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1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전회원 직선으로 칠곡군 관호초 김동극(55) 교장이 제41대 경북교총회장으로 선출돼, 2005년 12월까지 경북교총을 이끌게 됐다. 22일 개표한 우편투표 결과에 의하면 김회장은 4445표(43.47%)를 얻어 3623표(35.43%)의 박지구(의성교육청 장학사) 후보, 2156표의 황영수(북삼중 교장) 후보를 제쳤다. 당선 직후 김 회장은 "회원들이 교총의 존재를 체감할 수 있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강력한 교총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임회장은 "초등교사 부족에서 오는 임시정책에서 벗어나 하루 빨리 우수교사 확보"를 경북교육의 선결과제로 꼽았다. 김회장은 또 "인근도시로의 위장 전입으로 농촌의 학교가 공동화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행·재정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동극 회장은 안동교대 초대학생회장을 역임했고, 경북인터넷홈페이지 경연대회에 입상하는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경기도교육청(교육감 윤옥기)는 시흥 광주 이천 용인 안성 등 5개 지역 22개 초·중고교를 근무평점가산점을 주는 농어촌학교로 추가 지정했다. 이번에 추가 지정된 학교를 지역별로 보면 ▲시흥= 진말, 연성, 하중, 장곡초교와 장곡중·고, 연성중 ▲이천=한매, 안흥, 이천, 이천남, 설봉초교와 설봉중, 이천중, 이천송정중, 이천고, 이천실고 ▲광주=광주초교, 광주중 ▲용인=나곡중, 상갈중 ▲안성=안성여고 등이다. 이들 학교 근무교사들은 내년 1월부터 기존 농어촌지역 학교 교사보다 0.005 점이 적은 월 0.01점의 근무평점가산점을 받게된다. 도 교육청의 정홍만 교육정책과장은 "군이 시로 승격하는 등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산점이 폐지되자 나타난 교사들의 근무기피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더 열악한 농어촌학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가산을 낮춘 것"이라고 말했다. 도내에서 근무평점가산점을 부여받는 경우는 농어촌 학교와 공단지역학교로 월 0.015점의 가산점을 받는 농어촌학교는 474개교(초등 347), 0.01의 가산점을 받는 학교는 42개교(추가된 22개 교 포함)이다. 환경문제로 0.015의 근무평점가산점을 받는 공단지역학교(시화, 반월)는 37개교(초등 20교)이다.
한국교총과 교육부는 지난달 21일 교육부회의실에서 2002년 상하반기 제2차 교섭소위원회를 열고 교섭 안건 41개 조항 가운데 양측이 여전히 이견을 보이고 있는 10여 개 쟁점사항을 중점 협의했다. 쟁점 사항은 산업체 근무경력 인정률 상향조정, 연수연구학점 호봉 인정 방법, 실과담당교원수당 인상, 교원 여비지급기준 개선, 보건교육 시간 배정, 국공립병설유치원 교원의 학교운영위 참여, 교원의 석·박사과정 수학경비 지원, 교원병원 건립 등이다. 양측은 1월초 3차 교섭소위에서 쟁점 부분을 다시 협의해 1월 중순이전에 2002년 교섭을 마무리짓기로 잠정 합의했다. 이날 교섭 대표로 교총에서는 임영길 강원홍천 남산초 교사, 신민오 대구 청구중 교사, 박정희 인천 만수초 교감, 우재구 교권정책본부장이 교육부에서는 이영만 교원정책심의관, 이중흔 교원양성연수과장, 이근우 교원정책과장, 이재민 교원복지담당관이 참석했다.
교총 원격교육연수원(education.or.kr)이 지난 달 23일 9개 교원직무연수 과정 첫 수업을 시작했다. 이번 교총 원격교육 첫 직무연수에 신청한 교원 수는 1900여 명으로 참가 규모에서 볼 때 교원을 대상으로 한 유사한 원격연수 중 최고 수준이다. 이처럼 교총 원격교육 연수가 성공적으로 개막된 이유는 운영 프로그램이 우수하고 교원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개설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9개 연수과정 중 PC 기초 강좌와 성교육 상담 과정에 신청자가 비교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16일부터 수업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행정 절차상의 문제로 일주일 늦어졌다. 출석수업은 오는 25일 각 시·도별로 지정된 고사장에서 실시된다. 교육부는 지난달 18일 한국교총에 원격교육연수원 인가증을 교부했다. 교총 원격교육연수원은 1년에 6회 직무연수 실시를 계획하고 있으며 제2기 연수생 모집은 3월 중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번 제1기 9개 직무연수과정은 △ICT 초보를 위한 PC 기초에서 인터넷 활용까지 △수업활용을 위한 학습자료 제작과정 △수업자료 및 웹디자인을 위한 포토샵 7.0 따라잡기 △학교에서 엑셀/ 파워포인트 활용하기 △수업활용을 위한 멀티미디어 홈페이지 제작 △즐거운 수업을 위한 ICT 활용 교육 △역동적 홈페이지 제작을 위한 플래시 기초에서 활용까지 △학생지도를 위한 성교육 상담 과정 △학생지도를 위한 인터넷중독 상담과정 등이었다. 교총 원격교육연수원 관계자는 "예상했던 대로 원격교육에 대한 교원들의 참여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앞으로 현장교육연구와 교과별 연수 프로그램 등 차별화 된 프로그램을 추가 개발하고 이미 개설한 연수과정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총의 교육정보화 사업은 크게 원격교육연수원과 학교교육지원센터 사업으로 구분돼 추진된다. 학교교육지원센터는 학교교육과 관련된 종합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교총은 사제동행(education.or.kr) 사이트를 통해 교사,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육에 관한 각종 정보 제공은 물론 각종 연수·수련 활동, 커뮤니티, 교과연구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교총 교육정보화 사업에는 (주)드림교육을 주간사로 해 메디오피아 테크놀로지, 다울 소프트 등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지닌 벤처기업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겨울나기를 위하여 나무들의 수액이 서서히 뿌리 밑으로 내려가는 계절, 진실로 반가운 소식 들었다. 우선 내 시상의 원천이 되어준 애 사과와 호박덩굴의 학교에게 감사한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 하나가 메마른 골짜기에 사는 내 심령의 뼈를 부드럽게 위로해 주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수취인 불명'이 되어 마땅한 영혼의 주소를 찾지 못한 채 이질의 거리를 떠돌아 다녔을까? 떠듦이 곧 삶이요, 호흡인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지내온 지 얼추 이십 년이 넘어버렸다. 교실에서 두더지 잡기 놀음에 지쳐버린 나의 호주머니에 그래도 해바라기 씨앗을 슬그머니 넣어주는 악동들의 순수가 있기에 그 많은 시간들을 용케도 버텨왔나 보다. '영감은 부차적인 것, 일차적인 것은 즉흥적인 구성'이란 말에 두고두고 공감한다. 학교현장에서 건져 올린 정서와 심상들이 울타리 안에서만 통하는 온실 재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보다 넓게 입을 벌려 긍정하며 전 우주를 온 마음으로 껴안으리라! 호흡하는 것들과의 끊임없는 교감과 연민의 정을 몸소 느끼면서 규칙적인 삶의 시계보다 느림의 미학과 게으름에 대한 찬양도 아끼지 않으리라. 또한 글쓰기는 외상(trauma) 경험에 대한 애도과정이라 하였다. 감히, 시 치료를 통해 상심한 아이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심령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겠다. 끝으로, 미흡한 작품을 골라주신 심사위원과 늘 곁에서 관심 있게 지켜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한다.
학교 평가 준비 업무로 바쁘던 어느 날, 당선이라는 뜻하지 않은 기쁜 소식은 청량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작은 일이지만 하나의 목표를 성취했다는 기쁨이 컸다. 그러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가 쓰는 글이 과연 주독자인 어린이들이 읽을 때 공감하는 이야기일까, 앞으로도 깊이 있고 아름다운 동화를 꾸준하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 일을 계기로 어린이를 더 깊이 이해하고 꿈을 키워주는 진솔한 글을 쓰는 동화작가가 되고자 다짐해본다. 어린이를 사랑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되련다. 이 기쁜 일에 감사할 분이 많다. 내 쓴 글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주고 교정해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던 동료 선생님, 부족함이 많은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나에게 글을 쓰도록 항상 소재를 제공해주는 우리 반 장난꾸러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교육신문사에도 감사한다. 이 겨울에는 좀더 편안 마음으로 동화를 찾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응모작품들은 그 수준이 거의 비슷했다. 소설 쓰기의 기본을 알고 쓴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너무 소재에 집착했기 때문에, 그것을 해석하여 새로운 허구작품으로 만들어내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같다. 교사로서 교직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그 소재에 너무 애착을 가진 때문일 것이다. 문제를 고발하거나,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에 대해 교육자적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데 치우쳐 인간적인 통찰에 이르지 못한 감이 없지 않았다. 작품은 교단수기가 아니라, 인간의 진실을 찾아낸 이야기의 때문이다. 작품 짜임에 대한 관심도 더 가졌으면 했다. 대부분 작품들이 사건이나 이야기를 전하는 데 그친 감이 없지 않았다. 한 작품을 이루어내는 다양한 요소들, 예를 들면, 인물 플롯 갈등 배경 등등의 잘 어울려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당선작으로 뽑힌 '내가 그린 동물 그림'은 위에서 지적한 그러한 문제들을 어느 정도 극복하였기에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더 얻었다. 특히 그 작품에서 호감이 가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어떤 자유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파격적인 면모는 소설의 매우 중요한 몫이다. 더구나 교사들의 글쓰기에서는 그러한 요소가 더욱 값날 것이다. 우리는 너무 보수적이고, 모르는 사이에 의식이나 안목이 굳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보다는 영악한 점이 있긴 해도 학생들은 그래도 순수하다. 그들의 의식과 행동에 숨어 있는 인간의 진실을 통해서 사람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 정말 교단 소설이 큰 문학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은 오직 교사들만이 할 수 있다. 교직은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더구나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에 우리는 우울한 교직생활을 아름답게 만들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선생님들과 생활하는 학생들도 행복할 것이다.
