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는 핵가족을 넘어 1인 가족 시대로 접어들며, 가정 내 갈등이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는 갈등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핵가족의 증가와 극단적 이익 중심의 자본주의 심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양보와 타협은 곧 손해를 보는 것, 낙오자가 되는 것, 심지어 패자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그레고리 헨더슨이 언급한 것처럼 정치가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소용돌이 사회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양보와 타협의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러한 정치·문화는 학교에도 영향을 미쳐 유사한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학교에서는 악성 민원으로 인해 교사들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건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악성 민원은 당사자 개인을 넘어 학교 전체, 더 나아가 교육공동체 전체에 심각한 고통을 초래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대책뿐 아니라 학교 차원의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소 민원 발생을 최대한 예방하고, 민원이 발생하더라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도록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장은 평소 학부모 등과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학부모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상호 교류를 통해 신뢰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또한 민원이 발생했을 경우 신속하고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대응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민원의 의의
민원이란 민원인이 행정기관에 대하여 행정처분 등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다(「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각급 학교도 「민원처리법」에서 말하는 ‘행정기관’에 속한다. 학교 종사자들은 흔히 학교를 교육기관으로만 인식하고, 행정기관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민원처리법」상으로는 학교 역시 행정기관이다. 「민원처리법」에 따르면 공무원에게는 어떤 민원이든 무조건 제대로 응대하고, 답변해 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민원이란 공공기관에 특정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질문이나 특정 사항에 대한 건의, 증명서류 발급 요청 등도 모두 민원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소위 부패 민원이나 고충 민원 등 징계로 이어질 만한 사안이 아닌 일반 민원은 접수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교사나 직원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민원이 특정 교사나 직원 개인 혹은 학교에 대한 항의성 요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에 따라 민원은 교사와 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통한다.
민원의 성격
민원은 시민과 학부모들이 공적인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각종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다. 따라서 그들이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며, 담당 교사와 직원은 이를 적법하게 처리해 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갈등은 민원인이 공적 업무의 특성을 무시하고 법에 어긋나거나 처리 요건에 맞지 않는 행위를 요청하는 경우, 혹은 담당 교사나 직원이 업무를 태만하게 하거나 민원 처리를 적절하게 하지 못하는 경우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민원인은 민원 제기에 앞서 공적 업무의 특성을 이해하고 적법한 요건을 반드시 갖춰야 하며, 교사와 직원은 본인의 업무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정당하게 제기된 민원에 대해서는 친절하고 적법하게 응대하도록 해야 한다.
교사와 직원들이 민원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어떤 학교든 평소 여러 가지 업무로 바쁜 상황이기에 별도의 추가 업무가 늘어나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다. 또한 행정기관의 특성상 간단한 민원이라 해도 결재 등 여러 절차를 거쳐 답변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따라서 민원 대응은 해당 교사와 직원뿐 아니라 여러 사람의 업무를 늘어나게 한다. 더군다나 자기 자녀에 대한 과도한 감정적 돌봄이나 특혜를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증가하면서 교사들이 민원에 노출될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악성 민원의 정의
● 악성 민원의 일반적 정의
민원인이 교사나 직원이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어서 부당한 요구나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행위들을 악성 민원이라고 하며, 악성 민원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민원의 형식을 갖추었으나 사실상 불법적인 방법으로 교사나 직원을 괴롭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학교에는 이런 유형의 민원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이런 유형의 민원은 민원의 형식을 취하고만 있을 뿐 실제 목적은 교사나 직원을 보복하거나 괴롭히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둘째, 불법적인 행동이나 법에 위반되는 판단이나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원은 궁극적으로 교사나 직원에게 자기 자녀에 대한 특별대우를 요구하거나 규정 위반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불법적 요구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민원은 교사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겨주어 심할 경우 극단적인 선택이나 사직을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 악성 민원의 법에 따른 정의
악성 민원은 「교원지위법」 제19조에 규정된 ‘교육활동 침해 행위’ 중 민원 형태로 나타나는 부당한 요구나 괴롭힘으로 정의할 수 있다. 동 법 제19조에 따르면 ‘교육활동 침해 행위’란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에 소속된 학생 또는 그 보호자(친권자·후견인 또는 그밖에 법률에 따라 학생을 부양할 의무가 있는 자) 등이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하여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1.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범죄행위
가. 「형법」 제2편 제8장(공무방해에 관한 죄), 제11장(무고의 죄), 제25장(상해와 폭행의 죄), 제30장(협박의 죄), 제33장(명예에 관한 죄), 제314조(업무 방해) 또는 제42장(손괴의 죄)에 해당하는 범죄행위
나.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제1항에 따른 성폭력 범죄행위
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 제1항에 따른 불법 정보유통 행위
라. 그밖에 법률에 다른 법률에서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한 범죄행위로서 교원의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행위
2. 교원의 교육활동을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제한하는 행위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
가. 목적이 정당하지 아니한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행위
나. 교원의 법적 의무가 아닌 일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행위
다. 그밖에 교육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행위
‘교육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한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 제2조에 따르면 교원의 교육활동(원격수업을 포함한다)을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제한하는 행위는 다음 각호와 같다.
