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어 교사가 꿈이었던 평범한 여대생 염혜란은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연기에 매력을 느꼈다. 졸업 후 출판사 등에서 일하다가 1999년 극단 연우무대에 입단해 이듬해 <최선생>으로 데뷔해 20년 가까이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졌다. 연극 <이爾>에 광대 역할로 출연한 그녀를 눈여겨 본 봉준호 감독이 오디션을 제안해 <살인의 추억>(2003)으로 영화에 데뷔했다.
대중에게 그녀의 얼굴을 알리게 된 작품은 <도깨비>에서 주인공 은탁(김고은)을 괴롭히는 이모 역할을 맡으면서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던 그녀는 2022년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와 2025년 <폭싹 속았수다>로 글로벌 팬덤을 가진 배우가 됐다. 지난 3월 <매드 댄스 오피스>(감독 조현진)로 원톱 영화 데뷔에 이어 4월은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내 이름은>(감독 정지영)으로 관객을 만나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 윤여정 배우가 ‘연기를 잘해 처음 봤을 때부터 콕 찍었다는’, 조·단역과 특별출연을 가리지 않고 존재감을 증명하며 이제는 대체 불가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염혜란을 만났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알아보는 글로벌 배우가 되셨죠. 외출하기 힘드시겠어요(웃음).
<폭싹 속았수다>가 제일 컸던 거 같아요. 그런데 해외 영화제에서 만난 외국인 관객 중에서는 <더 글로리>가 인상적이었다면서 사진 찍어달라던 분도 계셨고요. 관객마다 꼽는 작품이 다르다는 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제 필모그래피에 좋은 작품이 많다는 거니까요.
한 인터뷰에서 “무명 시절에는 연기만 하고 살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셨죠. 지금 그렇게 됐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그때는 경제적인 이유가 컸죠. 배우라면 연기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욕망을 늘 갖고 살잖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경제적 이유로 연기만 하고 싶다, 아이 키울 때는 육아 말고 연기만 하고 싶다, 이렇게 항상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던 거 같아요. 아마도 제 성향이 그랬던 거겠지만요. 이제는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제 욕망이 순수해지기가 굉장히 어려워지는 시기가 된 거 같아요. 점점 더 나이도 들어가고, 관객이 염혜란이라는 배우에게 바라는 점들도 늘어가잖아요. 예전에는 이것만 잘하면 좋겠다, 다양한 캐릭터가 들어오면 좋겠다 정도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많은 것들을 고민하는 것 같아서 제 욕망이 순수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염혜란이라는 배우에 색깔이 많아진 거겠죠. 좀 더 순수한 욕망으로 연기를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죠. 일단 3월에 개봉했던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감독 조현진)에서 ‘갓생 공무원 국희’를 연기하면서 관객에게 공감을 얻으셨어요.
완벽주의 공무원은 저랑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일하는 한 사람으로 보니, 저 역시 국희처럼 접근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배우로서 매일매일 수련하면서 경력을 쌓아가던 제 방식이 나중에는 옳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거든요. 국희 역시 한 직장에서 25년 넘게 일했고, 성과도 좋았어요. 그런 지점에서 일을 대하는 태도가 일단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또 자신과 다르게 살아온 후배를 바라보는 시선과, 자식을 대하는 기준 역시 들여다볼수록 저랑 비슷하더라고요. 제가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게 국희라는 캐릭터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관객들도 그 점을 잘 봐주신 거 같아요.
직장에서는 승승장구하는 일머리 똑 부러지는 완벽한 상사지만, 사실 후배 직원들은 매일매일 야근에 힘들어하고, 남편 사별 후 삶의 이유가 됐던 하나밖에 없는 딸은 결국 집을 나가버렸죠. 국희에 공감하셨다고 했는데, 실제 연기를 하기 위해 캐릭터 구축은 어떻게 하셨어요?
일단 완벽주의는 국희가 타고난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요. 나름으로 열심히 공부했을 테고, 루틴과 틀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의 인물이었다고 생각했죠. 그런 완벽주의가 말씀하신 아픔을 겪으면서 더 강화된 거예요. 그렇지 않았다면 국희의 장점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핏덩이 하나 살리겠다고 그렇게나 힘들게 살아왔으니,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알려주고 싶었던 거 같아요. 후배 직원들이나 딸에게요. 지나고 나서 이야기지만, 조현진 감독님이 “국희라는 인물이 염혜란 배우를 만나서 조금 더 인간적인 국희가 된 거 같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야기를 듣고 아, 내가 연기를 뭔가 잘못했구나, 싶었어요(웃음). 감독님은 국희라는 사람을 더 밉고, 이해가 안 되는 비호감에 가깝고 틀에 박힌 사람으로 그리고 싶으셨던 건데, 저는 국희를 ‘변화를 겪는 사람’으로 해석했던 거니까요.
