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인간
학문(學問)의 출발점은 글자 그대로 질문(問)이다. 우리 인간은 원래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두 살배기 손자는 온종일 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지구에 이사 온 지 2년을 갓 넘겼으니 접하는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고 궁금할 것이다. 인간은 원래 호기심이 많고, 질문하기를 좋아하며, 탐구를 즐기는 호모 퀘스티오스(Homoquestius)이다. 학습은 바로 이러한 뇌의 구조와 본능에 부합할 때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일어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다. 인간은 본래 질문하는 존재이지만 좋은 질문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의 “왜?”가 처음에는 단순한 놀라움의 표현이라면, 성장 하면서의 질문은 점차 비교하고, 연결하고, 의심하고, 재구성하는 수준으로 깊어진다.
호기심이 질문의 불씨라면 이 불씨를 키우는 땔감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지식과 경험이다. 머릿속에 축적된 개념과 경험, 언어와 정보가 풍부할수록 질문은 더 정확하고 깊어지며 창의적으로 확장된다. 질문하는 능력은 타고난 호기심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지적 토대가 갖춰질 때 제대로 자라난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량의 하나가 질문하는 능력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 말에 꼭 붙는 말이 있는데 ‘더 이상 지식을 암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부터 널리 퍼졌다. 이러한 믿음 때문인지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할 때 수업 중에 기초·기본 개념을 충분히 가르치지 않는 교사가 늘어났다. 그 결과 기초·기본 개념을 갖추지 못한 학생이 늘어났고, 이는 기초학력 미달 및 부진 학생 증가에 일조하였다.
5세기에 인도 승려 상가세나(僧伽斯那:Sanghasena)가 지은 <백유경>에는 ‘3층 누각’의 비유가 나온다. 어떤 어리석은 부자가 다른 부잣집의 3층 누각이 부러워 목수를 불러 똑같이 지어 달라고 하였다. 이에 목수가 땅을 고르고 벽돌을 쌓아 기초가 되는 1층을 만들기 시작하자 부자는 엉뚱한 주문을 하였다. “나는 아래 두 층은 갖고 싶지 않다. 맨 위의 3층만 지어다오.” 목수가 아래층 없이 3층을 지을 수 없다고 해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이를 본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비웃었다.
오늘의 교육 현장에도 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공자께서도 2,500여 년 전, 배운 것(學)은 익힘(習)을 통해서만 자기 것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학습의 본질은 학습자가 반복적인 노력을 통해 의식적으로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도록 익히는 데 있다. 적응무의식의 상태에서 꺼내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자기 지식이 된다(Wilson, 2008).
언젠가 와이파이로 연결된 나노로봇을 인간의 뇌에 보내 필요한 지식을 통째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런 시대가 온다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적응무의식 수준에서 자연스럽게 꺼내어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이 많은 학생일수록 더 좋은 질문을 할 수 있고, 더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질문을 잘하는 학생을 기르는 길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다르지 않다. 학생에게 충분한 지적 토대를 갖추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이 점을 잊은 채 질문 기법만 가르치려 드는 일은 결국 사상누각을 세우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질문 능력 계발의 가능성과 한계
질문 능력이 일반 역량이라면, 이를 별도로 길러주면 어느 분야에서나 의미 있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일 해당 분야의 기초지식이 풍부해야 발휘되는 영역 특수 역량이라면 질문하는 능력만 별도로 계발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지루트(Jirout, 2011)는 질문을 ‘특정 정보를 말로 요청하는 일반적 행위’로 정의하고, 유아와 초등 저학년 대상 질문 훈련 효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범주를 물어보는 ‘식별 질문’은 훈련 직후 역량이 향상되었지만, 다른 과제나 질문 유형으로의 전이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효과도 1주 후에는 사라졌다. 그에 따르면 질문 전략 자체는 훈련이 가능하지만, 과제와 맥락의 영향을 많이 받고, 훈련의 전이 효과도 제한적이다.
친(Chin)과 브라운(Brown) 등(2002)은 중학교 과학수업에서 학생이 만든 질문을 분석한 결과 깊이 있는 질문은 해당 과목 내용에 대한 이해 수준과 직결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한 메이플소프(Maplethorpe) 등(2022)의 연구에서도 질문 능력은 언어능력, 문해능력, 그리고 과목 특성과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 특수 역량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실제로 읽기 학습 전략으로서의 질문 역량 강화에 관한 연구에서는 해당 훈련이 읽기 능력 향상에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Urlaub, 2012.05).
