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학자는 우리 정치 문화를 마치 전쟁하듯 한다고 하여 ‘전쟁 정치’라고 표현한다. 이런 전쟁 정치 문화는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교 조직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최근 교육 분야의 큰 사회적 이슈는 현장체험학습(이하 ‘체험학습’으로 약칭)이었다. 과거 체험학습 중에 발생한 학생 안전사고로 인해 교사가 형사처벌을 받았고, 이후 교사들은 형사 책임과 학부모 민원 등에 대한 부담으로 체험학습을 기피하고 있다. 이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자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관련 대책 마련을 지시함으로써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이에 최근 교육부는 「학교안전법」 개정을 통해 체험학습 안전사고와 관련하여 교사의 면책 범위를 확대하고, 교육활동 중 안전사고 발생 시 교원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 지원 체계 강화 방안도 발표하였다. 학교 현장에서는 아쉬움을 표하고는 있으나, 논란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로 보인다.
학교 현장에서는 체험학습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학생들의 신체활동에 관한 것이다. 일부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사회적 관심은 크지 않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학생들은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은 물론 방과 후에도 자유롭게 뛰어놀거나 축구 등 운동도 하기 어렵다고 한다. 특히 일부 대도시 학교에서는 운동회 개최 전 인근 아파트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학생들이 학교 벽에 포스터나 손 편지를 부착해 소음 발생에 대한 이해를 호소하기도 한다. 운동회 당일에는 사과 방송과 함께 전체 학생들이 아파트 쪽을 향해 인사하는 사례까지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학교장은 학생들의 신체활동 의미를 새롭게 성찰하고, AI 시대에 인간에게 매우 중요해진 신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학교문화를 조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AI 시대와 인간의 신체활동
최근 인공지능(AI)의 고도화는 우리 삶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빠르게 따라잡고 일부 영역에서는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인간 고유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어떤 학자들은 AI 시대를 ‘인간이 사라지는 시대’라고 말한다. 이는 암묵적으로 지능을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전제하는 관점이다. 실제로 지능은 오랫동안 인간·동물·무생물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공지능에 대응 개념으로 ‘인간 지능’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지능을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로만 보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최근 2~3년 사이 인공지능 서비스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 배경에는 AI가 제공하는 경제적 효용성에 대한 기대가 있다. 동시에 ‘AI에 밀려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노동뿐 아니라 지능까지 대체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AI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할수록 인간과 AI를 구별하는 기준에 대한 논의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AI와 인간을 구별하는 주요 기준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기준 가운데 하나는 신체성일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몸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AI 시대가 진행될수록 인간의 신체성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AI 시대, 인간의 신체 활동 의미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는 약 4만 년 전에 출현하였고, 농경사회의 시작은 약 1만~7천 년 전으로 추정한다. 인간이 본격적으로 책상에 앉아 생활하고 일하기 시작한 때를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봐도 약 200년밖에 되지 않았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대부분 기간을 수렵·채집을 하며 살아왔다. 따라서 인간의 생활양식은 크게 변화했지만, 뇌와 신체는 여전히 석기 시대의 수렵·채집 생활에 적응된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혹자는 현대인을 ‘양복 입은 사냥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역사학자 하라리는 AI 시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지식이나 기술 하나가 아니라, 평생 배우고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 인간다운 관계를 맺는 사회적·감정적 능력과 몸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신체적 역량이라고 말했다. AI가 지식과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AI와 경쟁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인간다운 삶의 리듬과 판단력, 진실을 지키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한 신체가 더욱 요구된다. 고로 AI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켜내기 위한 신체활동 교육은 중요하다.
신체활동의 교육적 가치
● 놀이의 정의와 효과
놀이는 어린이들의 중요한 신체활동이다. 놀이 정의는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자기 목적적이고, 자기충족적 활동이며, 자발성·해방감·즐거움을 제공한다. 놀이는 유엔이 인정한 아동의 권리이기도 하다. 이는 놀이가 단순한 여가활동이 아니라 성장과 발달에 필수적인 활동임을 의미한다. 놀이는 신체·인지·사회·정서발달을 동시에 촉진하고 정서적 안정과 창의성, 자기조절 능력을 기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 대화·협상·갈등 해소·의사결정 같은 사회적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고로 충분한 휴식과 자유로운 놀이활동은 학습 참여와 학습 에너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나아가 놀이과정에 대한 관찰은 어린이의 언어·사회적 상호작용·감정조절·문제해결능력 등을 이해하고 발달상의 어려움이나 문제점을 발견하는 데도 유용하다.
