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3학년 교실에 도덕 수업을 들어갔다. 3학년이라면 알만하기도 하고 들을만 하기도 하여 예쁘기 그지없는 아이들이다. 예년같으면 그랬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말은 많이하고 집중은못하는 경우가 다한데 그 학급 역시 그런 학급 중 하나였다. "돌아다니지 말고 자리에 앉아라" "뭐라구요? 얘가 먼저 불렀는데요" "쟤가 먼저 말을 걸었던 거에요" "니가 먼저 했잖아, XXX야" 금세 서너명의 아이들이 불끈거리며 일어서서 멱살을 잡을 기세다. 억지로 자리에 앉히고 나서 몇 분 수업이 진행되었나보다. 아까 그 아이 둘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또 다시 돌아다니고 있다. 스스로는 돌아다니는 자신들의 행동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이들을 불러 "앉아있기 힘들면 여기에서 공부해요"라며 앞으로 내 놓았다. 앞에 서서도 계속 개그맨 흉내를 내며 아이들을 희롱하니 온 교실이 그 애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얼른 활동지를 꺼냈다. 친구에게 우정상장을 만들어 주는 활동지이다.갑자기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예쁜 그림의 상장용지를 받으니 신이 난거다. 앞의 악동들을 쳐다보던 눈이 각자 바쁘게 움직이며 열심히 활동을 한다. "어? 나도 저거 할거에요. 상장주세요."
어린 시절 소풍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려 잠을 설치게 하는 말이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시작하는 소풍 때는 비도 잦아서, 며칠 전부터 비가 올까봐 노심초사하기 일쑤였다. 자다가 깨고 또 자다가 깨도 날은 더디게 밝고, 희뿌연 새벽빛으로 햇살의 끄트머리라도 발견하고픈 마음에 밤새 뒤척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소풍 때 가장 기대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도시락이었다. 지금은 동네 어디서나 흔하게 팔고 사는 것이 김밥이지만, 그 당시는 특별한 날(소풍같이) 특별한 재료로 만드는 것이 김밥이었는지라 그 맛은 지금의 김밥과는 절대로 비교할 수 없다. 소풍날 아침 밤새 뒤척이느라 피곤한 몸이, 번개라도 맞은 듯 번쩍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어머니가 싸고 계시는 김밥의 고소한 참깨 냄새 때문이었다. 소풍을 가서도 모두 둘러앉아 서로의 김밥을 한 개씩 바꿔가며 먹었다. 신기하게도 각 집마다 김밥 맛이 어쩌면 그리도 다른지, 비슷비슷한 재료로 쌌음에도 짜고 달고 비릿하고 새콤한 그 맛들은 100인 100색이었다. 물론 김의 안쪽에 항상 달걀을 김만큼 넓게 펴서 놓고, 그 귀한 쇠고기를 볶아 넣은 우리집 김밥이 가장 맛있었음은 두말할
"지금부터 2단원 평가를 시작한다. 옆 사람 시험지를 보거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시험지를 압수한다. 알았지?" 아이들은 조용히 시험을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유독 한 아이가 이쪽 저쪽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교사는 한 번 더 타이른다. "누가 시험보면서 이야기를 하니? 한 번 더 이야기 하면 컨닝한 것으로 간주하고 시험지를 찢어버릴거야" 그런데 좀 있다가 그 아이는 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교사는 참다 참다 화가 나서 아이의 시험지를 압수하고는 절반으로 접어 한 번 길게 찢고 말았다. 수년 전의 일이다. 과학 교과를 담당했던 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했다. 이야기인 즉은 위와 같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그 아이(가칭-상수)가 곧 찾아와 사과를 하고 다시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사과는 커녕 시험을 다시 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곧 성적을 내야할 선생님이 조바심이 나서 "너 시험 다시 봐야지"하니까 "그냥 빵점 주세요"라며 쳐다 보지도 않는 것이다. 담당 선생님은 해결 방법이 묘연하여 담임인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날 마침 퇴근 길에 상수를 만났다. 축구를 하다가 승용차까지 뛰어와 크게 인사를 한다. "안녕히
