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민선 5기 교육감 선거에서도 여전히 후보자의 정책과 전문성 검증보다는 정치 성향과 선심성 공약 중심의 조직적 선거운동이 당락을 결정했고, 후보들 사이의 고소·고발 등 4년마다 되풀이되는 이념 갈등이 지속됐다. 이번이 역대 가장 비교육적인 교육감 선거라는 평가도 있다.1 특히 이번 교육감 후보자들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믿고 10~100만 원의 현금 등을 지원하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했다. 심지어 학부모 부담과 교육청 예산을 매칭해 최대 5,000만 원 펀드를 만들겠다는 공약도 등장했다.
재원조달의 책무 없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전해 주는 재원으로 운영되는 시도교육청의 교육자치를 위해, 추가로 엄청난 선거 비용과 혼탁한 혐오 경쟁으로 유발되는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직선제로 교육감을 선출해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글은 「헌법」 제31조 제4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의 보장이라는 「헌법」 가치에 부합하는 교육감을 직선제로 선출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물어보고 개방형 공모제라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교육감이 갖춰야 할 덕목 _ 무엇이 우선인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덕목은 자주성이다. 헌법적 의미에서 자주성은 정치 또는 행정 권력의 간섭 없이 교육 본연의 논리와 가치에 따라 교육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재원조달의 책무가 없는 우리 교육재정의 특수성은 이 자주성의 개념에 새로운 차원을 요구한다.
교육재정의 절대적인 부담을 지고 있는 중앙정부의 재정 지속가능성 논의에 반대만 하는 것은 「헌법」 가치를 기득권 보호의 언어로 전락시킨다. 따라서 오늘날 교육감의 자주성에는 재정적 공민성(fiscal citizenship)3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다시 말해 시도교육감은 교육재정을 자신이 직접 거둔 국민 혈세로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이 인식이 없으면 나머지 덕목은 전부 포퓰리즘의 포장지일 뿐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덕목은 정치적 중립성과 포퓰리즘 저항력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전문성도 비전도 선거용 언어로 전락한다. 표를 의식해야 하는 직선제 구조에서 현금성 공약을 거두고 교육의 본질을 내세우는 것은 덕목을 넘어 만용에 가깝다. 또한 교육감의 재량지출로 볼 수 있는 목적사업비가 교육감의 시군구 득표율과 선거 일정에 따라 달리 배분되며 교육재정의 정치화 가능성을 제기한 연구도 있다.
세 번째는 전문성과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이다. 지역 교육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비전과 리더십, 임기 너머를 내다보는 책임감이 더해져야 한다. 다만 전문성은 유능한 보좌진과 관료조직으로 일정 부분 보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앞의 두 덕목보다 우선순위가 낮다.
마지막으로 시도지사·교원단체·학부모 등 복잡한 이해관계자를 교육적 논리로 조율하는 협치 능력과 시민에게 정책 결정을 투명하게 설명하는 민주적 책임성이 있다. 이 덕목은 앞의 세 가지를 갖춘 후보라면 자연스레 따라온다.
여기서 냉정한 역설이 드러난다. 가장 중요한 두 덕목, 즉 재정적 공민성을 내포한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 및 포퓰리즘 저항력이 강한 사람일수록 직선제에서 당선되기 어렵다. 이것이 현행 교육감 직선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다.
직선제의 구조적 한계 _ 역설은 이미 현실이다.
이 역설은 단순한 아이러니가 아니라 직선제 구조 자체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도 기호도 없다. 대부분의 유권자는 후보의 교육철학이나 행·재정 운용 능력 등 전문성을 검증할 수단도 없다. 결국 당선을 결정하는 것은 인지도와 현수막에 걸린 공약뿐이다. 또한 2018년 교육감 선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유권자의 교육감 선택은 후보자의 이념적 동질성이나 정책 가치관의 공유보다 양대 정당에 대한 호감도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5 다시 말해 직선제에서 당선을 결정하는 것은 교육 전문성이나 재정적 공민성이 아니라 어느 진영에 속해 있느냐다. 교육철학이 아무리 탁월해도 진영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당선되기 어렵다. 실제로 직선제 도입 이후 교육 전문가보다 특정 단체와 긴밀히 연관된 후보나 정치인 출신들의 출마가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은 이 구조적 왜곡을 잘 보여준다.
직선제는 구조적으로 올바른 덕목을 가진 사람에게 불리한 게임이다. 재정적 공민성을 갖춘 후보가 “교육교부금 개편 논의에 합리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그는 교육재정 효율화에 동조하는 후보로 낙인찍힌다. 포퓰리즘에 저항하는 후보는 주민의 요구에 무감각한 후보로 읽힌다. 교원 및 학부모단체의 조직적 지원 없이는 당선이 어렵고, 그 지원을 받는 순간 중립성은 이미 훼손된다. 진보와 보수 진영이 각각 교육감 후보를 사실상 추대하는 현실은 「헌법」이 요구하는 정치적 중립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결국 직선제는 교육감이 갖춰야 할 핵심 덕목을 선거 과정에서 스스로 배제하는 구조다.
