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의 새로운 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족 형태가 다문화가정이다. 다문화가정이란 한 가족 내에 다양한 문화가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 가족,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이주남성 가족, 이주민 가족(이주노동자, 유학생, 새터민)을 포괄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다문화가정의 형성은 국가 간 인적 교류의 확대, 외국인 근로자 유입, 국제결혼 증가 등으로 인해 날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며, 나라별로 보면 중국과 베트남이 가장 많고 일본, 필리핀, 몽골, 우즈베키스탄, 태국 등 동남아지역이 많다. 다문화가정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므로 적절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여 그들의 문화를 우리 문화와 접목시켜 문화의 다양성을 높이고 나아가 국제경쟁력의 원천으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을 보는 사회의 시각은 차별과 편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 자녀들은 언어, 생활습관, 외모의 차이로 인하여 학교생활 적응이 힘들고 공동체에서 화합하지 못하며 스스로 위축감에 젖어 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문제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에 우리는 다문화가정으로 인한 사회문
학생과 대화하는 기술 배워야 교사역할 훈련(T.E.T)실천가이드 GIT코리아 / Chie Kondo 지음, GIT코리아 편역, 윤기선 감수 / 12,000원 열심히 준비해 온 수업계획, 배우는데도 때가 있다고 깨우쳐 주고 싶은 열정도 학생의 무기력과 무관심 앞에서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때론 체벌에 의존하고 싶고, 칭찬으로 달래고, 구슬리고, 위협도 해보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을 때, 교직은 포기하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에 요구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것인데, 이같은 교사의 열정은 표현과 정상적인 의사소통 채널로는 잘 전달되지 않고 반항적인 학생들의 태도가 늘어날 때 결국 교사의 스트레스만 증가합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미 70년대 초 ‘교사의 스트레스는 전쟁터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교사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이 질문 미국의 임상병리학자 토마스 고든이 제시한 T.E.T(교사역할훈련)에 따르면 학생과의 관계를 혁신적으로 개선할 것과 생활지도, 학생의 자발적 학습참여, 교직에 대한 자긍심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미 60년대 개발 돼 전세계 25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40
다문화 교육은 남을 이해하는 교육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되찾는 신뢰의 교육이다. 다문화 교육이란 타자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질적인 다문화 맥락과 상황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 영어의 중요성은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지만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더 많은 다른 세상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지 않다. 국제이해교육(EIU, Education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이란 개념은 아직도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그리 친숙하지 않다. 대학에서 조차도 국제이해교육이나 개발교육, 인권과 평화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영어와 취업에 필요한 실용 교육이 갈수록 범람하고 있다. 나와 다른 남도 인정해야 국제이해교육은 세계시민 교육이나 지구촌 교육, 다문화 교육, 평화와 인권 교육, 지속가능한 발전과 환경 교육, 민주주의와 관용 교육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개념들은 교육 현장에서는 너무 거창할 뿐 아니라 이념과 가치 중심의 교육이라 효과적인 교육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러면 왜 국제이해교육인가? 필자는 국제이해교육이 한국의 학교교육에서 왜 절실히 필요한지에 대해 다
악마의 불꽃? 1887년 이른 봄이었다. 수많은 종로 사람들이 일제히 자신들의 키를 훌쩍 넘는 궁중의 담벼락으로 몰려들었다. 경복궁에 켜진 ‘물불’을 보기 위해서였다. 화려한 빛으로 사방을 비추는 물불은 다름 아닌 ‘전등’이었다. 사람들은 전기가 펼치는 마술의 현란함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당시의 사람들은 전등을 물불이라 불렀다. 그 이유는 전깃불이 연못에 반사되어 마치 물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경복궁에 한국 최초의 전등이 가설되기 4년 전인 1883년 조선 보빙사 일행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으로 전등과 마주쳤다.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은 마치 거미줄이 처진 것 같았다. 전깃줄로 가득한 하늘과 길가를 따라 즐비한 가로등을 바라보며 말을 잊지 못했다. 그들은 전기와 가로등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몰랐다. 보빙사 일행은 전깃불이 인간의 힘이 아니라 ‘악마의 힘’으로 켜진다며 전기에 대한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십 년이 훨씬 넘은 후에도 전기에 대한 경이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1896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던 민영환은 도중에 유럽의 각 도시들을 유람한다. 민영환은 근대화된 유럽의 거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을 한 1848년, 22살인 아일랜드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은 천신만고 끝에 애인과 함께 미국행 배를 탔다. 