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에 도입된 ‘윈-윈’ 전략 오늘날 기업경영에서 금과옥조처럼 강조되는 ‘윈-윈(win-win)’ 전략은 이미 500년 전에 우리 선조들의 자녀교육에서 강조되었다. 수백 년 전 선조들은 삶의 주도적인 원리로 ‘상호 이익을 도모하라’는 인간관계 기술의 핵심원리를 가르쳐왔던 것이다. 이는 조선 최초의 ‘여중군자(女中君子)’를 며느리로 두었던 운악 이함 가문의 ‘지고 밑져라’라는 가풍에서 대표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이는 ‘대접 받고 싶거든 먼저 대접을 하라(마태복음 7장 12절)’는 성경구절을 연상케 한다. 이 구절은 세계 최대 부자들을 배출한 유대인들의 자녀교육에서 고전으로 통하는 바로 그 율법이다. 삼보컴퓨터를 창업한 이용태 박사(박약회 회장, 퇴계학연구소 이사장)는 이 가문의 17대 종손이다. 이 박사의 할아버지는 당시 어린 손자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과 사귀거나 일을 할 때는 네가 지고 밑져야 한다”고 반복해서 가르쳤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남을 밟아야 내가 산다”고 생각하는데 이 박사의 할아버지는 그와 정반대로 가르쳤던 것이다. 이 박사는 ‘지고 밑져라’ 가풍을 기업 경영에 적용해 위기를 극복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알려진 대로 이
한상철 | 대구한의대 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없는 사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단지 한 세대 이전의 청소년들이 겪었던 것보다 더 많은 모험과 위기 그리고 요구 및 기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이동하는 경로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있다. 몇 가지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10년이나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더 훌륭한 것 같다. 청소년의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청소년 문제와 살인사건은 약물남용이나 청소년 비행 그리고 청소년 임신과 함께 다소 줄어들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성인들과 대중매체가 묘사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청소년들은 그들이 유능한 성인이 되는데 필요한 적절한 기회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10년 또는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덜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높은 이혼율, 청소년층의 높은 임신율, 그리고 가족의 잦은 이사는 청소년들의 삶
뭔가를 배우는 활동은 즐거운 ‘놀이’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힘겨운 ‘노동’에 해당하는가? 아마도 사람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것이다.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에게는 배우는 활동이 놀이일 것이다. 배우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활동은 힘겨운 노동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교육을 연구하며, 교육활동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모두가 배우는 일을 즐긴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며 풍요로워질까 생각하곤 한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한 조사에서, 지금하고 있는 일이 ‘일’처럼 생각되느냐 ‘놀이’처럼 생각되느냐 물어보았더니, 6학년 아이들이 학교 공부는 일 같고 운동 시합은 놀이 같다고 약속이나 한 듯이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도 이러한 질문에 대해 크게 다르지 않게 대답할 것으로 생각된다. 오호 통재라. 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놀이가 아니라 일처럼 느껴진다는 말인가? 인간은 한편으로 누가 뭐래도 ‘배우는 존재’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배우는 활동을 놀이처럼 즐기는 것은 불가능한가? 인간은 본성적으로 배우는 것을 놀이처럼 즐기는 존재라고 필
.
심영옥 | 경희대 겸임교수·미술사 기교 없는 무작위의 질서 창출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돌이나 흙으로 소박하고 질박한 담장을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 주었다. 담장을 쌓는 사람은 돌 크기나 흙 양을 미리 계산하지 않고,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쌓는 동안 질서를 찾아가며 담장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 무작위의 질서를 창출하는 지혜와 멋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담장은 한국인의 정서와 잘 어울려 소박하면서도 분방한 듯한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쌓은 돌 사이사이에는 사람들의 추억도 묻어주면서 욕심 없이 쌓은 돌들은 은근한 멋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문양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꽃담이다. 대체로 담장치레만 보더라도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흙담은 흙담대로 돌담은 돌담대로 꽃담은 꽃담대로 궁궐과 민가의 얼굴 역할을 했다. 옛 궁궐의 꽃담은 화려한 것 같지만 야하지 않아 선비 같은 은근한 멋을 풍긴다. 이에 반해 일반가옥의 꽃담은 질박하면서도 분방한 멋을 느끼게 해 준다. 깨진 기왓장을 이용하여 투박한 솜씨로 토담에 꾹꾹 박아 놓은 기와담장이나 흙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