휴대폰 덮개를 열었다. 당선이란다. 일이 벌어졌구나 싶었다. 물어볼까 말까 망설였다. 당선을 취소할 수도 있냐고. 미숙아를 세상에 내어놓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쁘지 않으세요?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 역시 낌새가 이상하다 싶은지 그렇게 물었다. 내 머리 속의 작품과 내 손이 쓴 소설은 너무 달랐다. 이번 작품은 더 그랬다. 경솔한 투고를 반성한다. 미숙아를 인큐베이터에 다시 넣어서 제대로 키우겠다. 그렇게 해서 독자들이 마음놓고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 다시 기회를 주신다면…. 피가 뜨거웠을 때 나는 빛 사냥꾼으로 살았었다. 방에는 사진첩들이 쌓여갔다. 그러다 어둠에 발목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시(詩)를 기웃거렸다. 그러다 동화라는 것을 쓰게 되었다. 세상이 무지개로 이루어져 있다고 웃으면서 말할 자신이 없었다. 소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는 동안에 세월이 흘러갔고 나는 함양, 부산, 진주, 밀양, 울산, 포항, 서울로 전전하게 되었다. 꿈 때문이었다. 성취한 꿈은 꿈이 아니다. 나는 이루지 못한 꿈이 너무 많다. 요즘에 나는 인간 동물들 관찰하는 재미로 산다. 그 속에 내 소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젠체하는 인간들을 동물 울타리 안으로 불러들일 생각이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애처롭게 보여서 심사위원님께서 어깨를 토닥거려 주신 것으로 안다. 달라진 작품으로 보답할 생각이다.
나는 열 셋 사내아이다. 동물 그림 그리기에 빠져 있다. 때로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것만 생각한다. 조금 전에 내가 동물 그림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정확한 말이 아니다. 에소그램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말로 하자면 동물 생태화(動物生態 )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동물 습성을 기록한 그림이니까. 하지만 나는 동물 생태화란 말을 쓰지 않는다. 영어나 어려운 말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들이 쓰도록 남겨 두었다. 그래서 내가 쓰는 말은 동물 그림이다. 나는 어린아이여서 쉬운 말이 좋다. 동물 그림 그리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책상 위가 지저분한 지우개 가루로 뒤덮이곤 했었다. 그런데도 완성된 그림은 엉성했다. 들여다보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곤히 잠들어 있는 식구들을 깨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막은 손가락 사이로 입 바람이 새어 나갔다. 그러다 웃음이 잦아들면 눈가에 눈물 몇 방울이 맺히곤 했었다. 한다고 해보았지만 그림으로 동물의 습성을 다 그려낼 수가 없었다. 기세 형이 동물 그림 작업할 때 사진기를 이용하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나도 사진기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내가 만드는 동물 그림은 드러내 놓고 하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 집 안의 소리들이 모두 잠이 들면 그때서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은 신경질을 냈다. 엄마가 텔레비전 원격 조정기를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이 바쁜 아버지의 귀가는 들쭉날쭉했다. 엄마가 밤마다 텔레비전하고 놀도록 놔두시는 것은 아버지의 잘못이었다. 밤이 깊어지면 텔레비전도 지치게 된다. 텔레비전 소리가 죽고 나면 나는 발자국 소리가 안방으로 사라질 때를 기다려야 했다. 발자국 소리는 심통이 나 있을 때가 많았다. 안방으로 들어간 발자국 소리가 더 이상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그때서야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공책을 펼쳤다. 공책 종이 긁히는 소리가 생쥐 쏠아대는 소리처럼 들렸다. 내 귀가 긴장해 있는 까닭이다. 그림을 그린 후에 글을 써야 했다. 그러는 중에도 내 귀는 안방에 가 있었다. 안방은 거실 건너편에 있어서 웬만한 소리는 그곳까지 날아갈 수가 없었다. 더구나 글씨 쓰는 소리는 더 그랬다. 그런데도 나는 마음을 놓지 못했다. 이렇게 나는 동물 그림을 그릴 때마다 긴장했다. 그런데도 내가 왜 그 일을 그만두지 못했을까. 시험에 처한 내 혀를 지켜내고 싶다는 그 생각뿐이었을까. 나는 비밀스러운 무엇인가를 캐어내고 있다고 느꼈었다. 같은 일을 계속해서 되풀이하다보면 원래 목적한 것 외에 다른 것을 얻기도 하는 법이다. 이런 날이 석 달 열흘이었다. 내가 동물 그림을 그리는 첫째 목적은 내 몸의 살 한 점 때문이었다. 혀 말이다. 그 살점을 지키기 위해 나는 있는 힘을 다 쏟아 부었다. 그리고 일을 은밀하게 진행했었다. 운이 따랐는지 석 달 열흘 동안 나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었다. 같은 방을 쓰는 사촌 형에게 비밀로 하기는 어려웠다. 기세 형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기세 형의 혀가 조금이라도 가벼웠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아마 칼 맛을 보고 말았을 것이다. 소독 냄새나는 칼, 생각만 해도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내 작업을 엄마 아빠에게 비밀로 해두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의 동물 그림 속에 두 사람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두 분은 주인공 동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 부모를 동물로 보고 관찰했던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짐승으로 본다면 그냥 웃어넘길 부모가 있을까. 없을 것이다. 내가 짐승이라고, 입히고 먹여서 공부시켰더니 이게 보답이냐, 네가 날 짐승 취급한다면 나도 널 짐승 취급 해주마, 이제부텀 네가 벌어서 공부하고 먹고살거라. 이렇게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아무 탈없이 동물 그림을 그려왔으니 재수가 좋은 사람이다. 그렇지 않아도 엄마가 내 서랍을 뒤지기도 했었다. 내가 하는 일에 아주 깜깜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동물 그림 공책을 책가방 속에 넣어서 학교에 갔었다. 엄마 코를 따돌려야 했으니까. 그럴 때 나는 사냥개 코를 따돌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한 마리의 여우였다. 내 공책은 그 동안에 재가 될 고비도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내 동물 그림이다. 그 공책을 공개하려 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여기에 있는 동물 그림은 공책 중의 일부이다. 그리고 어제 만든 것이니 가장 최근의 그림이다. 전량을 공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밝은 분들은 자료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현명하게 판단할 것 같아 일부만 내어놓는다. 동물 그림을 공개한다는 것은 우리 부모님 특히 엄마를 많은 사람들에게 고발하는 짓이다. 우리 엄마는 자식 사랑이 지극하다. 지극하다못해 지나치다. 이런 엄마를 세상 사람들의 입에 들이밀어야 하는 나 역시 가슴이 아프다. 우리 엄마가 짐승인지 아닌지는 이제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내 두 다리는 책상 위에 있었다. 다리가 책상 위로 올라가니까 엉덩이는 의자에 올려지고 윗몸은 등받이에 파묻히게 된다. 나는 이상하게도 다리가 책상에 올라가면 피로가 쉽게 풀린다. 하지만 어른들 중에 이런 나를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는 사람이 있었다. 엄마였다. 하이구, 잘 씻지도 않는 그 놈의 족발을 또 올려놨냐! 그런 정신 자세로 무슨 공부를 하니. 하지만 지금은 안심이다. 내 휴식을 훼방 놓을 사람은 집안에 없다. 다행이다. 노래에 맞춰 까딱까딱 발 박자를 맞췄다.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는 역시 노래가 최고다. 그래서 내 친구들은 댄스곡을 켜 놓고 머리통에 김이 나도록 춤을 춘다. 멍울이 맺힌 기분을 푸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2년 전에 이미 그런 시기를 보냈다. 지금 내 말상대는 대학 2학년 기세 형 정도다. 나는 친구들보다 최소한 십 년쯤은 앞서 가고 있는 셈이다. 사람을 보는 눈이 그렇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니까 친구들은 친구들대로 나를 멀리하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일찍 철 드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지오디(god)의 '투나잇(Tonight)'은 랩 부분으로 넘어가 있다. 영어 랩이다. 수십 번도 더 들었던 부분이다. 같은 곡인데도 영어로 들으면 노래 맛이 다르다. 우리말처럼 딱딱하지도 않았고 촌스럽지도 않다. 머리까지 끄덕거린다. 따라 부른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다. 혀가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입에 익은 노랫말들인데도 혀가 부드럽게 꼬부라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때문일까. 잉글리시 온리 존(English only jone)에서 나에게 우리말을 내뱉도록 만든 아이가 있었다. 그 일 때문에 나는 감점을 받았다. 감점이 많으면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불리해진다. 학교에서 그렇게 정해 놓았다. 그 찜찜한 기분이 혀를 뻣뻣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박자까지 놓친다. 3시 5분이다. 아파트 정문 앞에서 4시 26분에 학원 승합차를 타야 한다. 1 시간 21분 동안은 내 시간이다. 녹음기 볼륨을 높였다. 노래 소리가 시원하다. "너 뭘 하는 거니. 몇 번이나 불렀는지 알어?" 머리를 돌려 소리나는 쪽을 보았다.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 아줌마는 우리 엄마였다. 길다란 동물을 물커덩 밟아버린 느낌이었다. 엄마 눈은 책상 위의 내 다리에 머뭇거린다. 그 눈이 나에게로 건너온다. 독기 품은 뱀 눈이다. "넌 엄마도 눈에 안 뵈냐? 다리 못 내려!" "헤헤헤. 나는 이렇게 하면 영어가 잘 들려요." 엄마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기가 차다는 표정이다. 녹음기에서는 영어 랩이 끝나고 이런 노랫말이 이어졌다. '넌 왜 나한테 짐승처럼 구는 거니, 우액우액… .' 뒷머리를 긁으며 정지단추를 눌렀다. 한 번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계속 꼬인다는 걸 뭐라고 하지, 그런 날이다. "이젠 잔꾀도 부리냐? 사내답지 않게 쪼잔하기는 …." 영어 학원을 가기 전에 가져보려던 내 시간이 비실비실 도망가고 있었다. "넌 엄마 때문에 공부하는 거니, 응?" 엄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다. 빈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다. 엄마는 내 영어 공부만은 사생결단으로 간섭하려든다. 하나에서 열까지. 그러다 내가 영어 공부를 좀 게을리 한다 싶으면 저렇게 땅이 꺼지게 한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오죽하면 내가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었을까. 엄만 나에게 영어 공부시키려고 태어났어? 나는 그렇게 극성맞은 엄마가 싫었다. 이제는 엄마의 한숨 뒤에 어떤 말이 이어질 지 훤히 꿰고 있다. 영어듣기 못하는 사람이 걸리는 병이 있다. 무엇인지 아느냐. 귀머거리다. 아주 무서운 병이다. 그리고 영어 병신이 하나 더 있다. 영어 벙어리로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요즘은 이런 세상이다. 영어를 못하면 인간 취급을 못 받는다. 너 이 따위로 공부해서 누구처럼 그렇게 살고 싶냐. 이런 엄마의 애원과 협박을 들을 때 나는 정말 곤혹스러웠다. 이럴 때에 엄마의 잔소리를 멈추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엄마에게 내 영어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암, 암, 나 생각 있어요. 암, 열 세 살, 적은 나이 아니에요." 어깨를 으쓱한 연후에 두 팔을 양쪽으로 벌렸다. 서양인들의 몸짓이었다.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가 인터뷰할 때였다. 그가 갑자기 미국인으로 보였다. 그 까닭을 생각해보았다. 할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그는 '암'이라는 군소리를 쓰고 있었다. 나는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엄마에게 그 방법을 종종 써먹었다. 그런데 이때도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말 발음하듯이 '암, 암'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혀를 잔뜩 말아서 입안에서 두어 바퀴 굴린 뒤에 내뱉는 '암'이어야 한다. 그러면 영어권에서 살다온 동양인으로 보이게 된다. 그렇게 하면 엄마의 얼굴이 좀 펴지곤 했었다. 그러니까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나려면 나는 혀짜래기가 되어야 했다. 멀쩡한 정상인이 혀짜래기가 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혀를 꼬부리고 돌돌 말아서 '암, 암' 했었다. 