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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과 골목길

포르투갈 리스본과 포르투

 

포르투와 리스본은 지금까지 가본 유럽 여러 도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도루강(Douro River)을 물들이던 보랏빛 석양과 종소리를 울리며 좁은 골목을 지나던 노란색 트램, 휘황한 햇살을 반짝이며 빛나던 푸른빛 아줄레주로 장식한 오래된 집들은 이 도시를 몰랐다면 이번 생이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였으니까.

 

보랏빛 석양의 도시 포르투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출발한 유레일 열차는 황혼을 지나 어두운 밤에서야 포르투에 도착했다. 역에 내려 힘껏 심호흡을 했다. 낯선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오래된 습관이었다. 처음 맡는 냄새는 낯선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깊게 각인시켜 주곤 했다. 콧속으로 들어온 포르투의 바람은 달랐다. 강 하구의 냄새와 묵은 와인 향이 묻어있었다. 어둠 너머에서 약간 축축한 바람이 불어왔는데, 그제야 유럽의 끝에 도착했다는 걸 실감했다.

 

도루강 하구, 대서양과 만나는 곳에 자리한 도시 포르투는 포르투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이 도시는 대항해시대, 위대한 탐험가들이 범선의 닻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크게 번성했다. 하지만 대항해시대가 막을 내리며 도시는 성장을 멈췄고, 지금은 당시의 풍경을 고스란히 박제한 채 당시의 영화를 되새김질하고 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도루강 언덕에 자리한 히베이라 지구를 걸었다. 강가에는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강 너머에서 날아든 갈매기 울음소리가 귓전에 울려 퍼졌고, 건물 위층에 널린 빨래는 강바람에 느긋하게 흔들렸다. 아래층은 대부분 노천카페였는데, 여행자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달콤한 포트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강에는 포르투갈 전통 나룻배가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전 포르투에서 영국으로 포트와인을 실어 나르던 배다. 100년 전쟁에 패배한 영국이 프랑스에서 와인을 수입하지 못하게 되자 그 대안으로 선택한 곳이 포르투. 하지만 와인을 실어 가는데 오래 걸렸기 때문에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브랜디를 첨가했는데, 이것이 포트와인의 시초가 된다.

 

히베이라 지구와 빌라 노바드 가이아 지구를 이어주는 다리가 ‘동 루이스 1세 다리’다. 2층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1층은 자동차와 사람이, 2층은 사람과 트램이 함께 다닌다. 아치의 양 끝에 교각을 세우고, 이층 다리를 놓은 모양이 에펠탑 하부와 닮았다. 구스타프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포르투를 찾은 여행자들 전부가 이 다리 위에 몰려든다. 이곳에서 노을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도루강과 강변의 건물들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은 유럽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문화지구 중심에 자리한 클레리구스 탑도 시내를 전망하기 좋다. 나선형 모양의 계단 240개를 오르면 포르투 시내뿐만 아니라 도루강까지 이어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포르투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명소가 두 곳 있다. 그중 한 곳이 렐루서점(Lello Bookshop)이다. 아르누보 풍의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이 서점은 1869년 프랑스인 에르네르토 샤드롱이 문을 열었다. 1890년 렐루 형제가 서점을 인수했고, 1906년 지금의 네오고딕 양식의 흰 석조 건물로 이전해 문을 열고 있다. 천장과 맞닿은 황금색 서가와 한가운데 놓인 붉은 계단은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소설 속 마법학교의 계단으로 묘사한 곳이다. 조앤 롤링은 포르투에서 살았던 시절 이곳을 드나들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서점은 이른 아침부터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해리포터 팬들로 붐빈다. 서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 5유로를 내야 하는데, 책을 사는 사람보다 사진 찍는 데만 열을 올리는 관광객들을 보고 있으면 왜 입장료를 받는지 이해가 간다. 서점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초판 저자 사인본도 보관 중이다. 세계에 딱 300권만 남아있다. 가격은 1만 8,000유로 정도라고 한다.

 

또 다른 한 곳은 상 벤투 역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이다. 역 외부와 내부를 장식하는 아줄레주(채색 타일)의 거대한 푸른 벽화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포르투갈 화가 조르주 콜라소가 1905년부터 1916년까지 11년간 무려 2만 장의 타일 위에 포르투갈의 역사를 그려 넣었다. 역이 아니라 하나의 미술 전시관 같다.

