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최근 학교장을 만나면 교장의 역할이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심지어 어떤 학교장은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하여 1~2년만 더 버티고 명예퇴직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CEO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가 힘들고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은 있는 것일까?
한 번뿐인 인생에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과 준비가 필수다. 그러나 종종 아무런 준비와 노력 없이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이는 마치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지 않고도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것과도 같다. 토머스 제퍼슨은 ‘나는 운의 존재를 믿고 있다. 그리고 그 운은 내가 노력하면 할수록 내게 달라붙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운보다 노력이 먼저임을 강조하며, 노력한 사람에게 행운이 함께함을 말한다.
준비의 중요성
● 준비의 의의
준비란 일이 닥치기 전의 예비 상태다. 평상시 준비역량이 곧 개인의 역량이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팬데믹과 서이초 사태라는 초유의 학교 위기를 겪으며,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준비가 학교장에게 매우 중요한 일임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도 이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은 계속 발생할 것이며, 오직 준비된 사람만이 위기를 극복하고, 이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멀리 나는 새는 오래 엎드려 있고, 나중에 끝까지 남아있는 꽃은 그만큼 준비기간이 길다.’ <채근담>에 나오는 이 문장은 학교경영에서 중장기적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현대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늘날 많은 학교장이 빠른 성공을 바라고, 충분한 준비 없이 학교경영을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를 본다. 반면 오랜 시간에 걸쳐 탄탄하게 준비한 학교장은 단기적인 성공은 물론,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역사 속 사례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정유재란이라는 국난 속에서 모든 면에서 절대적 열세였던 조선 수군으로 왜군을 상대하여 23전 23승을 거두었다. 특히 단 13척의 배로 약 130척의 일본 수군을 격파한 명량해전은 철저한 준비와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다. 준비는 단순히 미래를 위한 과정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세상은 철저히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준비는 단지 성공을 위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과 자세는 철저한 준비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준비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조건이다.
●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 … 학교경영 환경의 변화
최근 학교경영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의 빠른 속도라 두려움을 넘어 무서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빠른 변화는 학교장 연수의 주체가 ‘교육청 주도’에서 ‘자기 주도’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눈치가 빠르고 수용성이 높은 ‘준비될 자’에게 초점이 맞춰졌다면, 지금은 ‘준비된 자’를 찾는다. 그렇다면 ‘준비된 자’가 대접받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첫째, 변화 속도이다. 과거의 변화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산술급수적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시대의 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덧셈 방식의 산술급수적 변화는 다소 늦더라도 대처할 수 있었고, ‘준비될 자’는 교육청 주도의 연수·훈련을 통해서 환경의 요구에 어느 정도 대응하고 문제해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곱셈 방식의 기하급수적 변화는 적기를 놓치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고, 심지어 개인의 생명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즉각적인 대응이 매우 어렵다. 최근 학교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경험하고 있으며,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 예측조차 하기 힘든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둘째, 학부모의 인식 변화이다.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학교교육의 중심축이 공급자인 학교에서 소비자인 학부모로 바뀌고 있다. 공급자 우위의 학교 중심 교육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으며, 이제는 소비자인 학부모 우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우리나라도 최근 선진국형 성장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공동체주의보다는 ‘내 자식 중심주의’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우리’라는 이타적인 가치보다, ‘나’ 중심주의가 강해지며, 4세·7세 의사 대비반 등 극단적 이기주의 현상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셋째, 불확실성의 심화다. 최근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안은 그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몇 년 후를 예측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전문가들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변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불확실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이끄는 디지털 전환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 고려해야 할 변수도 훨씬 다양하고 전방위적이어서 예측을 더 힘들게 한다.
변수의 다양성과 복잡성은 예측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어제의 지식으로 내일을 예단한다는 것이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챗GPT도 과거의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식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면서 장기적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으며, 급기야 학교도 과거의 경험에 기반하여 수립했던 중장기 경영계획을 폐기 처분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30일의 준비가 학교경영의 성패를 좌우한다.
