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다른 나라 말들과 달리 웃음을 나타내는 말이 매우 발달해 있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웃음을 나타내는 말들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마치 말하듯이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고 이와 함께 우리는 이모티콘(^^)과 함께 보통 ‘ㅎㅎ’으로 웃음을 화면 위에 드러내곤 한다. 하지만 익명의 바다인 인터넷 환경에서 사용되는 ‘ㅎㅎ’은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니지만 정확히 어떤 웃음소리인지 실제 음성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현실에서의 우리말 웃음은 웃는 사람이 누구냐, 어떤 상황에서 웃는 웃음이냐에 따라 실제로는 ‘하하’, ‘호호’, ‘허허’, ‘헤헤’, ‘흐흐’, ‘히히’로 다양하게 실현되는 것이 자연스러우나 화자에 대한 정보가 익명의 조건 속에 갇혀 버린 인터넷에서의 ‘ㅎㅎ’는 환산될 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웃음을 나타내는 말이 매우 발달된 한국어 실제 웃음으로 실현되는 우리말 ‘하하’는 젊은 남성들의 웃음을 가리키는 말이고 ‘호호’는 젊은 여성들의 웃음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허허’는 중후한 장년층 남성들의 웃음인데, 간혹 ‘후후’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후후’를 웃음소리로
아동 · 청소년기의 신체발달을 위해 적당한 운동과 다양한 음식을 통한 고른 영양섭취가 필요하듯 이 시기 아이들에게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고른 영양섭취가 필요하다. 그러나 학교와 학원을 바삐 오가는 우리나라 아이들은 자기 선택적인 문화향유를 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정보의 벽과 현실적인 여건이 어렵기도 하다. 예체능 교육의 일환으로 음악, 미술, 체육을 대변하는 피아노, 태권도, 무용 레슨 등을 받고 있지만 이것 역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여의치 않다. 입시를 치르는 중 · 고생들의 경우에는 전혀 혜택을 받을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예술교육의 첫발, 공연 관람 그렇다면 이유야 어떻든 우리의 이런 예술교육들이 아이들의 예술적 정서함양에 어떠한 영향을 줄까? 음식이라면 일단 먹고 나면 어떻게든 영양공급으로 이어지겠지만 문화예술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음식도 음미하며 즐기는 요즘 시대에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해법은 있다. 아이들의 지적 사고력과 감성의 발달은 종합구성물, 즉 ‘공연예술 감상’을 통해서 자연적인 영양섭취가 가능하다. ‘공연예술’이라 하면 무대 위에 오르는 모든 예술장르를 말할 수 있다. 연극, 무용, 뮤지컬, 퍼포먼스 등 최근에는
어느 성당의 행사장, 주교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입장을 했다. 그 주교는 “미사를 수천 번 봉헌했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한 적은 없었다”고 하면서 “젊은이들의 기쁨을 위해 망가지기(?)로 했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대기업의 CEO들이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 사소한 일상과 취미를 공개하고 어떤 유명인은 TV에 출연해서 성형수술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여자 연예인들이 일반인들도 꺼리는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을 서슴없이 보여주는 것들이 이제 특별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는 것이 유행했던 과거와는 달리 ‘나도 당신과 같다’라는 메시지가 다른 사람들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인 것 같다. 며칠 전, 우리 학교 재경동창회 정기총회, 900여 동문이 모인 자리에서 필자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어설픈 실력으로 색소폰 연주를 했다. 조용필의 ‘친구여’와 조니 호튼(Johnny Horton)이 1959년에 발표한 ‘All for the love a girl’ 두 곡이었다. 다소 매끄럽지 못한 연주였지만 그야말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것은 격려의 의미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녀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그 시절의 근엄한 교
급격히 부각된 ‘창의성’ 2010년 1월 교육과학기술부는 ‘창의와 배려의 조화를 통한 인재 육성-창의 인성교육 기본방안’을 중점 과제로 발표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창의적 체험의 활동시간을 늘려야 하기에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회사원부터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서 창의성이 강조되더니, 이제 교육에서도 창의성은 중요한 덕목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교육에서 창의성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이 최근 일은 아니다. 교육목표로써 창의성 함양이 문서화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1955년 제1차 교육과정 보건체육과에서 ‘창의성을 기른다’는 지도 방침을 수립한 이후부터, 모든 제도권 교육기관의 교육과정 총론에서는 창의성을 언급해왔다. 이는 창의성이 예전부터 이미 중요한 교육 지향이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그렇게 반복적으로 거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창의성 교육이 달성되지 못했기에 근래의 가장 절실한 교육목표로써 대두된 것 또한 알 수 있다. 요즘 ‘창의성’이 크게 부각된 이유는 분명하다. 앞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미래학자가 21세기에는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고, 기업에서도 창의적 인재
2007년 대선에서 보수를 표방했던 이명박 후보는 당시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로 승계된 진보적 성향의 정치 이념과는 모든 면에서 대립각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시장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율과 경쟁 그리고 선택과 집중이었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교육 관련 공약의 키워드도 자율, 책무, 선택, 경쟁, 다양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교육공약의 핵심 전략은 규제 중심의 관치 교육을 자율화 · 다양화해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정부에서 교육의 형평성을 강조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교육의 수월성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온 구체적인 공약이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대입 3단계 자율화, 영어 공교육 완성, 기초학력 미달 제로 플랜, 대학관치의 완전철폐, 맞춤형 국가 장학제도 구축이었다. 이러한 교육공약들은 대통령 취임 전 인수위원회 단계에서 일부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가 제기돼, 일부 세부 내용들이 조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이명박 정부의 집권 전반기에 추진된 교육정책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교육정책의 근간 이루고 있는 대선 공약 이명박 정부의 집권 전반기 교육정책이 이러한 교
교사의 심리 들여다보기 우선 아래 문제를 살펴보자. -------------------------------------------------------------------------------------------- [문제] 다음 중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생들의 유형은? ①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는 좀 못하는 학생 ② 선생님 말 잘 안 듣고 공부는 잘하는 학생 ③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 ④ 선생님 말 잘 안 듣고 공부도 못하는 학생 -------------------------------------------------------------------------------------------- 이런 문제의 답으로 거의 모든 선생님들은 당연히 ③번을 첫 번째로 꼽는다. 선생님 말을 잘 안 듣고 제멋대로 하는 학생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만일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생유형을 순서대로 고르라면 어떻게 될까? 나의 경우는 ③ → ① → ④ → ②의 순서로 놓겠다. ④번과 ②번의 순서를 놓고 잠깐 고민을 했다. 말은 안 들어도 공부를 잘하는 것이 나을까? 말도 안 듣고 공부도 못하는 편이 나을까? 부모입장에서 보면 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