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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평생 교실에 남아있기를…

3월 초 신규발령을 받은 새내기 선생님들이 교무실에 처음 발을 들이밀면 교무실 안은 병아리 색깔과도 같은 따스한 봄색깔로 술렁인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여리디 여린 선생님들. 그들의 순수함과 열정을 보면서 우리들도 저런 날이 있었겠구나 막연히 회상하며 함께 즐거워지는거다. 드문드문 섞인 남자 선생님들을 보면 그 마음은 더하다.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하면서 나의 신규발령지에서 만났던 젊은 남선생님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들은 여학생들에겐 연분홍빛 첫사랑의 느낌을, 남학생들에겐 형과 같은 편안함을 준다.

그것 뿐이랴. 여선생님들과 달리 아이들과 어울려 축구 경기도 자주 뛰어주고, 옆 반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레크레이션 시간도 잘 가져주며 아이들과 함께 즐기곤 한다. 수련활동이라도 가면 다른 선생님들은 사고 예방과 아이들 관리에 신경을 쓰지만 그들은 누가 아이인지 선생인지 구별이 어렵게 활동에 직접 참여하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준다. 가끔씩 지나치게 자유스럽지 않나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내심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부족함과 지나침이 아름답게 보여지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한 때,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수업 중 아이들과의 교감으로 온 몸이 쭈뼛서는 소름을 경험하고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느라 눈물 흘려가며 고민하던 그 날들은 내게 교직의 신성함과 자신의 존재감에 터져버릴듯한 충만함을 주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각종 중요한 업무를 담당해야만 하게 되었다. 어느새 학교의 많은 일들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꼭 해야만 하는 그 일들은 아이들만큼이나 내게 중요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막중한 일들로 패기있던 젊은 교사들도 지쳐가고 드문드문 승진공부한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르치는 일에서 교육전문직으로, 교감으로 방향을 바꾸곤 하였다. 물론 그 위치에서도 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교실에서 떠나보내기엔 아이들의 입장에서 너무나 아까운 분들이 많았다. 아마 학교의 업무를 담당하고 각종 연구를 하다보니 승진의 기회도 더 많았을 터이다. 또 종합선물셋트처럼 잡다하면서도 복잡한 학교의 업무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동시에 하느니 자신의 뜻을 더 높이 펼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가겠다는 열정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여러 이유로 교실에선 중년의 남교사를 보기가 힘들어졌고 남교사뿐 아니라 가르치는데 탁월한 소질을 지닌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게 되었다. 

훌륭한 선생님, 재능있는 선생님을 선별해 뽑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그들이 죽을 때까지 교단에서 머물고 싶어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도 중요하다.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업무들이 마치 쓰나미처럼 교실로 몰려든다는 것은 교육의 재앙이다.

늘 그랬듯 신학년도가 시작되고 4월도 지나기 전에 교사들은 벌써 기진맥진이다. 교육이나 학생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것들은 모두 뭉뚱그려 교육적이라는 미명아래 학교로, 교사에게로 업무가 쏟아져온다. 갈 수만 있다면 도망가고 싶게 만드는 교육환경이 선생님들을 병들게 만들고 재능을 발휘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교사는 평생 가르치며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생계수단이 아니라 행복해서 교단에 남아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수석교사제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또 교사의 업무경감을 위해 서울시 교육청에서 특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이 전해지는 것도 참으로 반가운 일이며 꼭 실현되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 모든 업무가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교사뿐 아니라, 교감이며 행정실이며 모두 업무의 포화 상태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무자체가 줄어들지 않는 한 그 업무는 결국 학교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행해져야만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 업무들로 인해 또 다시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교장과 교감, 교사가 각자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담당해 줄 때 비로소 학교가 바르게 설 수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

아무쪼록 교실에서 파릇파릇한 열정의 선생님들이 그 열정 그대로 평생 교실에 남아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시대가 빨리 와주기를 고대한다. 아울러 힘들고 어려운 시절, 국가건설자로서 온갖 업무와 가르침에 헌신했던 교장, 교감님들의 업적도 함께 존중되어지는 그 날, 학교는 진정 학생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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