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마음속엔 아무리 짜내고, 퍼내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당신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렇게 조용한 시간이면, 누군가를 잊는다는 것이 불안해집니다. 사랑하고 존경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내 마음 속에 인생의 구심점이 되어주신 외할머님.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외할머님은 나의 어머니이고, 외갓집은 마음 속 고향입니다. 일곱 살까지 외할머님을 엄마라 부르며 그곳에서 자랐기 때문이겠지요. 오늘이 외할머님의 ‘45주기 기일’이네요. 외할머님. 누구나 다들 세월이 가면 부모가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법입니다만, 저도 어느새 두 손자를 두었습니다. 손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당신의 뜻이 저에겐 한없이 큰 빛이었다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제 마음속엔 아무리 짜내도, 퍼내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은 당신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오전에 밭에서 일하시고, 점심 잘 잡수시고 손자를 품에 안으시고 평안한 잠결에 그대로 운명하셨습니다. 짧지만 모두에게 소중한 삶을 사셨기에 아무나 누리지 못하는 죽음의 복을 받으셨다고 합니다만,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가족들에겐, 그리고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모두에겐 슬픔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할머님. 운명
러시아에 ‘이반의 염소’라는 속담이 있다. 옛날 러시아의 한 시골 마을에 염소 한 마리를 키우며 젖을 짜 생활하는 이반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매일같이 많은 젖을 생산하는 이반의 염소를 부러워했다. 어느 날 이 마을에 천사가 나타나 동네 사람들에게 한 가지씩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자기들에게도 이반의 염소 같은 염소를 달라는 게 아니라 이구동성으로 이반의 염소를 죽여 달라고 말했다. 너무도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사회주의 민족성을 드러낸 속담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생각이 난다. 그런데 정말 사촌이 논사면 배가 아픈가! 아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속담은 원래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라도 아파야 할 텐데’ 라는 말이다. 남이 잘된 것에 배 아파하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깊은 정에 대한 속담이다. 옛날 시골에는 거름으로 변을 사고팔기도 했다. 비료나 퇴비가 없었던 시절엔 거름으로 인분이 주로 사용되었으므로 배라도 아파 사촌의 논에 가서 거름이라도 보태주고 싶은 우리의 깊은 정에 대한 마음의 표현이다. 이것이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남이 잘 된
신록이 깊어가는 계절, 테니스 동호인들에게는 황금의 계절이다. 각종 테니스 대회가 이 시즌에 많이 개최되고 있다. 경기를 지켜보면서 꽃미남 꽃 미녀도 아름답지만 코트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오래 만에 각 클럽 동호인들과 함께 모여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며, 즐거운 주말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 무엇보다 주최 측 임원진들의 단합된 모습, 철저한 사전 준비와 진행, 그리고 전동호인들을 한마음으로 어우르는 정성이 대회를 빛나게 했다. 테니스는 11세기경부터 유럽의 성직자·왕후·귀족들 사이에서 성행하였다. 1874년 영국 윙칠드 소령에 의해 일정한 코트와 네트가 만들어져 1877년에 제1회 영국 선수권 대회가 런던 교외의 윔블던에서 개최되었다. 우리 한국 테니스의 발원지는 서울 정동이다. 1908년 미국인 선교사 뱅커와 의사 앤더슨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으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반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었다. 우리 울산의 테니스 수준은 지금까지의 전과와 활약성을 보아 전국에서 상위권이라 자부할 수 있다. 테니스는 신사운동이다. 테니스 카운터에서 ‘러브’를 사용하며, 네트의 높이는 한가운데 중앙이 낮고 양가 포스트 쪽이 더
