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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기 칼럼] 하자가 많은 몸과 마음

복잡한 기능을 가진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사용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야 한다. 그런데 자동차 사용 설명서(메뉴얼)마저 읽지 않고 대충 사용하다가 고장 난 후에야 사용 시 유의점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차를 바꿀 때야 그렇게 좋은 기능이 있었는지를 알기도 한다.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대충 사용하면 위험하고 손실도 크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은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그냥 사용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몸과 마음 사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느 제품과도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한 것이 인간의 몸과 마음이다. 몸과 마음의 작동 원리, 즉 ‘인간 사용 설명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삶이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학생을 교육하는 교사들에게는 ‘인간 사용 설명서’에 대한 대한 이해가 더욱더 중요할 것 같다.
  
소설가 김홍신은 <인생 사용 설명서>에서 좋아하던 담배를 끊은 자신이 “참 독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독극물을 삼키는 사람이 독하지, 어찌 버린 사람이 독하겠습니까?” 그런데 실은 우리 몸과 마음은 독이 되는 줄 알면서도 거절하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법구경>은 우리가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전쟁터에서 백만 적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한 사람을 이긴 사람이 가장 위대한 승리자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 성의(盛意)편에 나오는 군자의 덕목 ‘신독(愼獨)’, 즉 혼자 있을 때에도 삼가고 조심하라는 가르침 또한 자기 통제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 일화는 결국 유혹에 지고 마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을 묘사하고 있다. 철학자들도 유사한 주장을 한다. 파스칼(Pascal, 1623~1662)은 “불행의 원인은 늘 자기 자신이 만든다”는 말을 하였다. 
 
각종 질병과 유혹에 쉽게 무너지고 마는 하자투성이인 몸과 마음을 가지고, 이를 극복하며 소위 바른길로 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 슬프게 느껴진다. 기왕 만들 것이면 제대로 만들지 왜 이렇게 불완전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초월적 존재가 인간을 설계하고 만들었더라면 이런 모습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원인과 극복 대안을 탐색하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있다. 인간이 어떤 하자를 가지고 있고, 하자가 생긴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지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진화의 관점으로만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상당한 설득력도 가지고 있다. 


피즈와 피즈(Pease & Pease, 2001)의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에 보면 “인류가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인간 행동의 이상과 개념이 유전적 현실보다 1백만 년이나 앞서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진화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살아가는 환경과 문화는 빨리 변화하는 탓에 1백만 년 전의 유전자를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게 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의 상황에 부합하는 사고와 행동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대학 심리학자 헤이트(Haidt, 2006)는 마음을 자기 뜻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인간을 불교의 코끼리와 기수 비유를 차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인간에게 장착된 알고리즘, 즉 감성을 포함한 본능은 코끼리이고, 객관화 능력을 포함한 이성은 기수이다. 코끼리 위에 올라탄 기수가 고삐를 쥐고 있으므로 리더로 보이지만, 기수가 코끼리에 비해 너무 작아 코끼리와 기수가 의견이 불일치할 때면 언제나 코끼리가 이긴다는 것이다. 


윌슨(Wilson, 2007)은 <나는 내가 낯설다>에서 우리의 생각과 달리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너무나 잘 모르고 있다며 그 실상과 그렇게나 모르는 이유, 그리고 나아가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즉 ‘자기 지식’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개리 마커스(Gary Marcus, 2006)는 <클루지(Kluge)>에서 인간 마음이라는 것이 ‘우연히 혹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탓에 하자가 많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인천국제공항은 미국 뉴욕 JFK 국제공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신기술 체계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인천공항과 달리 1948년에 만들어진 JFK 공항은 과거의 기술 시스템에 맞춰 건설되었다. 계속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폐쇄하지 못하고 기존 시스템 위에 새로운 기술 시스템을 덧붙여 사용하고 있다. 이런 공항은 첨단 기술에 맞춰 설계된 공항에 비해서는 모든 면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생명체도 끊임없이 생존하고 번식해야 하기 때문에 작동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진화가 옛 기술에 새로운 기술을 덧붙이는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결과는 쓸만하지만, 비효율적이고 하자가 많은 ‘클루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의 몸과 생각의 원천인 뇌는 잘 아는 것처럼 진화를 통해 만들어져 왔다. 진화는 이전 진화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척추가 현재 모습처럼 생긴 까닭은 최선의 해결책이어서가 아니라 이미 있던 것(네발짐승의 척추)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은 요통에 시달리고 있다. 인간 몸이 ‘닥치는 대로 체계가 구성된 유일한 이유는 이전에 있던 것을 기초로 그다음 진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를 좌우하는 뇌도 기존의 뇌에 덧붙이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인간의 중뇌는 아주 오래된 후뇌 위에 말 그대로 얹혀 있으며, 이 두 개의 뇌 위에 다시 전뇌가 얹혀 있다. (…중략…) 가장 마지막에 생긴 부위인 전뇌는 언어나 의사결정 같은 일들을 통제하는데, 이것은 종종 더 오래된 체계들에 의존한다.” 

 

아예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옛 체계 위에 새 체계가 얹히는 기술 누진 중첩(progressive overlay of technologies) 방식으로 만들어질 경우, 최종 산물은 그런대로 작동은 하지만, 하자가 많은 조립품인 ‘클루지(kluge)’가 되기 십상이다. 

 

인간은 완결체가 아닌 덧대어 만들어진 불완전한 클루지라는 비유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하나는 과거를 재구성하고 인간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설계자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불완전한 클루지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인간 본성을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클루지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 단서를 줄 수 있다.

 

“우리가 진화해 온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솔직히 들여다볼 때, 비로소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고귀한 우리의 마음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개리 마커스 이야기 중에 교육자인 나에게 와닿는 것은 학교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연적으로 훌륭한 사고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회의적이고 균형 잡힌 태도를 타고났다면 학교는 필요 없을 것이다. (…중략…) 인간이라는 종은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선천적으로 속기 쉬운 존재다.” 

 

AI 시대 학교와 교사의 필요성 및 역할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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