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의 길 위에서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뒤, 문학으로 또 다른 인생을 이어가고 있는 추강 이행재 작가가 다섯 번째 수필집 『봄꽃처럼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펴냈다. 자연과 일상, 그리고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온 그의 글은 이번 작품에서 한층 깊어진 성찰과 가족에 대한 애정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이번 수필집의 제목은 특히 눈길을 끈다. 봄꽃과 가을 단풍이라는 대비되는 이미지 속에는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작가의 사유가 녹아 있다. 그는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며 유소년기는 봄, 청장년기는 여름, 그리고 노년기는 가을로 바라본다. “봄꽃이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은 시작이라면, 가을 단풍은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기”라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은 단순한 감상의 기록을 넘어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결국 작가는 단풍의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내고자 하는 바람을 제목에 담았다.
이번 다섯 번째 수필집은 기존 작품들과 결을 같이하면서도 분명한 차이를 지닌다. 자연과 교직 경험에서 소재를 찾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가족과 가정이라는 보다 내밀한 영역으로 시선을 옮겼다. ‘가정의 달’, ‘재산목록 1호를 놓아주며’, ‘가장(家長)이 마련한 자리’ 등 다양한 작품에서 가족 간의 사랑과 관계의 의미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오랜 세월 교육자로 살아온 그가 결국 돌아온 곳 역시 ‘가정’이라는 점은, 그의 문학 세계가 지닌 근원을 보여준다.
그의 글은 특정한 계획 아래 쓰이기보다 순간의 감정에서 출발한다. 낯선 환경에서 느끼는 신선함, 일상의 사건에서 오는 충동, 대화 속 한마디에서 얻는 감동이 곧 글의 씨앗이 된다. 여행, 모임, 스포츠, 가족 이야기 등 다양한 일상의 결들이 모여 하나의 수필로 완성된다. 이러한 창작 방식은 그의 글에 꾸밈없는 진솔함을 더한다. 독자는 그의 문장을 통해 특별한 사건이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의 장면에서 공감을 발견하게 된다.
작품 곳곳에 흐르는 자연의 이미지는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작가에게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인간과 자연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며, 자연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도 달라진다고 그는 말한다. 자연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과정은 곧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문장을 한층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
오랜 시간 글을 써오며 그가 지켜온 수필 철학도 분명하다. 수필은 삶의 단면이며, 그 안에는 반드시 가치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유교적 전통 속에서 성장한 그는 도덕성과 삶의 기준을 중요하게 여기며,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글을 써왔다. 흥미 위주의 글보다 삶의 의미를 담은 문장을 지향하면서도, 표현에서는 유연함과 익살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점이 그의 작품을 더욱 친근하게 만든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삶’에 대한 기준도 조용히 제시한다. 건강을 유지하며 자신의 일을 지속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품위를 잃지 않는 삶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노년을 단순히 쇠퇴의 시기로 보지 않고, 오히려 삶을 정리하며 완성해 가는 시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이는 이번 수필집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빛나듯, 인생 또한 마무리의 과정에서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다.
한편 그는 수필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가까운 문학이라고 말한다.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으면서도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수필이야말로 삶의 윤활유가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문학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끝으로 그는 특히 노년층에게 글쓰기를 권한다. 일기 한 줄, 편지 한 장에서 시작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삶을 정리하는 과정이자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그는 시집 출간과 자서전 집필이라는 새로운 계획도 밝히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봄꽃처럼 시작해 단풍처럼 마무리되는 인생. 추강 이행재 작가의 이번 수필집은 그 여정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다.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곱씹을수록 깊은 울림을 남긴다. 결국 이 책은 묻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계절을 살고 있으며 어떤 빛깔로 물들어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