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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경영

[현장이슈2] 독·재·자 교육을 아십니까?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모 학원의 기숙형 프로그램 홍보물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음과 같은 주요 홍보 문구 때문이다.

 

‘독재자’(독학·재수·자기주도학습) ▲소수 정예 스카이 캐슬형 관리 ▲최상위권 학생 대상 장학 제도 운영 ▲의대/SKY 재학 ○○○○ 출신 조교 25명! ▲1대 1 멘토 관리 체계적 학습

 

세부내용을 보니 일정 벌점 초과 시 프로그램상 출입 코드가 삭제되어 출입이 통제되는 벌점 제도도 있다. 벌점 항목으로는 결석(10점), 조퇴(5점), 지각(5점), 외출(3점), 강제동원 미준수(3점), 졸음(1점), 핸드폰 미제출(10점), 열람실 내 전자기기 사용(10점), 학습 외 사이트 접속(5점), 쉬는 시간 외 화장실·카페테리아 이용(1점), 독재자 내 학생 간 필담(1점), 오후 10시 이후 무단 외출(강제 퇴실) 등이다.


그리고 홍보 팸플릿 속에 끼워진 간지 한 장에 다음과 같은 최후의 격문이 나부끼고 있다.

 

‘기숙학원보다 더 강력한 몰입! ○○ 독재자 선착순’


교장실로 들어와 이러한 격문들을 읽어가면서 숨이 턱턱 막힌다. 비판과 한탄도 나오지 않는다. 그냥 기가 막힐 뿐이다. 아무리 학원 홍보를 위해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독재자 교육이라니! 독재자를 선착순으로 모집하고 있다니!

 

맹목적 공부가 아닌 성적을 올리는 순공 시간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책꽂이에 있는 세 개의 자료를 꺼내 들었다.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사범대 진학 후 지금까지 교직생활에서 힘들거나 지칠 때마다 응원봉처럼 찾아보는 자료다. 첫 번째는 사범대 신입생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맞이한 <교육학 개론>이다. 두 번째는 사범대 4학년 때 모 중학교에 나가 교생실습의 과정을 기록한 <교생실습록>이다. 세 번째는 군복무를 마치고 드디어 교직에 첫발을 디딘 해(1989년)에 개봉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도서판(2003년 한국어 번역본)이다.

 

먼저, 지금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사범대 신입생 때 만난 <교육학 개론>(한○○ 著)에는 교육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교육(敎育)이란 인간이 인간발달을 의도적으로 지도(指導)하며, 향도(嚮導)하는 과정(過程)이다.’

 

요즘의 교육학 관련 책에서는 보기 힘든 향도(嚮導)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향도의 의미를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단순한 지도(指導)라는 단어보다는 왠지 더 깊이 있고 더 진한 교육적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다음, 사범대 4학년 교생실습 기간 중 하루의 일과와 소감을 정리하는 <교생실습록>의 어느 날 소감문은 다음과 같이 끝나고 있다.

 

학생들 앞에서 종례(終禮)를 해봤다. 나의 말에 학생들의 움직임이 결정되고 나의 말에 학생들의 생활태도가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두렵기까지 했다. 학생들이 어떤 행동을 하건 어떤 태도를 보이든 간에 종례하는 그 시점에서 모든 것들은 나의 책임이다. 그 책임이라는 것이 물건을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놓는 것도 아니고 빚진 사람이 빚을 갚을 책임과 같은 것도 아닌, 바로 인간 자체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했을 때 나는 사뭇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교육에서 요구되는 많은 가치가 있지만, 교생으로서 나는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책임을 말하고 있다. 과연 지금의 나는 그 젊은 날의 책임 의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을까?

 

끝으로, 내가 실제 학교현장에 발령받은 해에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교직에 대한 사명감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던 나는, 소위 요선도 학생(?) 몇 명을 데리고 학교에서 가까운 영화관으로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 속 학생들이 각자의 책상 위에 서서 떠나는 키팅 선생님에게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와 학생들 모두 눈물을 훔치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리고 이 영화 이후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던진 다음과 같은 한마디는 전 국민이 알 정도로 유명한 구절이 되었다.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겨라)” 

 

키팅 선생님의 요청을 지금 나는 실천하고 있다. 학생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고 오늘을 즐기라고 말한다.


입학식 축사에서도 신입생들에게 대학입시를 위해 ‘3년간 고생하라’가 아니라 ‘3년간 행복하라’고 말했다. 내일을 위해 기죽어 있지 말고 지금 하루하루 자기 자신을 흔들어 살아있음을 보여주자고 떠든다.

 

교육도 아닌 것이 교육이라는 이름을 걸고 서성이는 요즘
교육에 대한 정의(定義)는 교육자만큼이나 많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교육은 방식으로서는 향도(嚮導)요, 교육자의 자세로서는 학생들에 대한 책임이요, 학생들에게는 오늘을 즐김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학원에서 홍보하는 독재자 과정은 결코 교육이 아니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교육이라고 이름할 수 없다. 교육이라 할 수 없기에 비난거리조차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은 큰 걱정이다. 학부모들은 거리낌 없이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독재자 양성과정에 지원하고 있으니. 지금 우리의 머리 위에는 수많은 교육 애드벌룬이 떠다닌다. OECD 교육 2030 프로젝트, UNESCO 교육의 미래 2050, 교육개혁-모두를 위한 맞춤교육(교육부), 미래를 여는 협력교육(서울시교육청) 등…. 하지만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애드벌룬의 화려한 색상과 문구들은 구경거리나 쓴웃음의 대상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비정상이 넘친다. 무엇보다도 정치가 극도의 비정상으로 전개되다 보니 뒤따라오는 다른 분야의 비정상적 상황들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드러내놓고 독재자를 키우겠다고 홍보하는데 별 저항이 없다. 오히려 소리 없이 거기에 호응하는 현실만이 존재한다. 정상으로의 회복을 위해 근본적인 새출발이 요구되는 지금, 우리 교육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교육과 교육이 아닌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새로운 교육정책도 필요하고, 학교현장에서의 지속적인 실천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론과 실천에서 제시하는 ‘~교육’이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교육도 아닌 것이 교육이라는 이름을 걸고 우리 주변에 난무하기 때문이다. 독재자를 키우는 프로그램이 사교육이라는 가면을 쓰고 교문 앞에서 서성거리는데도 우리는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신록의 7월. 진정한 교육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만의 기준을 심어보는 계절이 되자. 정치적·사회적·복지적 관점의 교육이 아니라 교육적 관점의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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