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체격이 큰 남자아이의 학부모와 처음 마주 앉은 자리였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어머니의 표정에는 이미 여러 해의 걱정이 묻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표정을 저는 여러 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체격이 큰 아이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조용히 저를 바라봅니다.
“조금만 부딪혀도 더 크게 보이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본인도 억울한 경험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습니다.
“친구들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 다른 학부모님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으신 적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작은 행동도 더 크게 보이다 보니 지적을 받았던 경험도 있었을 것 같고요.”
그 말을 하는 동안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설명해야 한다는 긴장감은 조금 내려놓은 듯 보였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였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조금 더 세심하게 보겠습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날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은 그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의 행동이 곧바로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학교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찾기보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를 먼저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날 상담은 아이를 바꾸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보다 먼저, 아이를 바라보는 두 어른의 시선을 맞추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은 종종 어른들의 말보다 어른들의 시선 속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지도 방법보다 먼저,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같은 방향을 향하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의외로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네요"라는 한마디에 가까울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