 통해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기 때문에 다른 대학의 몫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거점국립대 9곳이 제외되면 남은 대학들에 돌아가는 예산 비중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재원 확보 방식도 관심사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전용을 우려했지만, 홍 교수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증세를 통해 마련한 새로운 재원으로 추진한다는 설명이다.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가 교부금 효율화를 강하게 주장했지만, 교육계 출신 위원들이 반대해 막아냈다.
“인서울 열망, 단기간엔 안 바뀐다”
그렇다면 이 정책으로 학생들의 ‘인서울’ 열풍이 완화될까. 홍 교수는 “단기간엔 어렵다”고 인정했다. 오랜 문화적 관성이 하루아침에 바뀌긴 힘들다는 것이다. 다만 특정 분야 대학원이 서울보다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흐름이 서서히 바뀔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학부과정 역시 대학원 경쟁력이 강화되면 자연스럽게 파급 효과를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책 추진은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임기 초반부터 9개 거점국립대를 동시에 지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초기에는 4~5개 대학을 중심으로 시범 운영이 예상된다. 성과에 따라 점차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대학도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 못 해”
홍 교수는 이번 정책이 대학에도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강조한다. 정부 지원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대학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해운대 모래사장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IT 기업조차 ‘학벌보다 실력’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기존처럼 학생을 받아 졸업시키는 역할에 머문 대학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구조조정도 병행된다. 최근 통과된 ‘사립대 구조개선 지원법’에 따라 한계 대학은 규모를 축소하거나 복지법인 전환 또는 폐교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 홍 교수는 “서울대 10개 정책과 구조개선은 병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컬 대학 사업, “연착륙 필요”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글로컬 대학’ 사업은 연착륙을 추진한다. 현재 30개 대학이 지정돼 있지만,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거점국립대 9곳이 빠지면 21곳이 남는다. 홍 교수는 “이들을 지역혁신형 대학 등으로 재편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기존 사업을 무작정 폐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동안 투입된 예산이 실제 성과를 냈는지 점검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AI 인재 양성도 현 정부 교육정책의 큰 축이다. 하지만 AI 디지털교과서를 단순 보조자료로 격하시킨 데 대해서는 “AI 시대 인재 양성과 교육에서 AI를 활용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설명했다.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방식보다 AI 시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우선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다.
국교위, “유명무실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논의도 있었다. 홍 교수는 “지난 3년간 국교위는 유명무실했다”고 직격했다. 형식적 토론 몇 차례로 ‘국가교육 10년 계획’을 내놓았지만, 실질적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국정기획위 논의 과정에서 “폐지든 확대 개편이든 확실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결국 정부는 위원 수를 현행 48명에서 문재인 정부 원안인 104명으로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교육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 장관과 대통령실 교육비서관 인선이 늦어진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대통령은 교육에 대한 식견이 매우 높고 고민도 깊다. 훌륭한 적임자를 찾다 보니 시간이 걸린 것뿐”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순히 대학 몇 곳을 키운다는 계획이 아니다. 대학 구조조정, 지역 혁신, AI 인재 양성 등과 맞물린 국가 교육 패러다임 전환 전략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교육 브랜드가 공허한 구호에 그칠지 아니면 지방대 부흥과 국가경쟁력 강화의 전환점이 될지는 앞으로 5년간 교육현장의 가장 큰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