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2 (월)

  • 흐림동두천 2.4℃
  • 흐림강릉 3.4℃
  • 서울 3.8℃
  • 대전 5.0℃
  • 대구 6.9℃
  • 울산 7.0℃
  • 광주 6.4℃
  • 부산 7.7℃
  • 흐림고창 6.8℃
  • 제주 11.0℃
  • 흐림강화 2.6℃
  • 흐림보은 5.2℃
  • 흐림금산 5.3℃
  • 흐림강진군 6.9℃
  • 흐림경주시 7.5℃
  • 흐림거제 7.8℃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학교경영

[현장이슈 2] 교육의 배신, 교육의 실패

한국 사회에서 대학 입학은 곧 개인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인생 변수’가 되곤 했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대학 졸업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직장을 잡았다. 그런 과정에서 교육이 한국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한국판 드라마’의 신화가 세계적으로 회자되었다. 한국 교육이 한 편의 ‘드라마’로 표현될 정도로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학교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경제 현장에서 효율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 경제가 성장하지 못했다면, 교육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학교 문을 나선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아우성쳤다면,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도, 대한민국에 대한 교육 찬사도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칭송은 이제 드라마 <전원일기> 같은 추억일 뿐이다. 경제가 침체하고 사회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지만, 학교교육은 별반 바뀌지 않고 고학력자들이 끊임없이 양산된다. 전체 고졸자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해 미래의 부푼 꿈을 설계하지만, 대학 문을 나서는 순간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4년제 대졸자가 좋은 직장은커녕 전문대 졸업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심지어 고졸자의 일자리마저 위협한다. 교육의 배신이자 교육의 실패다.

 

찬란한 교육 신화, 부모주의와 출세론
지금 대한민국은 ‘교육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우리 사회의 뜨거운 교육열은 교육을 통한 희망사다리 오르기로 상징되는 ‘교육 출세론’과 ‘부모주의(parentocracy)’가 결합한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학교에서는 칠판 하나만 놓고 가르쳐도 학생들이 넘쳐났고, 졸업장을 받은 청년들은 쉽게 취업하는 황금기가 있었다.


지금은 환경이 확 바뀌었다. 대졸자의 30~40%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그냥 쉬는 30대가 30만 9,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국가데이터처, 12월 보도자료). 게다가 9급 공무원 시험에 외국 대학 유학파까지 응시하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교육의 실패이자 딜레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입학자원이 급감하고, 4차 산업혁명 등 국내외 환경 변화로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2021년 이후 대학 입학정원이 입학 가능 학생 수보다 커지는 역전 현상이 본격화하는 격변기임에도 현장의 발걸음은 더디다. “격변기에 가장 나쁜 일은 과거 방식을 갖고 대응하는 것(피터 드러커)”이라는 말처럼 우리 교육이 딱 그런 격이다.


왜 그럴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스무 번 가까이 칭송한 한국 교육의 우수성은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한국 교육은 우리가 못 살고 학교교육 환경이 엉망이었을 때는 ‘인기 드라마’를 방영했다. 반면 외국 대학도 부러워할 정도의 쾌적한 시설을 갖춘 대학이 많아진 현재는 ‘실패의 드라마’를 억지로 내보내고 있다. 초·중·고 교육은 대학 진학을 위한 관문이 된 지 오래다. 객관식 위주의 시험은 여전히 교실을 지배하고 커리큘럼 변화도 능동성이 떨어진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분들에게는 야박한 평가라서 송구하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교육은 여전히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학령인구가 줄어들어 대학 문턱이 낮아진다고 해도 상위권 대학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 대학 수십 개가 문을 닫아도 소위 ‘SKY 대학’ 입시 경쟁률은 별로 완화될 것 같지 않다. 자녀를 한 명도 채 두지 않은 젊은 부모들은 자녀 교육비 지출을 줄이지 않을 것이고, 교육 출세론에 대한 ‘희망 고문’은 더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나쁜 일은 과거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
그러면 한국의 고등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고등교육이 변화하지 않으면 고3 담임은 계속 상위권 대학에 몇 명 진학시켰는지에 대한 평가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유능한 교사와 무능한 교사의 평가 잣대가 SKY 대학에 몇 명 진학시켰는지가 되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 ‘업적주의(meritocracy)’의 악령이다.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정원 조정 개입→자율→방관→개입을 되풀이하는 사이 대학은 자강(自强) 능력을 잃고 ‘눈치 대학’으로 변질됐다. 대학구조개혁의 기본은 교육시장 원리에 따른 수요 공급과 수요자의 선택권 보장이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대학의 질(교육·연구·사회 기여도)이 좋아지는 데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한 획일적 평가나 나눠주기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등교육기관 수를 장기적으로 최소 100개 이상 줄여 양적 팽창을 질적 팽창으로, 추격형 교육을 선도형 교육으로 바꾸는 파괴적 개혁이 절실하다.


