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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미운 선생님

대부분의 일들은 경력이 더 해짐에 따라 전문성이 저절로 갖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직업들도 여럿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교직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많은 선생님들이 끊임없이 열정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 독려하며 전문성을 갖추려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늘 부족함에 자성의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해도 해도 부족한 것이 교사의 노력이다.

학년이 바뀌어 아이들과 헤어질 때가 되면 "선생님이 너무 좋아요"라는 편지들을 종종 받곤 한다. 그저 예의로 쓴 것들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마음에서 전해지는 진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경우 정말 궁금해져서 "왜 선생님을 좋아하는거니?"라고 물으면 종종 "지난 번에 제가 아팠을 때 배를 문질러 주셨어요" "친구들이 날 놀렸을 때 위로해 주셨어요" "제가 잘못햇을 때 야단치지않고 용서해주셨어요" 등 자신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다독여 준 경험들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지난 해 말에는 그와 반대되는 경험을 했다. 그 날은 일 년 동안 고마웠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게시판에 붙이는 날이었는데 일학기 부회장인 미선이가 불쑥 앞에 나와 말했다. "선생님, 뒤에 붙인 편지 꼭 읽으세요." 워낙 다정다감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공격적인 성향의 아이였는데 그날은 다른 때보다 더욱 더 심각한 모습이었다.

"왜?"
"선생님이 꼭 보셔야 해요. 난 선생님께 썼거든요"

문득 '무언가 유쾌하지 않는 할 말이 있는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러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듣느라 곧  잊어버리게 되었다.  수업이 다 끝나고 나니 한 아이가 와서 이르듯이 말했다.

"선생님!, 미선이가 선생님 나쁘다고 썼어요."

뒷 게시판에 급한 성격대로 적당히 붙여놓은 미선이의 커다란 편지지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것이 보였다. 짬을 내어 얼른 달려가보았더니 "미운 선생님, 지난번에 내가 수두로 아팠다가 학교에 왔는데 선생님은 얼마나 아팠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대진이가 아팠을 땐 머리까지 짚어주더니. 선생님은 나쁘다, 정말 밉다. 빨리 6학년이 되어서 다른 선생님과 공부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공부시간은 재미있다."

나는 언젯적 일인지 생각도 안나는데 미선이는 몹시도 섭섭했나 보다. 오죽하면 며칠 남지도 않은 5학년 말에 그렇게까지 편지를 써서 모든 아이들이 보라고 뒷 게시판에 붙였으랴.

내가 편지를 보고 있는 동안에도 미선이는 내 옆에 바싹 붙어서 내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선생님이 많이 반성하고 슬퍼하기를 바라는 표정이었다. 워낙 의욕적이고 수업중에는 가장 많이 발표를 하는 아이인지라 그나마 활발하게 참여한 수업 시간은 재미있었다고 잊지 않고 써 준게 고맙기까지 했다. 

나는 미선이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그 아이를 껴안았다. 아이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아무 소리도 없이 한참을 안고 있다가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말했다. "많이 속상했겠구나. 진즉 말하지. 선생님이 정신이 없었나 보다. 미안해" 

좀 있으니 아이의 어깨가 들썩였다. 얼굴을 보니 눈이 빨갛게 되어 울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들은 모두 6학년이 되었다. 5학년과는 또 다른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 없이 바빠 보였다. 그 바쁜 중에도 수업만 끝나면 5학년 선생님 얼굴을 보고가겠다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오곤 하는데 미선이는 보이지 않았다. 미운 선생님을 잊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 즐겁게 살고있으려니 믿으며 3월이 다 지나갈 무렵 우연히 계단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래도 다행이 모른 척 하지는 않고 꾸벅 인사를 하며 계속 뛰어간다. 마음 한편이 시원하기도 하고 아프기도하다.

아이들에게 신뢰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힘들고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플 땐 항상 머리에 손도 얹어주고 배도 문질러주는 관심을 보여야 한다. 추운 겨울 찬 손을 잡아준 작은 친절만으로도 몇 년동안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고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낸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실수를 할 때도 있다.

나도 모르는 실수를 만회하는 방법은 또 다른 친절로 그 실수를 덮는 것일 게다. 자주 관심을 보이고 손잡아 위로해 주면, 앞전에 깜박 잊고 빼놓은 친절이 잊혀지지 않을까? 아이들이 아프다거나 하면 빼놓지 않고 이유를 물으며 아픈 곳을 만져주기도 하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필자이지만, 미선이 같은 경우는 씩씩하고 강해 보이는 아이인지라 단 한 번뿐인 친절의 기회를 놓쳐버렸던 것 같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나는 미선이를 지나치게 주장이 강한 아이라고 생각해 좀 무심하게 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무심함으로 인해 나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말했다. 가장 큰 사랑은 친절이라고…. 교사는 끊임없이 수양해야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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