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교육자로서 39년간 봉직 후 은퇴하여 지금은 제2인생으로 포크댄스, 건강체조, 라인댄스 강사로 활동 중이다. 주로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데 50대부터 80대까지가 수강생으로 참가하고 있다. 주민자치센터, 평생학습관, 복지관, 경로당, 노인대학 등이 활동무대다. 내가 맡은 강의는 신중년, 시니어들의 몸과 마음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청춘행 여행이라 강사, 수강생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지난 6월 5일 오전 11시, 의왕시 내손2동주민센터 3층 강당에서는 노인대학 건강체조 수업이 있었다. (사)대한노인회 의왕시지회(지회장 이종훈) 부설 사랑채노인대학(학장 이원복)이 주최·주관하는 프로그램이다. 보조강사 두 분 대동하고 약 1시간 전에 강의장에 도착했다. 그게 강사의 기본 태도라고 보았다. “우와, 강당이 꽉 찼다”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돌입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르신들의 학습 모임이 이렇게 활발한 줄 몰랐다. 강사가 놀란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나, 수강생 대부분이 80대라고 하는데 이들은 더 이상 노인이 아니다. 둘, 반짝이는 눈빛과 학습의욕이 이렇게 높을 수가 있다니? 셋, 처음 배우는 동작 따라서 하는 학습 수준이…
2025-06-10 17:18아카시아꽃 향기 봄 햇살에 바랜 지 오래다. 찔레꽃, 감꽃, 백화마삭줄꽃의 재스민 내음이 섞인 초여름 향기가 녹음으로 짙어지는 유월이다. 가는 봄이 아쉬운지 하늬바람은 산과 들의 짙은 녹음을 흩어 놓는다. 시간의 흐름은 빠르다. 일 년 열두 달을 사람의 평균 수명인 80살로 비교해 본다면 유월은 불혹에 가까운 계절이다. 유월은 고양이 손을 빌릴 정도의 농번기이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논밭은 마늘보다 보리를 많이 심었다. 농사철만 되면 들녘은 부산했다. 들에서 갈무리한 보릿단을 집 마당이나 타작마당에 내는 일은 순전히 인력에 의한 것이었다. 이집 저집 원동기와 탈곡기 도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철에 어른들은 바쁘지만, 아이들은 일손도 도우며 자연을 벗 삼아 놀기도 했다. 며칠 전 산책길이었다. 지난 4월 말, 연한 연두색 새 이파리로 가슴을 아리게 한 감나무의 잎은 짙은 녹색으로 두꺼워지며 잎사귀 사이에 아기 감을 달고 있다. 혹시나 감꽃이 떨어져 있으려나 주변을 둘러보니 갈색으로 변한 꽃밖에 없다. 감꽃이 떨어지면 봄은 가고 초여름이 시작된다. 떨어진 감꽃을 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수꽃이 먼저 피어서 암꽃을 기다리는 기본 매너에, 암꽃이 열
2025-06-09 11:03수원시 산하기관 수원도시공사 가족여성회관에 이런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니? 교육경력 39년인 필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름 아닌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딱 맞는 프로그램을 보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이름이 '슬기로운 손자녀 병법'.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을 패러디 했는데 귀에 쏙 들어온다.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적은 손자녀, 나는 조부모다. 조부모가 손자녀를 돌보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인 것이다. 필자는 시민기자이자 예비 조부모로서 수업 현장 속에 있었다. 20일 오전 가족여성회관 교육관 203호. 과연 누가 모일까? 어떤 분이 강사일까? 무엇을 배울까? 배운 것을 내가 써 먹을 수 있을까?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녀를 바르게 지도할 수 있을까? 내 생애 이런 수업을 듣게 되다니? 기대가 크고 조금 흥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맞벌이 하는 자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손자녀를 돌봐야 하는 것도 피해 갈 수 없다. 그렇다면 대비를 해야 한다. 제대로 배워 실천해야 한다. 개강식에서 가족여성회관 임화선 관장은 “오늘날 고령화, 저출산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손자녀 돌봄이…
