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물으면 0.3초 만에 매끄러운 답이 나온다. 학생은 과제를 끝냈고, 설명도 읽었으며, 이해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이해’는 AI의 이해일 뿐, 학습자 자신의 것이 아니다. 필자는 이 상태를 ‘가짜 학습(Fake Learning)’이라 부른다. 과제 성과는 완성됐으나 학습은 내면화되지 않았고, 더 심각한 것은 학습자 스스로 그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AI 쓰는 순서가 결과 바꿔
이것은 우려가 아니라 입증된 사실이다. 튀르키예 고교생 약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범용 AI를 자유롭게 쓴 집단은 연습 중 성적이 38% 올랐지만, AI를 못 쓰게 한 시험에서는 오히려 17% 낮았다. AI가 사고를 대신하는 ‘목발’이 되는 순간, 사고의 근육은 자라지 못한다. 이것이 ‘목발 효과(Crutch Effect)’다. MIT의 뇌과학 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ChatGPT로 글을 쓴 집단은 방금 쓴 자기 글의 88%를 기억하지 못했고, 고차 사고를 담당하는 뇌 영역은 활성화되지 않았다. AI가 사고하는 동안, 사고를 담당하는 뇌는 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AI를 교실에서 금지시켜야 하는가? 결코 아니다. 같은 AI라도 ‘쓰는 순서’가 결과를 가른다. 최근 출간된 ‘인공지능 학습혁명’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원칙으로 제시하는 것은 ‘인지적 활성화 우선(Cognitive Activation First)’ 원칙이다. 학습자의 뇌가 먼저 작동해야 한다. AI에게 묻기 전에 스스로 씨름하는 시간이 선행돼야 한다. 먼저 씨름하고(Before), AI와 탐구하고(With), 스스로 확인하는(After) 3단계 순서가 지켜질 때 AI는 학습의 날개가 되고, 순서가 뒤집힐 때 목발이 된다. 교육적으로 잘 디자인된 AI 튜터를 활용한 맞춤형 수업이 두 배 이상의 학습 성과를 낸 하버드 실험은 그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정답 암기가 가치를 잃은 AI 시대에, 교육은 부분적 개선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재설계를 요구받고 있다. 교육은 수많은 하위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균형을 유지하는 복잡한 체계이기에 한 부분만 손대는 개혁은 번번이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학습 경험의 설계자 돼야
교사의 역할 역시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에서 ‘언제 AI를 활용하고 언제 학생 스스로 씨름하게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학습 경험의 설계자로 다시 정의돼야 한다. 도구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교육을 바라보는 철학 자체를 바꾸는 문제인 것이다. 체화된 지식과 역량을 바탕으로 AI와 협업하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 미래 교육의 목표다.
교사와 교수에게는 AI 개입 시점을 판단하는 교육학적 언어를, 정책 입안자에게는 시스템 전환의 설계도를, 모든 학습자에게는 AI에 종속되지 않고 기술의 날개를 다는 전략을 실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