질문 역량 기르기
질문 역량 훈련 관련 연구를 종합해 볼 때 질문 전략은 짧은 훈련을 통해 학습할 수 있고, 학습 내용 이해와 성취에 긍정적 효과를 준다. 하지만 효과의 크기와 지속 여부, 그리고 전이 범위는 해당 과목에 대한 선행지식, 문해 능력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즉 깊이 있고 생산적인 질문을 하는 역량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을 때 제대로 발휘된다. 질문하기를 꺼리고 질문할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좋은 질문 예시, 질문 공책 활용 훈련이 당연히 보탬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호기심과 맞닿은 깊은 질문을 할 수 있으려면 기초지식과 함께 해당 교과목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사는 각 과목의 특성에 맞는 질문 훈련을 설계해야 하며, 학생의 수준과 이해도에 맞춰 점진적으로 질문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고급 질문 역량 훈련 방법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한 답을 스스로 탐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학자가 연구 주제에 관해 탐구하는 것과 같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은 자연스럽게 많은 의문을 갖게 될 것이고,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자료를 찾아보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을 때는 교사에게 질문하여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다. 학생 질문 활동의 바탕은 해당 분야에 대한 기초·기본 지식이다. 습득한 기초·기본 지식과 역량을 분석 비판 응용하는 과정을 거칠 때 자연스럽게 많은 질문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AI 시대의 질문기반 수업 방향
생성 AI 등장 이전에는 학생들에게 교재를 미리 읽고 요약 정리한 후 질문까지 만들어 오게 하면 자신의 머리를 활용해 그 활동을 했다. 이제는 대부분의 학습활동을 AI가 하게 한다. AI가 자신들의 학습을 파괴하고 있다는 한 미국의 고등학생 글은 AI 시대 질문 기반 수업을 할 때 유의할 점,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osario, 2025).
그에 따르면 수업 중에 친구들이 ChatGPT로 즉석 풀이와 해설을 만들어 제출하면서 토론과 학습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수학의 대수 II 과목 과제도 스마트폰으로 찍어 올리면 AI가 단계별 풀이와 그래프를 즉시 생성해 준다. 자신이 좋아했던 토론활동도 이제는 AI가 만든 주장과 자료로 가득 차 공허하게 느껴진다고 토로하고 있다. 예전에는 직접 논리를 세우고 반박하는 과정이 짜릿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AI가 제공한 틀에 박힌 자료만 오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씁쓸하다고 했다. 이러한 문제를 느끼며 글까지 쓴 이 학생은 아주 뛰어난 학생일 것으로 짐작된다.
학생들에게 부과된 제반 학습준비 활동과 과제를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AI에게 시키는 것을 ‘학습의 외주화,’ ‘사고의 외주화’라고 한다. 예습과제로 부과된 수업자료 요약, 핵심 개념 추출, 질문 제작, 토론 주제 추출, 배운 내용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보고서 과제 수행 등 교사가 부과한 과제를 학생이 직접 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교수자가 기대한 학습 효과는 전혀 생기지 않는다.
질문기반 수업을 할 때는 이러한 학습 외주화 현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부과할 때 혹은 교실에서 AI를 활용한 수업을 할 때 반드시 ‘선 작업 후 활용’ 원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이 자신의 머리를 이용해 부과한 활동을 수행하는 활동을 먼저 하게 하고, 다음으로 AI에게 자신이 수행한 결과물을 제공한 후 수정 보완하도록 요청하거나 동일한 활동을 시켜 비교하는 것을 의미한다. AI가 제공한 답변의 타당성 검토는 필수 과정이다. 질문을 만들 때 AI를 먼저 시키면 학생들의 질문 구성 역량이 제대로 발달하기 어렵다.
예습하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 추가로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질문 형태로 만들고, 이를 AI에게 물어 답을 찾아보게 한다. AI가 준 답의 사실 여부는 검색을 통해 반드시 확인하도록 한다. AI가 준 답을 가지고도 이해가 되지 않거나, AI가 준 답 중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그 질문을 수업 중에 하도록 한다. 그리고 자신이 교재를 읽으면서 했던 질문 활동에 대한 모든 기록을 저장하여 학기 말에 제출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