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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경영

[新 교장학 개론] 교육 철학적 관점에서 본 학교장의 교육과정 리더십(Ⅰ) 

 

요즘 장학은 과거에 비하면 너무나 조용하여 존재조차 느끼기 어렵다. 과거 교육청 장학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평소와 다르게 친절하신 선생님 모습을 보고 일기장에 ‘장학이’가 매일 왔으면 좋겠다고 쓸 정도로 떠들썩했다. 그때는 모든 학교가 연 2회 교육청 장학을 받았는데, 당시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장학사를 맞이하기 위해 대청소를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일제 강점기 장학은 일본 신민 육성을 위해 학교 대상으로 지시하고, 감독한다는 의미의 시학·교학 등을 사용했다. 광복 이후 미국 영향으로 배움을 장려한다는 의미의 장학을 사용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정치와 행정의 변화로 지도·조언과 같은 긍정적 의미가 더해져 사용하고 있다. 최근 장학은 행정의 민주화, 학교 자율화 시대 등의 시대 흐름에 따른 거듭된 변화로 모두가 합의하는 정의는 없다. 다만 다양한 정의 속에서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교육활동의 개선을 위한 지도·조언 활동’이다.

 

그동안 장학은 시대 변화와 함께 역할과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교육청 장학에 부담을 느끼며 불만을 제기하곤 했다. 이처럼 교육청 장학은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학교의 본질적 과업인 수업보다는 행정사무를 중시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 2010년부터 전국 모든 학교에서 교육청 장학이 폐지되었고, 학교가 요구를 한 경우에만 자문 위주의 컨설팅 장학체제로 전환됐다. 교육청 명칭도 교육지원청으로 변경하여 교육청의 성격이 지도·감독보다는 지원 중심 기관임을 명확히 했다. 이는 학교가 본질적인 교육력 제고에 집중하도록 추진된 자율화 조치의 결과였다. 


이러한 학교 자율화 조치는 학교 민주성과 학교 자율성을 제고시키는 등의 긍정적 영향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학교장의 책임경영과 책무성의 약화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민주적 학교경영을 표방한 포퓰리즘이 많은 학교로 퍼지며 학교 장학이 무력화되고 있다. 정치 분야에서도 그렇듯 포퓰리즘은 한번 유행하기 시작하면 그 흐름을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이제는 교육청 장학의 효과성 논란은 차지하고, 단위학교 내에 학교 장학이 존재하고 있는지, 존재한다고 하면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시급하다.

 

학교 자율화 정책과 학교 장학의 중요성 증대
● 단위학교 자율경영의 강화
1980년대부터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유행하던 신자유주의 물결과 기업가 출신 대통령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에도 신자유주의적 정책인 ‘학교 자율화 정책’이 도입되었다. 학교 자율화 정책의 도입 목적은 단위학교에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이때 단위학교 자율경영제, 단위학교 책임경영제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로 학교장의 역량이 강조되었다. 단위학교 자율책임경영제가 학교장의 역할을 중시한다는 점은 학교장 임용제도의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법제화된 교장공모제를 통해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를 자율적으로 책임지고 경영할 교장을 초빙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교장공모제는 변화를 통해 내부형 B형 교장공모제(소위 무자격 교장공모제)를 비롯한 다양한 유형이 도입되었다. 


