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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아이들과 끝까지 가면 돌아오기 어려워

"지금부터 2단원 평가를 시작한다. 옆 사람 시험지를 보거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시험지를 압수한다. 알았지?"

아이들은 조용히 시험을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유독 한 아이가 이쪽 저쪽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교사는 한 번 더 타이른다.

"누가 시험보면서 이야기를 하니? 한 번 더 이야기 하면 컨닝한 것으로 간주하고 시험지를 찢어버릴거야"

그런데 좀 있다가 그 아이는 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교사는 참다 참다 화가 나서 아이의 시험지를 압수하고는 절반으로 접어 한 번 길게 찢고 말았다.

수년 전의 일이다. 과학 교과를 담당했던 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했다. 이야기인 즉은 위와 같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그 아이(가칭-상수)가 곧 찾아와 사과를 하고 다시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사과는 커녕 시험을 다시 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곧 성적을 내야할 선생님이 조바심이 나서 "너 시험 다시 봐야지"하니까 "그냥 빵점 주세요"라며 쳐다 보지도 않는 것이다. 담당 선생님은 해결 방법이 묘연하여 담임인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날 마침 퇴근 길에 상수를 만났다. 축구를 하다가 승용차까지 뛰어와 크게 인사를 한다.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응, 그래. 근데 상수야, 너 수행평가 점수가 없던데? 다른 아이들 점수는 다 왔는데 네 점수만 안 왔어."

상수는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즐겁게 놀고 내일 아침에 다시 얘기하자"
"네"

 다음 날 상수는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스스로 나와서 말했다.

“사실은요, 시험보는 중에 제가 좀 이야기를 했더니 선생님께서 제가 컨닝한 줄 아시고 시험지를 찢어버리셨어요."
"어이구, 시험보다가 얘기를 했어? 중요한 일이 있었던거니?"
"네, 그 날 점심에 4반 애들하고 축구시합하기로 했는데 선수들이 다 안모여져서..."
“그럼 어쩌지? 점수가 없으면 우리 반 모두 성적처리를 할 수가 없는데..."

고민하는 나를 보고 상수는 잠시 생각하는 듯 망설이더니 곧 스스로 정답을 찾아내어 말한다.

"제가 과학선생님께 가서 시험을 다시 본다고 할게요"
"그래? 혹시 불편하면 선생님이 말씀드려줄까?"
"아니요, 제가 혼자 가서 할게요"
"그러면 그날 네가 시험을 보는데 이야기 한 건 시험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고 말씀드려서 오해를 푸는게 좋겠구나."

그 날 오후 상수는 과학선생님께 가서 다시 시험을 보았다. 물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설명과 간단한 사과까지 했다고 한다.

사실 상수의 시험에 임하는 태도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아이의 시험지를 뺏을만큼은 아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때때로 정확하고 자기 확신이 뚜렷하며 빈틈없이 일하는 교사들 중엔 극단적인 경우가 가끔씩 있다. 좀 더 잘해보려는 노력이 지나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아이들과의 관계는 어떤 경우라도 끝까지 가서는 안 된다. 끝까지 가고 난 다음에는 되돌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담임교사와 그런 관계가 된다면 아이는 일년 내내 가슴앓이를 해야 할 것이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에서 배우듯 최소한도의 도망칠 곳은 마련해주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한 일일 것이다.

상수는 우리 반에서 회장이었던 아이다. 자존심이 강했던 만큼 저항도 있었고 또 그 자존심 때문에 잘못된 상황을 빨리 깨달아 다시 바로잡을 수 있었다. 지금은 중학교에서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이 종종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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