“안녕하세요" 연초록의 가로수 향이 신선함을 더하는 이른 아침 등교시간.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초면인 나에게 “안녕하세요!”하며 해맑은 미소로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순박한 어린 아이들과 즐겁게 인사를 나누기는 오래만인 것 같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모두의 마음에 사랑의 꽃이 핀다. 옥동에 위치한 ㅇ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주녀석을 둔 덕분으로 학교 앞 큰 도로변 횡단보도에서 이틀 동안 교통지도를 할 기회를 얻었다. 이른 시간이라 서둘러 현장에 도착해 신호에 맞추어 깃발을 들고 내리며 서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교통지도에 임했다. 처음에 5학년이라는 한 남자 아이가 먼저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넬 때는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나도 큰소리로 “안녕, 힘들지”하며 자연스레 답례를 하고, 다음부터는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큰소리로 인사를 하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빙그레 웃으며 “안녕하세요!”가 이어진다. 모두의 가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신호등에 맞추어 정지된 차안의 사람들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어른들 또한 가벼운 목례를 하면서 지나가고, 한 젊은 외국인도 “굿모닝”이라 인사한다. 초면인 교감선생님이 출근 중에 다가와 “감사합니다”라
이른 새벽. 찬 새벽 공기가 상큼하다.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어찌할 수 없다. 아내를 졸라 간단한 산행준비를 하고 천황산을 향해 가을소풍을 떠난다. 도심을 벗어나 능동산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어둑어둑 아직 등산로가 보이지 않는다. 동이 틀 때까지 차안에서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문득“앞으로 이 가을을 몇 번 더 맞이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지나온 삶의 흔적을 돌아본다. 빛바랜 흑백사진이다. 옛날의 흑백 영상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만큼 여기 이 자리에 함께한 순간에 감사하며 절로 고개 숙인다. 가을이 넘어가는 길목에서 마음껏 이 가을을 누리며 오늘 하루도 삶의 보람을 만끽해야지. 어느새 주위가 밝아지면서 옆에 위치한 연수원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학생들의 기상시간이다. 아이들의 카랑카랑한 함성이 정겹다. 덩달아 힘이 솟는다. 동이 트고 희망이 솟는다. 타박타박 가을을 밟으며 우리의 산행도 시작이다. 맑은 가을바람에 밝은 가을 달까지 우릴 반긴다. 발끝에 전해오는 감촉 또한 포근하다. 밤새 놀다간 노루, 토끼 발자국을 밟으며 물씬 산내음에 취한다. 그리고 산정기를 흠뻑 받는다. 마음이 울적하고 세상이 하수상할 땐 무작정 집을 떠
교단을 떠나온 지 아직 한 학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열강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기억 저편으로 아련하게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지인들과 현직에 계신 여러분들이 퇴임 후 근황을 물어 온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 하기도 하고 교단을 떠나 잘 지내고 있는 지 걱정해 주시는 말씀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염려해 주시니 한없이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듣기에 좀 생뚱맞은 대답일지 몰라도 그에 대한 내 대답은 “과로사 하겠습니다”이다. 교단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동적인 일들에 중독되어 나이를 생각지 않고 과욕으로 몸을 움직였더니 몸에 이상이 생겼다. 그로 인해 한의원을 찾아 물리치료를 받을 정도이다. 하고 싶었으나 시간에 쫓겨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며 즐겁게 살고 있으니 몸에 이상이 좀 생긴들 어떠랴 싶다. 잊고 지내고, 놓쳤던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자연의 순결함에 내 마음을 내어 주며 더불어 하루를 보내니 이렇게 살다가 과로사 한들 그것이 대수겠는가 싶어 과욕을 부려보기도 한다. 요즈음은 매주 한 번 혹은 울적할 때면 산을 찾는다. 정리되지 않은 산에 인부를 데려다 며칠 손을 보니 제법
