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타깝게도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한국 영화는 없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와 봉준호 감독의 <미키17> 모두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후보에 지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두고 “국제적인 영화제가 아니라 로컬 시상식”이라고 ‘위트 있게’ 말하긴 했지만, 씨네필은 물론 전 세계 영화인이 가장 기다리는 시상식이기에 유독 아쉬운 2026년이다. 그래도 별들의 전쟁이 궁금한 마음은 그대로다. 3월 15일 ‘ABC TV’와 ‘Hulu(훌루)’를 통해 생중계되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릴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시상식 전 주요 부문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최고의 영예, 작품상과 감독상
<씨너스: 죄인들>, <원 배틀 애프터 어너더>, <햄넷> 3파전
작품상 후보는 10편이다. 평단 반응과 해외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씨너스: 죄인들>과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너더>의 치열한 맞대결로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먼저 <씨너스: 죄인들>은 1930년대, 시카고 갱단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쌍둥이 흑인 형제가 끝내주는 술집을 여는데, 처음 문을 여는 날 불청객, 무려 뱀파이어들이 찾아오며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아카데미 주요 부문인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남우조연상·여우주연상·각본상은 물론, 촬영·편집·미술·의상·분장·음향·시각효과·음악·주제가상과 올해 신설된 캐스팅상 후보까지 16개 부문에 이름을 올려, 기존 14개 부문에 후보를 올렸던 <라라랜드>(2016), <타이타닉>(1997), <이브의 모든 것>(1950)의 최다 후보 기록을 갈아치웠다. <블랙팬서> 1·2편을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통상 공포영화 장르에 인색했던 아카데미가 끈적한 블루스 음악을 휘감은 뱀파이어 호러영화를 주요 부문에 올린 것 자체가 상당히 파격적으로 느껴진다.
‘아이맥스관 필람 영화’로 불리는 <원 배틀 애프터 어너더> 역시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영화는 혁명을 꿈꿨던 젊은 시절을 감춘 채 망가진 삶을 살던 아빠가 자신의 딸을 납치한 16년 전의 숙적 ‘록조’ 장군을 쫓는 추격 블록버스터다. 영화 후반부 물결처럼 굽이치는 구간에서 펼쳐지는 클라이맥스 카체이싱 장면은 스턴트·CG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롤러코스터에 앉은 듯한 영화적 쾌감을 선사한다. 딸을 찾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변태’ 숙적 역은 대체 불가 연기파 배우 숀 펜이 맡아 완벽한 연기 변신을 보여준다.
아직 국내 개봉 전인 클로이 자오 감독의 두 번째 영화 <햄넷>도 강력한 수상 후보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작품상·여우주연상 수상을 포함해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67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영화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영국인의 사랑을 받는 불멸의 작가 셰익스피어의 숨겨진 이야기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온 ‘아녜스’는 마을에 새로 온 교사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이루지만, 갑자기 찾아온 비극으로 두 사람은 삶의 이유를 상실하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극복하려 애쓰는데, 그 과정에서 세기의 비극 <햄릿>의 서사가 피어오르게 된다. 전작 <노매드랜드>로 제93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이후 연속 수상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외에도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를 그리스 거장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리메이크한 <부고니아>, 믿고 보는 제작사 A24의 <마티 수프림>(감독 조쉬 사프디), 브라질 출신 거장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의 <시크릿 에이전트>, 현시대 청년들의 일상과 욕망을 초현실적으로 다루는 덴마크 출신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센티멘탈 밸류>, 브래드 피트의 건재함을 알린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F1: 더 무비>도 작품상을 놓고 경쟁한다. 지난해 작품상 부문에 한 편도 올리지 못했던 넷플릭스는 <기차의 꿈>(감독 클린트 벤틀리)과 <프랑켄슈타인>(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두 편을 후보에 올렸다.
감독상에는 <씨너스: 죄인들>의 라이언 쿠글러, <햄넷>의 클로이 자오, <마티 슈프림>의 조쉬 사프디, <센티멘탈 밸류>의 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이름을 올려 5파전이지만, 사실상 <원 배틀 어너더>로 트럼프 시대를 풍자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에 대한 호평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아직 아카데미 무관의 거장이라는 점도 그의 감독상 수상 예측에 힘을 싣는다.

가장 치열할 남우주연상은 5강전!
티모시 샬라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이클 B. 조던, 에단 호크, 바그너 모라
올해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일 남우주연상에서는 <마티 슈프림>에서 괴짜 사기꾼 탁구 선수로 완벽 변신한 티모시 샬라메의 수상이 유력해 보인다. 지난해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젊은 시절 밥 딜런의 모습을 완벽히 소화해 작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였지만, 이민 예술가의 고독과 광기를 표현한 <브루탈리스트>의 에이드리언 브로디에게 아쉽게 트로피를 넘겨줬다.
2018년 스물두 살 나이에 출연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필두로, 지난 8년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만 3차례 노미네이트되는 기록을 세운 티모시 샬라메가 세 번의 도전 끝에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오스카 전초전으로 불리는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영화 부문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아카데미 수상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이다.
