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복되는 사고, 벼랑 끝에 몰린 교육 현장
2022년 11월 속초시의 한 테마파크에서 현장체험학습 중 학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솔 교사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고, 1심에서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최근 춘천지방법원 항소심은 이를 파기하고 금고 6개월의 선고유예를 선고했다. 형의 집행은 유예됐지만, 법적으로는 유죄 판단이 유지된 셈이다.
대법원 판단이 남아 있으나, 교육 현장에 미친 파장은 이미 적지 않다. 이후에도 지난 1월, 현장체험학습 도중 이탈한 4세 원아가 숨진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유치원 교사들에게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건도 큰 파장을 낳았다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격앙된 분위기였다. 일부 교사들은 “교사가 신이냐, 그 많은 아이를 어떻게 모두 관리할 수 있느냐. 누가 오더라도 불가능하다”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한 법원 판결에 현장의 현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따라 현장체험학습을 거부하겠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반면 학생들이 선호하고 교육적으로도 필요한 활동인 만큼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어 왔던 만큼 관리만 철저히 하면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는 혼란 속에서도 현장을 지키려는 교사들의 사명감과 고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26년 현장체험학습을 앞두고 교육부와 교육청 차원의 제도적 보완이 있을지 주목되지만, 이미 상당수 학교는 현장체험학습을 포기하거나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단순한 매뉴얼 강화만으로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무한 책임’ 구조가 낳은 교육의 위축
비슷한 맥락으로, 판결 직후 교원단체들은 일제히 우려를 표했다. 교사는 교육전문가이지, 모든 안전사고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전적인 책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학교 밖 활동에서 발생한 사고가 학교 시스템의 문제로 다뤄지기보다는 교사 개인의 형사책임으로 귀결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많은 외부 공간에서, 교사 1명이 수십 명의 학생을 인솔하는 구조 자체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 결과를 개인이 감당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교사의 유·무죄 문제를 넘어, 현장체험학습의 존립 자체를 흔들고 있다. 현장체험학습은 소풍·수학여행, 각종 체험프로그램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과거에는 숙박형 수학여행과 수련활동이 활발했지만, 세월호 참사와 반복된 안전사고, 코로나19를 거치며 이미 크게 위축됐다. 최근에는 당일형 체험학습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으나, 이번 판결 이후 그마저도 불확실해졌다는 분위기다.
실제로 교원 사회의 여론은 급격히 기울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안전과 교원 보호 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중단’ 또는 ‘아예 폐지’ 의견이 압도적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는 “사고 한 번이면 교직 인생이 끝날 수 있다”는 공포가 공공연히 회자된다. 교육적 효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 장치 없는 책임 구조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토로다.
반면 학부모 입장은 복합적이다. 현장체험학습이 학생들에게 주는 교육적 가치와 사회적 경험, 특히 저소득층 학생에게 제공하는 기회균등의 측면을 강조한다. 일부에서는 교육과정의 일부인 활동을 교사들이 집단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직무유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안전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해법을 두고 시각차가 뚜렷하다.
‘주의의무’ 범위에 대한 근본적 질문
법·제도적 보완도 뒤따랐다.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학교 밖 교육활동 보조인력까지 면책 대상에 포함됐고, 일정 부분 교원 보호 장치가 강화됐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면책 기준이 주로 사고 이후의 대응 지침 준수 여부에 초점을 두고 있어, 사전 예방조치의 범위와 책임 한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사고까지 ‘주의의무 위반’으로 확대 해석될 여지가 남아 있다면, 교사의 불안은 해소되기 어렵다.
더욱이 선고유예라 하더라도 형이 선고됐다는 사실 자체는 남는다. 공무원은 금고형 이상 선고 시 원칙적으로 파면 대상이며, 선고유예의 경우에도 징계 절차를 거치게 된다. 형사재판과 별도로 징계위원회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구조는 교사들에게 이중 부담으로 다가온다. 법적으로는 ‘선처’일지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직업적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결국 ‘주의의무의 범위’다. 교사가 현장에서 어느 정도까지 위험을 예견하고 통제해야 하는가. 사고 당시 교사는 버스에서 내려 학생을 인솔하는 과정에 있었고, 짧은 시간 사이에 비극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만 놓고 보면 “더 살폈어야 했다”는 말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모든 위험을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법적 판단과 별개로, 이 질문은 교육 현장 전체가 직면한 고민이다. 군인이나 경찰 등 공무원에게도 여러 책임이 따르지만, 미성년자를 상대하는 교사의 경우는 이들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체험학습 중 사고는 있었다. 그러나 최근처럼 형사책임이 적극적으로 문제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회 전반의 책임 의식이 강화된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모든 결과를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경향 또한 짙어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교사들은 방어적으로 변하고 있다. 책임이 무거워질수록 선택은 보수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교육의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현장체험학습은 법적으로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의무 조항은 아니다. 학교 자율과 교육적 판단에 맡겨진 영역이 크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위험 대비 보호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면 학교는 가장 손쉬운 선택, 즉 ‘하지 않는 것’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부 학교에서는 외부 활동 대신 ‘찾아오는 체험학습’으로 대체하거나, 아예 계획 자체를 세우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제논리를 앞세우면서, 버스업체나 관련 업종 종사자들의 생태계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는 수업이 먼저이지 경제효과를 고려해야 할 의무는 없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체험 중심 교육은 교실 수업이 대체할 수 없는 학습경험을 제공한다. 사회성과 협력, 공공장소에서의 규범 학습 등은 현장에서 몸으로 익히는 부분이 크다. 만약 현장체험학습이 사실상 사라진다면, 그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교육의 위축이 안전의 대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새로운 책임 구조를 위한 냉정한 논의
그렇다고 교사 개인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는 방식이 답일 수도 없다. 안전은 개인의 선의와 헌신에만 기대어 유지될 수 없다. 명확한 기준, 현실적인 인력 배치, 책임 범위의 합리적 한정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교사 보호가 곧 무책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임의 경계를 분명히 할 때, 각 주체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한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교육 정책 전반에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체험 중심 교육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 회피 속에 점차 축소할 것인가. 학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교사를 잠재적 피의자로 만드는 구조를 그대로 둘 것인가.
교사들이 느끼는 공포를 ‘이기심’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직업을 걸고 위험을 감수하라는 요구는 설득력이 약하다. 동시에 체험학습의 교육적 가치를 외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립이 아니라, 책임 구조를 재설계하는 냉정한 논의다.
현장체험학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아니면 새로운 보호 장치 속에서 재정비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과 같은 불안 구조가 지속된다면 현장체험학습은 점차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교육의 이름으로 책임을 요구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호 장치 또한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현장체험학습의 교육적 효과는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이 교사 개인의 헌신에 의존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하나의 대안으로 자동차보험처럼 의무적 보험 가입과 종합 처리 시스템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법·제도적 보완이 우선되어야 하며, 현재 상황에서 교사들이 느끼는 공포를 해소하기까지는 일정한 시간도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법의 미비만을 탓하기에 앞서, 현실과 괴리된 판결이 얼마나 큰 혼란을 초래하고 교육 환경을 위축시키는지에 대해서도 사법 당국의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