아직도 겨울바람이 매섭습니다. 그러나 백합동산의 깡마른 백합줄기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백합의 은은함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언 땅을 녹이며 세대교체를 위해 새싹이 움틀 때까지 묵묵히 자기 일 다 하는 백합의 지혜와 인내를 보면서 37개성상의 제자신의 흔적들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좀 더 잘할 걸 하는 후회와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회자정리와 돌고 도는 섭리 아래 오늘 이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자랑스런 백합인 여러분.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교실에서, 독서실에서 책과 씨름하며, 쏟아지는 잠을 쫓으려고, 교실의 열기를 식히려고, 복도에서 계단에서 서성이던 그대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무엇이 되어야하고 무엇을 이룰 것인가, 스스로 물으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인간이 갖추고 살아가야할 덕목과 바람직한 가치관은 변하지 않음을 명심하고, 언제 어디서든 백합인의 긍지를 잃지 말길 바랍니다. 교육동지 여러분. 교육의 성패는 선생님들의 사랑과 열정 그리고 사명감으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교육의 질 향상에 새로운 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는데
아직 깨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 쌀쌀한 날씨지만 밤새 교실에서 뿜어낸 열기가 온 교정을 감돕니다. 창가 붉게 타는 단풍잎에서 여러분들의 지나온 한해를 떠올립니다. 여러분! 그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교실에서, 복도에서, 독서실에서, 책과 씨름하는 그대들의 모습. 쏟아지는 잠을 쫓으려고, 교실의 열기를 식히려고, 복도에서 계단에서 서성이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게 다가옵니다. 담요와 방석을 끌어안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려고 발버둥 치며, 너무 힘들어 책상에 엎드려 새우잠을 자기도 했었지요. 가엾고, 안쓰럽고, 마음 아팠지만, 그대들의 앞날을 위해 우리 선생님들은 다그치고 채찍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잠을 마다하고 자녀들을 지도해 주신 학부모님들도 그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병원의 환자보다는 간호하는 사람이 더 아픈 법이지요. 자랑스런 고3 수험생 여러분. 우리 선생님들의 지도에 너무도 착하게 잘 따라준 그대들이 고맙고 이쁘고 대견할 따름입니다. 진정 그대들은 결과에 관계없이 이미 승리자입니다. 진심으로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매사는 뿌린 만큼 거두는 법.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차분히 결전의 날을 맞읍시다. 쉬지 않
창가 교정의 수목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는데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에-. 들어오세요"라고 일상적으로 답변했다. 문이 활짝 열리고 케익 상자가 먼저 보이더니 밝고 환한 웃음 머금은 제자 미영이 마치 선녀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시원시원한 성격은 투병 후인데도 여전하다. 오랫동안 암으로 고생하고 있는데도 자주 안부를 전하지 못한 것을 내심 미안해 하고 있던 차였다. 갑작스런 출현에 입이 경직되어 어눌해져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덥석 악수를 하고 평소 의료인으로 잘 알고 지낸다던 지인 강 선생님을 불렀다.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온 승리장군을 맞는 기분으로 환영의 상호작용이 교차했다. 그동안 항암 치료과정의 어려움이며 세상을 다시 살아가는 희망찬 이야기가 사무실안 가득 펼쳐진다. 새로 옮긴 근무처는 양산 벧엘병원 정신과이며 이곳에서 전문의로 근무를 시작했는데 병원이 산속에 위치하여 주변 환경이 좋아서 환자들과 상담하며 즐겁게 근무를 할 수 있어 참 좋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나의 이야기는 끼어 들 틈이 없이 건강한 수다가 수를 놓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에 빠지다보니 축하 파티 타임을 잊어버렸다. 미영이가 직접 준비를 해
