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비가 내리는 늦봄의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 소재 독립서점 <시간의 서재>에서 열린 추강(秋江) 이행재 작가의 북콘서트에는 잔잔한 감동과 웃음, 그리고 오래된 삶의 온기가 가득했다. 이날 행사는 미니작가회가 주관했으며, 회원 7명 전원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교직과 문학, 가족의 기억을 오롯이 담아낸 다섯 번째 수필집 『봄꽃처럼 아름다운 가을 단풍』의 출간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행사는 개회에 이어 미니작가회 신재옥 회장의 축하 인사, 이행재 작가 인사, 황승택 작가의 축하 무대, 사회자 한정희 시인과의 작품 대담, 관객과의 대화, 따님 이일성 씨와의 특별 대화, 기념촬영 순으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특히 이번 북콘서트는 단순한 출판 기념회를 넘어, 한 교육자의 삶과 노년의 문학, 그리고 가족애를 함께 돌아보는 따뜻한 인문 무대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축하 인사에 나선 미니작가회 신재옥 회장은 “이행재 작가의 글은 따뜻하고 회고적이며, 평범한 삶 속에서도 배움과 교훈을 건네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77세에 첫 수필집을 낸 이후 10년 동안 다섯 권의 책을 펴냈다”며 “우리 모두의 평범한 인생을 아름답게 글로 풀어내 후배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미니작가회 회원들뿐 아니라 교회 지인, 문우, 교직 동료, 가족들도 참석해 자리를 메웠다. 특히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동료들이 비 오는 날씨에도 한걸음에 달려와 축하를 전하며 현장의 분위기를 더욱 훈훈하게 만들었다.
무대에 오른 이행재 작가는 다소 수줍은 듯 “내 책으로 북콘서트를 연다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곧 삶을 바라보는 담담한 철학과 문학에 대한 진심을 들려주며 청중의 공감을 얻었다.
그는 책 제목에 대해 “인생의 계절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어릴 때는 봄이고, 중장년은 여름이라면 지금 우리는 가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을에도 봄꽃처럼 아름답게 살고 싶었습니다.” 이어 “노년에도 주눅 들지 않고, 젊은 시절처럼 마음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자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또 “문학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이라며 글쓰기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살아온 길을 더듬고 반추하며 앞으로의 삶을 다잡게 된다”며 “존재의 가치를 문학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순서는 황승택 작가의 축하 무대였다. 황 작가는 대표곡 ‘홀로 아리랑’을 개사해 이행재 작가의 삶과 교직, 문학 활동을 노래로 풀어냈다. “전주사범 졸업하여 선생님이 되었죠 / 전북과 경기도에서 교직 생활하면서 / 구리시 교문초에서 정년 퇴임했지요…”
노래에는 전북 완주 출생부터 교직 42년, 황조근정훈장 수훈, 문단 활동, 다섯 권의 수필집 출간까지의 인생 여정이 담겼다. 특히 “90세를 넘어서 백세까지 가보자 / 가다가 힘들면 어깨를 걸고 미니작가회 함께하며 천수 누리세”라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노래를 들은 이행재 작가는 “내 삶을 이렇게 노래로 들으니 울컥했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작가 특유의 생활 수필 철학이 깊은 공감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늙어도 넘어지지는 말아야지」를 언급하며 “나이 들어 넘어지는 것은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80대에 논두렁에서 넘어지신 아버지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나신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며 노년의 건강과 품위를 강조했다.
또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아내의 긴 투병과 사별 이후의 시간을 털어놓았다. “아내가 파킨슨병으로 8년을 고생했습니다. 떠나고 난 뒤 너무 허무했어요. 그 외로운 시간을 붙잡아준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그는 “칭찬 한마디에도 힘이 난다”며 웃었고, 제자들이 서점에서 직접 책을 사 읽어주는 이야기를 전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행사 후반부에는 큰딸 이일성 씨가 무대에 올라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객석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 “우리 아빠는 부지런하고 규칙적이며 성실한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불필요한 잔소리 없이 삶으로 보여주셨고, 저희 삼남매는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이어 “지금도 읽고 쓰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아빠의 모습이 존경스럽다”며 “노년의 정석이자 시니어 작가계의 일타”라고 표현해 객석의 웃음과 박수를 이끌어냈다. 특히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 곁에 머물러 달라”는 마지막 문장에서는 작가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북콘서트는 화려한 이벤트보다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한 교장이 노년에 문학을 만나 다시 삶의 의미를 발견해가는 과정,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가족과 문우들의 응원이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이행재 작가는 마지막 인사에서 “끝까지 품위와 인간다운 도리를 지키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봄꽃 같은 청춘을 지나 가을 단풍의 시간을 살아가는 지금, 그의 문학은 여전히 따뜻하게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