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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람을 잇는 꽃담

무작위의 질서로 창출된 한국의 꽃담.
울타리 없는 아파트에 익숙한 우리에게


자연에 동화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심영옥 | 경희대 겸임교수·미술사


기교 없는 무작위의 질서 창출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돌이나 흙으로 소박하고 질박한 담장을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 주었다. 담장을 쌓는 사람은 돌 크기나 흙 양을 미리 계산하지 않고,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쌓는 동안 질서를 찾아가며 담장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 무작위의 질서를 창출하는 지혜와 멋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담장은 한국인의 정서와 잘 어울려 소박하면서도 분방한 듯한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쌓은 돌 사이사이에는 사람들의 추억도 묻어주면서 욕심 없이 쌓은 돌들은 은근한 멋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문양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꽃담이다. 대체로 담장치레만 보더라도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흙담은 흙담대로 돌담은 돌담대로 꽃담은 꽃담대로 궁궐과 민가의 얼굴 역할을 했다.

옛 궁궐의 꽃담은 화려한 것 같지만 야하지 않아 선비 같은 은근한 멋을 풍긴다. 이에 반해 일반가옥의 꽃담은 질박하면서도 분방한 멋을 느끼게 해 준다. 깨진 기왓장을 이용하여 투박한 솜씨로 토담에 꾹꾹 박아 놓은 기와담장이나 흙담장, 돌담장은 모두 구수한 한국인의 심성이 그대로 배어 있다. 이와 같이 뽐내지 않고 순수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우리의 담장은 사계절 마다 그 변화와 잘 어울려 한국의 정취를 물씬 풍겨주는 역할을 똑똑히 한다.

시대 상황 반영하는 조화로움
꽃담은 집의 벽이나 담에 여러 가지 무늬를 놓아 장식한 벽면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꽃담의 치장은 돌로 벽면을 쌓거나, 흙담에 기왓장으로 무늬를 만들어 넣거나, 흙을 구워 전돌을 만들어 꾸몄다. 꽃담은 넓은 의미로는 벽체와 담장을 말하나 주로 담장을 지칭한다. 그림과 무늬로 모양을 냈다고 해서 그림담 또는 무늬담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 꽃담은 담장을 치레한 것을 말하므로 굳이 꽃담과 담장의 의미를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꽃담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삼국사기〉권33, 옥사(屋舍)에 보면, '진골 계급 주택의 담장은 석회를 발라 꾸미지 못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해 왕족인 성골은 석회를 발라 집을 치장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이 발전하여 고려시대에는 민가의 꽃담이 궁궐의 꽃담보다 오히려 화려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검소한 것을 숭상하는 풍조가 생기면서 수수하고 은은한 꽃담이 많아졌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는 경제 사정이 매우 나빠져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소박한 재료만으로 꽃담을 꾸미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하찮은 재료로 담을 쌓더라도 자신들만의 미의식을 발휘하여 그냥 쌓지 않고 주어진 재료로 가능한 예쁜 무늬를 놓으려고 했다. 시골 집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이나 돌, 기와나 그 파편들로 무늬를 만들어 그것을 보며 즐길 줄 아는 높은 미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꽃담에는 그 지역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어 돌이 많은 제주도에는 돌담이 많고, 돌을 구하기 힘든 곳에서는 토담이나 토석담, 그리고 중부지방에는 토석과 전돌로 담을 쌓았다. 흙이 많은 지역에서는 흙담을 쌓되 흙이 주저앉지 않도록 중간 중간에 돌을 박거나 때로는 깨진 기와도 섞어 무늬를 넣어 담을 만들었다. 거기에다 길상적인 의미를 지닌 글자나 꽃, 동물 등의 무늬를 넣어 주변의 건축이나 자연과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토담은 토담대로, 돌각담은 돌각담대로 표정이 있는데 이는 그 집 주인의 마음과 개성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꽃담들도 옛 주인의 멋을 잘 읽을 수 있다. 한옥의 담장은 쌓을 당시 그 집안의 사정도 알 수 있다. 자식이 부족한 집에는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포도 무늬를 넣기도 하였고, 즐거움을 바라는 집에는 '희(囍)'자를 넣어 축복의 마음을 담았다.

친숙하고 정감어린 자연의 일부
꽃담은 울타리를 치는 것에서 비롯되어 발전하였다. 원래 울타리의 '울'은 우주를 의미하며 '한울'하면 '큰 울', 즉 끝없는 무한대의 우주를 가리켰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울타리는 하늘의 마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그 역할이 바뀌게 되고, 대신 그 담에 우주를 상징하는 해와 달과 별을 무늬 놓아 꾸미기도 했다.