엄마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내가 영어공부에 목을 매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의 영어 공부에 얼마나 집착이 심한지 한 가지만 더 흉을 보겠다. 지난해 봄이었다. 엄마가 나를 지하철역으로 데리고 갔었다. 나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였다. 그곳에서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지르라는 것이었다. I can do it. 나는 할 수 있다고. 나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쉽게 미치지 못했다. 머리를 숙인 채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엄마가 사람들 앞에 나서서 외쳤다. 여러분, 여기 용감한 어린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영어 연설을 들려드리겠답니다. 자, 박수를 주세요. 그 순간부터 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붙들린 한 마리 원숭이가 되고 말았다. 내 얼굴은 원숭이 엉덩이만큼이나 시뻘갰다. 죽을 맛이었다. 엄마는 나를 노려보았다. 썩 나서지 못해! 배고픈 암사자 아가리가 떠올랐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잡아먹을 것 같은 눈이었다. 나는 엄마가 나를 그렇게 몰아세운 까닭을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우연히 엄마의 수첩을 보게 되었다. 그 속에 신문 광고 쪼가리들이 끼워져 있었다. 형광 펜으로 그어진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수치심만 털면 영어의 입이 열린다'. 그랬다. 엄마는 나에게 그 광고처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번대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영어 잘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특히 신문 광고에 민감했다. 광고는 또 어찌그리 많은지, 자고 일어나면 영어관련 전면 광고였다. 무슨무슨 영어전문학습지, 영어동화학습, 영어전문학원, 연극으로 배우는 영어, 운동경기와 함께 배우는 영어회화, 벼라 별 것들이 많았다. 그에 따라 엄마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도 달라졌다. 지하철역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새로운 광고가 나오면 새로운 영어 터득 법을 나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 방법대로 공부하라고 다그쳤다. 그 때문에 나는 새 광고가 나올 때마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내 생각에는 내 영어 공부보다 엄마부터 이성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영어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나도 나지만 엄마가 불쌍했다. "너, 아빠가 돈을 어떻게 벌어오는지 알기나 하니?" 엄마의 말에 나는 단번에 수컷 늑대를 떠올렸다. 나는 사람 행동에서 동물의 행동을 즉각 떠올린다. 동물 그림에 빠져있는 기간이 길었던 탓이다. 사냥한 먹이를 물고 집으로 돌아오는 수컷 늑대. 먹이 경쟁이 심해서 그런지 요즘에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집에 들른다. 점점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하면서. "너 나하고 약속한 거 잊은 건 아니겠지?" 어떻게 잊는단 말인가. 대회 성적이 좋지 않으면 내 혀를 자른다는데 ….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났다. "혀가 토막 날 지 모르는 일인데 어떻게 잊어요." 내 대답은 삐딱했다. 엄마가 나를 흘겨보았다. 아파트 정문 앞에서 노랑 버스를 기다리다 나는 장지 하나를 펴서 하늘로 날렸다. 퍼큐(Fuckyou)였다. 그건 서양 사람들의 욕이었다. 내가 한길 가에서 펴큐를 하다니 ….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영어를 배우려는 자세가 좋다고 흐뭇해 하실까. 가기는 가야 할 것 같다. 학교와 집에서 기분을 망쳤다고 영어 수업을 빼 먹을 수는 없었다. 9월 29일은 영어 말하기 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이 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죽었다 깨어나도 내 실력으로 일 등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한다. 멍하게 입만 벌리고 있다가 칼 맛을 볼 수는 없지 않은가. 혀를 수술해보라고 권유한 사람은 매직이었다. 그는 내가 다니는 영어 전문 학원 원장이었다. 그곳에서는 청소 아줌마부터 원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영어 이름으로 불렀다. "조지 어머님, 조지가 구강 구조 때문에 영어 발음에 장애를 받고 있다는 것 모르셨지요. 우리나라 사람 중에 우랄 알타이계 인종의 혀의 특성을 고스란히 지닌 이가 있어요. 우리 학원 전문 강사들이 진단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지가 그래요.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유학을 간다해도 완벽한 발음이 어렵다는 군요." 학원에서 나는 기치가 아니라 조지였다. 엄마는 조지 엄마가 되었다. 내가 다니는 학원은 새로운 교수법을 개발했다고 떠버렸다. 수강료는 다른 학원의 두 배였다. 엄마는 내리 이 년 동안 나를 그 학원에 다니게 했다. 그런데 내 영어 회화 실력은 거기서 거기였다. 엄마는 꾐에 빠졌는지 모른다고 의심을 품었다. 그러던 차에 쏟아져 나오는 영어 광고들이 엄마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광고 내용들은 이랬다. 솜털 보송보송한 아이가 일 년 만에 미국인처럼 말하게 되었다. 우리 학습지로 공부를 한 뒤에 해외 여행가서 외국인에게 말을 걸었더니 외국인이 깜짝 놀라더라. 지금은 영어에 자신을 얻어 유학 준비중이다. 이런 식이었다. 엄마 역시 광고들이 허풍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피 같은 돈이 공중으로 사라졌다는 것 때문에 속을 끓였다. 엄마는 학원 광고지를 움켜쥐고 학원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대형할인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아들 공부를 감독하는 주부에게 호락호락 당할 그들이 아니었다. 혀가 너무 길어서 영어 발음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해버린 것이다. "사실은 조지가 다닌 기간만 공부해도 미국인처럼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조지는 r과 l을 구별해서 발음할 구강구조를 가지고 있지 못해요. 제가 잘 아는 전문의가 있긴 한데 수술비가 만만치 않아서요." 매직은 자기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닭 쫓던 개가되어 체념할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매직은 우리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매직의 말이 엄마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던 모양이다. 영어 때문에 안정된 직장을 마련한다는 것은 이제 물 건너갔네요. 이렇게 되니 물러설 엄마가 아니었다. 며칠 간 드러누워 있던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뜻밖의 방문객을 맞은 원장은 이렇게 말하더란다. 의사가 미국에 체류중이래요. 당분간 기다리셔야 하겠어요. "엄마, 원장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냉정하고 치밀한 머리로 사태를 파악해버린 내가 엄마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의사가 귀국하는 대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전, 영어 못 해도 상관없어요. 도마뱀처럼 긴 혀로 그냥 살래요. "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영어 못하면 사람 구실 못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하든. 너 혹시 수술이 두려워서 그러니? 걱정 마. 매직 원장이 그러는데 혓바닥 아래 부분을 절개해서 혀를 살짝 구부러지게 할뿐이래. 배도 가르고 머리까지 짜개는 사람도 많은데 사내 녀석이 떨긴 뭘 떠니." 엄마의 의지는 확고부동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기회를 달라고 했다. 학교에서는 해마다 영어 말하기 대회를 열었다. 내가 그 대회에 참여해서 결과를 본 뒤에 결정을 하면 어떻겠냐고 졸랐다. 엄마가 말했다. "시시한 대회니까 그럼 일 등을 해라. 할 수 있겠냐?" 나는 피그르 웃고 말았다. 엄마의 말은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회에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상이라고는 구경도 못했었다. 우리 학교에는 외국에 살다 귀국한 아이들이 꽤 있었다. 내가 일 등을 하려면 그 애들을 모두 물리쳐야 했다. "상만 받으면 되는 걸루 해줘요. 네에 엄마. " 그래서 삼 등 안에 들면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그 영어 말하기 대회가 이 주 앞으로 다가와 있다.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래서 나는 한길에 서서 세상을 향해 퍼큐를 날렸던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동물 그림을 그린 이유를 좀 더 분명히 해야 하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에소그램(ethogram)은 동물을 관찰할 때 동물의 행동 양태를 상세한 그림으로 조사한 기록이다. 동물의 생김새는 물론이고 먹이 습성이나 짝짓기, 영역 다툼과 사냥 기술 그리고 무리와 개인간의 친밀도 같은 것까지 나타낸 그림이다. 그런데 그림만으로는 완전할 수가 없었다. 미진한 내용은 글로 설명을 덧붙이게 된다. 그래서 에소그램이라고 하면 그것에 덧붙이는 설명까지 포함시키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 동물들의 습성을 기록할 때 쓰는 도구를 왜 인간에게 적용했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것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나 역시 엄마의 젖가슴에서 체온을 물려받은 인간이다. 고민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끙끙 앓는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나와 같은 방을 쓰던 기세 형이었다. 사촌 기세 형은 집이 시골이었다. 내 방에 빌붙는 형식으로 우리 집에 들었다. 올 봄의 일이었다. 나는 내킬 리가 없었다. 그러던 내가 순식간에 달라지고 말았다. 형이 다롱이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 때문이었다. 관심을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다롱이에게 눈을 대어놓고 있었다. 돈 버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았던 어른 남자가 애완용 개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기는 내가 형의 입주를 막고 싶어도 이미 결정되어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기세 형의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내 쪽에서 전전긍긍했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구실일지 몰랐다. 이렇게 해서 형과 나는 한 이불 속에서 지내게 되었다. 서로의 사타구니에 손을 집어넣기도 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형이 다롱이에게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전공과목 과제를 해결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한 학기 동안 동물을 관찰하면서 동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형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로 저거구나 싶었다. 어쩌면 저것으로 내 혀를 구할 수도 있겠다. 나는 동물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난 당할 내 혀의 모습을 그림과 글로 기록해서 사람들에게 하소연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엄마의 비인간적인 행동에 대한 내 나름의 방어법이었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그렇듯이 나는 그렇게 좀 엉뚱했다. 나의 동물 그림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발상에서 싹이 자랐다. 그 당시 내 생각은 이러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의 몸에 칼을 들이대는 비인간적인 어미의 행실을 세상에 고발해야 한다. 엄마는 짐승이나 다름없다. 아니 짐승보다 더 모질었으면 모질었지 덜 하지 않다. "엄마, 나 수술 잘못돼서 아이스크림 못 핥으면 어떡해?" "엄마, 나 반벙어리 되는 거 아냐?" 혀에 칼을 대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애걸복걸했건만 엄마는 내 애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인정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짐승이었다. 