<매드 댄스 오피스>를 보면서 많은 관객들이 <쉘 위 댄스?>(감독 수오 마사유키, 1996)를 떠올렸을 거 같아요. 영화에서 플라멩코를 멋지게 소화하셨던데,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저도 그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뭔가 틀에 얽매여 살던 주인공이 깨고 나오는 영화였으니까요. 플라멩코는, (한숨) 발목을 잃고 춤을 얻었습니다(웃음)! 신발 세 켤레를 갈아치울 정도로 연습했거든요. 처음 학원에 가서 선생님께 “제가 무릎이 좀 안 좋아서요”라고 말씀드리면서 몸을 좀 사렸는데요. 선생님이 발구르기를 딱 보여주시는데, 정말 영화 속 국희처럼 깜짝 놀랐어요. 바닥이 무너질 것 같은, 발 구름이 주는 울림이 강력하더라고요. 그리고 공연을 보러 갔는데,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왜 플라멩코를 영혼의 춤이라고 하는지가 느껴지더라고요.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추는 것 같은데, 그 안에 고도의 숙련된 계산도 들어 있고요. 플라멩코라는 춤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견고한 콘크리트를 부수는 힘이랄까요? 감독님이 오랫동안 플라멩코를 배우셨던 경험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 있던 거죠. 플라멩코의 해방감과 행복감을 관객들도 느끼셨으면 해서 더 열심히 췄던 거 같아요. 직접 춰보니 자유로움도 느껴졌고요.

4월에는 정지영 감독의 오랜만의 복귀작이자 제주 4·3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 <내 이름은>으로 관객을 만나세요. 해외에서 일찌감치 작품성을 알아본 영화여서인지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초청으로 레드카펫을 밟으셨습니다. 아직 영화제 ‘뽕’이 안 빠지셨다고요(웃음).
베를린의 고풍스러운 정취가 물씬 풍기는 유서 깊은 극장 ‘시네마 파리’에서 2월 13·14일에 월드 프리미어로 관객을 만났는데, 객석은 일찌감치 매진이었어요. 사실 저는 스스로를 영화인이라고 별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드라마도 하고 연극도 하니까요. 영화인들을 보면 여전히 따로 모이고 있거든요. 그러다가 <어쩔수가없다>로 박찬욱 감독님을 만나면서 영화를 더 사랑하게 된 거 같아요. 영화제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잖아요. 물론 영화제에 간다고 무조건 그런 건 아니지만(웃음). 사실 영화라고 하면 우리끼리 보는 거였는데, 영화제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향유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는 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잖아요? 한국 영화가 우리만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한국 관객보다 더 우리 역사를 느끼고 즐기는 외국 관객을 보면서 더 영화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런 경험이 아, 영화제에 더 많이 가고 싶다, 누리고 싶다! 라는 ‘뽕’을 차오르게 하네요(웃음). 베를린에 가서 제가 좋아하는 양자경 배우가 수상 소감하는 것도 듣고, 외신에서 <내 이름은>에 대한 리뷰를 잘 써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베를린영화제 측은 <내 이름은>에 대해 ‘비극적인 역사가 남긴 침묵을 깨는 경이로운 작업이자, 치밀하게 구축된 서사와 강력한 감정적 울림을 가진 작품’이라고 극찬했어요. 기획 단계부터 제주4·3평화재단 시나리오 대상을 받았고, 1만 명이 넘는 시민의 후원으로 제작됐죠. 어떤 영화인가요? 이 작품도 원톱으로 끌고 가시나요?
아유, <매드 댄스 오피스>도 그렇고 <내 이름은>도 그렇고 투톱 영화라니까요(웃음). 아들 영옥(신우빈)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러니까 저는 투톱 전문 배우인 걸로요(웃음). 촌스러운 이름을 버리고 싶은 열여덟 살 아들 영옥과 그 이름을 지켜야만 하는 어머니 정순이 그 이름 뒤에 숨겨진 50년 전의 비밀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해외 관객 평이 인상적이더라고요. 한 관객은 “크레딧이 끝난 지 15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몸이 떨릴 정도”라고 했고, 이란 출신 한 관객은 “자국의 시위와 학살의 아픔이 겹쳐 보여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언젠가 악몽이 끝나고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얻었다”라고 했어요. 무엇보다 50년 전의 약속을 찾아가는 ‘어멍’ 역을 맡은 염혜란 배우에 대해서는 “정말 어메이징하다!”, “염혜란의 연기는 스크린의 모든 것을 폭발시킬 정도로 웅장하다”라는 호평이 쏟아졌습니다. 어멍은 염혜란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의미로 읽히는데요.
