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육에 관한 일이라면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다. 주위 사람들 혹은 언론보도 등으로부터 얻은 간접경험을 추가하여 모두가 자칭 교육전문가로 군림한다. 제반 교육문제에 대해서 서슴없이 칼을 들이대고 자신들의 상식과 잣대로 교육을 비판하고 평가를 내린다. 깊이 연구하고 생각해본 적도 없으면서 교육이 무너진다는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당면한 문제들을 스스로가 세운 기준에 의거해서 예리하게 분석하고 명쾌하게 판단하며 때로는 그럴듯한 처방까지도 내려준다. 사회 어느 분야보다도 교육은 그 특성상 성과나 실적을 가늠하기 어렵다. 교육의 궁극적 결과물은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체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교육기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최종 산출물이 될 수 없다. 사회 각 분야로 흩어져 학창시절에 배우고 익힌 실력을 바탕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국민 모두가 교육의 결과이다. 학교 시설물이나 그 속에 있는 교사, 학생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핵심과 본질은 놔둔 채 건물을 얼마나 짓고 기자재를 어떻게 개선하고 어떠한 행사를 몇 번 실시했다는 등의 가시적·외형적·단편적 실적이 점수화, 계량화되어
미완의 건국, 숨차게 달린 한국교육 35년 서럽고 쓰라린 일본의 식민 지배를 자력으로 벗어나지 못한 대가는, 정작 건국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될 주인이 주도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과 북에 외국 군대가 진주하고, 종국에는 일 민족 두 개의 국가가 들어섰다. 이 민족에게 드리워진 국토 분단의 멍에는 대한민국 건국 60년이 된 오늘에도 우리에게 좌절과 각오를 교차시키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은 그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건국은 힘들었고, 건국 후에도 위기의 터널을 달려왔다. 건국초기부터 내외의 온갖 방해와 저항이 있었으나 건국 후에는 국제전으로 비화한 6·25 동족상잔으로 취약했던 경제기반 마저 잿더미가 된 피폐한 나라가 되었었다. 전후에도 안보위협을 계속 받았고, 선거부정, 학생유혈봉기, 군부독재, 시민유혈봉기와 같은 내부 진통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러한 대내외의 위기를 극복해왔고, 서구 사회가 200여 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를 불과 40여 년 만에 이루는 경제적 기적을 낳았다. 민주화도 달성했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하게 OECD 회원국, G20 그룹에 속하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 경험은 많은
사람만이 웃는다 인간만이 웃는다. 자신이 기르는 애완동물이 지나치게 사랑스러운 나머지 웃는다는 착시를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동물은 웃음을 표현할 만큼 다양하게 안면근육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안면근육은 80개에 달한다고 한다. 신은 어째서 인간의 얼굴에 그토록 많은 근육을 부여한 것일까?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불을 찾아서는 언어를 사용하기 이전의 고대 원시사회의 모습을 실증적으로 그려내면서 웃음이 인간의 문명을 열어젖히는 하나의 계기임을 드러낸다. 웃음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동물과 다른 사랑이란 감정을 자각하게 되고 언어 이전의 인간적인 소통 수단을 발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비극과 쌍을 이루는 희극도 존재했을 것이라는 착상을 바탕으로, 희극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게 된 과정을 그려낸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역시 웃음이 감정을 표출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중세 수도원의 금욕주의적인 종교 철학은 인간의 웃음을 억압하여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웃음이 문명의 마중물이었다는 점, 인간다움을 나타내는 징표의 하나라는 점은 웃음이 단순하고 즉각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 이상
강화산성 안파루(남문). 강화동종. 강화역사관에 있으며 강화성문을 여닫는 시간을 안내해주었다.서울을 지키는 천연 요새 섬을 찾아가는 여정은 이제 강화도로 향합니다.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 큰 섬으로 우리나라의 역사가 모두 축소되어 있다고 할 만큼 유적지가 많은 곳입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기 위해 쌓았다는 참성단을 비롯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군도 있고 팔만대장경판도 여기서 만들어졌습니다.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이어서 다른 어느 곳보다 외침을 많이 받았으며 특히, 외세의 개방 압력에 제일 먼저 노출된 곳이었습니다. 유사시에는 도읍지인 개성과 한양을 대신하는 피난처로 활용되었고요. 서울을 지키기 위한 천연 요새였던 이곳에는 섬 구석구석 군사시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강화도로 떠나는 여행은 이렇게 강화도에 있는 관방시설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외규장각, 되찾아야 할 기록 고려 고종 때입니다. 몽골의 침입에 맞서 항쟁하던 고려는 드디어 개성을 떠나 강화도로 천도를 단행합니다. 서기 1232년의 일입니다. 도읍을 옮겼으니 성을 쌓고 궁궐을 지어야 하겠죠? 그 흔적이 강화산성과 고려궁터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강화도는 39년간 항몽의 근