"벌초는 가족문화를 만든다. 정을 나누고 가문의 정체성을 익히는 가장 좋은 산교육이다." 이른 새벽바람에 싱그러운 가을 향기가 묻어나는 계절이 찾아왔다. 미리 준비한 벌초 기계와 벌초 후에 조상님 산소에 올릴 음식을 챙겨 길을 나선다. 약속한 산소 앞 주차장에 모두가 다 모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손자 며느리 증손자 까지 4대가 남녀 구별 없이 다 모였다. 오래 만이라며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조상님이 도우셨는지 벌초하기에 참 좋은 날씨다.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척들이 먼 길 마다 않고 달려온다. 3개 지역별로 나누어서 벌초가 시작된다. 마치 한 문중이 원족을 떠나는 분위기다. 참 많이도 달라진 모습이다.내가 어렸을 때 집안 어른들께서 벌초 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미 고인이 된 분들도 있지만, 윗대 어른 몇 분이 큰 초배기에 밥과 막걸리와 물을 가득 담아 둘러메고 당신 몸 생각하지 않고 일주일 넘게 이 산소 저 산소 그 먼 길을 걸어서 벌초를 했다.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자하는 자식된 도리로서 온갖 정성을 다하는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예초기의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계속 들린다. 마치 여러 대의 헬리콥터가 주위를 맴도는 듯하다. 늦더위에 곤히 쉬던
오늘따라 흐린 하늘사이로 푸른 하늘빛이 참 곱습니다. 시작인가 싶더니 어느새 한 학기를 마무리해야하나 봅니다. 마음속엔 아직도 교정에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을 끌어안고 있는데 어느새 백합동산에 백합꽃이 한창입니다. 백합의 진한 향이 온 교정에 무성합니다. 벌, 나비, 잠자리들이 무수히 날아오르다 우윳빛 백합 향에 취해 제 방으로 날아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가곤 합니다. 향에 취하고 사랑의 언어에 취해 방안에 행복이 가득합니다. 아이들의 함성이 이 교실 저 교실에서 들려오곤 합니다. 심지어 새들까지 자연에 취하고 향에 취해 교실 안으로 날아드니 말입니다. 이렇게 마음은 아직도 봄의 한 자락을 잡고 있는데 계절이 먼저 가버립니다. 마음보다 세월이 먼저 가네요. 세월이 참 빠르네요. 머지않아 기념식수로 심은 백합동산의 아름드리 저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면 만산홍엽에 추억산행이 이어지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지날 때면 백합의 깡마른 씨앗주머니가 찰랑 찰랑 정겨운 은방울 소리를 내며 새싹이 움틀 때까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리라 믿습니다. 세대교체를 위해 생을 마감하는 백합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게 연출될 것입니다. 사랑스런 백합인들과 함께 사시사철
어제 밤에 처가에서 죽순을 가지고 왔다. 그것도 삶아서 껍질을 벗겨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해서 말이다. 해마다 이렇게 잊지 않고 보내주니 항상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오늘 아침 죽순을 맛있게 먹으면서 어릴 적 그 향수를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나는 외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외가 큰 대밭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대나무에 대한 추억과 애정이 많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비가 내린 후 아침에 대밭에 들어가 보면 온통 땅을 헤집고 올라온 죽순이 물기와 이슬방울을 머금은 채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우후죽순이란 말처럼 아침에 머리만 조금 내밀고 있다가도 저녁에 들어가 보면 몰라보게 자라있다. 이렇게 빨리 자랄 수 있는 것은 죽순이 4년 동안 땅속에서 가만히 속을 채워 작지만 대나무의 형질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5년째가 되면 잠에서 깬 듯 일어나 성장에 최적의 조건이 주어지면 그 순간 갑작스럽게 엄청난 속도로 자란다고 한다. 이렇게 자연은 말이 없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자신들이 해야 할 일과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외삼촌과 함께 대밭에 들어가 먹기에 좋은 통통한 죽순만을 골라 지게에 가득 꺾어와 사랑채 큰 쇠죽솥에 삶아 이웃 외가