무엇보다도 놀이의 핵심은 ‘즐거움’에 있다. 놀이의 참여자는 놀이 규칙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면서 즐거움을 얻는다. 여기서 즐거움이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느끼는 긴장감·성취감·기쁨 등의 건강한 정신상태를 말한다. 특히 바깥놀이는 신선한 공기를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른들의 지나친 간섭, 휴대폰 등의 전자기기를 벗어나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 운동의 정의와 효과
신체활동은 ‘움직이는 것’ 그 자체를 말한다. 즉 골격근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련의 모든 움직임이다. 운동은 신체활동의 한 형태로서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신체를 단련하는 활동이다. 즉, 운동은 체력의 유지와 향상을 위해 계획적이고 구조적으로 반복 수행하는 신체 움직임이다.
운동은 특히 성장기 청소년에게 매우 중요하다. 청소년기의 신체 발달은 성인기 이후의 건강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운동은 뼈와 근육의 성장을 촉진하고 심폐 기능을 향상시키고, 비만과 만성질환의 위험을 낮춘다. 또한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사회성 형성을 돕는 등 정신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성장기 학생에게 꾸준한 운동은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형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학교에서 신체활동을 위한 방안
● 비공식적 신체활동 운영을 위한 사전 준비
비공식적 신체활동을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저학년용 풋살장과 같은 작은 운동장을 만들어 저학년과 고학년의 운동 공간을 분리하고, 발달 수준에 적합한 신체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전통 놀이장 등을 교내 자투리 공간에 조성하여 다양한 놀이활동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아침 운동장 걷기나 달리기 활동을 위해 가방과 소지품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최근 체험학습 운영을 둘러싼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학생 안전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철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학년 초 학부모총회 등을 통해 프로그램의 운영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부모의 동의를 받도록 한다. 예를 들어 방과후 자율 신체활동은 학부모의 책임과 협조를 전제로 운영함을 원칙으로 하며, 안전사고 발생 시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는 서약서를 사전에 받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서약서에는 방과후 자율 신체활동 참여는 학생이 학교에서 귀가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과 학교와 학부모의 역할 및 책임 범위 등을 명시하도록 한다. 만약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방과후 자율 신체활동 참여를 제한하도록 한다.
● 비공식적 신체활동 운영 주체
비공식적 신체활동은 교사의 직접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학생 자치회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학생 안전 확보를 위해 중간 놀이·점심시간 등에는 교장(교감)·학교 보안관·자원봉사자(퇴직교원·학부모, 행정구청의 지원인력 등) 등의 참여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비공식적 신체활동 활동 내용
비공식적 신체활동은 학생 안전을 고려하여 시간대별로 대상과 내용을 다르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 아침 시간에는 운동장 빠르게 걷기, 천천히 달리기 등 비기구 중심의 활동을 운영한다. 휴식·점심시간에는 가급적 많은 학생이 신체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전통놀이와 간단한 놀이활동을 중심으로 운영한다. 방과후에는 축구·피구 등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대도시 다인수 학교의 경우 학년별 활동 시간을 배정하여 안전사고와 운영상의 혼란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침 0교시 시간을 활용한 운동장 걷기나 달리기의 경우 학생들의 동기 유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경우 가칭 ‘서울 한바퀴 돌기’와 같은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프로그램은 서울 지도를 제작하여 일주일 동안 달리거나 걸은 거리를 지도에 색연필로 표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또한 서울 한 바퀴를 완주한 학생에게는 학교 개교기념일이나, 체육의 날, 운동회 등을 활용하여 적절한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
AI 혁명은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부담을 덜어주는 순기능이 있다. 인지적 측면에서는 AI와의 협업을 통한 인지 외주화(cognitive outsourcing)가 확대되고, 노동 측면에서는 인간이 하던 일의 일부가 대체됨으로써 여가시간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인지 부채로 인해 인지능력의 저하와 함께 특정 신체기능의 쇠퇴와 같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결국 AI 혁명 시대는 인간이 자기 몸을 올바로 활용하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행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미래 사회 주역인 학생들의 신체성은 너무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 학생들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오래 앉아 생활하고 있다. 학교에서 수업 듣고, 방과 후에는 학원과 과제에 매달리며, 집에서는 스마트폰 앞에 머문다. 몸을 움직이는 시간은 줄고, 움직이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한 환경은 점점 확대된다. 이렇게 자유롭게 뛰어놀 기회가 줄면서 기본적인 움직임 경험조차 부족한 경우가 많다. 기본 움직임의 부족은 자연스럽게 운동을 피하게 되고, 운동을 피하면 체력은 떨어진다. 운동 기술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으면 체육수업, 스포츠 활동에 자신감을 잃기 쉽다. 나아가 정서 조절, 사회성, 회복탄력성 약화 등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고로 신체활동은 단순히 운동하는 시간만이 아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실패와 도전을 경험하며, 또래와 협력하는 법을 익히는 매우 중요한 교육활동이다.
학교장이 미래의 두려움에 압도되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AI 혁명에 대한 우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안에 머무르기보다 해결을 향한 강한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을 학교장이 앞장서서 극복해야만 한다. 넘어지지 않으면 결코 걷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겨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