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7 (토)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단일기

선생님은 리더입니다


오늘따라 흐린 하늘사이로 푸른 하늘빛이 참 곱습니다. 시작인가 싶더니 어느새 한 학기를 마무리해야하나 봅니다. 마음속엔 아직도 교정에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을 끌어안고 있는데 어느새 백합동산에 백합꽃이 한창입니다. 백합의 진한 향이 온 교정에 무성합니다. 벌, 나비, 잠자리들이 무수히 날아오르다 우윳빛 백합 향에 취해 제 방으로 날아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가곤 합니다. 향에 취하고 사랑의 언어에 취해 방안에 행복이 가득합니다. 아이들의 함성이 이 교실 저 교실에서 들려오곤 합니다. 심지어 새들까지 자연에 취하고 향에 취해 교실 안으로 날아드니 말입니다.

이렇게 마음은 아직도 봄의 한 자락을 잡고 있는데 계절이 먼저 가버립니다. 마음보다 세월이 먼저 가네요. 세월이 참 빠르네요.

머지않아 기념식수로 심은 백합동산의 아름드리 저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면 만산홍엽에 추억산행이 이어지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지날 때면 백합의 깡마른 씨앗주머니가 찰랑 찰랑 정겨운 은방울 소리를 내며 새싹이 움틀 때까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리라 믿습니다. 세대교체를 위해 생을 마감하는 백합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게 연출될 것입니다. 사랑스런 백합인들과 함께 사시사철 세세연년 변치 않고 말입니다. 백합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더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교단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지만 미련도 아쉬움도 모두 내리고, 비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많아서인지 챙겨야할 사소한 일들을 그냥보지 못하는 성격이라 계속되는 작은 변화에 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모양입니다. 공교육정상화를 위해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조금 힘들더라도 사전에 미리 행하면 그만큼 교육의 3주체 모두에게 유익하고 신뢰가 형성되고 보람된 학교생활이 이어지리라 확신하지만 그러나 우리 선생님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입니다.

어느 고등학교 동창회장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성인이 된 제자가 어느 한 선생님에게 “선생님!” “저는 그 선생님이 오늘 동창회장에 참석하면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야기인즉 그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조금 늦게 들어갈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하자는 데로 매사를 자율적으로 해주어 그때는 그 선생님이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또 자식을 낳아 학교에 보내 보니 그 선생님이 밉고 보기 싫어 동창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의 자화상이구나하고 가볍게 넘기기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좀 더 열심히 할걸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해본들 거쳐 간 수많은 제자들에게 이제 와서 누가 어떻게 보상을 해줄 수도 없는 일.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큰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교육은 실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배선생님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선후배가 한마음이 되어야합니다. 후배 선생님에게 잘 가르쳐주고, 선배선생님들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해야합니다.

며칠 전에는 철저한 교문등교지도로 한 학부형으로부터 우리 여선생님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교장실에서 학부형의 사과를 받아내긴 했지만 그 선생님은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더 열심히 하시는 모습에 가슴 뿌듯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지쳐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을 깨워가며 혼신을 다해 열강하시는 선생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창가를 울립니다.

지금은 학부형들과 아이들에게 미움을 받을지라도 훗날 반드시 존경받는 스승으로 태어날 것입니다. 진심은 언제 어디서든 통하니까요. 자기 자식처럼 관심과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이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지나온 발자취가 곧 자신의 미래이며, 고통 없이 역사를 쓸 수 없다.’ 라는 생각을 이아침에 해봅니다. 지나온 37년의 교직생활, 자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사실 저는 처음에 교직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두 번이나 외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삶은 원하는 데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주어진 일에 말없이 성실히 살려고 했습니다. 앞만 보고 바쁘게 살다보니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사람을 길러내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정성들인 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은 직업입니다. 항상 과분하게 생각하며 행복한 교직생활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웃지 못 할 부끄러운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저를 더 행복하게 해줍니다. 저는 가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퇴색된 일기장을 들추다 이 글을 보며 용기와 자신감을 얻습니다. 고락을 함께 했던 열한명의 선생님들과의 모임이 다른 어떤 모임보다 더 애착이 갑니다. 자주 만나 많은 정보를 교환하며 그때의 그 열정으로 변함없이 교단을 묵묵히 지켜가고 있음에 감사하며 보람을 느낍니다. 볼품없는 글이지만 저에겐 그때의 장면 하나하나 마다 잔잔한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어 한편 올려봅니다.

이틀의 단상(斷想)
97년 12월11일
삼삼오오 각 반별로 예비 소집을 간다고 교무실로 인사차 몰려온다. 착잡해져 오는 마음, 날씨마저 흐리다. 오늘 하루를 위해 매 순간 애태우며 일 년을 보냈다. 다시 몰려드는 공허한 마음에 온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것 같다. 가슴이 뭉클, 눈물이 핑 돈다.