학교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래, 그러니까 여덟 살 이래 나는 줄곧 학교에 다니고 있다. 초로에 이른 여태까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신작로 옆 측백나무 울타리 초등학교로부터 소읍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도회의 대학교를 거쳐 다시 그 도회의 중학교에 이렇게 다니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 야트막한 단층 교사(校舍)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 학교 운동장은 세상에서 가장 넓은(?) 마당이었고, 그 운동장 가장자리에 줄지어 선 플라타너스는 세상에서 가장 장대한(?) 나무였다. 어디 이뿐인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도 학교를 통해서 만났다. 한 분 한 분 어떤 인간형의 전형으로서 큰 바위 얼굴처럼 우뚝 서 계시던 여러 선생님을 만났고, 또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여러 벗을 만났다. 학교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였고, 그 세계를 딛고 또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하는 거대한 창(窓)이었다. 그랬다. 학교는 온전히 하나의 세계였다. 세상 그 여느 풍경과 마찬가지로 사람살이의 애환이 간단없이 굽이쳐 흐르는 현장이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위해 흘리는 땀과 눈물이, 탄식과 환호가 끊이지 않는 바로 그 삶의 현장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벗들에게 우리말과
일본의 전국학력조사에서 2년 연속 전국 최고 수준이었던 아키타현내 초・중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현교육위원회의 과제는 고교생의 학력 향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들어가기 힘든 대학 수험을 지망하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시학원 강사를 초청하여 집중강의「토요강좌」를 시작했다. 학원이 적은 아키타현내에서 수도권의 학원 강사들의 강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학생들의 학력 향상을 꾀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자, 여기를 메모하세요」. 아키타시 메이토쿠칸 고교에서 23일에 있었던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첫 강의 시간이다. 도쿄에서 초청 된「요요기 세미나」학원의 수학강사가 1교시 수업을 적절한 속도로 진행했다. 센터 시험문제 등 대학수험의 실전적인 문제를 푸는 한편, 잡담도 섞어가면서 재미있게 진행해 나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강의에는 아키타, 아키타키타, 아키타미나미, 아키타주오, 혼조 등 5개 교 약 40명이 수강했다. 토요강좌는 현교육위원회가 올 해 시작한「고교생 파워 업 추진사업」의 일환이다. 현내 고교생의 2007년도 입시 센터시험의 성적은 전국 39위이다. 한편, 현교육위원회에 의하면 졸업자 전체에서 국공립대학 입학자의 비
교대 부설학교 등 전국 43곳의 국립학교를 3월부터 공립학교로 전환하려던 정부의 계획이 2010년 이후로 미뤄졌다. 1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이르면 올 3월부터 전국의 국립학교를 공립학교로 전환키로 하고 최근 국립학교 설치령 등 관련 법령 입법예고까지 마쳤으나 법령 개정 작업을 유보하고 공립화 계획을 내년 이후로 미루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부 관계자는 "국립학교 공립화에 대한 이견이 많아 좀더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올 3월과 5월께 공청회를 열고 필요할 경우 입법예고안을 다시 만들어 2010년 이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과부가 공립학교로 전환을 추진한 학교는 서울대 부설 초ㆍ중ㆍ고를 비롯한 각 국립대 부설학교, 서울교대, 경인교대 등 전국 10개 교대 부설 초등학교 등 부설학교 40곳과 공립공고 3곳(부산기계공고, 전북기계공고, 구미전자공고)이다. 교과부는 국가 업무가 지방으로 이양되는 추세를 반영하고 학교 감독 권한이 교과부와 시도 교육청으로 이원화돼 있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들 43개 학교를 시도 교육감이 관리, 감독하는 공립학교로 전환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전국의 교대 총장, 교수, 국립학교 교장,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