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두 손주 녀석이 어린 더덕을 각 한 포기씩 가져왔었다. 마당 한가운데 잘 보이는 곳에 나란히 두 손주 녀석과 함께 정성들여 심고 가꾸어 왔다. 가져온 이름표도 꽂아 두었다. 유치원의 교육내용이 좋은 것 같다. 좀 더 욕심을 부리면 가을에 더덕을 수확할 때 까지 더덕의 성장과정에 대한 이야기나 일기를 써보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가족 모두가 지나칠 때마다 한마디씩 한다. 이렇게 작은 것 하나 하나 모두가 다 소중한 의미를 지니며 우리 가족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처음 가져왔을 때에는 형의 더덕이 키가 더 컸었는데 자라면서 언제부턴가 동생의 더덕이 형의 더덕보다 훨씬 더 자라버렸다. "할아버지, 왜 내 것이 더 작아 졌어요?"하고 형이 투덜댄다. 동생은 "할아버지 내 것이 더 크지요"하고 형에게 약을 올린다. 그래서 형이 삐쳐 눈물을 흘리며 가버린다
형의 더덕이 동생 엽이 더덕보다 작아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형은 점잖아 말도 적고 애교가 적은 편이지만 둘째는 붙임성과 애살이 많다. 형에게 지지 않으려고 자주 더덕 가까이 다가가 물도 주고 이야기도 많이 하는 편이다. 어떨 땐 "할아버지 더덕 보러 가요"하고 손을 잡아당겨 함께 마당에 나가 일일이 잎을 쓰다듬어도 주고 흔들어도 본다. 그럴 때마다 더덕은 어김없이 독특한 향을 내뿜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마음의 대화를 나누며 사랑을 많이 주니 그 만큼 더 많이 자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큰 손주에게 다다가 "용아 아직은 몰라. 용이 더덕이 앞으로 동생 더덕보다 더 자랄 수도 있어. 끝까지 물주고 거름 주며 어루만지며 대화를 많이 하자. 관심을 많이 갖자"하고 이야기를 해보지만 "아이 참"하고 시무룩한 표정이다.
‘용아, 그래도 아프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는 것 보면 신기하지 않니. 지금은 동생 더덕이 더 크지만 가을에는 용이 더덕이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어. 정성들이며 기다려 보자구나. 엽이 더덕과 비교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새로워하며 신나게 자라는 용이 더덕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구나. 식물은 긴 시간이 지난 이후라야 화답을 해오는 법이야.’
아무래도 식물은 아무래도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와 방식이 훨씬 더 잘 맞을 것 같다. 우리가족은 더덕에서 느림의 미학도 배울 수 있어 행복하다.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말없는 식물도 주위의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저희들끼리 조잘대고 웃고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읽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느 책에선가 24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은 감각은 없지만 영혼은 있다"고 했다. 18세기에 린네는 "식물은 활동은 못하지만 감각은 있다"고 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시몬이란 식물학자는 "당신 정원에 동물이 아니면서도 움직이는 것이 있다"며 식물도 근육 단백질을 이용해서 세포질을 움직인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식물은 가스와 전파로 서로 대화를 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1983년 "식물이 음악을 듣는다"며 식물 음악을 만든 미국인 덴 갈슨은 그것으로 여러 차례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우리나라 이완주 농업기술원이 1994년 ‘그린음악’을 만들어 내어 우리나라 하우스 농사에 큰 발전을 가져와 음악을 들은 작물은 튼튼하게 자라 해충을 물리치고 맛도 좋고 수량도 많았다고 한다.
말 못하는 식물에게 사랑스런 우리의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가 그들과 대화하며 사랑을 듬뿍 줌으로서 모두가 함께 정직하게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연은 우리의 스승이다. 조금이라도 자연을 닮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다. 싱그러운 자연과 아이 그리고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들이 올 여름을 시원하고 아름답게 할 것 같다.
올가을엔 더덕이 아름다운 초롱꽃을 피우고 튼튼한 뿌리를 맺길 바란다. 손주 녀석도 더덕처럼 사랑을 듬뿍 받아 정직하게 밝게 자라 모두에게 상큼한 더덕의 진한 향기를 뿜어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