여비가 없어 남의 돈을 사취(詐取)해 비용을 마련한 것이 부끄러웠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흉년으로 인해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등 아일랜드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차라리 신대륙에 가기로 작정하고 2개월이나 걸리는 미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그가 도착한 보스턴은 이미 영국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아일랜드인은 흑인보다 더 굴종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미국에서도 아일랜드인의 처지는 바뀌지 않은 것이다. 22살이던 농부의 아들은 술집을 시작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인지 그 청년은 미국에 온 지 10년 만에 그만 결핵으로 죽고 말았다.” 이 정도의 이야기만으로는 이 가문의 앞날도 그리 밝지 않을 것으로 지레짐작할 수 있다. 구한말 가난으로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 우리 선조들의 처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선조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미국행 배에 몸을 실은 지 110년 만에 미국 역
[문] 괄호 안에서 알맞은 말을 고르시오. 1. 황금 보기를 (돌|돌멩이)처럼 하라. 2. 구르는 (돌|돌멩이)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3. 누구든지 죄가 없는 자는 이 여인에게 (돌을|돌멩이를) 던져라. 4. 형은 내게 주먹만 하고 납작한 (돌을|돌멩이를) 주워 오라고 했다. 5. 저 산은 예로부터 (돌이|돌멩이가) 많고 험하기로 유명하다. 6. (돌|돌멩이) 갖다 놓고 닭알 되기를 바란다. 7. (돌을|돌멩이를) 차면 내 발부리만 아프다. [풀이] ‘돌’은 문명과 역사의 재료 세상 어디를 가나 흙먼지 속에서 흔하디 흔하게 굴러다니는 것이 돌이지만, 인류가 돌과 맺어온 관계를 돌이켜보면 돌이야말로 인간의 문명과 역사를 구성해온 기본적인 재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돌은 고대로부터 우주를 이루는 4대 원소로 불려온 물, 공기, 불, 흙 가운데 흙에 속한다. 학교 역사 시간에 우리는 돌도끼, 돌괭이, 돌창, 돌낫, 돌화살촉, 돌칼 등 인류 역사의 시원을 이루는 석기시대의 유물들에 대해 귀에 더께가 앉도록 들었다. ‘석기시대’는 인류가 아직 금속을 다룰 줄 몰랐던 유년문명 시절의 이름이다. 그뿐인가. 정취 어린 덕수궁의 돌담, 팔방으로 뻗어나간 로마
은광여고 김정열 교장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해 여름이었다. 미국 호프웰고와의 교환학생과정을 취재차 나선 길에 학교 정원에서 화단을 가꾸고 있는 김 교장을 봤다. 흙 묻은 하얀 목장갑, 작은 호미가 어색한 하얀 팔을 가지고 있었다. 실수로 교장실이 어디냐고 물을 뻔 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김 교장을 교장실에서 다시 만났다. 3년간 화단처럼 가꿔온 학교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배정된 학생 한숨부터 내쉬던 학교 지난 20여 년간 은광여고는 심한 부침을 경험했다. 87년 재단의 부도 이후 관선이사체제가 지속되면서 투자가 부실해진데다 2001년까지 실시됐던 2부제 운영 탓에 은광여고는 대외적으로 공부 안하는 시설 안좋은 학교로 인식돼 있었다. 오후가 되면 면학분위기가 흐트러지기 일수였고, 이웃학교 학생들이 한창 공부할 시간에 은광여고 교복을 입고 시내를 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은 학부모에게 나쁜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당연히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를 기피했다. 고교 배정 시 은광여고로 결정되면 현장에서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리막을 걷던 학교는 2002년 새로운 재단이 들어오면서 반전됐다. 재단(이사장 김승제)은 60년대
교육은 상식적 안목에서 지적 안목 형성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며, 지성인을 육성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목적인 미래지향적 활동으로써 치열한 국제 경쟁 사회에서 국가 흥망의 원동력이다. 수박 농사를 짓는 아버님을 도우며 원두막에서 글짓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주렁주렁 열린 수박을 따서 차에 싣고 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나가 팔아본 경험이 있는 중학생이 막상 수박에 관한 시험문제에서는 0점을 맞았다. 그러나 학원에 다닌 도심지 학생은 “박과에 속한 1년생 덩굴 풀”이라고 암기해 100점을 맞았다는 픽션이 있다. 이것은 시골 학생은 상식적 안목에 머물고 도심지 학생은 지식이 암기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본질수업을 전개하여 질적 평가를 실시하면 도심지 학생은 0점이고 농촌 학생은 100점이 될 것임에 분명하므로 수업과 평가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입시교육은 칠판에서 수영과 논술 그리고 영어를 가르치고, 도덕과 수학 그리고 과학 교육이 전개되고 필기시험에서 100점만 맞으면 실력이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공교육은 수영장을 찾고, 논술지도에 앞서 다독부터 시키며, 원어민 수업을 전개하고 도덕적 논의를 시키며 수학이나 물리학 그리고 철학을 하
현대를 자아상실의 시대라고도 한다. 개인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이끌어 가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자기 자신의 참 모습(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24시간 동안을 나하고 같이 있는 몸뚱어리와 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마음작용(생각, 의지, 상상, 잡념, 번뇌 등)들이 나인데 이와는 무슨 별도로 참나가 있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인뿐만 아니라 위대한 예술가나 과학자들도 직업이나 삶의 방식은 다양하게 다르지만 그들의 행위나 작품, 학문적 연구 성과가 전하는 메시지는 참나에 대한 추구와 참나의 인정이다. 참나는 참마음, 심성, 영성, 본성, 진아, 진면목, 생명의 실상, 얼나, 신명, 불성, 신, 하나님 등의 용어로 불리어지고 있다. 우리는 참나를 아는 공부를 제도권에서 체계적으로 하지 않았다. 이런 공부는 특수한 종교적, 신비적 영역으로 제쳐놓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취급하였다. 또한 이런 공부는 단지 지적인 것으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이 따르는 어려움이 있다. 인생은 ‘참나’의 깨달음에 대한 여정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가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