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거주형태, ‘전세’
우리나라에는 세 가지 거주 형태가 있다. 바로 매매·전세·월세다. 매매와 월세는 다른 나라에도 존재하지만, 전세는 매우 드문 형태이며 사실상 우리나라에만 남아있는 독특한 제도다. 외국인들에게 전세 제도를 설명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낯선 개념이지만, 전세는 수십 년 동안 우리 주택시장에 계속 남아있었다. 또한 만기 때 보증금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으니 사회초년생 입장에서는 주거비를 낮추는 동시에 자산 형성의 종잣돈을 모으는 경로로 많이 활용됐다.
이토록 특이한 임차 형태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고도 성장기와 고금리 시절, 집주인에게 전세 보증금은 은행 대출보다 저렴하고 유용한 ‘무이자 사적 금융’이었다. 이를 통해 집주인은 자산을 증식하거나 또 다른 부동산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세입자 역시 매달 생돈이 나가는 월세를 아껴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즉 전세는 집주인도 세입자도 모두 만족한 공생의 산물이다.
전세는 시장의 공급과 수요를 매끄럽게 잇는 윤활유
세입자가 이처럼 매달 나가는 고정 주거비 없이 자산을 축적하는 동안,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발판 삼아 이른바 ‘갭투자’라는 독특한 구조를 활용해 자산을 증식했다. 이들은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갭)만큼만 내 돈을 들여 집을 산 뒤, 향후 집값이 오르면 그 차익을 거두는 방식을 취했다.
즉 갭투자를 하는 집주인의 목적은 매달 받는 월세 수익이 아닌, 미래에 발생할 ‘시세 차익’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갭투자는 투기적 행위로만 치부되기 쉽지만 임대차 시장에서의 다른 면을 들여다보면, 이들이 시세 차익을 노리고 전세매물을 내준 덕분에 시장에 저렴한 임차 매물이 대량으로 공급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이 계산법 안에서 집주인은 굳이 세입자에게 비싼 임대료(월세)를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 오직 집을 매입할 때 필요한 목돈의 보증금만 받을 수 있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세입자들은 집값의 일부에 불과한 전세 보증금만 내고도 새 아파트나 선호도 높은 주거지에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도 거주할 수 있었고, 만기 때 그 보증금을 고스란히 돌려받기만 하면 불만이 없었다. 즉 집주인이 미래의 자산 상승 가치에 베팅하는 대가로 세입자의 현재 주거 비용을 사실상 낮춰주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견고한 전세 생태계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서민과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표방했던 정부의 정책들이 전세 소멸을 가속화시키는 신호탄이 된 것이다. 임대차 3법을 비롯한 촘촘한 임대인 규제와 세제 개편은 시장의 자율 메커니즘을 흔들었다. 여기에 다주택자를 압박해 ‘똘똘한 한 채’ 기조를 고착화켰고,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전방위적인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점차 전세매물은 사라져갔다. 결국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의 발을 묶어버린 정책의 역설이 전세 감소의 시대를 앞당긴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과 수도권의 수천 세대에 달하는 대단지 아파트에서조차 전세 매물은 고작 10개 미만에 불과하거나, 아예 단 한 건도 찾아볼 수 없는 단지들이 속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세 만기를 맞이한 임차인들은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치솟은 전세 보증금을 감당하기도 어렵지만, 매물 자체가 없어 다른 전셋집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것이다. 그렇다고 단기간에 많이 오른 매매가를 감당하기에는 자본이 부족하고, 매달 막대한 고정 비용이 나가는 월세나 반월세를 선택하기에도 가계에 가해지는 부담이 너무 크다. 대한민국 임차시장의 거대한 한 축을 담당하며 주거 안정을 이끌었던 전세 제도가 흔들리면서, 국내 부동산 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왜 전세가 사라지고 있는가? _ 아파트 시장
아파트 시장에서 전세가 사라지는 현상은 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와 역대급 공급 부족이 맞물리며 시장 구조 자체가 ‘월세화’로 빠르게 개편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급자인 집주인의 입장을 살펴보면, 전세를 놓고 싶어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제도적·환경적 원인이 있다.