오늘따라 밖에는 제법 굵은 눈발이 마알간 창가에 눈물 되어 내린다. 아이들은 좋아라. 야단들이다. 첫눈이라서 일까? 아니면 힘들었던 공부가 내일이면 끝나 180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마음에서일까? 아니, 아니, 어쩌면 환호성일 거야. 아니, 너무 힘들게 보낸 일년이 이제 생각하니 너무 허해져 그 마음을 감추려는 환호성일거야. 이제 더 무엇을 더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잘 해 낼 거라고 혼자 되뇌어 본다. 한 해 동안 무던히도 힘들었던 순간들을 참하고 착하게 견디었으니 틀림없이 잘 할 거라고.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합창하며 떠나가는 아이들에게 고개만 끄덕일 뿐 목까지 차오른 뭉클함에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몇 아이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감추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며 눈을 감는다. 이런 허허한 마음을 갖지 않으려고 다짐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일 년이 지났다니…….
주위가 조용한 걸 보니 다들 떠나간 것 같다. 교무실을 나와 어느새 3층 계단을 오르고 있다. 1반, 2반, 3반, 4반 ……. 교실 안은 내 마음처럼 텅 빈 자리 뿐, 조용하다. 갑자기 티 없이 맑은 웃음이 교실에서 울려 퍼진다. 그러나 빈 의자 뿐 텅 빈 교실. 4층 계단을 오른다. 조용히 숨죽이며 책과 싸우던 모습, 너무 힘들어 책상에 기대 새우잠을 자던 숨결이 들려온다. 정말 가엾고 마음 아팠지만, 아이들을 다그치고 채찍질 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사랑과 지도에 너무도 착하게 잘 따라 준 아이들, 고맙고 이쁘고 대견할 뿐이다. 진심으로 머리 쓰다듬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10년 뒤의 아이들 모습을 떠올리며 밝은 우리의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다가올 2월이 또 두렵기만 하다.

97년 12월 12일
이른 새벽
교문 앞은 꽹과리 소리, 호루라기 소리, 끝없이 외쳐대는 함성소리로 시장을 방불케 한다. 우리 아이들은 선배 언니들의 손을 잡고 있으나. 무표정에 긴장된 얼굴이다. 선생님들을 보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선생님, 너무 고마웠습니다.”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소리를 죽인다. 어깨를 쳐 주며 잘 하라고, 힘내라고 격려해보지만 입안에서 맴돈다.

어느새 교문 앞은 조용하다. 한참을 하얀 교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동안 닦아 온 실력을 몇 장의 시험지에 정성을 다할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오늘 이 시간을 위해 힘든 일 년을 아무 불평 없이 참아온 아이들이 대견스럽고 마음 든든하다. 잘 해 낼 거라고 믿고 싶다.

저녁 식사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우리 전 담임들은 배고픔도 잊은 채 전화기에 매달려 정신이 없다. “주임 선생님, 김00 떨어졌어요.” 갑자기 다가와 아이들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가슴이 메어 온다. 열 한분의 선생님이 모두 같은 표정이다. 맥이 빠진다.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하나하나 돌보고 보살핀 선생님들이다.
감기약을 함께 먹어가며, 보약을 먹어 가며, 입술이 터지도록 일 년을 하루같이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 밤늦도록 애태운 선생님들이다. 자기자식 자기가정 다 포기하고 오로지 자기가 맡은 아이들만을 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교사의 모습을 보았다. 정말로 수고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아이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어찌 이틀뿐이겠는가?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일년이 단 하루의 180점이듯이 나도 내 느낌을 이 이틀에 담아본다.

어느 선생님은 입시 한 달 전에 조금 염려되는 반 아이 5명을 자기 집에 숙식시켜가며 지도를 했습니다. 불과 십 년 전의 일입니다.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교육의 성패는 사랑과 열정 그리고 사명감으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교육의질 향상에 새로운 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는데 달려있습니다. 그래야만 공교육완전정상화를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자리에 안주해서는 모두에게 신뢰를 형성할 수 없습니다. 열정과 안정은 함께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불신만을 키워갈 뿐입니다. 좋은 직업이니까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교육정책, 교육의질 학력저하, 철밥통, 스승의 날 운운 등 야심하게 변해버린 사회상만 탓하지 말고, 대응하지 말고 묵묵히 주어진 일에만 정직하게 성실히 행하면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기 마련입니다. 모두가 다 내 탓이니 내가 앞장서겠습니다. 라는 마음이 중요한 때입니다. 아름다운 뒷모습은 그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감을 갖고 희망을 이야기 합시다.

지난 먼 이야기로 생각됩니다만 아직도 자기중심적이며 반대를 위한 반대 교사를 흔들고 아이들을 흔들고 교육을 흔들려고 하는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선생님이 있지는 않는지 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설레는 가슴으로 처음 교단에 서던 날의 각오를 되새기며 그 순수한 열정과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좋은 아이들과 좋은 선생님을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먼저 좋은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긍정적인 판단력과 통찰하는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의 철학을 펼쳐야 합니다. 우리의 정성과 헌신이 아이들의 가슴에 꿈이 되고 별이 된다면 그것이 곧 보람이고 행복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교육의 미래는 바로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 우리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배우고 성장합니다. 선생님은 모두가 다 리더입니다. 리드는 앞장서 헌신해야 합니다. 리더는 변화에 앞장서야 합니다. 리더는 따뜻한 카리스마로 다가가 아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받으며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육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어야 합니다.

저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고 너무 무거운 이야기만, 무거운 짐만 남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든든한 후배 선생님들이 있어 가벼운 마음 행복한 마음입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