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젊은 선생님을 좋아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 역시도 젊은 선생님을 선호한다. 새내기 선생님, 그 중에서도 남자 선생님의 인기는 초등생 학부모에게 최고다. 그런데 아이들과 학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서울지역 초등학교의 경우 교사의 평균연령이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 교사임용고사에 나이제한이 폐지되면서 신규발령자의 나이가 높아지기도 했고, 복직자가 많아 신규발령의 숫자가 줄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신학년도가 되면 아이들은 혹시라도 새로 만나는 선생님이 보송보송하고 앳된 선생님이기를 기도하며 가슴 설렌다니, 아뿔싸! 큰일이다. 그러면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나같은 교사들은 어쩌란 말인가? 첫 만남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실망을 주는 비선호 교사가 되어야만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다행스럽게도 나이에 관계없이 늘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선생님들이 학교마다 몇 분씩 있다. 그 중에는 중년 이상의 나이가 지긋한 분들도 적지 않으니 아이들이 젊은 교사를 좋아한다는 말은 꼭 맞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다. 아이들은 실제로 젊은 선생님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단지 아이들은 나이가 아니라 행동과 사고가 젊은 교사를 사랑하는 것이다.
젊다는 것은 무엇인가? 얼굴이나 몸매가 날씬하고 예쁜 것인가?
우리가 보통 누군가가 나이보다 젊다고 느낄 때는 그 사람의 외모보다는 그에게서 발산되는 에너지, 즉 열정을 느끼거나, 새로운 상황과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부드럽게 적응하는 유연성을 발견했을 때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열정이 젊음의 척도가 되는가?
열정은 꿈을 유지하게 한다.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도전하게 한다. 미흡한 대상을 뜨겁게 사랑하게도 만들어준다. 끊임없이 발전하고픈 원동력이 되고 아이들 속에 파묻혀 학교 중독자가 되게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교사는 쉰이 넘은 나이에도 스카우트 지도교사로서 아이들과의 활동 중에는 폭발적인 열정으로 동화된다. 그 분을 볼때면 중년이라기보다 소년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사랑을, 학부모와 동료 교사에게는 존경을 받는 분이다.
유연성이란 자유로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직되거나 아집에 매이지 않고 상황의 변화에 적응함은 물론 상황을 앞서 나가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종종 창의적이다 못해 기발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실수조차 숨기려 하기보다는 담대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오히려 당당하다. 사고가 유연한 교사는 평범한 교사들과 달리 엉뚱하고 장난스러운 개구장이들을 좋아한다. 종종 개구장이들을 능가하는 엉뚱함으로 그들을 놀라게 한다. 개구장이들에게서 엑기스같은 기발함을 뽑아내 학습에 활용하기도하여 아이들은 나날이 총명해진다.
이러한 열정과 유연성은 바로 모든 아이들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들이 그들을 빼어 닮은 선생님에게 친구같은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매우 영리하다. 손에 밀가루를 칠한다고 호랑이를 엄마로 속아주지 않는다. 단지 나이가 어리다고, 또는 얼굴과 몸매 관리만을 잘했다고 하여 절대 그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될수는 없다. 기특하게도 아이들은 겉보다 속이 젊은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이다.
평생을 젊게 살다가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나이가 어린 사람도 모두 진정 젊은 사람은 아니듯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 늙은 사람도 아니다. 열정과 유연성에 나이 먹은 교사만이 지닐 수 있는 지혜까지 겸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젊음이 아니겠는가? 젊은이들이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무모함까지 피해갈 수 있으니 최고의 선생님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