엄마의 짐승과 같은 행위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야 했다. 내 혀가 수술을 면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 보였다.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그럴듯한 자료가 필요했다. 나는 자료를 확보하려고 이를 악물고 동물 그림을 그렸다. 내 동물 그림은 엄마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폭로하는데 필요한 증거 수집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동물 그림은 하나 둘 늘어났다. 그런데 신기했다. 그것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새로운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들은 자기 스스로 위대한 종족이라고 생각한다. 짐승들과 비교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짐승이다. 내가 사랑했던 우리 엄마를 보아라. 얼마나 잔인한 짐승인가. 엄마가 집을 비우는 날이면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동물 그림을 그렸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내 공책에는 제법 그럴듯한 그림들이 채곡채곡 쌓여갔다. 동물로서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세상 물정도 좀 알게 되었다. 혀짜래기가 존경받는 세상이었다. 나는 클래식보다 가요를 좋아한다. 그래서 가수들이 좋다. 특히 나와 같은 세대인 십대 가수들은 신 같은 존재로 보였다. 그런데 그들 중에 혀짜래기가 더러 있었다. 교포 2세들이었다. 그들은 우리말이 서툴러도 너무 서툴렀다. 그런데 그들이 방송을 타면 인기가 더 치솟았다. 이상한 일이지 않는가.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았다. 우리말이 서툴다는 것을 뒤집어 말하면 영어는 잘한다는 말이 된다.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영어 열등감에 젖어 있는 아이들이 우리말이 서툰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쟤들은 영어 잘하니까 미래가 보장되어 있을 거야. 이렇게 뒤틀려진 세상도 내 동물 그림에 담고 싶었다. "형, 이거 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거지?" 형에게 동물 그림 공책을 들킨 날 나는 그렇게 물었었다. "아니, 영국 동물학자 중에 너보다 한발 먼저 시작한 사람이 있어. 그렇다고 해도 기치 너는 대단한 놈이야. 인간이 숨겨두고 싶은 것들이 네 그림에서 언젠가는 옷을 벗을 것 같애. 넌 기질을 타고났어, 혁명가 기질. 네 작은 혁명이 성공하길 빌어." 영국 사람 중에 앞서 간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나는 은근히 실망을 했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힘이 되었다. 나는 용기를 얻어서 동물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영어 학원 숙제 때문에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12시, 졸리는 눈으로 영어 일기를 쓰고 있었다. 재미없고 어려우니까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왔다. "기치야, 아빠 왔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버지의 커다란 목소리였다. 집안이 쩌렁쩌렁 울렸다. 귀가 번쩍했다. 요즘 아버지는 이삼 일에 한 번쯤 집에 들르신다. 도둑 고양이였다. 밤에 들렀다가 날이 밝기 전에 집을 나갔다. 하는 일이 무척 바쁘다고 하시면서. 언젠가 물을 마시려 주방으로 들어서다 나는 뒷걸음질을 쳐야했다. 식탁에 시커먼 등으로 앉아있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가솔들을 호령하는 수사자의 포효를 들을 것 같다. 반갑다. 비록 술에 기댄 용기라 해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남자 대 남자로서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다. 나는 부리나케 거실로 달려나갔다. 아버지의 몸에서 단내가 확 풍겼다. 내가 인사를 하는 사이에 안방에서도 문이 열렸다. "저녁은 드셨겠지요?" 굴 바깥이 궁금해서 머리를 내미는 암컷 늑대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 마디 내뱉고 굴속으로 되돌아 들어가 버렸다. 도둑고양이 정도는 얼마든지 코방귀로 잠재울 수 있다는 태도였다.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게 된 뒤부터 우리 집은 그렇게 변하고 말았다. 당당하게 소파에 앉아서 여보, 나 배고파, 이렇게 말하는 아버지를 볼 수가 없었다.나는 닫혀지는 안방 문을 바라보다 목소리를 낮춰 아버지에게 말했다. "인생 상담 좀 하고 싶은데요." 아버지의 눈이 잠시 일렁거리더니 껄껄 웃었다. "인생? 그 조오치. 네 방으로 가자." 아버지의 혀는 꼬부라져 있었다. 요즘에는 술을 입에 댔다하면 정신을 놓아버릴 정도로 과음하셨다. 그 때문에 엄마는 아버지를 더 미워했다. 그런데도 왜 술을 드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가 내 손을 덥석 잡아끌었다. 큼지막한 손이었다. 따뜻했다. 아버지가 벽에 등을 대고 먼저 앉으셨다. 왠지 모르게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바로 앉아, 임마. 오밤중에 니 애비 제사 지낼 참이냐?" 시간은 자정이 넘어 있었다. 바로 앉으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무언인가 서늘한 것이 가슴 한복판을 쓰윽 지나갔다. "아버지는 술 마시고 영어하면 잘 하시겠네요." 약주 많이 드셨네요, 이런 뜻의 농담이었다. 내 딴에는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서 한 말이었다. "영어? 그래. 잘해야지. 그것으로 사람의 능력을 재는 시대니까." 영어 얘기가 나오자 아버지의 말은 또렷했고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잔뜩 꼬부라졌던 혀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수술하고 우리말까지 버벅거리게 되면 어떡하지요?" 영어는 영어대로 망치고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혀짜래기가 되면 어쩌나 싶은 게 내 걱정이었다. 그것은 내 인생을 망치게 할 일이었다. 아버지는 엄마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으니까 나에게 도움을 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한 말이었다. "얘기 들었다. 그런다고 영어 발음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어쩌자는 건지, 원." "그렇지요?" 이번에는 내가 아버지 앞으로 다가가 아버지 한 손을 덥석 잡았다. 원군을 만난 셈이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내 혀 수술에 더 적극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지어낸 말이지 않는가.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 아버지는 나머지 손으로 내 등을 토닥거렸다. "도와주신다는 말이지요? 그렇죠?" "못난 애비 탓이다. 너희 엄마가 네 혀를 어쩌겠다고 한 것도…. 너희 엄마,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모진 사람 아니다. 수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간여하지 않아도." "고맙습니다. 아버지는 역시 아버지시네요. 감사 드려요." 나는 방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방문을 나서면서 물기 젖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런 게 아니라도 먹고살려면 허리띠를 졸라매게 될 텐데…." "무슨 말씀이세요?" "날 밝으면 엄마한테 물어보거라."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버릇이 되어서 그런지 영어 테이프를 켜 두지 않으니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자면서도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이 광고에 실린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것이야말로 효율적인 학습법이라고 하면서 매일 밤 내 머리맡에 영어 테이프를 켜놓았다. 인간의 의식에는 의식과 무의식이 있는데 그 무의식에 영어를 심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꿈자리는 언제나 뒤숭숭했다. 밤사이에 미국까지 날아갈 때도 있었다. "영어 회화 잘 하면 디즈니랜드 데려갈 게." 엄마는 그 말을 수도 없이 했었다. 회화만 된다면 미국 여행을 하자는 것이었다. 드디어 그 꿈이 이뤄졌다. 말로만 듣던 아메리카였다. 지하철역에 홈리스라 불리기도 하는 거지들이 모여 있었다. 거지인데도 그들은 영어를 잘했다. 나는 그것이 억울했다. 미국 사람들은 거지들도 영어를 잘 하는데 왜 우리는 대학까지 마쳐도 입도 뻥긋 못하지 않는가. 영어 공부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미국 거지가 되고 싶었다. 꿈속에서 나는 머리가 노랗고 곱슬곱슬했다. 나는 조지였다. 머리가 띵했다. 내가 조지로 깨어난 것인지 기치로 깨어난 것인지 헷갈렸다. 오늘도 여전하다. 거실은 혀가 꼬부라진 말들이 점령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다. 영어가 둥둥 떠 있는 아침 공기를 마시고 영어 소리가 득실거리는 방에서 잠자야 했다. 그것이 열 세 살 내 삶이었다. 나는 영어 소리 정글을 헤치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조지가 아니라 기치라는 생각에서. 간밤에 아버지에게 들은 말을 서둘러 확인하고 싶었다. "아버지 출근하셨어요?" 궁금한 걸 물어보기 위해 알면서 해보는 말이었다. "새벽에 일어나니 계시지 않더라." "엄마, 혀 수술 안 해도 되지요? 아버지가 엄마한테 물어보라던데요." "한잔 걸치고 와서 어린것한테 할 소리 안 할 다 했나 보네. 너희 아버지 영어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여서 회사에서 밀려났다는 말은 안 하디?" "네에?" 엄마가 씁쓸한 웃음을 웃었다. 혀 꼬부라진 말들이 우리 거실을 점령한 아침이었다. 처음 동물 그림을 시작할 무렵에는 나는 교육부 대신이나 황제를 떠올렸었다. 영어 때문에 생기는 문제니까 그들에게 내 동물 그림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임명받은 뒤 한 해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대신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황제는 영어를 공용어로 정했으면 하고 생각을 비쳤던 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내 귀중한 동물 그림을 보낼 수 없었다. 그래봐야 내 그림을 쓰레기로 취급할 테니까. 그렇다면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대학생들에게 보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기세 형은 반미 시위에도 참여한다. 하지만 기세 형도 영어 얘기로 접어들면 꼬리를 내리고 만다. 토익인지 토플인지 점수를 따야 한다고. 점수를 따지 못하면 대학 졸업도 못하게 해놨다고. 동물 그림을 내어놓을 곳이 없어졌다. 그렇지만 나는 동물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었다. 동물 그림을 통해서 나는 새로운 것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엉뚱한 생각에서 시작된 그 일이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인가 하면 인간을 동물로 생각하고 관찰해 보니까 한동안 가려져 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존엄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서로 많이 먹으려고 싸우고, 먹이를 먹었으니 똥 싸고, 위협을 느끼면 꽥꽥 소리 지르고, 새끼를 낳아 튼튼하게 길러내는 짐승의 모습, 그것이었다. 어린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려 했다. 그래서 우리는 동물의 울타리 바깥으로 뛰쳐나와 있었다. 내 동물 그림은 인간을 그 울타리 안으로 다시 밀어 넣는 작업이었다. 내가 처음 동물 그림을 그린 목적은 이루기 어려웠지만 나는 인간의 비밀스러운 뒷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동물 그림 작업을 그만두지 못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변화 중의 변화는 내가 엄마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 영어 공부에 목숨을 거는 듯한 행동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내 혀에 칼을 대려는 엄마는 분명히 비인간적인 모습이었다. 비인간이니까 동물이었다는 말이다. 아버지의 실직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엄마의 몸부림은 어미로서 새끼를 사랑하는 동물적인 모성 그것이었다.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내 혀에 소독한 칼날이 들어오고 말 것 같다. 나는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그 눈물이 내 살 속으로 파고 들어와 살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어금니를 깨물려 한다. 동물 그림들이 당당한 수컷으로 수술대 위에 누울 수 있도록 나에게 용기를 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두려움이 앞선다. 나는 아직 열 세 살 짜리 어린 수컷인가 보다.