● 다주택 규제가 불러온 ‘똘똘한 한 채’ 기조
전세시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다주택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분석이 있다. 시세차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여러 채의 집을 매입한 뒤, 본인이 실거주하는 한 채를 제외한 나머지 주택을 전세나 월세로 내놓아야 민간 시장에서 임차 물량이 풍부하게 도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즉 다주택자는 민간 임대차 시장의 주요 공급 주체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부의 전방위적인 규제로 인해 다주택을 유지할 유인이 줄어들었고, 세금과 대출 규제의 압박까지 이어지면서 다주택 투자자들이 보유 주택 수를 줄여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한 자산을 상급지의 한 채로 집중시키게 되면서 ‘똘똘한 한 채’를 중심으로 한 시장 구조가 정착되었다. 이렇게 다주택자들이 채수를 줄이며 시장에서 빠져나가자, 그들이 공급하던 민간 차원의 전세 물량은 실거주 수요로 채워졌고, 그 결과 시장의 전세 매물은 급격히 감소하게 된 것이다.
● 실거주 의무 및 대출 규제로 인한 갭투자의 차단
정부의 갭투자를 제한하는 정책 역시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았다. 수도권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시 전입 의무를 강화했고, 서울 및 경기 12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 실거주를 의무화했다. 또한 최근에는 비거주 1주택자도 규제 대상 안에 포함시키는 등 갭투자를 원천 봉쇄하자 역설적으로 세입자가 들어갈 수 있는 민간 전세 공급처가 크게 감소했다.
투기 수요 억제라는 목표로 도입된 이 규제들은 ‘집을 사면 무조건 주인이 직접 들어가 살아야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과거 같으면 전세를 놓아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렀을 집주인들이 규제의 칼날을 피하고 자산을 지키기 위해 입주를 선택했다. 그 결과 시장에 나와야 할 전세 매물이 집주인들의 실거주에 묶이면서, 임대차 시장의 매물 고갈을 심화시키고 있다.
● 대체 공급원의 부재
민간 영역에서 규제와 환경 변화로 인해 전세 공급이 급감했다면, 공공부문이 이 충격을 흡수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임차시장에서 공공부문이 부담하고 있는 비율은 고작 20% 안팎에 불과하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전체 임차 공급의 80%라는 절대적인 비중을 민간 영역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민간 주도의 임차시장 구조 속에서 정부의 공공 임대 공급 속도는 민간 전세의 멸종 속도와 시장의 폭발적인 수요를 따라가기에는 벅차다. 결국 공공이 가진 양적 한계와 공급 시차로 인해, 민간에서 줄어든 임차공백을 공공임대가 메우지 못하고 있으며, 대체 공급원을 찾지 못한 임차인들은 더 밖으로 밀려나거나 월세 혹은 매수로의 전환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다.
● 입주 물량의 절대적 부족
정책적인 원인 외에 가장 큰 근본적 원인 중 하나는,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 자체가 역대급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서울·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 전체로 볼 때에도 입주물량은 수요예측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기존 매물의 가뭄에 신규 임대 물량의 축소까지 겹치면서, 아파트 전세시장은 점차 절대적인 고갈 상태로 치닫고 있다. 남아있는 매물도, 들어오는 매물도 없는 공급 절벽의 현실이 전세 소멸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왜 전세가 사라지고 있는가? _ 비아파트 시장
일반적인 시장 논리대로라면 아파트 전세가 부족할 때 그 하위 호환의 대체 시장인 빌라·다세대·연립주택 등 비아파트 시장으로 수요가 일부 이동하여 숨통이 트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빌라 전세시장은 그러한 대체재 역할을 하지 못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 전세 포비아 _ 보증금 반환 불신이 낳은 자발적 탈출
지금 빌라 전세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세입자들이 품고 있는 불안감이다. 과거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빌라시장은 세입자들에게 ‘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남겼다. 아파트와 달리 시세를 명확히 알기 어려운 빌라 특성상 역전세·깡통전세·전세사기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고, 이로 인해 전세 수요자는 빌라 전세라면 기피하는 ‘전세 포비아(공포증)’를 겪으며 안전한 월세나 반전세로 자발적인 이탈을 감행하고 있다.
