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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산에 붉은 꽃무더기, 진달래

 

양귀자의 단편 <한계령>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집안에서 동생들을 책임지느라 숨 가쁘게 살아온 큰오빠 이야기가 소설의 주요 뼈대 중 하나다. 소설에서 작가인 여주인공은 25년 만에 고향친구 박은자의 전화를 받는다. 은자는 주인공에게 고향을 떠올리는 출발점 같은 존재였다. 은자만 떠올리면 고향 기억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 것이다. 은자는 부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미나 박’으로 나름 성공했다며 꼭 한번 찾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현실의 은자를 만나면 고향 추억으로 가는 표지판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 만나는 것을 망설인다.

 

이즈음 주인공은 ‘항상 꿋꿋하기가 대나무 같고 매사에 빈틈이 없는’ 50대 큰오빠의 말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동생들이 성장해 자리를 잡아 ‘장남의 멍에’를 벗자 허탈해하면서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큰오빠는 아버지가 찌든 가난, 빚, 일곱 자녀를 남겨놓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함께 안간힘을 쓰며 동생들을 거둔 터였다.

 

은자는 곧 클럽 가수 생활을 그만두고 카페를 차릴 것이라며 그만두기 전에 꼭 한번 오라고 거듭 전화하지만, 여주인공은 은자는 만나지 않고 노래만 듣고 올 수는 없을까 궁리한다. 작가는 이런 마음을 원미산 진달래꽃을 통해 절묘하게 담았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더라고, (중략) 남편은 원미산을 다녀와서 한껏 봄소식을 전하는 중이었다. 원미동 어디에서나 쳐다볼 수 있는 기다란 능선들 모두가 원미산이었다. 창으로 내다보아도 얼룩진 붉은 꽃무더기가 금방 눈에 띄었다. 진달래꽃을 보기 위해서는 꼭 산에까지 가야만 된다는 법은 없었다. 나는 딸애 몫으로 사준 망원경을 꺼내어 초점을 맞추었다. 진달래는 망원경의 렌즈 속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났고 새순들이 돋아난 산자락은 푸른 융단처럼 부드러웠다. 망원경으로 원미산을 보듯, 먼 곳에서 은자의 노래만 듣고 돌아온다면…

 

마침내 주인공은 미나 박 공연 마지막 날 나이트클럽에 간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은자로 보이는 여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이었다. 여주인공은 노래를 들으며 큰오빠의 지친 뒷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린다.

 

<한계령>은 소설집 <원미동 사람들>에 나오는 단편 중 하나다. <원미동 사람들>은 작가가 1986년 3월~1987년 8월 발표한 11편의 소설을 담고 있는데, 경기도 부천 원미동을 무대로 80년대 서민들의 애환과 삶을 잘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책은 100쇄를 넘길 정도로 사랑을 받아 우리 시대의 고전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부천시 원미구는 2007년 원미산 입구에 양귀자 ‘글비’를 세우면서 위에 인용한, 진달래가 나오는 소설 대목을 세겨 넣었다. 부천종합운동장 뒤 원미산 진달래공원엔 10∼20년생 진달래 수만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계령’ 하면 4~5월 강원도 깊은 산에서 만날 수 있는 노란 한계령풀도 떠오를 것이다.

 

 

진달래와 함께 떠올리는 아련한 고향의 추억

동요 ‘고향의 봄’에도 나오지만, 진달래는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고향의 꽃이다. 전국 어디서나 자라는 데다, 진달래에 얽힌 추억이 한둘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진달래는 볼 수 있는 기간이 열흘에서 보름 정도로 길지 않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에 가장 잘 들어맞는 꽃이기도 하다. 진달래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와 가까운 꽃이다. 진달래꽃이 만발한 음력 3월 3일 삼짇날,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먹는 풍습이 있었다. 진달래는 먹을 것이 없던 시절 꽃잎을 따서 허기를 채운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 철쭉은 독성 때문에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 불렀다. 진달래꽃을 본 김에 꽃잎을 따먹어보니 약간 시큼한 맛이 났다.

 

진달래는 우리 숲이 점점 우거지면서 점차 밀려나고 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 “이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고 말한다. 과거 우리 숲에 소나무와 진달래가 많았던 것은 숲이 우거지지 않아 척박한 산성 토양이어서 그런 것인데, 숲을 잘 보전하면서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들이 크게 자라 소나무와 진달래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달래가 줄어드는 것은 우리 강산이 그만큼 푸르고 비옥해졌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진달래는 다섯 장의 꽃잎이 벌어져 있지만, 아래는 붙어 있는 통꽃으로, 가지 끝에서 3~6개의 꽃송이가 모여 다른 방향을 향해 핀다. 나무껍질은 매끄러운 회백색이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양끝이 좁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곳은 강화 고려산·대구 비슬산·창녕 화왕산·여수 영취산 등이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피어나는 진달래·철쭉·산철쭉

진달래와 철쭉·산철쭉·영산홍은 모두 진달래과에 속하는 봄을 대표하는 꽃들이다.

 

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기 때문에 진달래와 나머지 철쭉류를 구분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철쭉은 꽃과 잎이 함께 핀다. 진달래는 ‘진한’ 분홍색이지만 철쭉은 ‘연한’ 분홍색으로, 진달래와 달리 꽃잎 안쪽에 붉은 갈색 반점이 선명하다. 잎도 진달래는 길쭉하고, 철쭉은 둥근 잎이 5장씩 돌려나는데 주름이 있다. 피는 시기도 진달래는 3~4월이지만, 철쭉은 5~6월이다.

 

산철쭉은 꽃이 철쭉보다 색깔이 ‘진한’ 분홍색이고, 잎은 진달래와 비슷한 긴 타원형이다. 피는 시기는 진달래, 산철쭉, 철쭉 순이다. 여기에다 공원이나 화단에서 꽃이 작으면서 화려한 색깔을 뽐내는 원예종 영산홍이 있다. 영산홍은 일본에서 철쭉·산철쭉을 개량한 원예종을 총칭하는 이름이라 ‘왜철쭉’이라고도 부른다. 영산홍은 대체로 입이 작고 좁으며 겨울에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 반상록이 많다.

 

정리하면, 산에서 잎이 없이 꽃만 피었으면 진달래, 잎과 꽃이 함께 있으면 철쭉이나 산철쭉이다. 그리고 꽃이 연분홍색이고 잎이 둥글면 철쭉, 꽃이 진분홍색이고 잎이 긴 타원형이면 산철쭉으로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다 공원이나 화단에서 꽃이 작으면서 화려한 색깔을 뽐내고 있으면 영산홍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산철쭉과 똑같이 ‘진한’ 분홍색으로 피는 영산홍도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도 구분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애호가들은 그냥 산에 있으면 산철쭉, 화단에 있으면 영산홍 정도로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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