통산 여섯 번째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2016년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지 꼭 10년 만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로 다시 후보에 올랐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전작 <크리드> 1·2편에서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마이클 B. 조던이 <씨너스: 죄인들>에서 쌍둥이 형제 ‘스택’과 ‘스모크’를 소름 끼치는 1인 2역 연기를 선보여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됐고, <비포 썬라이즈>,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시리즈의 주인공 에단 호크가 <블루 문>으로 배우 커리어상 최초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티모시 샬라메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시크릿 에이전트>로 인생 연기를 선보이며 지난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그너 모라라는 예측이다. 1970년대 후반 브라질 군사 독재 시절, 고향으로 돌아온 한 남자가 실종된 어머니의 기록을 더듬으며 아들과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로, 바그너 모라는 브라질 남자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안타깝게도 <마티 슈프림>과 <시크릿 에이전트>는 국내 미개봉 상황이다. 둘 중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는 영화는 극장가에서 ‘아카데미 특수’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레드카펫의 주인공 여우주연상
제시 버클리, 로즈 번, 레나테 레인스베, 엠마 스톤
여우주연상은 <햄넷>에서 셰익스피어의 아내 역할을 맡아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 제시 버클리의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이미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유력 수상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부고니아>에서 피칠갑에 삭발 투혼까지 선보이며 외계인 역할을 소화해 낸 엠마 스톤이 이번에 수상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기 때문이다. 육아로 번아웃이 오면서 삶이 붕괴되는 엄마의 모습을 섬뜩하게 그려낸 <다리가 있다면 너를 걷어찰 거야>(감독 메리 브론스타인)에서 엄마 역을 맡은 로즈 번은 다크호스다. 베를린영화제는 “로즈 번이 인생에 남을 연기 퍼포먼스를 보였다”고 평하며 은곰상을 안겼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를 맡는 코난 오브라이언이 주연급 상대 배우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영화감독 아버지와 두 딸이 영화 한 편을 계기로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과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센티멘탈 밸류>에서 딸 역을 맡은 레나테 레인스베도 숨은 강자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전작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서 한 번 호흡을 맞췄는데, 두 번째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의 문을 두드렸다. 재밌는 점은 요아킴 트리에와 레나테 레인스베의 열혈 팬으로 알려진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2025년 최고의 영화를 딱 한 편 꼽으라면 <센티멘탈 밸류>일 것이다. 레나테는 영화를 위해 태어난 얼굴과 재능을 지닌 배우로, 누구든 숨이 멎을 만큼 압도한다. 나는 그가 화면 속에서 보여준 연기들 때문에 혈압이 치솟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그는 영화의 천국이 내려준 선물이다”라고 극찬했다는 점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장편애니메이션상 받을까?
<아르코>, <리틀 아멜리>, <엘리오>, <주토피아 2>
장편애니메이션 분야에서 한국 관객의 최대 관심사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감독 메기 강)의 수상 여부다. 장편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는데, 골든글로브 어워즈에서 두 부문 모두 수상하며 2관왕에 올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상 기대를 높인다. 하지만 경쟁작들이 만만치 않다. 먼저 제49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2관왕을 차지하며 평단의 극찬을 받은 <아르코>(감독 우고 비엔베누)의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로부터 ‘2D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부순다’라는 극찬을 받은 <아르코>는,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제작과 목소리 연기에 참여해 화제가 됐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사이 누나의 무지개 망토를 훔쳐, 서기 2932년에서 2075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소년 아르코가 매일 태풍이 몰아치는 잿빛 지구에서 살고 있는 아이리스를 만나게 되고, 그런 아르코를 뒤쫓는 미스터리한 삼 형제와의 추격전이 주 스토리라인이다.

역시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고, 제28회 칸영화제 특별 상영 부문에 초청된 <리틀 아멜리>(감독 메일리스 발라데·리안 조 한)도 눈길을 끈다.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를 신이라고 믿은 엉뚱한 세 살 소녀 아멜리가 세상의 사계절을 마주하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오색찬란하고 따뜻한 파스텔톤으로 그려냈다. 영상미와 완결성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들도 있지만, 국내 830만 관객을 동원한 <주토피아 2>와, 외톨이 소년과 외계생명체의 만남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담은 <엘리오> 역시 후보로 경합한다.
아직 못 본 영화 혹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극장을 찾아 아카데미 수상 결과를 예측하며 작품의 감동까지 미리 만끽할 수 있다. 롯데시네마에서는 3월 10일까지 ‘2026 아카데미 기획전’을 연다. 음향특화관인 ‘광음시네마’와 ‘광음LED’에서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시라트>, <씨너스: 죄인들> 등 10편을 상영해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하고 수상작 예측 이벤트도 진행한다. CGV도 ‘2026 아카데미 기획전’을 열어 13편의 주요 작품을 상영한다. 광화문에 위치한 국내 예술영화관 대표 주자 씨네큐브에서도 3월 24일까지 ‘씨네큐브 2026 아카데미 화제작 열전’을 개최한다.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도 13편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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