대부분의 일들은 경력이 더 해짐에 따라 전문성이 저절로 갖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직업들도 여럿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교직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많은 선생님들이 끊임없이 열정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 독려하며 전문성을 갖추려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늘 부족함에 자성의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해도 해도 부족한 것이 교사의 노력이다. 학년이 바뀌어 아이들과 헤어질 때가 되면 "선생님이 너무 좋아요"라는 편지들을 종종 받곤 한다. 그저 예의로 쓴 것들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마음에서 전해지는 진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경우 정말 궁금해져서 "왜 선생님을 좋아하는거니?"라고 물으면 종종 "지난 번에 제가 아팠을 때 배를 문질러 주셨어요" "친구들이 날 놀렸을 때 위로해 주셨어요" "제가 잘못햇을 때 야단치지않고 용서해주셨어요" 등 자신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다독여 준 경험들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지난 해 말에는 그와 반대되는 경험을 했다. 그 날은 일 년 동안 고마웠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게시판에 붙이는 날이었는데 일학기 부회장인 미선이가 불쑥 앞에 나와 말했다. "선생님, 뒤에 붙인 편지 꼭 읽으세요." 워낙 다정다감한 것과는 거리가
봉숭아 씨앗을 가져다가 작은 화분에 직접 흙을 담고 씨앗을 심기로 했다. 넷째시간에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아침부터 공부가 될 리 없다. 책상 위에 모종삽과 봉숭아 씨앗을 올려놓고는 수학문제 하나 풀고 들여다보고, 읽기 책 한 줄 읽고 들여다 보고, “내려 놓아라” 지적을 해도 내려놓았다가는 또 어느새 날름 책상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보고. 그렇게 셋째시간까지를 보내고 넷째 시간이 되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인지라 아이들은 사뭇 들떠서 정신이 없다. 백엽상 옆 교재원 한 귀퉁이의 흙덩이를 부수어 화분에 채우면 그만인 것을, 한시간 내내 나를 괴롭히며 안달을 한다. “이만큼 흙 담아요?” "씨앗 몇개씩 넣지요?", "흙 덮어도 되요?" "아이고~~~ 선생님이 아까 다 설명했잖아? 화분 위까지 흙을 담아야지." 그래도 곧 바로 또 묻고 묻는다. 삼 십여명의 아이들이 내 앞에서 떠날 줄 모르고 소란을 떨고 있는가 했는데, 한 쪽 구석에 아주 조용한 모둠이 있었다. 널찍하니 자리를 잡고 제법 준비물이 그럴듯한 것이 다른 모둠과는 사뭇 비교가 되었다. 알고 보니 마음이 예쁜 하니가 온갖 필요한 준비물들을 다 갖춰 와 부족한 아이들에게 모두 배급하며 파종을 하고
3월 초 신규발령을 받은 새내기 선생님들이 교무실에 처음 발을 들이밀면 교무실 안은 병아리 색깔과도 같은 따스한 봄색깔로 술렁인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여리디 여린 선생님들. 그들의 순수함과 열정을 보면서 우리들도 저런 날이 있었겠구나 막연히 회상하며 함께 즐거워지는거다. 드문드문 섞인 남자 선생님들을 보면 그 마음은 더하다.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하면서 나의 신규발령지에서 만났던 젊은 남선생님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들은 여학생들에겐 연분홍빛 첫사랑의 느낌을, 남학생들에겐 형과 같은 편안함을 준다. 그것 뿐이랴. 여선생님들과 달리 아이들과 어울려 축구 경기도 자주 뛰어주고, 옆 반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레크레이션 시간도 잘 가져주며 아이들과 함께 즐기곤 한다. 수련활동이라도 가면 다른 선생님들은 사고 예방과 아이들 관리에 신경을 쓰지만 그들은 누가 아이인지 선생인지 구별이 어렵게 활동에 직접 참여하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준다. 가끔씩 지나치게 자유스럽지 않나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내심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부족함과 지나침이 아름답게 보여지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한 때,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수업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젊은 선생님을 좋아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 역시도 젊은 선생님을 선호한다. 새내기 선생님, 그 중에서도 남자 선생님의 인기는 초등생 학부모에게 최고다. 