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용 | 한양대 강사, 영화평론가 도라, 조슈에와 세상에 나서다 전직교사 출신의 도라는 브라질의 대도시 리우 데 자네이루의 중앙역에서 글 모르는 이들을 위해 편지를 대필해 주는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다. 사랑을 호소하는 이, 아들에게 관심을 촉구하는 늙은 아버지, 받을 돈을 독촉하는 사람, 헤어질 것을 통보하는 연인 등 중앙역을 가득 메운 사람들처럼 그네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고된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도라의 유일한 즐거움은 친구와 함께 편지를 뜯어 읽어보고 자신이 보기에 쓸데없는 소리를 적어놓은 편지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머지 편지들은 그냥 서랍 속에 넣어두는 것이다. 편지를 부탁하는 이들이야 절박할지 몰라도 그녀에게 있어 이 모든 일들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한 기계적인 직업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계나 자본과 같은 비인간적인 대상을 다루는 직업과 달리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편지’를 써 주는 도라의 직업은, 학생이라는 살아있는 대상과 관계를 맺고 이를 토대로 성장과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일인 그녀의 전직이었던 교사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도라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로 인해
근자에 들어 공무원 장외투쟁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을 꼽는다면 1998년 11월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린 ‘교원정년단축 반대 전국교육자 총궐기대회’가 아닌가 싶다. 7만여 명도 더 되는 교원들이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 초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쿠데타적 정년단축 철회’를 외쳤다. 교원들의 처연하기까지 한 공분(公憤)이 표출됐지만 언론은 짐짓 이를 외면했다. 조선일보에 사진 한 장 달랑 실린 것이 전부인 것으로 기억된다. 신문․방송은 연일 ‘노령교사 1명을 퇴출하면 젊은 교사 2.5명을 채용할 수 있다’는 앵무새 같은 보도를 내보냈다. IMF사태로 경제는 파탄 나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때에 이보다 더 확실한 여론몰이는 없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심리를 부추긴 행태는 교육계의 어떠한 논리와 주장도 먹혀들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 당시 이해찬 장관과 교육부 고위관료들의 언론플레이가 무용담처럼 넘쳐나기도 했다. 교육계는 대패(大敗)했고 정년은 3년이나 싹둑 잘려나갔다. 물론 교단을 뒤로한 교원들 대신 젊은 교사가 2.5배로 충원되지도 않았다. 정년단축의 결과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우리 교단을 황폐화시켰으며 지금까
김철수 | 경남 거제중앙고 교사, 사진작가 바다와 만난 수 만년의 세월 사람이 살면서 발길이 생기고 발길이 많이 묻힌 곳에 큰 길이 생겼다. 문화와 생활을 아우르는 길은 동해안을 따라 부산에서 함경북도 온성군까지 이어져 7번 국도가 되었다. 바다와 어우러져 길게 뻗친 7번 국도는 풍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있는 석호를 가득 안고 있다. 석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자연유산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에 의해 만들어졌다. 빙하기에 바닷물이 크게 줄어들어 해수면이 크게 낮아진 곳에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동해안에는 큰 골짜기들이 생겨났다. 그 후 후빙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빙하가 녹고 바닷물의 높이도 높아져 이전에 만들어 놓았던 골짜기에 물이 차게 되면서 움푹 들어간 지형인 만(灣)을 만들었다. 먼 바다에서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올라왔다 다시 내려갈 때 한 쪽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이런 파도의 힘으로 바닷가의 모래들이 계속 한쪽으로 밀려나 만의 입구에 모래로 이루어진 둑(사주, 사취)이 만들어지게 된다. 계속 모래가 쌓이면 둑은 커지게 되고, 결국은 만의 입구를 막아 버린다. 그래서 석호의 물은 담수의 물도 아니고 바닷물도 아닌 그 중간을 택하고 있다.
김경원 | 저자 [문제] 괄호 안에서 자연스러운 표현을 고르시오. 1. 허구헌 날 밥그릇 (다툼만/싸움만) 허고 앉아 있는 놈들 좀 보게. 2. 갑돌이와 갑순이는 늘 1, 2등을 (다투는/싸우는) 라이벌이다. 3. 개 두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다투는/싸우는) 장면이 볼만했다. 4. 그 친구는 말로 (다퉈서는/싸워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상대다. 5. 고래 (다툼/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풀이] ‘다투다’는 어디까지나 말로 시비하는 것 매일같이, 아니 시시각각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과도 부딪히며 다투거나 싸우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그런데 ‘권력싸움’이 아니라 ‘권력다툼’인 것은 왜일까? 그리고 ‘파벌다툼’이 아니라 ‘파벌싸움’인 까닭은? 또 ‘부부다툼’이 아니라 ‘부부싸움’인 것은 어째서일까? 실로 ‘다툼’과 ‘싸움’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먼저 ‘다투다’는 의견이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서로 따지며 옥신각신한다는 뜻이다.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아이들 교육 문제로 아내와 다투다”, “돈 문제로 집안 사람들끼리 심하게 다투었다” 등에서 ‘다투다’는 어떤 사안과 관련해 상대를 누르고 자기를 내세우고자 하는 행동인데, 다행스럽
뭔가를 배우는 활동은 즐거운 ‘놀이’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힘겨운 ‘노동’에 해당하는가? 아마도 사람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것이다.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에게는 배우는 활동이 놀이일 것이다. 배우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활동은 힘겨운 노동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교육을 연구하며, 교육활동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모두가 배우는 일을 즐긴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며 풍요로워질까 생각하곤 한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한 조사에서, 지금하고 있는 일이 ‘일’처럼 생각되느냐 ‘놀이’처럼 생각되느냐 물어보았더니, 6학년 아이들이 학교 공부는 일 같고 운동 시합은 놀이 같다고 약속이나 한 듯이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도 이러한 질문에 대해 크게 다르지 않게 대답할 것으로 생각된다. 오호 통재라. 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놀이가 아니라 일처럼 느껴진다는 말인가? 인간은 한편으로 누가 뭐래도 ‘배우는 존재’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배우는 활동을 놀이처럼 즐기는 것은 불가능한가? 인간은 본성적으로 배우는 것을 놀이처럼 즐기는 존재라고 필
Q1. 1급 정교사 자격 취득 후 대학원에서 취득한 석사학위 이수성적을 1정 자격연수 성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1. 「교육공무원인사관리규정」 제12조 제1항 제1호에 의거 교(원)감과정연수 응시대상자 순위명부작성 시 평정하는 자격연수는 ‘1급 정교사·전문상담교사 또는 1급 정교사 자격증 취득 후의 사서교사’로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급 정교사 자격 취득 후에 석사학위를 취득한 경우 대학원 이수성적을 1급 정교사 자격연수 성적으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1급 정교사 자격연수 성적은 전문상담교사(1급) 또는 1급 정교사 자격증 취득 후의 사서교사 자격연수 점수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Q2. 교육경력 7년인 중등교사입니다. 교육경력 4년차 되는 해에 00교대 교육대학원에 입학하여 올 8월에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1정연수를 받지 않아 석사학위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석사학위로 1정자격연수를 대체할 수 있는지요? A2. 「초·중등교육법」 별표 2에 의거 초등학교 정교사(2급)자격증을 가지고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자로서 1년 이상의 교육경력이 있는 자는 정교사(1급)자격기준에 부합됩니다. 선생님의 경우 위 요건에 부합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