담장의 기능은 공간을 나누거나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사나운 짐승을 막기 위해서나, 계급사회에서 권위의 상징으로 만들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차츰 울타리는 집을 보호하는 구실을 주로 하였다. 보호를 위해서 담장은 더욱 강하면서 튼튼하게 변하였다. 이런 담이 생기면서 점점 복잡하고 많은 사연들이 생겨나게 되고, 그 사연의 내용을 무늬로 표현하거나 다른 의미의 무늬로 부드럽고 아름답게 꾸미려는 노력도 함께 하였다. 한국의 담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이나 가족을 보호하는 목적도 있었으나 선천적인 미의식의 발로로 조형적인 목적이 더 컸기 때문에 위협적으로 높게 쌓기보다는 대개 아담하고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우리나라 꽃담은 경계나 단절이 아니라 자연 재료를 이용하여 친숙하고 정감어린 자연의 일부와 같이 만들었다. 이를테면 인간세계와 자연을 담으로 단절시키지 않고 담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교감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질서를 찾으려는 의도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의미는 서민들의 담장치레에서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흙으로 쌓아올린 담장에 깨진 사기그릇 파편과 조각난 기왓장을 꾹꾹 눌러 박은 소탈한 치장은 자유로운 추상미까지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라 화려한 듯하면서 튀지 않고 수수하면서도 정교하여 세련된 아름다움이 있는 궁궐의 꽃담도 현란하지 않게 주변 경관과 어울리도록 은은한 멋을 풍기게 하였다. 돌이든 흙이든 전돌이든 또 다른 어떤 재료든 간에 자유로운 마음으로 장식한 무늬들에 의미를 담고, 담장의 모양에도 의미를 담아 질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우아하고 단아한 궁궐의 꽃담
우리나라 궁궐의 꽃담은 그 건축의 모양새와 멋들어지게 어울려 인공과 자연을 적절히 구분하여 아늑함을 더해주고 인공미를 살려준다.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궁궐의 꽃담은 직선과 곡선을 치밀하게 구성하고 질서 있게 무늬를 배열하여 미감을 높이는가 하면 왕실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으로 위엄을 갖추기도 했다.

임금의 무병장수를 비는 만수무강(萬壽無彊), 수복강녕(壽福康寧) 등의 문자를 직접 나타내어 단순한 장식이나 미적 표현보다 그 뜻에 더 의미를 두기도 했다. 우리나라 꽃담의 진미라 불리는 경복궁의 자경전 서쪽 꽃담을 보면 윗부분은 기와로 마무리하고 담장에는 만(萬), 수(壽), 복(福), 강(康), 녕(寧) 등의 의미를 가진 길상문자와 함께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로 가운데 액자 그림처럼 틀어박힌 꽃무늬를 담아냈다. 그 외벽에는 사군자, 모란, 연꽃, 태극무늬, 석쇠(귀갑)무늬, 문자무늬 등 각종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잘 알려진 한국미 발견자 혜곡 최순우는 경복궁의 담장을 보고, "동산이 담을 넘어와 후원이 되고 후원이 담을 넘어 번져 나가면 산이 되고 만다. 담장은 자연 생긴 대로 쉬엄쉬엄 언덕을 넘어가고 담장 안의 나무들은 담 너머로 먼 산을 바라본다.(중략) 담장은 자연과 후원을 천연스럽게 경계 짓는 것이며 이러한 담장의 표정에는 한국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라며 경복궁 꽃담의 자연미를 극찬하였다.

매화 꽃 봉오리를 머금고 있는 늙은 매화나무와 매화나무 가지에 걸린 달, 거기에 놀러온 새가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고, 난초, 국화, 대나무, 석류, 연 등의 형상 무늬를 집어넣은 자경전 꽃담은 바로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 한국미의 극치이다. 그리고 왕비의 침소였던 교태전 뒤편 아미산 동산을 연결시킨 꽃담은 우아하면서 단아한 국모의 성품을 느끼게 하고, 운현궁 꽃담은 묵란도를 즐겨 그리던 흥선대원군의 미의식을 눈치 챌 정도로 단아하면서 우아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 외에도 많은 꽃담이 있지만 궁궐의 꽃담은 왕과 왕족을 위한 의미를 포함한 무늬들이 많이 표현되어 똑같은 재료로도 궁궐 주인을 위한 충성스런 백성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앞으로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한국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자유스럽고 분방한 마음으로 꽃담을 새겨 넣을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건축 양식이 서구화, 현대화되면서 계산된 크기와 계획된 무늬와 재료로 담장이 만들어지거나, 담장 없는 빌딩이 하늘을 솟아오르고 있다. 우리에겐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도 있지만 전통문화를 계승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결코 꽃담은 감상품이 아니다. 울타리가 필요 없는 아파트 생활에 익숙할지라도 우리나라 꽃담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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