 

 

노란색 트램의 도시 리스본

포르투의 보랏빛 석양을 지나 기차는 다시 리스본에 도착했다. 그레고리우스가 문득 떠나온 도시, 노란색 트램이 좁은 골목 사이를 지나다니고 푸른색 아줄레주로 장식한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선 도시, 골목을 걷다 보면 아련한 파두가 귓전을 울리는 도시, 테주강(Tejo River) 하구에 자리한 리스본은 7개의 언덕으로 이뤄진 도시다. 포트투갈 사람들은 리스보아라고 부른다. 1775년 대지진으로 도시 절반이 파괴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는데, 이후 대대적인 재건을 거쳐 지금의 도시로 탄생했다. 리스본은 언덕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도시 대부분이 경사진 언덕을 따라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이 언덕길을 따라 난 골목 구석구석을 노란 트램이 돌아다닌다. 트램을 탄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알파마 지구다. 리스본에서도 가장 높은 지역으로 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줄레주로 꾸민 집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타일 위에 색색의 유약으로 다양한 문양을 그려 넣은 아줄레주는 ‘반질반질하게 닦인 돌’이란 뜻.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방문했던 마누엘 1세가 이슬람 문양의 타일 모양에 반해서 자신의 궁전도 푸른 타일로 하면서 포르투갈에 번지기 시작했다.

 

알파마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상 조르제 성(St. George′s Castle)에 닿는다.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으로 11세기에 포르투갈을 점령한 아랍인들이 세웠다. 한때는 리스본을 방어하는 천혜의 군사 요새였지만, 지금은 리스본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리스본 서쪽 테주 강변을 따라 위치한 벨렘 지구는 포르투갈 전성기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벨렘탑, 발견 기념탑 등이 줄지어 있다.

 

리스본 골목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아련한 노랫소리를 듣게 된다. 포르투갈의 민속음악인 파두(FADO)다. 라틴어 ‘Fatum’(숙명)에서 나온 말인데, 대항해시대 선원들을 떠나보낸 뒤 남은 가족들의 눈물과 탄식을 표현한 노래다. 그만큼 애잔하고 서글프다. 파두 공연은 리스본 레스토랑이나 바 어디에서든 쉽게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에그타르트, 파스테이스 드 벨렘(Pastéis de Belém)은 세계에서 에그타르트를 가장 먼저 만든 곳이다. 1837년 시작해 현재 5대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가게 앞은 언제나 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에그타르트는 수도원에서 수녀복에 풀을 먹일 때 달걀흰자를 사용하고 남은 노른자를 이용해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맛이 강해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과 함께 즐기는 것도 좋다.

 

색다른 매력의 두 도시 코임브라와 신트라

리스본과 포르투 말고도 가볼 만한 도시가 있다. 코임브라와 신트라다. 코임브라는 포르투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다. 코임브라에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코임브라대학교가 있다. 아직도 검은 망토를 걸친 교복 입은 대학생들이 도시를 돌아다닌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조아니나도서관(Joanine Library)에는 16~18세기 책 30만 권이 보관되어 있다.

 

신트라는 리스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영국 시인 바이런은 신트라를 두고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며 ‘찬란한 에덴’이라 예찬했다고 한다. 신트라궁전과 페나성을 돌아보면 된다. 신트라궁전은 2개의 원추형 돔(굴뚝)이 인상적인 하얀색 왕궁이다. 원래는 무어인이 사용하던 요새였는데, 15세기 주앙 1세가 이 자리에 왕궁의 여름 별장을 지었다. 밖에서 보이는 2개의 원추형 돔은 사실 커다란 굴뚝이다. 부엌에 들어서면 하얀색 주방 굴뚝의 엄청난 지름과 높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해발 529m에 지은 페나성은 노랑·파랑·주황 등 파스텔 색으로 칠해진 것이 특징이다. 동화책에 나오는 성을 닮았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몰라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곳이 있다. 반면 지금까지 왜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몰랐지, 왜 이제야 이런 곳에 오게 된 거지 하며 억울해하는 곳이 있다. 포르투 동루이스 다리에 서서 도루강을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포르투갈이라는 곳에 이제야 오게 된 것이 아쉬웠고, 이제라도 왔다는 것이 한편은 다행스러웠다. 그러니까 여행이 가르쳐주는 건 언제나 ‘한다, 저질러라 그리고 생각하라’이다. 그레고리우스의 말대로 시간은 흘러가 버릴 것이고, 새로운 삶에서 남는 건 별로 없을 테니까.

 

☞ 여행정보

서울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직항은 아직 없다. 유럽 주요 도시를 경유해 리스본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국보다 9시간 늦다. 리스본의 노란색 28번 트램은 주요 관광지인 알파마 지구, 바이샤 지구, 바이루알투 지구까지 운행한다. 1일 대중교통 카드인 비바(VIVA) 카드를 구입하면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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