2025-05-23 09:10수원 장안구 대추골도서관2025년 상반기 독서문화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나를 위한 글쓰기. 8~29일 매주 목요일에 총 4회 8시간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다. 성인 20명 대상인데 강사는 박홍선 한국독서문화연구소 대표(글쓰기 전문 강사)이다. 중등 국어교사 출신인 필자는 나를 위한 글쓰기 제목에 이끌려 8일 첫회 수업 1차시 두 시간을 참관했다. ‘나를 위한 글쓰기라?’ 공감이 가는 주제다. 필자 역시 여러 차례 체험한 사실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수업 전에 박 강사를 만났다. 그는 “책 읽기의 힘, 글쓰기의 힘을 알고 경험했기 때문에 힘든 사람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수업 목표는 ‘글쓰기를 통해 세계를 통찰하고 나와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다. 때마침 입장하는수강생 한 명을 만났다. 그는 일월도서관에서 박 강사로부터 아주 사적인 책 읽기 강의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책 읽고 글쓰기가 어려운데 박 강사가 체계적으로 알려주어 내 감정, 내 생각을 글로 끌어내는데 큰 도움이 되어 다시 수업을 들으려 왔다”고 했다. 박 강사의 첫 질문은 “이 강좌를 통해 얻길 바라는 것은?”이다.…
2025-05-14 10:325월 5일 제103회 어린이 날오후일월수목원 잔디광장에서는 아주 특별한 체험 문화행사가 열렸다. 그중 하나가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하는 포크댄스 추억 만들기〉. 포즐사(포크댄스를 즐기는 사람들 약칭)를 운영하는 이영관 강사는 수원시공원녹지사업소(소장 최재군)와 협업하여 시민들이 포크댄스를 배우고 즐기며 가족, 친구, 이웃과 손잡고 ‘하하호호’ 행복을 체험하는 아주 특별한 행복 수목원을 만들었다. 수목원에서는 어린이 날 행사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미취학 아동 및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입장료 무료 혜택을 주었다. 도심 속 생태 수목원이자 접근성이 우수한 일월수목원 매표소에는 하루종일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참고로 당일 입장객은 유료 2582명, 무료 1237명 등 총 3819명이었다. 포크댄스 추억 만들기 진행자이자 강사는 필자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하는 포크댄스 추억 만들기〉는 수목원 담당자와 강사의 아주 세밀한 계획과 추진으로 성공적으로 끝났다. 행사 준비부터 시작까지 아주 사소한 일도 사전 협의를 통해 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었다. 예산 투자에 대비해 효과는 만점에 가까웠다. 행사 성공이라는 증거…
2025-05-07 16:51어린이 날을 앞둔 4월 30일 아침 7시 30분, '지동가족 한마음 체육대회'가 열리는 운동장에서 6학년 박태민, 박태훈 쌍둥이 형제를 만났다. 2013년생이니 12살이다. 형과 동생은 2분 차이로 이 세상에 나왔다. 지금은 6학년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있다. 오늘 행사에서는 태민이는 피카추 인형 복장을 하고 전교생 교문맞이, 태훈이는 선수대표 선서를 맡았다. 첫 질문으로 본인의 장단점을 물었다. 태민이는 “친구에게 다정다감하게 대하는데 동생에게는 괴팍스럽게 대한다. 수학공부를 잘하는 편이다”라고 솔직히 말한다. 태훈이는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지금은 배드민턴과 티볼에 빠져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미래의 꿈은 무엇일까? 태민이는 식품회사원이고 태훈이는 한의사. 그 이유는 회사원이 안정적인 직업이어서, 한의사가 멋있어 보여서라고 한다. 두 형제는 지난 4월 16일등굣길 아침, 편의점 앞 전신주아래에서 검정색 돈지갑을 습득했다. 지갑 속에는 신분증과 신용카드 10개, 5만 원권과 1만 원권 여러 장(대략2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두 형제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른 것은 “이것 누구에게 갖다주면 주인에게 온전히 돌아갈 수 있을까?”였다고 한다. 그 지갑은…
2025-05-02 09:35우리 부부의 약속 하나, 월 2회 산행이다. 연 24회가 목표다. 주로 칠보산과 광교산을 오른다. 3.1절 아침, 오늘의 목표는 광교산이다. 올해 6번째 산행이다. 광교산은 수원시민의 허파다. 용인시, 의왕시에도 걸쳐 있어 3개 시민의 휴식처요 안식처다. 체력단련장 구실을 톡톡히 한다. 전국에 이미 알려진 명산이다. 광교산 제3코스를 택했다. 이 코스는 경동원∼하광교 소류지∼종루봉(비로봉)이다. 오전 시각, 하광교 소류지에 도착했다. 하광교 소류지 산불관리초소가 보인다. 산불감시원 두 분을 보았다. 한 분은 초소를 지키고 한 분은 산속을 순찰하면서 활동한다. 여기서 장안구 소속 산불감시원 정석원 씨를 만났다. 붉은색 옷 가슴에 단 명찰을 보니 산불전문예방진화대다. 즉, 산불을 예방하고 산불 발화 시 진화업무를 맡은 것이다. 필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날씨가 건조해 산불위험이 높습니다. 산불예방에 수고가 많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엔 등산로 쓰레기 줍기를 1시간 동안 했습니다. 주 업무는 아니지만 보기 흉해 주웠습니다. 그런데 담배꽁초도 많이 나와 저도 놀랐습니다.” 여기서 시민기자 정신이 나왔다. “혹시 오늘 주운 쓰레기 제가 볼 수…
