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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억산(億山)의 봄내음


얼음골을 지나 석골사에 이르니 산 정상에서 부터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산골의 새벽 공기가 차다. 높이가 20m이상인데 마치 우리나라의 지도를 닮고 있다. 가까이 있는 억산의 한 아름다운 바위 봉우리가 아침햇살을 받아 경내를 내려 비친다. 누구나 석골사라 부르는 유래를 금방 알 수 있다.

매사는 순리에 따라야 하는 법이거늘. 역순의 산행코스를 잡다보니 계곡의 돌밭을 걷는 산행이라 발목이 편치 않다. 산행은 시작 20분까지가 워밍업을 해야 하는 과정이라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항상 보폭은 짧게, 호흡을 가다듬어 가면서 천천히 조심스레 10분쯤 걸었을까? 바람결에 ‘후다딱’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일행이 산돼지의 아침식사를 방해한 것이다. 길 양편에 이제 물이 오르고 새순이 돋아나는 산나물과 나무뿌리를 훔쳐 먹고 있었던 것이다. 넓고 길게 한참이나 이어진 흔적으로 보아 십여마리 이상이라 생각된다. 산돼지의 민가출현 보도가 실감난다. 아니 어쩌면 우리 일행을 마중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또 한참을 오르다보니 다람쥐 한 쌍이 우리 일행을 다시 마중 나와 앞서가며 안내한다. 정상에 가까워지니 까마귀 한 쌍이 친구하자며 우리 뒤를 따른다. 이렇게 세상만사는 자연과 하나이며 자연을 그대로 닮아간다.

큰 바위 하나를 움켜 쥔 절벽의 노송하나, 동양화 한 폭이 따로 없다. 수백년의 험한 세파를 이겨낸 강인한 흔적이 역역하다. 그러나 기품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잠시 너른 바위에서 솔잎 사이로 비취는 파아란 하늘이 더없이 청명하다. 솔향이 그윽하다. 큰 소나무 아래에서 숨죽이며 살아왔던 참나무들이 따스한 햇볕을 받아 모처럼 기지개를 활짝 편다. 전면에 펼쳐지는 팔풍재와 능선좌우로 이어지는 풍광들이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부드러운 자연의 힘이 절로 느껴진다. 한 폭 동양화속의 주인공이다. 이른 봄의 산정기가 온 몸을 감싼다. 피로가 금방 사라지고 활력이 다시 넘친다.

한걸음에 영남알프스의 준봉인 944m의 억산의 품에 안긴다. 억산이란 ‘억만건곤’(億萬乾坤) 즉 ‘하늘과 땅 사이의 수많은 명산 가운데 명산’ 이라는 뜻이다. 산 이름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바위 밑 은빛 갈대숲 바람한 점 없는 아늑한 명당자리를 찾아 앉으니 바위 위로 펼쳐진 산등성. 운문산 작은 암자 상운암이 바로 앞에 다가온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암자지만 운문산의 주인인양, 마주 보이는 억산의 바위들은 부처님인양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함께하는 자연의 아름다움들. 장관이다. 멀리 산 아래에서 완연한 봄기운이 눈부시게 용트림한다. 뿜어내는 진한 아지랑이 속에 봄기운을 한껏 느껴본다. 그것도 명산 억산에서. 이대로 며칠을 머물고 싶다. 아니 여기에 작은 암자라도 지어 살아볼까.

아쉽지만 아름다운 억산 자락을 뒤로하고 팔풍재를 따라 하산이다. 쉬운 계곡 길을 마다하고 이무기가 다닌 바로 가파른 그 벼랑을 따라 내려오려니 수직의 바위들. 아슬 아슬 밧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위험한 등산은 사람을 중독 시킨다. 대비산 계곡 아래쪽에 이르니 산죽의 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맑고 고운 봄의 음악을 선물한다.

산은 우리의 고향이다. 산에 오르고 산에 살고 싶은 이 향수는 좀 버릇없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산속에 영주할 날을 위한 숙명의 향수인지도 모른다. 낙엽이 이렇게 흙으로 돌아가듯 언젠가 나도 돌아갈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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