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시대의 역설 _ 왜 다시 ‘읽기’와 ‘쓰기’인가?
AI가 시를 쓰고 코딩하며, 단 0.1초 만에 최적의 정답을 내놓는 첨단시대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교육부는 ‘2026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핵심 과제로 ‘학교 기반 독서·토론·글쓰기 교육 강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문해력 저하가 국가적 과제로 부상한 지금, 공교육이 독서를 통해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의지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모든 것을 기계가 대신해 주는 시대에 왜 우리는 다시 고전적인 ‘읽기’와 ‘쓰기’에 매달려야 하는가?
역설적이게도 답은 그 ‘첨단’ 속에 있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AI는 대답에 능숙하지만, 질문은 오직 인간의 몫이다. 정답을 찾는 일에 12년을 바치는 교육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영상에 매몰되어 비판적 사고 없이, 순응하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 아이히만처럼,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기 쉽다. 지금의 독서교육은 단순한 성적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술에 종속되지 않는 ‘인간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어야 한다.
‘공부’로서의 독서는 필패한다 _ 세 학생의 사례가 주는 교훈
입시·사교육·부동산이라는 대한민국의 3대 난제 중, 사교육 문제를 과연 독서로 풀 수 있을까? 필자는 39년의 교육 현장 경험을 통해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독서를 ‘평가’와 ‘스펙’을 위한 ‘공부’로 접근하는 순간, 그 정책은 필패한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지켜본 세 유형의 학생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원에서 내신에만 올인하며, 독서를 멀리한 A 학생은 상급 학년으로 갈수록 문해력의 한계에 부딪혀 성적이 하락한다. 부모의 철저한 계획하에 학원에서 ‘모범답안’ 쓰는 법을 익힌 B 학생은 내신성적이 최상위권에 수려한 글을 쓰지만, 자기만의 색깔이 없다.
반면 어릴 때부터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탐독한 C 학생은 처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결국 탁월한 자기주도학습 능력으로 역전하며 자기만의 독창적인 글을 써낸다. ‘날것의 맛’이 살아있는 글이다. 이는 사교육으로 훈련된 기술이 아니라, 독서의 사유에서 우러난 통찰의 산물이다. 독서가 문해력을 높여 성적이 오르는 것은 본질에 충실했을 때, 따라오는 ‘덤’일 뿐이다. 독서를 다시 ‘점수’나 ‘생활기록부’로 박제한다면, 아이들은 책의 즐거움 대신 형식적 읽기의 피로를 먼저 배우게 될 것이다.
독서 조기교육의 본질 _ ‘의도’를 숨긴 ‘놀이’
많은 이들이 조기교육을 경계하지만, 독서만큼은 조기교육이 필요하며, 효과적이다. 다만 방법이 문제다. ‘4세 고시반’, ‘초등 의대반’ 같은 문제풀이식 교육은 조기교육이 아니라 부모의 욕심이 부르는 ‘조기 학대’다. 진정한 독서의 조기교육은 부모의 ‘교육적 의도’가 철저히 숨겨져야 한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어주는 행위는 공부가 아니라 ‘사랑의 교감’이자 ‘놀이’여야 한다. 글자를 짚으며 읽어가는 부모와의 놀이로 아이는 자연스럽게 통글자를 인식하게 된다. 아이가 글자를 깨치는 과정은 과자 봉지의 글자와 책 속의 글자가 일치함을 발견하는 ‘유레카’의 순간이어야지, 강요된 낱글자 학습으로 아이를 질리게 해서는 안 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사례는 이를 뒷받침한다. 3세에 그리스어를 시작으로 철학과 논리학 등, 그의 혹독한 천재 교육 뒤에는 ‘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게 한’ 독서를 통한 아버지의 질문법이 있었다. 비록 지나친 지성 위주의 교육으로 정신적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그 파도를 넘게 해준 든든한 닻 역시, 시(詩)와 소설이라는 문학적 독서였다. 독서의 힘은 인생의 좌절을 극복하는 회복탄력성의 근원이 된 것이다.
관점의 전환 _ 아이를 바꾸려면 어른이 먼저여야 한다
우리는 흔히 교육의 대상을 ‘학생’으로만 한정 짓는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면서 정작 거실에서 스마트폰만 보는 부모, 행정업무에 치여 책 한 권 손에 들지 못하는 교사와 교장의 모습은 모순적이다. 독서교육이 성공하려면 ‘문화’가 먼저다.
