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이 웃는다 인간만이 웃는다. 자신이 기르는 애완동물이 지나치게 사랑스러운 나머지 웃는다는 착시를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동물은 웃음을 표현할 만큼 다양하게 안면근육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안면근육은 80개에 달한다고 한다. 신은 어째서 인간의 얼굴에 그토록 많은 근육을 부여한 것일까?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불을 찾아서는 언어를 사용하기 이전의 고대 원시사회의 모습을 실증적으로 그려내면서 웃음이 인간의 문명을 열어젖히는 하나의 계기임을 드러낸다. 웃음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동물과 다른 사랑이란 감정을 자각하게 되고 언어 이전의 인간적인 소통 수단을 발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비극과 쌍을 이루는 희극도 존재했을 것이라는 착상을 바탕으로, 희극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게 된 과정을 그려낸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역시 웃음이 감정을 표출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중세 수도원의 금욕주의적인 종교 철학은 인간의 웃음을 억압하여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웃음이 문명의 마중물이었다는 점, 인간다움을 나타내는 징표의 하나라는 점은 웃음이 단순하고 즉각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 이상
오늘날 교육에 관한 일이라면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다. 주위 사람들 혹은 언론보도 등으로부터 얻은 간접경험을 추가하여 모두가 자칭 교육전문가로 군림한다. 제반 교육문제에 대해서 서슴없이 칼을 들이대고 자신들의 상식과 잣대로 교육을 비판하고 평가를 내린다. 깊이 연구하고 생각해본 적도 없으면서 교육이 무너진다는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당면한 문제들을 스스로가 세운 기준에 의거해서 예리하게 분석하고 명쾌하게 판단하며 때로는 그럴듯한 처방까지도 내려준다. 사회 어느 분야보다도 교육은 그 특성상 성과나 실적을 가늠하기 어렵다. 교육의 궁극적 결과물은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체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교육기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최종 산출물이 될 수 없다. 사회 각 분야로 흩어져 학창시절에 배우고 익힌 실력을 바탕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국민 모두가 교육의 결과이다. 학교 시설물이나 그 속에 있는 교사, 학생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핵심과 본질은 놔둔 채 건물을 얼마나 짓고 기자재를 어떻게 개선하고 어떠한 행사를 몇 번 실시했다는 등의 가시적·외형적·단편적 실적이 점수화, 계량화되어
“히틀러는 독일군의 진격을 재촉했고 영국군과 프랑스군 34만여 명은 덩케르크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랐다. 히틀러는 1940년 5월 24일 돌연 독일군의 파죽지세 진격을 중지시켰고 그로 인해 시간을 번 영·불군은 아슬아슬하게 덩케르크에서 철수할 수 있었다. 히틀러가 진격을 중지시키지 않았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전황은 어떻게 달랐을까? 제2차 세계대전 초반전은 ‘당나귀전쟁’이라 비판받지만 영국과 프랑스도 개전 초에 독일군의 북유럽으로의 진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실책을 범했다. 독일은 폴란드를 전격적으로 점령한 데 이어 덴마크 전역과 노르웨이의 주요 항구들을 점령했다(1940. 4~6). 영국과 프랑스는 군대를 투입해 노르웨이를 지원했으나 독일 공군에 압도당해 철수했다. 독일은 1940년 5월에 네덜란드를 5일 만에, 벨기에를 2주 만에 장악했다. 그리고 난공불락의 마지노선을 뚫은 후 파리를 장악한(6월 15일) 독일은 6월 22일에 프랑스의 3/5를 장악했다. 소련 또한 라트비아 3국에 이어 핀란드를 침공하는 등 이른바 ‘대조국전쟁’에 나섰다. 최고의 전략가임을 자랑한 히틀러는 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