● 교장공모제와 학교 책임경영, 학교 장학의 쇠퇴
인류 역사를 보면 이 지구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다. 단위학교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의 실현이라는 취지에서 도입된 교장공모제 역시 마찬가지다. 도입 초기에는 긍정적인 면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 제도에서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은 동시에 추구해야만 하는 양대 가치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책임경영’에는 눈을 감고 ‘자율경영’에만 방점을 둔다. 그 결과 많은 학교에서 인기 위주 학교경영, 방임형 학교경영을 하기도 한다. 과거 EBS에서 ‘민주적 학교경영’의 사례를 소개한 바가 있다. 그런데 소개된 학교장은 중요한 결정을 하는 회의가 교장실에서 개최가 되면 슬그머니 자리를 비운다. 심지어 교사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회의에 참석해서도 의견을 내지 않고 해태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조직의 성장과 발전에는 언제나 불편함을 동반한다. 설령 교직원이 불편해하더라도 학교장은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고 교직원이 감당해야 할 책임도 일깨워 주어야 한다. 그 과정이 경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학교에서는 ‘너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포퓰리즘 경영을 자율경영·민주경영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 이런 포풀리즘으로 인해 학교에서는 학교 장학을 위한 원칙을 세우는 학교장의 단호한 언어와 좋은 갈등, 교사에게 부담을 주는 학교 장학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학생을 중심에 두는 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학교는 경영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어 종국에는 교육 불가능 시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학교 교실을 지배하는 교육철학들
● 지나친 학생 중심 교육의 폐해   
다수의 교육전문가는 20세기 후반 이후 나타난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기술 혁신과 AI의 등장, 교육의 시장화, 사회의 다문화화, 가족 구조의 변화 등으로 인해 학교에서는 다양한 갈등과 문제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는 교원들에게 새로운 역량을 요구하기에 교원 전문성도 미래지향적·종합적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 교실에는 학생 중심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학교교육 현실과 정합성이 떨어지는 해체주의적 철학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것은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르침이 없는 교사와 비슷한 상황이다. 결국 학생 뜻에만 크게 의존하는 교육, 학생이 자유스러운(자유방임) 교실, 무위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해체주의 철학자 들뢰즈 배움론,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하기 
소위 해체주의 철학자인 질 들뢰즈는 배우기 위해 따라야 할 방법은 없다1라고 주장한다. 이런 그의 생각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배움에는 아무런 방법도 필요 없다’라는 식의 회의론에 매몰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그의 문제의식을 출발점으로 삼아 학생의 배움을 위해 단순한 재현이 아닌 차이 생성을 위한 교수 방법 등을 구안하는 등 교수에 대해서 보다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질 들뢰즈는 배움이 학습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의 강요로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는 배움은 학습자가 대상과의 우연한 낯선 마주침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때 대상이 강렬한 기호를 방출하여 그 기호가 학습자를 사유로 이끌게 되며 이 이끌림이 학습자의 삶에 의미를 줄 수 있을 때 학습자는 어떤 어려움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탐구한다는 것이다.2 마주침의 대상이 지닌 강제성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강제성은 학습자가 무수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헤쳐나가게 만드는 강렬한 힘이다. 또한 어떤 것의 의미를 탐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만드는 매혹적인 이끌림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장은 교육과정 리더십을 발휘하여 교사들에게 학생이 진정한 자발성으로 학습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교육적 상황을 어떻게 구성하게 할 것인지 깊이 고민하게 해야 한다. 즉 교사 편에서 미리 설정한 특정한 방법이 아닌 학습자가 자발적으로 탐구하게 하는 학습의 방법과 절차가 무엇인가에 대해 숙고하게 해야 한다. 학생 개개인의 관심과 흥미, 학습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학생이 진정으로 자발성을 발휘하는 순간은 어떤 경우인지 파악해서 이를 수업 설계에 활용함으로써 학습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눈으로 본 교육권위 찾기와 진정한 가르침의 정립
● 교육에서 권위 찾기
한나 아렌트는 교사에게 두 가지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학생이 생명의 안전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들을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책임이다. 그런데 이 두 책임은 때론 서로 상충한다는 점에서 교육의 어려움이 발생한다. 그녀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보편적 질서와 진리의 담지자로서 세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생각의 중심축이 외부 세계에서 자아로 옮겨가면서 전통이나 권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녀는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교사가 학생들의 탄생성을 사랑하고 동시에 학생들을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일을 지속해야 하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다만 절대적 가치와 규범이 붕괴한 시대에도 과거로 대변되는 세계는 여전히 우리에게 보물이자 유산으로 남아 있기에 과거를 새로운 눈으로, 어떠한 규범에도 제약받지 않으면서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강조한다.


한나 아렌트가 인식하는 권위는 전통과 관련된 권위다. 그녀는 전통이 약화·해체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중간적 성격을 지닌 학교에서도 교육권위가 약해지고 있다고 본다. 그녀가 밝힌 교육에서의 보수주의는 새로운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전통을 보존하고 동시에 미래 세대의 새로움을 지키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녀는 교사에게 양육과 기존 세계의 전수라는 교육의 본래적 특성에 기반하여 교육이 가능할 수 있는 권위를 바탕으로 세계에 대한, 학생에 대한 실존적 책임을 갖고 교육 본질적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학교에서 교육적 권위가 사라진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때 그녀가 말하는 이런 권위 개념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런 관점에서 학교장은 교사들이 권위를 바탕으로 학생에 대한 실존적 책임을 갖고 교육 본질적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가 미래 세대를 거쳐 전승되고 그들의 새로움을 지킬 수 있게 교사·학부모·학생 모두 교육적 권위의 의미를 이해하게 해야 한다. 또한 교육행위가 가능하도록 서로의 역할과 관계를 정립하고 이에 대한 이해와 합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진정한 가르침의 정립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과 ‘교육의 위기’ 등에서 교육을 인간적 삶의 조건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진단한다. 그녀는 보수·진보와 같은 이론적 프레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육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중심에 두고, ‘왜 지금 가르침인가?’라는 질문에서 답을 찾는다. 그녀는 인간은 저마다 고유하게 시작하는 탄생성의 존재이며, 교육 본질은 재탄생성에 있기에 교육은 반드시 가르침과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본다. 고로 교육은 새로움이 훼손되지 않게 돌보며 타인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최근 AI시대 교육의 위기를 맞아 한나 아렌트의 철학이 학교장들에 주는 시사점은 크다. 한 인간의 생명 탄생은 부모의 몫이며, 인간의 재탄생은 학교의 몫이다. 그러기에 학교는 본질적 기능인 가르침의 역할을 회복하고 재정립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진정한 가르침은 학교와 교사의 책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는 단지 돌봄의 장소, 학원을 대체하는 방과후교육 공간이 아닌 ‘가르치고 싶다’는 교사들의 절규를 담아 교육의 책무성과 책임성을 구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학교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왜 학교에 있으며, 왜 있어야만 하는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학교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임을 학교장은 분명히 인식하고 구성원 모두에게 이를 일깨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장의 최고 책무이자 존재 가치인 교육과정 리더십은 누가 확보해 주지 않는다. 어쩌면 오늘날의 학교장에게 교육과정 리더십 찾기는 ‘불가능성 속에서 가능성 찾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은 학교장 자신이 부단히 노력해서 반드시 만들어가고 창조해 가야만 하는 ‘좋은 갈등의 길’이자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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