대밭골의 폐교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멈춘지 오래다. 가끔 스쳐 가는 바람이 심심풀이로 종을 뎅뎅 치거나 산새들이 놀러와 재잘거리며 마을의 소식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런 폐교에도 봄은 찾아오고, 새싹들이 돋아나 봄을 수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폐교의 한 쪽에 아직도 산뜻한 봄을 맞이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화단 한 구석에 버려지듯 놓여 있는 독서하는 소녀상이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얼룩과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소녀상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예전처럼 아름답고 새하얀 모습이 아니다. 소녀상이 들여다보고 있는 책갈피에도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런데다가 며칠 전 까치들이 들려주던 이야기는 소녀상을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여기에 도시의 유명한 조각가가 이사온대요. 이 곳을 깨끗이 정리하고, 아름다운 조각 전시장으로 만든다는데요." 마을의 소식을 누구보다도 빨리 알려주는 까치들이 느티나무에게 날아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요란스럽게 떠들어댔다. "뭐라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조각 작품 못지 않은 멋진 몸매를 보란 듯이 자랑하는 향나무가 호들갑스럽게 몸을 떨었다. "향나무님이 무엇 때문에 걱정이셔요.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분을 누가 미워하겠어요? 없어진다면 지저분한 저 소녀상이나 없어지겠지요." 까치들은 마치 소녀상이 없어지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소녀상을 흘낏흘낏 쳐다보며 까각까각 깍깍 떠들어댔다. 소녀상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가슴이 내려앉는 소리가 '쿵'하고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날 이후로, 소녀상은 책을 보려 하여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즐거운 추억들만이 하나씩 떠오를 뿐이었다.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소녀상의 마음에 가장 또렷이 남아 있는 추억을 든다면 기원이와의 추억일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원이를 떠올릴 때면 가슴이 뻐근해지곤 했다. 조용히 눈을 감은 소녀상의 머리 속에서 기원이와 처음 만난 날의 모습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기원이와 만나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 그 때도 지금처럼 연둣빛 새싹들이 파릇파릇 피어나던 봄이었어.' 소녀상이 이 학교에 온 다음 날 체육시간이었다. 공차기에 끼지 못한 한 아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소녀상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의 걸음은 조금 절룩거렸다. 소녀상에게 다가온 아이는 조용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소녀상아, 반갑구나. 내 이름은 기원이고 사학년이야. 우리 부모님이 저 매봉에 기원을 많이 해서 나를 낳으셨다는구나. 그래서 내 이름도 기원이라고 지었대. 참 좋은 이름이지? 그런데…." 자신을 소개하던 기원이가 망설였다. '그런데?' 소녀상은 그런 기원이의 다음 말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소녀상은 기원이의 말을 재촉하기보다는 예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기다려줬다.머루알처럼 새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한참 동안이나 소녀상을 바라보던 기원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의 친구가 되고 싶은데......." 소녀상은 기원이의 말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뭐, 친구? 너뿐만이 아니라 이 대밭골 아이들이 이미 내 친구들이잖아.' "아니, 아니. 그런 친구 말고!" 기원이는 소녀상의 마음을 훤히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도리질을 했다. '그러면 어떤 친구란 말이니?' 소녀상은 기원이의 말에 점점 흥미가 느껴졌다. "네가 보는 것처럼, 애들은 축구나 달리기 시합을 할 때면 나를 편에 끼워주질 않거든. 혼자 나무 그늘에 앉아 애들 노는 모습이나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면 조금은 슬퍼지는 거 있지? 이런 내 마음을 너는 잘 알아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너는 책을 많이 읽으니까, 생각도 깊을 테고 친구를 위한 마음도 넓을 거야. 그래서 오늘부터 너와 속마음을 털어놓는 친구가 되고 싶어." 기원이는 자못 진지했다. '그랬구나. 그런 네 마음도 모르고 재미있어만 해서 미안해. 내가 이 곳에 온 것도 이 곳 아이들이 모두 너처럼 책을 좋아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이란다. 우리 멋진 친구가 되어 보자.' 소녀상은 자신을 찾아와 준 기원이가 고마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선뜻 대답을 했다. "소녀상아, 정말 고마워!" 기원이는 파릇파릇한 새싹만큼이나 싱그러운 웃음을 날리며 책을 펼쳤다. "너와 함께 있으니까 마음이 무척 편한 걸. 우리 내일 또 만나자."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에야 책을 덮은 기원이는 기지개를 한 번 크게 한 후 소녀상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는 기원이가 절룩거리며 걸을 때마다 길게 누워 있는 그림자도 크게 흔들거렸다. 멀어져 가는 기원이를 바라보는 소녀상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도 네가 정말 맘에 들어. 모든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야하지만, 나에게도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 할 친구가 필요하다구. 우리 좋은 친구가 되어보자.' 그 날 이후, 기원이와 소녀상은 돌탑을 쌓듯이 우정을 차곡차곡 쌓아가기 시작했다. 기원이는 틈만 나면 소녀상 곁으로 와서 책을 읽으며 놀았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했던 이야기도 소녀상한테는 허물없이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기원이는 다리가 불편한 대신 다른 애들이 갖지 못한 재주가 많았다. 만들기 대회나 글짓기 대회에 나가면 꼭 상을 타오곤 한다. 언젠가는 어린이 신문에 보낸 글이 특선으로 뽑혀서 상으로 배달된 여러 권의 동화책을 전교 어린이들이 보는 앞에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달받기도 했다. 그런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소녀상이 기원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예쁜 미소를 지어주는 일이었지만, 기원이는 늘 즐거워했다. 소녀상은 그런 기원이가 곁에 있어 늘 행복했다. 소녀상과 깊은 우정을 쌓아가던 기원이가 육학년이 되던 해 봄이었다. 어느 날, 풀이 죽은 모습으로 소녀상에게 다가왔다. '기원아. 친구랑 싸웠니? 부모님한테 야단이라도 맞았니? 말 좀 해 봐. 응?' 소녀상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원이는 아무 대답이 없이 소녀상을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소녀상은 그런 기원이가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궁금증이 더해 갔다. 그러나 기원이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여러 날이 지나도록 입을 떼지 않고 지내던 기원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소녀상의 발목을 잡고 속삭였다. "소녀상아, 오늘은 너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왔어." '뭐? 작별 인사라고?' 소녀상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래,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됐어." 농사를 짓던 기원이 아버지가 도시에 가게를 차려 이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소녀상아,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 다시 돌아올게. 소녀상아, 그 때까지 나를 잊지 말고 기다려 줘." 소녀상에게 기댄 기원이의 볼에서는 맑은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소녀상도 가눌 수 없을 만큼 슬픔이 컸다. 눈물을 참느라고 손가락을 내밀어 약속은 못했어도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나, '그래, 그래. 우리 다시 만나자. 그 때를 꼭 기다릴게.' 하고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그 후로는 기원이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벌써 삼 십여년 전의 이야기로구나. 이젠 기원이를 만난다 해도 알아볼 수가 없겠지만 기원이와의 우정도 아이들과의 아름다운 추억도 이제 끝나고 만거야. 이 곳이 조각 공원으로 바뀌는 날이면 나는 없어지고 말테니.' 소녀상은 기원이와 맺었던 우정을 떠올리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까치의 말대로 조각가가 이사오는 날이 되었다. 대밭골로 들어오는 산모퉁이에서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트럭 몇 대가 보이더니, 이내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소녀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시 후,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짐을 내리는 소리, 아직도 힘이 드는지 부릉부릉대며 트럭이 가쁜 숨을 토해내는 소리로 폐교는 모처럼 떠들썩했다. 소녀상은 이 모든 소리들이 자신을 비웃는 소리로 들려와, 더욱 초라해지고, 부끄러워져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까치들 말대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소녀상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잠시 후, 소녀상은 자신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자신을 어루만지고 있는 이는 턱수염을 기르고 빵모자를 쓴 중년 남자였다. 한 동안 아무 말 없이 소녀상을 어루만지던 그의 볼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그렇게 말없이 있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소녀상아! 내가 왔다. 내가 바로 기원이란다, 나를 잊은 건 아니겠지?" '기원이?' 기원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던가. 소녀상은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늘 마음속에 그려보던 기원이가 이런 모습의 어른이 되었던가?' 예전의 앳된 기원이 모습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머루알처럼 새까맣고 맑은 눈망울과 한쪽으로 기우뚱한 불안정한 자세가 삼십여 년 전에 소녀상과 함께 독서하고 우정을 쌓았던 기원이가 틀림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 삼십여 년 전에 너와 우정을 나누었던 기원이야." 어려서부터 생각이 깊고, 손재주가 뛰어났던 기원이는 조각을 공부하여 유명한 조각가가 되었다. 자신의 조각 전시회가 열리고 있던 어느 날, 신문을 통해 소식을 들었다는 어릴 적 친구의 반가운 편지를 받고 그는 대밭골 학교가 문을 닫고 새 주인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 아름다운 학교가 문을 닫다니! 소녀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조각 공부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고향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어. 