1. 「형법」 제8장(공무방해에 관한 죄) 또는 제34장 제314조(업무 방해)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로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2.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3.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
4.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불응하여 의도적으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5. 교육활동 중인 교원의 영상·화상·음성 등을 촬영·녹화·녹음·합성하여 무단으로 배포하는 행위
6. 그밖에 학교장이 「교육공무원법」 제43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판단하는 행위
악성 민원의 예방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를 비롯한 전근대 시기부터 백성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직접 전달하고 해결을 요청하는 ‘직소(直訴)’의 전통이 강하게 자리 잡은 국가이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무분별한 민원에 대한 필터링이 약하다. 반면 독일·일본 등 독일식 관방학(官房學)의 전통을 지닌 국가에서는 직소 민원에 대한 규제(담당자의 사전 약속 필수 등)가 강한 편이다.
더욱이 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학부모들의 ‘내 자식 제일주의’가 매우 강화되었고, 이에 따라 악성 민원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의 확산으로 인해 군사부일체라는 우리의 좋은 유교적 전통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민선 교육감제도 도입으로 학부모의 참여와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최근에는 학교 상황을 두고 ‘학부모의 시대’라는 표현마저 등장하고 있다.
악성 민원은 무엇보다 예방이 최우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장이 평소 학부모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신뢰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식 채널을 활용해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이다. 학교운영위원회와 각종 학부모회 등 공식 기구를 통해 학교운영위원회 운영위원, 학부모회 임원들과 정기적으로 대면 소통할 뿐 아니라 전화 등 비대면 소통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1학기 2회 정도 학부모간담회 등을 통해 학부모들과 폭넓게 소통한다.
셋째, 학교에 사안이 발생하는 경우 즉시, 학부모들과 ‘핫채널’을 활용하여 즉각적인 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학교장이 학부모들과 긴밀하게 소통할 경우, 상당수 민원이 초기에 해소되거나 악성 민원으로 발전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들은 교장·교감·교사·직원 등 학교 구성원 전체를 하나의 동일 집단으로 인식하고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기에 민원인은 민원 제기 초기에 학교를 상대로 자신의 요구나 불만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 결과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갈등을 심화시키고, 결국 악성 민원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또한 우리의 문화와 언어는 맥락의 문화, 맥락의 언어이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내 생각을 100% 드러내지 않고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민원인의 진심이나 속마음을 알기가 쉽지 않다.
반면 학부모 간의 대화에서는 비교적 의도를 빨리 파악할 수 있고 정보 공유도 쉽다. 따라서 민원이 발생 경우, 학부모 임원들이 민원인과 직접 대화하며 중재하고 설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긍정적인 경험이 반복되면 학교운영위원회 위원과 학부모회장 등이 학교와 학부모 사이에서 학부모 컨설턴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상당수의 민원이 예방될 수 있다. 또한 민원이 발생해도 강도가 약화되어 악성 민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학교장은 평소 학부모 임원들과 학생 교육을 중심으로 진솔한 대화를 수시로 나누며, 상호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학교장은 학부모 임원들을 학교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긴밀한 협력관계를 만드는 것이 악성 민원을 예방하는 최고의, 최선의 전략임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