그런데 아이들과 학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서울지역 초등학교의 경우 교사의 평균연령이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 교사임용고사에 나이제한이 폐지되면서 신규발령자의 나이가 높아지기도 했고, 복직자가 많아 신규발령의 숫자가 줄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신학년도가 되면 아이들은 혹시라도 새로 만나는 선생님이 보송보송하고 앳된 선생님이기를 기도하며 가슴 설렌다니, 아뿔싸! 큰일이다. 그러면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나같은 교사들은 어쩌란 말인가? 첫 만남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실망을 주는 비선호 교사가 되어야만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다행스럽게도 나이에 관계없이 늘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선생님들이 학교마다 몇 분씩 있다. 그 중에는 중년 이상의 나이가 지긋한 분들도 적지 않으니 아이들이 젊은 교사를 좋아한다는 말은 꼭 맞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다. 아이들은 실제로 젊은 선생님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단지 아이들은 나이가 아니라 행동과 사고가 젊은
살다보면 이미 지난 일을 추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로는 어리석고 무모했던 일들이 후회와 함께 떠올려지기도 하고, 또 어떤 기억들은 두고 두고 행복함으로 떠올려지기도 한다. 필자는 교직경력이 30년을 넘었음에도 일학년을 담임했던 적은 두어번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일학년 아이들과의 기억들은 늘 행복으로 떠오른다. 지난 번 근무했던 학교는 바로 집 앞이었다. 시종소리가 시작될 때 집을 나서면 그 종소리가 끝날 쯤은 어느새 학교에 도착할 정도라고 할까. 담임을 했던 1학년에 지각을 밥먹듯이 하는 아이가 있었다. 엄마 아빠가 모두 새벽같이 출근하는 바람에 할머니가 건사하여 등교시키는 아이였다. 일찍부터 깨워 준비시키는 할머니 말을 잘 듣지 않고 늦장을 부리다가 종종 지각을 하곤 했던 것이다. 마침 그 아이 집이 같은 아파트 같은 층이었던 터라 지각하는 버릇도 고쳐줄 겸 출근 시간에 그 집에 들러 같이 등교하기로 했다. 두어 번 아이 손을 잡고 등교하였더니 학급의 다른 아이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왜 종환이랑 같이 와요?” “응. 집이 가까워서 같이 오는거야.” “와, 종환이는 좋겠다. 나도 선생님하고 같이 학교 오고 싶다” “그러니? 그럼 내일 아침엔
6학년 아이들과 생활할 때의 일이다. 저학년 아이들은 몸을 고되게 하고 고학년 아이들은 마음을 고되게 한다. 때때로 애인처럼, 친구처럼 다가왔다가도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선생님을 할퀴려고 덤벼들기도 한다. 반 아이 중에 유난히 얄미운 아이가 있었다. 야리야리한 몸에 민첩한 동작으로 교실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는 한이라는 남자애였다. 한이는 나뿐아니라 학급 아이들 중 제법 많은 아이들에게 얄미움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하여도 전혀 소외되지 않은 것은 남이 무어라 하건 모든 학급일에 스스로 나서서 꼭 참여하며 자신의 입지를 나름대로 확고하게 마련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애는 말이 무척 빠르고 많았는데 특히 얌체같은 말을 많이 했다.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교사에게도 절대로 지지않고 자기 말을 따발총처럼 쏟아내기 일쑤였다. "너 왜 숙제 않했어?" "학원가느라고 바빠서..."(매우 빠른 말소리) "학원만 다니고 학교는 끊을 참이야?" "그러고 싶지만 어머니가 싫어하셔서" "뒤에 서서 반성좀 해야겠다" "지난번에 용범이도 안해왔는데 용서해주셨잖아요" "그 애는 몸이 아팠잖아" "에이... 그럼, 나도.. 몸이 아팠어요 헤헤헤..." 뭐 이런식이었다. 그렇게 말꼬리를
앞에선 교실내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가 되는 아이들을 이야기 하였으니 이번엔 그 피해자가 되는 아이들을의 이야기 하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집단 따돌림의 피해를 입은 아이 중 일부는 환경을 바꾸어 주어도 또 다시 소외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그 아이가 소외될 수 있는 어떤 요인을 가지고 있지 않나 되돌아보는 것도 좋은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 급우들에게 소외되는 이유는 외모에서 성향까지 매우 다양하다. 남을 괴롭히고 사소한 일에 자주 화를 내는 아이는 소외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노는 방법을 모르고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니 당연히 소외되는 것이다. 