어릴 적 대화를 나누며 미래를 꿈꾸던 소녀상, 그 소녀상과의 약속대로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된 거야.' 눈을 감자, 대밭골의 학교 모습과 소녀상의 모습이 훤하게 떠올랐다. 그는 어린 시절에 자신의 꿈을 키워주었던 폐교를 구입하여 조각 공원을 꾸미고 그곳에 작업실을 마련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편지를 보내준 고향 친구에게 서둘러 연락하여 교육청과 의논하여 그 일을 성사시키도록 부탁한 끝에 드디어 그의 뜻을 이루었던 것이다. "소녀상아,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생활을 하며 살아왔단다. 너는 알겠지?" 그가 그러한 말을 하지 않더라도 소녀상은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윽한 그의 눈과 마디마다 굵게 불거져 나온 손을 보면서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가 대밭골에 내려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소녀상을 뒤덮고 있던 때를 말끔히 닦아내고 정성스럽게 페인트를 칠한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상은 예전처럼 아름답고 새하얀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의 작업실이 된 교실에서 밤낮을 모르고 작업에 몰두한 끝에 첫 번째로 완성한 작품이 소녀상 옆에 세워졌다. 어린 소년이 독서하는 소녀상을 향해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는 대리석 조각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다. 소녀상은 다시 행복해졌다. 비록 지금은 아이들이 떠나고 없지만, 훌륭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기원이가 유명한 조각가가 되어 훌륭한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땀 흘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초록먼지 날리는 운동장을 길길이 뛰는 아이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고정되어 있다 악동들이 땀흘리며 정직하게 붙좇는 것은 가죽 공뿐이다 풀더미를 차던 유년의 기억은 돼지오줌통 만큼이나 먼 데 고울 문을 벗어난 공들이 쥐똥나무 울타리에서 우연히 꽃 사과와 만나고 있다 이루지 못한 꿈의 알갱이들이 지친 호흡으로 매달려 있을 무렵, 홍수처럼 눈병이 나돌았다 그들 마음의 창에 시나브로 빨간 등불이 켜졌을 때, 교실에선 민망한 자괴감이 분출하고 있었다 우슬초로 말갛게 씻은 눈 가지고 단아한 가을 하늘 보게 하려고 지혜로운 계절이 저들에게 고통의 축제를 예비해 두었나보다 충혈된 아이들의 눈가에서 물고기의 은 비늘이 떨어진다 마지막 차임벨이 울리며 소란스런 침묵이 끝나고 있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가 전통문화 정신 고취를 위해 100개가 넘는 장승을 제작, 지역 문화 지킴이로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장안초등학교(교장 진광식)는 지난 1년 동안 전교생과 학부모 및 교직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120여 점의 장승을 제작했다. 학교특색사업인 '주제가 있는 다양한 체험 활동' 가운데 민속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사라져 가는 우리의 전통문화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선정한 것이 바로 '장승 만들기'. 1학기 동안 자료 수집을 하면서 제작준비를 하고 대한민국 지정문화재 조각기능 등록자인 해운 김대현 선생의 지도를 받은 이태현 교감이 교사연수를 통해 견본 작품 7개를 제작하는 한편 학생들을 지도했다. 2학기부터는 부산-울산간 고속국도 건설현장에서 나온 나무를 얻어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갔다. 유치원생과 1∼3학년은 30∼40㎝ 정도의 나무를 자르고 갈아서 고무찰흙으로 꾸미고 크레파스로 색칠하는 작업을 담당했다. 4∼6학년은 담임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가면서 통나무에 밑그림을 그려 조각도로 파고 새겨서 만들었다. 학교장을 비롯한 전교직원이 1, 2개씩을 제작했으며, 뜻 있는 학부모들도 제작에 참여했다. 직접 장승 제작에 참여하며 학생들을 지도해 온 진광식 교장은 "학교가 위치한 장안사 일대는 옛날부터 장승이 많이 세워졌던 곳으로 지금까지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며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에게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심어주고 작품구상부터 완성까지의 전 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미적 정서 함양과 성취감 실현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등 여러 가지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장안초등교는 지난달 이렇게 만든 120여 점을 소개하는 '장안골 예쁜 장승 축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학교 내에 장승제작 체험장을 마련하여 방문객에게 장승 제작 참여 기회도 제공했고 관계 인사들의 참여 작품도 전시돼 축제를 빛냈다. 학교에서는 이 행사를 계기로 기장군과 협의, 내년에 제작하는 장승을 장안사 입구 도로변에 전시해 테마 거리를 조성하는 지역특색사업 추진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번 겨울 방학기간 중에는 전통공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장승제작 교실을 운영하고 동호회 활동도 할 계획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초등학교 기초학습 부진학생을 대상으로 6일부터 보름간 '기초학력 다지기 캠프'를 운영하기로 했다. 기초학력 다지기 캠프는 도교육청의 3단계 기초학력지도 프로그램 중 두번째 단계로, 첫 단계인 방학전 학교별 자체지도를 거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방학 캠프를 마친 학생들은 다시 3단계로 개별학교 단위의 보충지도를 받아 학습부진에서 벗어나는 과정으로 짜여져 있다. 방학 캠프는 국어 읽기·쓰기와 수학 셈하기가 떨어지는 초등학교 3∼6학년생 1400여명을 대상으로 운영되는데, 매일 국어와 수학 2시간씩 모두 60시간의 과정을 소화하게 된다. 교육대상 학생들은 5명 안팎의 소규모 그룹으로 편성돼 특별교재를 활용한 현직교사의 집중적인 지도를 받도록 돼 있다. 캠프는 지역교육청 단위의 '기초학력 다지기센터', 중심학교 단위의 '사랑의 두레교실', 개별학교 단위의 '신바람 학습실', 재택학급 단위의 '튼튼 학습실'과 지도교사의 순회 지도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된다. 도교육청은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 운영단위별로 관리책임자와 지도교사 및 보조교사를 배치하고 개인별 지도기록부를 작성, 학생별 부진요소와 지도목표 등을 진단한 뒤 개별지도토록 할 방침이다.
길게는 10년 가까이, 짧아도 2∼3년은 대학 입시와 관련해 말못할 고통을 겪어야하는 것이 우리 학생들이고,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돌보는 학부모나 지도하는 선생님들의 마음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2003학년도 대학 입시가 진행 중인 요 며칠 사이에도 어김없이 생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교육자로서 우리들의 마음은 비통하기 그지없다. 이런 와중에도 검증 안 된 학습법이나 통계로 불안한 수험생을 현혹하거나, 이를 부추길 수 있는 일부 매스컴의 보도 행태는 우리를 분노케 한다. 이제 학교교육을 책임진 우리들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고통을 나누어지려는 더욱 다부진 각오와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우리 학교교육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각급 고교 진학지도부장이나 진로상담부장을 비롯한 학급담임선생님들은 오랜 현장 지도를 통해 축적한 전문적 지식과 식견을 십분 활용해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이나 학교 인근에 사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상담까지도 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진학을 준비중인 고3 학생이든 재수생이든 모든 수험생들의 가장 절실한 현안은 적절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기 위한 진학 상담이다. 이들의 이러한 심정을 악용하여 상담이랍시고 부실한 자료로 유료 상담을 하는 기관이 많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덜어 보고자 본교에서는 3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합숙 토론을 해가며 실정에 걸맞은 진학상담 자료를 준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학생과 졸업생은 물론 인근 주민의 상담까지도 실시하고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앞으로 다른 고교와 연계해 자료를 만들고 이를 공유해 활용한다면 좋은 성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이는 공교육을 책임진 우리 현장 교사들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 11월 6일 수능시험이 끝난 후의 면학 지도에도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사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참으로 열심히 수능 이후 면학지도를 위해 땀흘리고 있다. 예를 들면, 각 대학의 전문적인 교수를 초빙해 과학 특강, 사회특강을 개최함으로써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하고, 시의 적절한 경제교육,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해 교양 함양에 힘쓰기도 하며, 민속박물관, 전쟁기념관 견학에다 연극과 영화를 단체 관람하기도하고 지망대학을 방문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TOEIC이나 TEPS 모의시험을 치르기도 하고, 논술이나 구술면접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선생님들이 팀을 짜서 강의를 하고 모의 논술 시험을 본 후에 이를 여러 선생님들이 나누어 첨삭 지도를 하기도 한다. 그룹별로 토론과 심층면접 지도를 모든 담임이 분담해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열성적인 지도는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얻고 우리 학교 교육의 든든한 바탕을 이루는 일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일부 매스컴에서도 올해 드러난 것처럼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입시와 관련된 오보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 문제인 양 선정적 보도를 하기보다는 학교 현장에서 담임선생님과 학부모가 학생과 더불어 학생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고려한 장래 설계를 충분히 하도록 참고 지켜봐 줄 것을 제안한다. 좀더 나아가서 교육 방송을 활용해 고교 현장의 유능한 선생님들이 그야말로 전문적인 진학 지도를 하도록 제도화하고,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과외산업에 현장 교육이 오염되거나 위축되지 않도록 지켜 주어야 한다. 이런 일을 우리 손으로 하나씩 이루어 나갈 때 학교교육은 반듯하게 더욱 제자리에 서서 그 소명을 다할 것으로 확신한다. 최근 어느 신문에서 한 학부모가 '남편 월급의 대부분을 사교육비에 쓰기 때문에 화장품은 샘플을 얻어 쓸 정도'라며 등골 휘는 과외비 현실을 비판하는 글이 게재된 것을 보았다. 그렇다. 이렇게 간절한 모성 본능마저 자극하는 과외 산업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공교육의 밝은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 우리 학교교육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학부모들도 이제 공교육을 믿고 불필요한 사교육비를 과감히 줄일 때가 됐다고 본다.