대안으로서 개방형 공모제 모형
구조적 한계가 명확한 직선제의 대안으로 러닝메이트제·임명제·간선제 그리고 개방형 공모제 등이 거론된다. 러닝메이트제는 시도지사와 교육감 후보를 묶어 선출하는 방식으로 일반 지역행정과 교육행정의 정책 연계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정면으로 훼손한다. 임명제 역시 마찬가지다.
시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는 구조는 교육을 일반행정 권력의 하위 기능으로 편입시킨다는 점에서 「헌법」 가치와 충돌한다. 간선제는 선거인단이 선출하는 방식으로 직선제보다 정치적 과열을 줄일 수 있지만 직선제의 문제를 형태만 바꿔 반복할 가능성이 높고, 포퓰리즘 저항력이나 재정적 공민성 같은 덕목을 검증하기에 구조적으로 부적합하다.
인사추천위원회의 공정성이 담보된다는 전제 아래, 개방형 공모제는 앞서 열거한 모든 대안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공개 청문과 심층 면접을 통해 정치 진영의 조직력이나 선심성 공약이 개입할 여지를 구조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성을 실질적으로 담보한다. 교육행정 및 재정 운용 역량과 교육 전문성을 직접 검증하는 과정이 내재되어 있어 재정적 공민성을 포함한 교육의 자주성을 평가할 수 있다.
직선제를 포함한 어떤 대안도 그 자체로 완벽하지는 않다. 개방형 공모제의 인사추천위원회가 정치적으로 오염되면 이 제도도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인사추천위원회의 독립성과 투명성만 확보된다면 「헌법」 가치에 부합하는 교육감의 덕목들을 가장 잘 가려낼 수 있는 선출 방식은 개방형 공모제로 판단된다.
인사추천위원회 공정성 _ 제도 설계가 핵심이다.
개방형 공모제의 성패는 인사추천위원회가 얼마나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느냐에 달려 있다. 낙하산과 코드인사의 통로라는 비판을 받은 대학총장이나 공기업 CEO 공모제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독립성 및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 설계가 요구된다.
첫째, 위원회 구성의 독립성을 법령으로 확보해야 한다. 교육학 전문가, 교육행정 및 재정 전문가, 법조인, 학부모 대표, 지역 시민사회 대표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되, 추천 권한을 시도지사·지역대학·시민단체 등 복수의 주체에 분산시켜야 한다. 특정 진영이 위원회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하고, 시도의회·시도선관위·지방법원이 합동으로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6 최종 임명의 절차를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있는 시도의회의 본회의 표결로 마무리함으로써 직선제 폐지로 인해 약화할 수 있는 민주적 정당성이 보완되도록 한다.
둘째, 위원의 자격 요건과 결격 사유를 엄격히 규정해야 한다. 현직 정치인, 교원단체 임원, 해당 시도교육청 관련 이해관계자는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위원 임기는 교육감 임기와 엇갈리게 설계하여 특정 시점에 구성된 위원회가 반복적으로 동일한 성향의 교육감을 선발하는 구조를 차단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위원 해임은 중대한 법률 위반의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보장함으로써 외부 압력에 대한 저항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셋째, 심사 과정의 투명성을 의무화해야 한다. 공모 공고, 지원 자격 기준, 심사 항목과 배점, 최종 후보자 명단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심층 면접과 공개 청문회를 통해 시민이 후보자의 교육철학과 전문성을 직접 확인하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선발 결과에 대해서는 위원회가 선정 이유를 공식 문서로 작성하여 시도의회에 승인을 요청하며 공개하는 책임을 진다.
넷째, 사후 검증 체계를 갖춰야 한다. 교육감 임기 중 주요 정책 결정과 예산 집행에 대한 독립적 감사 체계를 병행해야 한다. 임기 만료 후 위원회가 재임 기간의 성과를 평가하고 공개하는 환류 구조를 만들면, 위원회 스스로 책임 있는 선발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 인사추천위원회를 한시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시도의회를 주축으로 사후 검증 체계를 시행할 수 있다.
이 모든 장치가 완벽한 보장을 뜻하지는 않는다. 어떤 제도이든 운영하는 사람의 의지와 문화적 성숙도를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행 직선제가 구조적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무너트리고 포퓰리즘을 유인하는 것처럼, 잘 설계된 인사추천위원회는 구조적으로 「헌법」 가치에 부합하는 덕목을 갖춘 교육감 선출을 유인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맺음말
민주주의의 본질은 선거라는 형식이 아니라 권력의 책임성과 공익에 대한 봉사에 있다. 선거로 뽑힌 교육감이 교육의 공익을 외면한다면, 그 선거는 민주주의의 외피를 빌린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선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성은 구현될 수 있다.
「헌법」 가치에 부합하는 덕목이 강한 후보자일수록 직선제에서 당선되기 어렵다는 역설이 제도 개혁의 핵심 논거다. 기득권을 가진 집단의 반발, 직선제를 민주주의와 동일시하는 여론, 제도 설계의 복잡성 등이 모두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제도 개혁에는 용기가 필요하며, 지금 필요한 용기는 현행 제도의 실패 비용이 누구에게 전가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 비용은 결국 지금 무상교육이라고 믿고 교실에 앉아 있는 우리 아이들이 치른다. 6월 3일 전국 16개 시도에서 치러진 민선 5기 교육감 선거를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 한번 그 질문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