특히 무력으로 남에게 자주 피해를 주는 경우, 친구들은 무언가 그 아이와 관계된 일이 있어도 잘 말해주지 않는다. 괜히 건드렸다간 곤란한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이 다 아는 정보를 그 아이만 모르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나 이런 아이는 소외되어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친구와 어울려 노는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에 그로 인해 괴로워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는 것이다. 아이가 저학년일 때는 그 부모가 괴로워하고 고민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부모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보
신학기가 시작되었으니 좀 있으면 학부모 총회가 각 학교에서 열릴 것이다.총회 때만되면 부모님들 중 몇은 자녀가교실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에 걱정을 한다. 최근엔 초중등할 것 없이 각 학교마다 이런 일들로 사건이끊이지 않는지라 학부모들이지나칠 정도로 걱정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은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자녀가 다른 아이들보다 마음이나 힘이 약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학부모의 자녀일수록 그와 반대로 너무나 씩씩하게 학교 생활을 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다. 그걸보면 여든이 된 자식도 아기처럼 보인다는 옛 말이 하나 그르지 않다. 실제로 모든 교실에서 집단 따돌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또 그런 일이 있다 해도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아이는 교실에서 한두명 정도이다.그러나 반대로 그들을 집단 따돌림하는 가해자는 8~9명, 심한 경우는 학급 재적의 절반 이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교실에서내 아이가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가 될 확률은 30분의 1정도(3%)이고 반면 가해자가 될 확률은 적으면 30분의 8(27%), 또는 2분의 1(50%)이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녀가 피해자가 되지않도록
학년말 방학기간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새학년을 준비하며 쉬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전학을 오는 어린이 또한 가장 많은 기간이기도 하다. 이 때 오는 학부모들의 대부분은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것인가?' 라는 똑같은 걱정들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교사와의 관계도 전입생 학부모의 걱정거리였는데 이제는순수하게 교우관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하긴이런 걱정이어디 전학생 학부모만의 걱정이겠는가?새학년을 맞는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모두 비슷한 걱정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처음 입학하는 신입생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예전 1학년을 담임할 때면 학부모 상담의 대부분이 미숙한 아이가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는지를 묻는 것들이었다. 필자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삼십년을 지내면서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아이들에겐 다음과 같은 몇가지 특징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우선 아이들은 재미있는 친구를 좋아한다. 재미있는 아이들의 옆에는 늘 친구들이 끊이지 않는다. 비단 아이들 뿐인가?요즘 적령기 여성들이 꼽는 인기있는 결혼상대자의 순위에서도 재미있는 사람은 빠지지 않는다. 유머란 전쟁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하니 유머를 할 줄 알고 상대의 유머를 이해할 수 있다면 아이는 분명 많은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