그러나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한 정치권의 입김에 대학구조개혁은 답보 상태다. 정치인들은 개별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와 경제적 비중에 대한 실증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대학이 문 닫으면 지역 경제가 초토화한다”라는 말만 반복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과 대학의 성적표인 ‘교육 수요자 원칙’을 냉정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 신호탄을 국민이 세금을 대주는 국립대가 쏴야 한다.

 

고등교육 재편은 중등교육 변화의 상수
고등교육 재편은 곧 중·고교의 커리큘럼 변화와 교수법 변화와 맞물린다. 그런 만큼 신중해야 하고 수술 칼날은 예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립대와 국·공립대 개혁을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립대는 단계적으로 줄여 지역별로 통합해 광역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궁극적으론 ‘1도 1국립대’ 개편이 필요하다. 교육부가 대학을 인위적으로 손본다면, 국민 세금을 대주는 국립대를 우선 대상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글로컬 사업 등으로 거점 국립대만 잔칫집이다. 선후가 틀렸다. 국립대 개혁의 필요성은 전공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립대는 살아남기 위해 전문대 전공까지 카피했다. 몇 년 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의뢰해 근거 자료를 찾아본 결과 당혹스러웠다. 국·공립과 사립을 포함한 전국의 대학 중 114개 대학(원) 520개 학과(학부 307, 대학원 213)에서 전문대가 운영하는 학과를 중복 개설하고 있었다. 전문대가 처음 개설한 전공을 일반대학(대학원)이 카피한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안경광학·치위생·치기공·철도·물리치료·작업치료·방사선·뷰티·미용·응급구조·외식·조리·카지노·소믈리에·바리스타·반려동물·제과제빵 전공을 들 수 있다.

 

거점 국립대가 전문대 전공, 정책의 패러독스
2026년 현재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글로컬대학에 선정된 거점 국립대도 이 모양이다. 정책의 ‘빅 패러독스(Big Paradox)’다. 물론 국립대가 전문대와 통합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전공을 더 심화해 학문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계획도 있을 수 있다.
백번 양보해도 그건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의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는 20대 국회의원 시절 정책자료집(‘전문대학 10년의 변화와 박근혜 정부 전문대학 정책 진단’)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현행 법·제도 안에서는 4년제 대학의 전문대학 관련 학과 신설을 막기 어렵고, 오히려 확대되기 쉽다. 정부는 산업계에 대기업의 진출로 인해 중소기업 경영 악화 등을 막으려는 조치로 ‘중소기업 적합 업종제도’가 있듯이, 대학 교육에서도 전문대학만이 유지할 수 있는 학과를 법·제도적으로 보장해 전문대학이 ‘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은혜 전 장관은 물론 박순애 전 장관도, 이주호 전 장관도 고등교육 체질 개선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한민국 교육의 실패이자, 교육부의 실패이고, 고등교육의 실패다. 대학을 나왔다고 사회가 양팔을 벌리고 환영하는 시대는 지났다. 전공과 기업 수요의 미스매치(mismatch)는 고사하고 절대적인 일자리 수가 부족해서다.

 

한국 교육이 쌓아온 찬란한 신화는 앞으론 향수가 될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걸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교육의 딜레마는 계속된다. 이제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도, 사회도, 기업도, 공무원도, 학교도, 학부모도 모두 생각을 바꿔야 한다. 디지털 전환(DX, Digital Transformation) 시대를 넘어 AI 중심의 인공지능 전환(AX, AI Transformation) 시대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