● 발령 후 부임 시까지의 준비
요즘 많은 시도교육청에서는 학교장의 준비기간을 고려하여 2월 초와 8월 초에 발령을 낸다. 발령 후 부임까지 약 한 달의 기간은 매우 중요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을 잘 활용하여 근무하게 될 학교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준비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학교경영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기간에 파악해야 할 주요 사항들을 지면 관계상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교육과정에 대한 파악이다. 학교교육과정은 건축물로 말하면 설계도와 같다. 따라서 발령받은 학교의 교육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을 정밀히 살펴야 한다. 특히 전년도 교육과정 평가에 대한 것들을 아주 상세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직원들의 요구사항과 현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활용해 학교를 방문하고, 학교 주변 환경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이때 위험 통학로와 우범지역·유해업소 등 학교 외부의 잠재적 위험 요소를 파악해야 한다. 보다 구체적 정보를 얻고 싶으면, 학교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학부모끼리 대화하는 것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셋째,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학교를 방문하여 학교장으로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받는 것이 좋다. 학교장만큼 현 학교의 현황과 현안, 문제점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넷째, 학교장을 만나 인수인계를 받은 후 교감·교무부장·연구부장·행정실장 등에게 최대한 빠른 기간 내에 업무보고를 받는다. 이들은 학교의 업무와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핵심 인사들이기 때문에 빠른 업무보고를 받고 이에 따른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좋다. 이때 주의할 점은 기존 학교장이 2월 말 혹은 8월 말까지 재직하고 있기에 학교에서 업무보고를 받기보다는 커피숍 등 학교 외부 장소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보고받을 때는 최근의 주요 학교 현안뿐 아니라, 특히 9월 발령자의 경우 보고일 기준의 예산 집행 현황도 함께 요청해야 하며, 부임할 학교의 교직문화와 분위기에 대한 설명도 반드시 요청해야 한다.
업무보고를 받은 후 학교장은 이를 바탕으로 학교경영 준비를 해야 한다. 지면 관계상 주요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첫째, 학교장은 경영관을 제일 먼저 준비해야 한다. 학교장 경영관이 먼저 준비되어야 이에 맞춰 다른 것들을 준비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장 경영관에는 학교의 비전, 학교 교육목표, 학생상·교사상·학부모상, 학교 특색사업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3월 발령의 경우, 신학년도 학교교육과정에 이러한 내용을 반영할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둘째, 각종 인사말을 준비한다. 홈페이지에 게시할 인사말, 학부모께 드리는 인사말, 개학식·입학식·신입생 인사말, 교직원 대상 취임사, 비공식적 모임인 동창회 인사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때 인사말에는 학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학교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과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들로 부터 도움을 받을 내용 등이 포함되는 것이 좋다.
● 부임 후 준비할 것
3월 1일 또는 9월 1일 부임 시 준비해야 할 사항을 간단하게 약술하면, 첫째, 학교에 부임할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본인의 차량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할 것을 권한다.
둘째, 교감·교무부장·연구부장 등에게 사전에 요청하여 교직원회의 이전에 학교장이 알아야 할 유의사항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셋째, 부임 후 빠른 기간에 교육지원청 내 대표 교장과 지구 교장, 그리고 동장(면장)·파출소장·소방서장·농협조합장 등 유관 기관장에게 전화하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직접 방문하는 것이 좋다.
나가는 말
21세기 학교장은 학부모와 교직원의 입장에 공감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줄 알아야 한다. 사교적인 열정이 넘치고,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더라도 거절의 바다에서 꿋꿋하게 다시 도전하는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학교장만이 성공적인 학교경영을 할 수 있다. 비록 학교장이 기업가는 아니더라도, 이제는 학교장도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제공하는 CEO로서 성장하고 성숙해져야만 이 힘겨운 시대를 극복할 수 있다.
이제 최고 경영자의 길을 가면서 항상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은 ‘나는 현재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근본적으로 공짜는 없다.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관계의 아주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평소에 내가 가진 경쟁력이 과연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점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의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고, 역량을 키우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공적인 학교경영을 할 수 있다. 오늘 내가 뿌린 작은 씨앗이 미래의 풍성한 결실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학교장님이 발령 후 30일 동안의 혼을 담은 준비와 노력으로 성공적인 학교장이 되는 내일의 꿈을 실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