유치원에서 두 손주 녀석이 어린 더덕을 각 한 포기씩 가져왔었다. 마당 한가운데 잘 보이는 곳에 나란히 두 손주 녀석과 함께 정성들여 심고 가꾸어 왔다. 가져온 이름표도 꽂아 두었다. 유치원의 교육내용이 좋은 것 같다. 좀 더 욕심을 부리면 가을에 더덕을 수확할 때 까지 더덕의 성장과정에 대한 이야기나 일기를 써보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가족 모두가 지나칠 때마다 한마디씩 한다. 이렇게 작은 것 하나 하나 모두가 다 소중한 의미를 지니며 우리 가족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처음 가져왔을 때에는 형의 더덕이 키가 더 컸었는데 자라면서 언제부턴가 동생의 더덕이 형의 더덕보다 훨씬 더 자라버렸다. "할아버지, 왜 내 것이 더 작아 졌어요?"하고 형이 투덜댄다. 동생은 "할아버지 내 것이 더 크지요"하고 형에게 약을 올린다. 그래서 형이 삐쳐 눈물을 흘리며 가버린다 형의 더덕이 동생 엽이 더덕보다 작아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형은 점잖아 말도 적고 애교가 적은 편이지만 둘째는 붙임성과 애살이 많다. 형에게 지지 않으려고 자주 더덕 가까이 다가가 물도 주고 이야기도 많이 하는 편이다. 어떨 땐 "할아버지 더덕 보러 가요"하고
온 교정에 연초록의 잎들이 싱그럽다. 새들의 사랑이야기가 요란스럽다. 분명 아름다운 오월이다. 우리 마음속에 사랑의 꽃이 피어나야한다. 그러나 오늘 아침도 책상위의 신문 펼치기가 두렵다. 매체를 접하는 게 겁이 난다. 날만 새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터져 나오는데 교육현장의 모습도 예외는 아니다. 선정적인 같은 내용들이 연일 이어질 때는 가슴이 답답하다. 논술의 중요성 때문에 교실의 책상위에서 우리 아이들이 이런 보도를 접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아이들이 이러한 보도를 접하면서 학교를 선생님들을 과연 어떻게 믿고 따를 수 있을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닌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오월, 우리 모두는 참 힘들게 보내고 있다. 마음을 가다듬어 보려고 창밖의 푸른 신록을 내려다보지만 개운하지가 않다. 그러나 교실에서 열강하시는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차랑차랑하다. 우리의 자랑스런 보배들이 있어 그나마 행복함을 느끼며 매사에 열정을 쏟고 있다. 내가 아는 우리 선생님들 최고는 아닐지라도 성실히 묵묵히 교단을 지켜오고 있다. 최근에 한 선생님이 전해온 이야기다. 어느 원로선생님은 20년 가까이 제자들에게 아무도 모르게 장학금을 전달해 주었
얼음골을 지나 석골사에 이르니 산 정상에서 부터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산골의 새벽 공기가 차다. 높이가 20m이상인데 마치 우리나라의 지도를 닮고 있다. 가까이 있는 억산의 한 아름다운 바위 봉우리가 아침햇살을 받아 경내를 내려 비친다. 누구나 석골사라 부르는 유래를 금방 알 수 있다. 매사는 순리에 따라야 하는 법이거늘. 역순의 산행코스를 잡다보니 계곡의 돌밭을 걷는 산행이라 발목이 편치 않다. 산행은 시작 20분까지가 워밍업을 해야 하는 과정이라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항상 보폭은 짧게, 호흡을 가다듬어 가면서 천천히 조심스레 10분쯤 걸었을까? 바람결에 ‘후다딱’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일행이 산돼지의 아침식사를 방해한 것이다. 길 양편에 이제 물이 오르고 새순이 돋아나는 산나물과 나무뿌리를 훔쳐 먹고 있었던 것이다. 넓고 길게 한참이나 이어진 흔적으로 보아 십여마리 이상이라 생각된다. 산돼지의 민가출현 보도가 실감난다. 아니 어쩌면 우리 일행을 마중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또 한참을 오르다보니 다람쥐 한 쌍이 우리 일행을 다시 마중 나와 앞서가며 안내한다. 정상에 가까워지니 까마귀 한 쌍이 친구하자며 우리 뒤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