교사! 나는 오늘 교사가 된 것이 너무 보람있고, 행복에 넘쳐 가슴이 후끈했다. 학부모에게 공개 수업을 하는 5교시, 3학년 2학기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 '은행잎 편지'의 감상 수업을 할 때였다. 이 동시는 가을이 되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면서 이사간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한 아이가 나의 시 낭송을 듣고 '○○가 보고 싶어.' 하면서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평소 그 아이는 교과 공부는 잘 하는데 나에게 별로 살갑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또래 아이보다 의젓한, 규칙도 아주 잘 지키는, 퍽 이성적인 인간형이라고 생각해 왔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나의 시 낭송을 듣고 우는 거였다. '선생님, 혜림이가 감동 먹었나봐요.' '어, 나도 울고 싶어.' 다른 아이들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뒤에 있던 학부모들 중에는 화장지로 눈물을 찍어내는 분도 계셨다. 교과서에 제시된 시 자체에 감동해서라기보다는 철부지 개구쟁이들의 고운 마음, 예쁜 모습이 어머니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으리라. 부끄러운 얘기지만, 교육 경력 15년이 넘도록 교과 수업시간에 이렇게 감동적인 일은 처음이었다. 평상시 개인적으로는 시 감상을 즐겼지만, 시 감상 수업에는 좀 소홀한 편이었다. '너희들이 시(詩)맛을 알아?' 하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번 시 감상 수업에서는 시 속에 미처 담지 못한 글쓴이의 심정을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 있게 시각적, 청각적, 그리고 심정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시의 '공백'과 '여백'을 잘 찾도록 도운 거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놓칠세라 시를 지어 보게 했다. 좀 자신이 없는 사람은 감상한 시에서 몇 개의 시어를 바꾸어 써 보게 했다. 시 쓰기를 하고 나서 나는 또 감동을 받았다.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아이들은 시의 특성을 살려 자신의 체험과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시를 낭송해 주자, 약속이나 한 듯이 감동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동심을 살려 주지 못한 것이 아쉬움과 반성으로 남는다. 이젠 시 감상 수업에 자신감을 갖게 됐고, 시 창작 수업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야 말이다. 교사가 된 것이 난 참 행복하다. 그리고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공부해서 남 주냐고? 아니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아이들에게 행복감을 주고 싶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수준별 수업과 창의적 재량활동이다. 특히 창의적 재량활동은 후기 산업 사회인 지식 기반 사회에서 필수적인 활동이다. 그런데 창의적 재량활동은 국가가 교육과정과 교과서, 교사 지도서를 연구 개발해 학교에 보급하지 않고 단위 학교와 교사가 활동할 경험을 구성해 지도하도록 돼 있다. 한마디로 재량권을 보장해 준 것이다. 그런데 재량권을 충분히 살리려면 모둠 학습 교실, 종합교과 교실, 특별교실, 다목적 교실 등 학생의 선택을 다양하게 수용할 수 있는 공간 확보가 우선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외에도 창의적 재량활동을 가로막는 조건들이 교육현장에 산재해 있다. 첫째, 창의적 재량활동을 지도할 전문적인 교사가 없다. 창의적 재량활동은 범 교과나 자기주도적 학습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교사를 요구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수업 시수가 적은 교사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 책무성이 떨어지고 학생들은 진정한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성을 지닌 교사의 확보가 매우 시급하다. 둘째, 담당 교사의 지도력 신장을 위한 다양한 연수 기회가 매우 부족하다. 제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도입된 창의적 재량활동은 운영에 있어 생소한 부분이 많아 교사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점에서 집단적이고 단편적인 전달 연수에서 벗어나 교사들이 다양한 실천사례를 접하고 개선방안을 고민해보는 실질적인 연수가 이뤄져야 한다. 셋째, 창의적 재량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 정보 자료가 개발·보급되지 않아 교사 개인이 학습 영역에 따라 자료를 선정하거나 제작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그런 정보나 자료가 창의적 활동자료로써 적합성과 타당성을 갖췄는지도 검증되지 않아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교육청 단위에서 적합성과 타당성을 지닌 교재를 개발하고 지도 자료를 제작·보급하여야 한다. 사실 학습자료 없이 창의적 재량활동을 운영한다는 것은 창의적 재량활동의 어느 영역이든 간에 형식적인 운영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시범, 연구학교를 통해 연구된 결과나 실천 사례를 공유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 구체적인 자료 보급으로 운영의 일반화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학습자료공모전이나 교육방송 또는 에듀넷 등에서 그런 교육자료를 제작·보급해 활용도를 높이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하겠다. 넷째는 교사 수급 상 학생들의 희망을 모두 수용하지 못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실제로 창의적 재량활동을 운영하는 43개 중·고교를 최근에 설문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범 교과 학습 영역의 선정에서 2∼5개 정도의 영역을 선택한 학교가 중학교는 73%, 고교는 90%로 나타났다. 이는 학생 각자의 학습 능력과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다양한 창의적 재량활동이 지도 교사의 수급 부족이나 제반 여건상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다섯째는 창의적 재량활동에 대한 교사들의 이해 부족이다. 아무리 좋은 시설, 자료, 여건을 구비했다 하더라도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들의 이해가 부족하고, 실행하기 어렵다는 부정적 인식만 팽배해 있다면 효율적인 운영은 어려워 질 것이다. 창의적 재량활동을 끌고 나갈 주체는 결국 교사다. 교사의 실천 의지에 따라 운영의 효과와 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을 상호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의지와 연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창의적 재량활동의 운영이 활성화될 것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연기 파동 올 여름 학교현장은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구축에 몸살을 앓았다. 전국 초·중등학교와 교육행정기관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교무·학사, 인사, 재정, 회계, 물품, 시설 등 교육행정 업무를 전자적으로 처리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새로 구축되면서 기존 학교종합정보시스템은 완전히 폐기 처분됐고 수 백억 원의 예산이 낭비됐다. 게다가 새 시스템이 서버에 접속하기도 힘들고 에러에 대한 대처도 제대로 되지 못한 상황에서 10월 전면 시행까지 발표돼 들끓는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입력되는 정보의 개인인권 침해 논란도 거셌다. 결국 교육부는 교무-학사부분을 수정·보완해 내년 3월부터 본격 운영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했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 지난 6월 경기도 양주군 도로변에서 발생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이 11월 22일 미군 측의 일방적인 무죄 평결로 종료되면서 △가해 미군 처벌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부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와 추모행사가 국내외서 잇따랐다. 한국교총, 전교조 등 교원단체도 소파개정 촉구 성명을 내고 학교 현장은 계기교육에 나섰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메카로 전국 곳곳서 열린 촛불시위에는 수 만명의 초중고생들이 동참했고 심지어 대구의 한 초등교 여학생들이 '재판 무효와 SOFA 개정'을 촉구하는 혈서를 써 충격을 줬다. 반미로까지 치닫는 국민정서에 부시 대통령이 거듭 애도의 뜻을 전하고 한미양국은 소파 개선 협의를 통해 진화에 나섰다. ▲첫 초3평가 반발 속 강행 전국 초등 3학년생 70만 명을 대상으로 한 '기초학력 진단평가'가 반발과 논란 속에 10월 15일 치러졌다.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측정해 기준 미달자에 대한 보충학습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교원단체와 학운위협의회, 교육NGO들은 전집형 평가로 인한 △학생 간 점수 경쟁 △학교 간 서열화 △사교육 조장을 우려하며 표집형 평가를 주장했다. 실제로 초3평가에 대비하기 위해 일부 학생들은 학원 과외나 예상문제집 풀이에 매달렸고 심지어 몇 몇 학교에서는 쪽지 시험을 보는 등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교육부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시험은 치르되 채점, 결과분석 및 결과 활용은 시·도교육청에 맡기고 교육부는 무작위 추출한 10%만 통계 분석한다는 보완책을 내놓고 시험을 강행했다. ▲평준화 논란 재연 '차라리 일제시대 교육이 좋았다'며 고교평준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진념 경제부총리의 연초 발언과 2월 14일 KDI가 고교 선택권 보장과 자립형 사학 확대를 골자로 제시한 '2011 비전과 과제'가 도화선이 됐다. 이어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 간에도 평준화 유지냐 개선이냐를 놓고 찬반논란이 가열됐고 대선 후보들도 인식 차를 드러내면서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평준화 폐지 헌법소원이 제기되고 지자체의 특목고 유치 경쟁이 가열되는가 하면 울산에서는 평준화 도입 촉구 결의대회가 열렸다. 그 와중에 전주 상산고만이 유일하게 자립형 사립고로 지정되는 진통을 겪었다. 한편 올 초 발생한 경기 신도시 평준화고교 배정오류사태도 기피학교 문제가 불거지면서 평준화 제도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공계 기피 이슈화 2002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합격자 등록 마감 결과 서울대 공대, 자연대, 약대 등 이공계 등록률이 지난해 보다 11∼23% 하락하면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국가적 현안으로 이슈화됐다. 4급 이상 공무원의 11%만이 이공계 출신이라는 보고와 과학자를 홀대하는 기업들이 속속 보도되면서 급기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한 교수는 초등생으로부터 위문편지까지 받아야 했다. 이에 따라 계열별 교차지원을 상당수준 제한하는 2003학년도 대입안이 발표되고 8월 서울 중소기업종합전시장에서는 '청소년 이공계 전공 및 진로엑스포'가 열렸다. 또 11월 정부는 매년 이공계 대학 및 대학원의 우수 신입생과 재학생에게 309억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이공계 '기 살리기'에 부심하고 있다. ▲2월 학기 폐지로 달라진 방학 서울, 경기, 대전, 충남 등 전국대부분 지역의 초중고교가 내년 2월 학기와 봄방학을 폐지키로 하면서 방학 풍속도에 일대 변화를 예고했다. 이에 많은 학교가 12월 말∼1월 초에 겨울방학을 시작해 2월말께 개학하고 교육청도 교원 인사시기를 현행 2월말보다 다소 앞당기기로 했다. 그러나 대구 등 일부 시·도와 올 들어 황사-수해-아폴로 눈병으로 유난히 휴업일수가 많았던 초등교, 일부 중·고교가 2월 학기를 유지키로 해 같은 지역 내 학교 간에도 방학 일정이 들쭉날쭉한 현상이 초래됐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연수, 계절제 대학원 수강에 차질을 빚고, '담임 없는 학급'까지 생겨났다. ▲잇따른 교육복지정책 중학 무상교육을 전국으로 확대한 원년으로 기억될만한 한해였다. 그간 도서, 읍·면 지역 중학생만을 대상으로 했던 무상 의무교육이 올 중학 1학년부터 전국으로 확대됐다. 50여 만 명에 달하는 전체 중학 1학년에게 수업료, 입학금, 교과서 대금 등 연간 약 52만원이 지원됐다. 