캐릭터로 기억되는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배우로서 어마어마하게 큰 영광이죠. <더 글로리>의 ‘현남’, <폭싹 속았수다>의 ‘광례’ 같은 캐릭터를 만난 건 하늘이 도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앞으로 저에게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왕관의 무게는 결국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죠. 힘들겠지만, 담담한 사람으로, 배우로 남길 바라고 있습니다.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배우가 되셨으니, 더 나은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더 커졌을 거 같아요.
스코어로 연결이 안 돼서 문제네요(웃음). <어쩔수가없다>도 더 많은 관객이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 주연을 맡으면서 부담되는 건 감당해야 할 부분이 많아진다는 거예요. 예전에 조연·단역·특별출연을 할 때는 ‘이 정도만 해도 된다’라는 피할 구멍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 분량이 편집되면 너무 아까웠어요. 찍은 게 얼마나 된다고 그걸 자르냐면서요(웃음). 그런데 주연은 지붕이 좁더라고요. 짊어져야 할 부분이 큰 데다 어디 가서 변명할 수도 없고요. 주인공을 맡아보니 아, 이건 없어도 되는 장면이구나 하는, 작품 전체를 보는 눈도 생기는 거 같습니다.
캐릭터를 구축할 때 본인 속에서 재료를 녹여내는지, 아니면 외부에서 가져오는지 궁금합니다.
연기는 저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먼저예요. 저로 시작해서 그 인물에게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캐릭터를 보면 ‘아, 내가 강했구나’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내가 아닌 캐릭터에 더 다가갔다’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죠. 어떤 경우든 출발점이 제가 아니면 공감이 어렵다고 봐요. 그래서 초반에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해가 잘 안돼요”라고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요. 그래서인지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왜 그렇게 나와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했지? 다 나에게 있는 부분들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멀리 있는 인물이 아니었던 거죠.
매년 전성기를 갱신하는 거 같아요. 배우로서 지금 어느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지나 봐야 알 것 같아요. 나중이 되어봐야 좋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저 지금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입니다.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꾸준히 연기를 할 수 있는 이유로 ‘본인 얼굴’을 꼽으셨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세요(웃음)?
약간 그런 거 같아요. 옛날 같았으면 저 얼굴로 주인공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웃음). 저는 멀리 보기보다는 바로 앞을 보는 편이에요.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 같기도 하고요. 정말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결과를 떠나서도 배우로서 의미 있는 시도를 계속하고 싶어요.
지금 일하지 않는 비수기라고 말씀하셨는데, 평소 쉴 때는 뭐 하세요?
평소 안 해보려고 했던 것들을 해보려고 해요. 예전에 중국어를 배우고 싶었는데, 바로 촬영이 들어가는 바람에 중단됐거든요. 이번에 <내 이름은> 덕분에 한국무용을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그래서 요즘은 한국무용에 푹 빠져 있습니다. 저는 사실 강한 동기부여가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이거든요. 다이어트도 꼭 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안 할 정도로요(웃음). 단순한 즐거움이 없던 사람인데, 결과물이 없더라도 단순한 즐거움에 빠져보자! 라고 생각하면서 한국무용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활동하시겠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다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연극이 있어요. 한 명의 배우가 극을 이끌어가는 모놀로그 연극이요. <버자이너 모놀로그>나 <늙은 창녀의 노래> 같은 작품은 와, 정말 해보고 싶었어요! 여배우 혼자서 여성의 이야기를 그렇게나 농밀하게 표현하는 작품이니, 연기를 시작한 어릴 때부터 너무 하고 싶었죠. 그런데 점점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죽어도 못 하겠다는걸요(웃음). 젊었을 때는 객기로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세계를 알수록 더 못할 거 같은 기분이에요. 40·50대 여배우가 여성 서사를 끌고 가는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있습니다.
사진 제공 정보 ● 넷플릭스, ㈜엔케이컨텐츠, 와이드 릴리즈, CJ CGV, 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