교장이 인문학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교사들이 ‘교원학습공동체’를 통해 먼저 독서의 즐거움을 나눌 때, 그 철학은 수업과 학급 운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때 학생들은 비로소 독서의 가치를 삶으로 체득하게 된다. 사교육은 공부 기술을 가르치지만, 공교육은 독서를 통해 ‘삶의 지혜’와 알고리즘에 쉽게 종속되지 않는 ‘사유의 근육’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현장의 사례 _ 정답을 넘어, 나만의 색깔을 찾는 ‘사유의 공동체’
독서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려면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같은 리듬으로 움직여야 한다. 가정마다 독서 슬로건을 만들고, 학급마다 개성 있는 독서급훈을 정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4월 과학의 달이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과학도서를 읽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독후활동을 즐긴다. 학생 자치로 ‘스마트 프리(Smart-Free)’ 학교를 선언하며, 아침 10분 독서를 정착시킨다. 중앙현관에는 아이들이 읽은 책의 자취를 남기는 ‘사유의 나무’가 자라고, 복도는 아이들의 시(詩)와 작품들로 채워진 인문학 거리가 된다. 이 모든 활동의 밑바탕에는 ‘학교교육의 뿌리는 독서’라는 흔들리지 않는 철학이 있다. 특히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와 함께 살아가는 현대는 더욱 필요하다. 다음은 각 교육구성원이 만든 슬로건 사례다.
● 가정
- 거실이 서재가 될 때, 아이의 미래는 숲이 된다.
- 질문하는 아이 뒤에는 함께 읽는 부모가 있다.
● 학급
- 아침 10분, 책장과 함께 성장하는 시간!
- 스마트폰 사탕보다 달콤한 독서 뿌리를 키우는 교실!
● 학교
- 정답은 AI가 찾지만, 질문은 우리가!
- AI가 답하지 못하는 가치, 우리의 책 속에 있다.
● 마을
- 독서, AI를 이기는 가장 인간다운 저항
-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을 자신 삶의 주체로 만든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각종 행사와 시험 주간 슬로건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고, 점심시간에는 스마트폰 대신 다양한 동아리활동과 독서토론을 즐긴다. 특히 고사 3주 전부터 운영되는 ‘멘토-멘티 스터디 주간’은 압권이다. 혼자 외우는 공부를 넘어,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토론하는 스터디그룹은 ‘앎과 삶’이 일치하는 공동체 학습을 실천한다.
이는 106세 현자, 김형석 교수의 가르침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은 독서라고 단언하며, AI에게 답을 얻는 행위를 ‘사탕 하나를 얻어먹는 것’에 비유했다. 잠시는 달콤할지 모르나, 내 몸을 키우는 근육은 되지 못한다. 학원이 요약해 준 지식을 암기하고 모범답안을 써내는 ‘사탕 독서’로는 AI 시대의 파도를 넘어갈 수 없다. 스스로 고통스럽게 읽고 사유하며 얻은 답만이 진짜 지식이 되어 영혼을 키운다. 만약 성장이 멈추는 것이 노화라면, 스스로 읽기를 멈춘 아이는 이미 정신적 노화의 길에 접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책 읽는 전철, 사유하는 시민, 품격 있는 ‘K-독서국가’를 꿈꾸며
필자에게는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이 있다. 출퇴근길 전철 안에서 모두가 스마트폰에 시선이 박제된 모습 대신, 각자의 손에 책을 들고, 깊은 사유에 잠긴 풍경을 보는 것이다. 시민의 신체 건강을 위해 ‘손목닥터 9988’이 걷기를 장려하듯, 시민의 정신건강과 사유의 근육을 위해 일명 ‘K-독서닥터’를 운영하며 국가 차원에서 읽기를 장려하면 어떨까? 이는 단순히 책을 권하는 것을 넘어, 성숙한 민주시민의 품격을 국가적 자산으로 키워나가는 인문학적 투자이자 장치가 될 것이다. 유치원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주기별 독서 체계가 구축된 ‘K-독서국가’야말로 스마트폰의 파편을 넘어 인문학의 깊이로 연결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독서는 겸손과 타인의 맥락을 이해하는 ‘공감의 기술’을 가르치며, 우리 사회의 증오와 혐오를 치유하는 해독제가 된다. 독서라는 요술봉이 단번에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질문하는 힘’을 돌려주고, 어른들에게 ‘공존의 지혜’를 일깨워준다면, 우리 사회는 사교육의 굴레를 넘어 집단지성이 살아 숨 쉬는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손에 문제집 대신 책을 쥐여주는 용기,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책을 펼치는 어른들의 뒷모습에서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희망을 본다.
사유하는 아이는 결코 길을 잃지 않으며, 읽는 학교는 아이들의 가장 밝은 등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