중학교 무상 의무교육은 내년에 중2까지, 2004년에 중3까지 적용돼 전면적으로 이뤄진다. 이밖에 저소득층을 위한 교육복지 정책도 잇따랐다. 올 3월부터 농어촌 저소득 가정에만 지원되던 만5세 무상교육비가 법정 저소득층과 도시지역 기타 저소득층 자녀에까지 확대 지원됐다. 또 12월 12일에는 서울, 부산시내 저소득층 밀집지역 14곳을 선정해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교육복지투자 우선지역 지원사업'이 발표됐다. 교육부는 이들 지역 44개 초·중학교를 중심으로 2005년까지 377억 원을 투입해 학생기초학력 향상 및 정서발달 프로그램, 유아교육·보육 내실화 프로그램 등 교육복지서비스 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日 역사·국사·대안교과서 논란 올 4월 9일 군대위안부 동원사실을 삭제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2003학년도 고교용 '최신 일본사'가 검정 통과되면서 역사왜곡 파동이 재연됐다. 정치권, 지자체, 시민단체의 규탄과 항의집회가 거세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일본 에히메(愛媛)현 교육위원회는 지난해 파문을 일으킨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측의 중학 역사교과서를 내년부터 현립 중학교 3곳에서 사용키로 해 분노를 더했다. 7월에는 국사교과서도 된서리를 맞았다. 내년부터 사용될 고교 2, 3학년용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4종이 前·現 정부에 대한 편향적 기술로 논란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검정위원 전원이 사퇴하고 김성동 교육과정평가원장이 문건 유출에 휘말려 사퇴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현직 교사들이 제작한 이른바 '대안교과서'로 불리는 '우리말 우리글',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가 부교재 시비를 겪었다. 교육부는 교과서 외에 단행본을 교사가 이용해 학생들의 구입을 유도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국사편찬위원회는 '살아있는 한국사'가 편중된 민중사관으로 얼룩져 교재로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희망 없는 초등교원 부족사태 그간 중초임용, 특별편입, 기간제 충원 등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초등교단은 여전히 교원 기근에 시달려야 했다. 올해만도 3000여명의 교사가 부족해 교담교사의 담임 전환이 대폭 이뤄지면서 교담 확보율이 43%로 뚝 떨어졌고 기존 교사들의 주당수업시수가 30시간을 훌쩍 뛰었다. 농어촌 초등교는 기간제 교사 모시기에 발을 동동 굴렀다. 기간제 교사 초빙에 관사·철원 오대쌀·관광 제공 조건까지 내걸었지만 교사를 못 구해 출산휴가를 연기하는 교사도 잇따랐다. 이와 관련 2000명 규모의 경인교대(인천교대) 경기캠퍼스를 2005년 설립하는 방안이 확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1월말 치러진 초등 임용시험 결과 800여명이 미달하는 등 교원 부족현상이 가중돼 내년도 교담 확보율은 30%로 떨어지고 특히 7·20 학급당 학생수 감축 사업의 여파로 전체 부족 교원이 7000명에 육박하는 사상 최악의 사태를 빚을 전망이다. ▲교총, 정치활동 신기원 연초 '교원과 교원단체의 정치활동'을 천명한 한국교총은 6·13 지방선거, 7·11 교육위원선거, 12·19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눈부신 정치활동을 펼쳤다.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교총은 교육계가 요구하는 공약과제를 개발해 각 정당과 출마자들에게 전달하고 교육 현안에 대한 후보자들의 입장과 성향을 분석·보도함으로써 교원의 정치참여와 공약 반영 효과를 높였다. 특히 10, 11월에는 대선 후보를 연달아 초청해 교육정책토론회를 열었고, 이어 전국교육자대회에 각 당 후보를 불러 40만 교육자의 염원을 각인시켰다. 또 대선 교육공약진단 토론회를 개최해 교원 정년, 수석교사제, 교원 정치활동에 대한 각 후보의 입장을 명쾌히 비교해 票心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교육위원 선거 때는 시·도교총 별 교육위원 후보 초청토론회를 열고 선거구별 후보를 추천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여 전국적으로 76명의 교총인사가 교육위원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초중등 교원의 정치활동 기본권 신장을 위한 노력은 진전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21세기를 이끌어갈 16대 대통령에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승리의 영예를 안은 노 대통령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노 후보의 영광은 그것이 개인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조국의 새천년을 여는 국가 지도자란 점에서도 광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역할은 당선된 그 순간부터 민족과 역사앞에 영광보다는 책무가,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더할 것이다. 거듭 노 당선자의 당선을 축하하며 아울러 앞으로의 5년이 참으로 소중한 국운 상승의 계기가 되길 빌어마지 않는다. 교육계의 노 당선자에 대한 기대는 막중하다. 노 당선자가 밝힌 교육분야 대선공약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고교 평준화의 경우 현행 정책기조를 유지하되 자립형 사립고 확대는 학벌사회를 부추길 것이라며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평준화 보완책으로 특성화고나 특목고는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방과후 교육활동의 활성화, 학급당 학생수 감소, 저소득 자녀 학비감면의 확대, 장애인·중도탈락자·여성 등에 대한 교육지원 확대를 강조했다. 대입시 역시 선발방식이나 시기, 정원책정 등을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고 했다. 특히 교원정책의 경우 초·중등 교원의 처우나 사회적 처우의 비교 척도를 대기업이나 일반 공무원에 두지않고 대학교수에 맞추겠다고 했다. '우수교원확보법'을 제정해 우수 인력의 교직유인을 강화하고 현재의 승진체계을 개선해 학교장임용제를 외부초빙제나 보직제 등 다양하게 운영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교사회·학생회·학부모회를 법제화하고 '사립학교법'개정과 '사학진흥도법'을 제정하겠다고 했다. 민주당과 노 당성자가 제시한 이 같은 공약은 상당 부분 타당하기도 하지만 문제와 쟁정의 여지도 많다. 따라서 일선교육계는 기대와 우려가 섞인 가운데 노 당선자의 교육개혁 드라이브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노 당선자는 15대 국회에서 국회교육위 소속으로 교육문제를 직접 겪어봤다. 그 당시 노 당선자는 비교적 합리적으로 사안을 이해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교육계는 l기억하고 있다. 아무쪼록 노 대통령의 재임 5년이 한국교육의 중흥기가 되길 기대해 마지 않는다.
내년 2월말 실시될 교원 시·도간 전보를 앞두고 교육부와 교육청이 전보규모 늘이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최근 전보희망자 접수를 끝낸 16개 시·도교육청들은 1대1 전보 뿐 아니라 일방전출 등 시·도간 전보의 TO 틈새를 가능한 넓히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교육부는 시·도전보를 늘이기 위한 '시·도 다자간교류 전산프로그램'을 개발해 현재 학술정보원에서 시범운영을 하고 있다. 연세대 남연광 교수가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1대1 교류를 한단계 발전시킨 방식. 즉 교류지역을 3∼4개 시·도로 확대해 컴퓨터로 조정하면 전보 가능인원이 현재의 희망자 대비 성사비율 10%선에서 20%선 이상으로 배증된다는 것. 교육부는 다자간교류 프로그램의 시범 운영이 끝나면 내년 2월말 전보작업에 직접 적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시·도교육청 인사업무담당자들도 적지 않다. 부산시교육청 인사담당자는 "현재에도 3자 교류방식을 적용하고 있으나 성과가 크지 않다. 문제는 대도시나 수도권을 선호하는 전보희망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교육부가 밝힌 내년도 시·도간 일방전출 규모가 지난해의 500여명 보다 줄어든 350여명에 불과하고, 초등교원 부족현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전보가능 규모가 예년보다 크지 않으리란 예측이다. 그러나 교육부 관계자는 "다자간 교류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작동되면 교류실적이 예년보다 갑절로 늘어날 수 있다"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참고로 최근 3년간 시·도간 교류실적을 살펴보면, 2000년 3월에 1만2326명이 신청해 1186명이 교류해 9.6%의 교류실적을 보였다. 9월에는 5879명 신청 518명 성사(8.8%), 2001년 3월 1만99명 신청 1331명 성사(13.2%), 2001년 9월 6118명 신청 585명 성사(9.6%), 2002 3월 1만1374명 신청 1445명 성사(12.7%)된 바 있다. 특히 별거 부부교사의 교류실적은 이 보다 다소 높아 평균 20%선의 성사율을 보이고 있다.
제16대 대통령에 우수교원확보법 제정과 초정권적 교육혁신 기구 설치를 공약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 특징은 교원정년 현행 유지 공약에서 드러나듯이 국민의 정부 정책을 계승하는 한편 양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과 전교조가 요구한 정책 과제를 폭넓게 반영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을 통해 국민의 정부 교육失政이 심판 받기를 기대했던 다수 교원들에게는 다소간 실망감을 안겨주게 됐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공약한 사항 중 보직제 등 교장임용제 개선, 학교운영위원회 기능 강화, 사립학교법 전향적 개정 등은 자칫 학교를 정치장화 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추진을 요망하는 목소리가 높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전 교총 토론회에서 교육우선 국정 운영과 함께 교원이 주체가 되는 개혁을 다짐한 바 있다. 당시 노 후보는 일부 학교운영위를 의결기구화 하고 교장직을 보직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해 이러한 발상을 우려하는 패널들과 공방을 주고받기도 했다. 교총은 20일 논평을 통해 노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고 "국민의 정부 5년간 교원이 개혁 대상으로 몰려 교직사회와 학교가 너무 휘둘렸다"면서 공약한 대로 우수교원확보법 제정 등 교원 사기 진작 책을 조속히 가시화 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더 이상 교육정책에 여·야가 있어선 안된다"면서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초정권적·초당적 교육혁신 기구를 정권 출범과 동시에 설치하고 이 기구에서 교육공동체 대표들이 합의한 교육개혁안을 국회에서 법제화하라고 제안했다.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주요 교육공약은 다음과 같다. ◇머물고 싶은 학교, 학벌사회를 실력사회로, 획일교육을 다양성교육으로, 타율적 학교를 자율적 학교로=▲우수교원확보법 제정 ▲담임수당 현실화 ▲교원 자녀 대학 학비 보조 ▲무주택 교원 주택마련 지원 확대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정 ▲점수제에 의한 승진제도 합리적으로 개편 ▲외부초빙제·보직제 포함 학교장 임용제도 다양화 ▲기간제 교원 신분 보장·처우 개선 ▲초과수업수당 근거 마련 ▲교과전담교사 확충 ▲교원자율연수 휴직제 수혜자 대폭 확대 ▲교원 연구비 지원 대폭 확대 ▲학교운영위원회 기능 강화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 법제화하고 그 대표자가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교사의 수업자율성 확대 ▲사립학교법 전향적 개정 ▲고교평준화 정책 기조 유지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단위학교 수준으로 대폭 자율화·특성화 ▲수능시험 복수 응시 가능토록 ▲특기·적성교육에 과감한 예산 지원 ▲대안교육과 실험학교 적극 확대 ▲도시개발시 '교육환경영향평가제' 도입 ▲'학생체험활동 최소이수시간제' 도입 ▲재택학습 가능토록 정보화 연계망 구축 ▲대학의 다양화·특성화 추진 ▲고등교육 재정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확대 ▲지방대 육성 지원법 제정 ▲초·중등 과학교육의 내실화, 과학영재교육 체제 구축 ▲대학 시간강사 법적 지위 마련 ▲농어촌교육진흥특별법 제정 ▲만 5세아 무상교육 전면 실시 ▲학교보건지원센터 설립 ▲실고 교육 무상화 실현 ▲국가 인력수급 중장기 계획 수립 ▲교육재정 GDP 6% 확보 ▲지방자치단체 전입금 단계적 확대 ▲초정권적 초당적 교육혁신 기구 설치 ▲교육부 개혁 적극 추진 ▲교육정책 실명제 실효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