● 126% 룰의 한계
여기에 정부가 전세사기를 막겠다며 도입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공시가격 126% 룰’은 빌라 전세의 수요를 더 메마르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공시가격의 140%까지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했으나, 정부가 가입 기준을 ‘공시가격의 126%’1 이하로 대폭 강화시킨 것이다. 예를 들어 공시가격이 2억 원인 빌라라면 과거에는 2억 8천만 원까지 보증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2억 5,200만 원 이하로 전세금을 낮춰야만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세입자들이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는 빌라를 철저히 외면하는 상황에서, 집주인들은 다음 세입자를 받기 위해 기존 전세금을 강제로 수천만 원씩 낮춰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126% 룰로 인해 당장 수천만 원의 현금 여력이 없는 임대인들은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금 차액을 마련하지 못해 ‘역전세난’에 빠지게 되었다. 또한 이후의 임차 계약은 강화된 기준(126%)에 맞춰 전세 보증금을 대폭 낮추는 대신 부족한 차액을 매달 월세로 전환해 받는 ‘반전세’나 ‘순수 월세’로 계약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결국 전세사기를 막겠다는 제도의 압박이 공급자들에게 전세를 포기하도록 강제하면서, 빌라시장의 월세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전세 소멸이 시장에 불러온 냉혹한 결과
전세 매물의 급감은 살아남은 극소수 전세 매물의 가격을 천정부지로 밀어 올렸다. 아파트 전세가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전세가격이 먼저 폭등했고, 이는 전세 수요를 매매나 월세로 돌려 매매가격과 월세까지 다시 자극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하지만 중심지의 비싼 임차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매매 전환조차 불가능한 세입자들은 결국 밀려날 수밖에 없다. 직장과 인프라가 갖춰진 도심을 떠나 수도권 외곽이나 먼 변두리로 거주지를 강제 이전해야 하는 ‘주거 난민’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전세시장의 온도계인 전세수급지수의 추이는 이러한 전세 대란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다. 전세수급지수는 전세 수요와 공급의 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기준선인 100을 넘어 수치가 높아질수록 전세 매물 부족 현상이 심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 150을 넘으면 심각한 전세난으로, 180을 돌파하면 전세 대란에 가까운 비상 상황으로 해석되는데, 현재 지수는 전세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6년 6월 발표된 KB부동산 보고서에 따르면,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전세수급지수는 서울과 수도권뿐만 아니라 비수도권 지역까지 포함해 지난 2021년 부동산 대폭등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대적인 공급 물량이 꽁꽁 묶인 상황에서, 신규 입주 물량의 감소와 집주인들의 빠른 월세 전환 속도가 맞물리며 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전세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세가를 올려줄 현금 여력도 없고, 집을 매매할 자금도 부족한 세입자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다. ‘월세’다. 과거에는 월세가 차선책이었으나, 이제는 규제와 공급 부족에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월세를 계약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집주인은 늘어난 세금 부담을 월세로 전환해 세입자에게 전가하고, 세입자는 전세 매물 부족과 빌라 포비아를 피해 아파트 월세로 진입하면서 월세 시대로의 전환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급격한 월세화가 남긴 그늘과 생존전략
현재의 월세화 전환은 자연스러운 전환이 아니라, 공급 부족과 규제 압박에 의해 밀려난 ‘강제적 월세화’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강제적 월세화는 서민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빠르게 잠식하여 내수 소비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매달 소멸하는 주거 비용의 증가는 결국 청년층과 서민들의 자산 축적 기회를 원천 차단하며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부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소득 인상폭이 제한적인 교사의 경우, 주거비 인플레이션의 타격을 가장 치명적으로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능동적인 주거전략 없이 월세화를 맞이한다면, 향후 자산을 지키고 주거 안정을 이뤄내는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만약 교사로서 임차인이라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행동은 일반 시중은행보다 조건이 유리한 공무원 전용 주거 복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고정 비용을 묶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뿐만 아니라 공무원연금공단 등에서 제공하는 임대주택이나 대여주택 제도는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보증금으로 장기 거주를 보장받을 수 있어, 매달 새어나가는 월세 지출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공무원 임대주택은 경쟁률이 높다. 따라서 민간 임대차 시장으로 가야 하는 경우의 수도 함께 고려해야 하며, 정책 금융을 활용한 대안도 미리 마련해야 한다.
이 모든 대안을 실행하면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종착지는 ‘내 집 마련’이다. 임차인으로 계속 시장에 머무르는 한, 주거비 인플레이션의 위협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공공 임대와 정책 금융은 자산을 모으기 위한 일시적인 ‘징검다리’일 뿐이다. 궁극적인 주거 안정과 자산 방어는 자가를 소유할 때에만 완성된다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그때까지 이 냉혹한 월세화의 시대를 잘 버텨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