2025-03-01 23:23필자의 어린시절은 전쟁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먹는 것이 풍족하지 않았다. 6살로 기억된다. 사과 한 알을 먹겠다고 밤새 울었지만 엄마는 주지 않았다. 국민 1인당 GDP가 유엔 회원국 116개국 중에서 거의 꼴찌 수준이었으며, 일반 국민은 ‘하루에 두 끼를 먹었으면 좋겠다’가 소원이었던 시절이다. 곡식은 먹기도 모자라니 술이나 과자는 언감생심(焉敢生心) 생각할 수 없었다. 필자의 형제들은 방학이면 영종도에 계신 외할아버지댁에 갔다. 외할아버지는 손주들의 손을 잡고 논으로 가셨다. 논둑에는 빨간 깃발이 꽂혀져 있었고 넓은 논에 벼가 자라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벼를 가리키며 ‘이게 통일벼이다’ 하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먹거리가 풍족해지니 너희들이 놀러올 수 있고, 먹일 것이 많으니 좋다’ 하셨다. 통일벼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서 신품종개발에 매진하여 얻은 결과물로 세계 벼 육종 역사에서도 한 획을 그은 성공작이다. 1972년부터 전국 농가에 보급되었는데 외할아버지댁 논도 이즈음이었을 것이다. 1977년에는 국내 수요를 충당하고 남아 해외에 수출도 하였다. 이제는 쌀이 흔해져 쌀로 빚은 술이 각광을 받는다. 요즘 한국을 가리키
2025-02-06 16:37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인일여자고등학교 축제’ 인일제 동영상을 발견하였다. 흐뭇하고 반가웠다. 인일여자고등학교는 필자의 모교이다. 50년 후배들의 생기발랄함과 교정을 보며 모처럼 옛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인일여자고등학교는 인천에 있으며, 70년대 당시 인천은 경기도에 속해있었다. 필자는 197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당시는 고등학교도 입학시험이 있었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두 개의 지역, 즉 서울지역과 경기도 혹은 경기도와 충청지역 등 두 곳을 정하여 지원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에는 필기시험뿐 아니라 체력장 시험 점수도 합산하였으며, 본고사를 치러야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고등학교를 정하는 시기에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여 부모님과 당사자인 필자와 더불어 입학할 학교를 의논하고 최종 결정을 하였다. 담임선생님은 체육을 담당하였는데 필자의 체육점수가 형편없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체력점수가 무려 20점이나 되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대체로 만점을 받았다. 선생님은 ‘100M 달리기는 깃발이 들어올려지는 순간에 바로 뛰어나가라’ 등 걱정의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당시 명문이었던 인일여자고등학교에 필기시험을 보던…
2025-01-14 20:53시골집 부엌은 100년이란 시간의 저장고이며 어머니의 기도가 있는 곳이다. 설을 앞두고 잘 찾지 않던 시골집을 찾았다. 페인트가 벗겨져 녹슨철 대문엔 시간이 멈춰 있다. 대문을 들어서자 얼고 녹기를 반복하여 푸석푸석한 흙 마당에 발자국이 드러난다. 마치 달나라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찍은 셈 같다. 이 마당은 타작도 하고 곡식도 말리고 때로는 구슬치기하는 유년의 놀이터였다. 고개를 들어 지붕을 본다. 빛바랜 주황색 슬레이트 지붕엔 뒤란 대숲을 스친 골바람, 새소리만 미끄러진다. 인적이 머문 지 오래된 집은 기운을 잃어가고 있다. 삐거덕, 비명을 지르는 마찰음과 함께 가난한 시간이 늙어서 들어찬 두 짝의 정지문을 연다. 침침한 실내는 눅눅한 이끼 냄새와 적막이 흐른다. 투사처럼 머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결연한 의지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신 어머니의 모습은 없다. 대신 거미줄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음산함과 입 벌린 아궁이에서 나오는 죽은 재 냄새, 식은 반찬 모여있는 찬장에서 기억되는 시큼한 김치 냄새뿐이다. 세월의 더께를 쓴 부엌은 조리와 난방이라는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창고가 되고 말았다. 시간을 거슬러 본다. 유년의 부엌은 눈물 콧물도 있고 먹거리와 어머니의…
2025-01-13 1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