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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청출어람(靑出於籃) 이어라

창가 교정의 수목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는데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에-. 들어오세요"라고 일상적으로 답변했다. 문이 활짝 열리고 케익 상자가 먼저 보이더니 밝고 환한 웃음 머금은 제자 미영이 마치 선녀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시원시원한 성격은 투병 후인데도 여전하다. 오랫동안 암으로 고생하고 있는데도 자주 안부를 전하지 못한 것을 내심 미안해 하고 있던 차였다.

갑작스런 출현에 입이 경직되어 어눌해져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덥석 악수를 하고 평소 의료인으로 잘 알고 지낸다던 지인 강 선생님을 불렀다.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온 승리장군을 맞는 기분으로 환영의 상호작용이 교차했다.

그동안 항암 치료과정의 어려움이며 세상을 다시 살아가는 희망찬 이야기가 사무실안 가득 펼쳐진다. 새로 옮긴 근무처는 양산 벧엘병원 정신과이며 이곳에서 전문의로 근무를 시작했는데 병원이 산속에 위치하여 주변 환경이 좋아서 환자들과 상담하며 즐겁게 근무를 할 수 있어 참 좋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나의 이야기는 끼어 들 틈이 없이 건강한 수다가 수를 놓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에 빠지다보니 축하 파티 타임을 잊어버렸다. 미영이가 직접 준비를 해 온 케익에 초를 꼽고 불을 붙여 축하의 노래도 불렀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제자 하미영, 쾌유를 축하합니다." 사무실 안에 케익 초향과 웃음꽃으로 가득했다. 촛불을 끄는 모습이 당당하고 케익을 자르는 손에도 삶의 의지가 실려 있었다. 아마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성인의 말이 있듯이 집착을 버렸기에 저런 당당함이 나오는 것일까? 축하를 받아야하는 자리에 본인이 직접 자축을 하는 모습에서 저토록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의욕 앞에 어떠한 질병도 도전하지 못하는구나'하는 진리를 발견했다. 대견한 제자의 모습에 나의 눈가는 온기가 식지 않았다.

미영의 꿈은 순수하다. 명성을 얻는 것도 아니오, 일확천금은 버는 일도 아니오, 명품을 휘 감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양로병원을 지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른들을 위해 전문성을 발휘하여 봉사하겠다는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약한 제자를 위로 하겠다던 나는 오히려 당당한 의지의 제자에게서 삶의 자세를 배운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에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이끌어가는 그 긍정적이고 당찬, 그러면서도 순리를 버리지 않는 순수함을 말이다.

가끔씩 자연을 담은 그림 카드에 그 흔한 인쇄체가 아닌 친필로 잘 있다고 안부도 놓치지 않는다. 그 넉넉함은 어디서 온 걸까?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성인의 말에 새삼 공감을 한다.

아는 사람들이 "선생님, 그 제자 분 괜찮습니까?"라고 물을 때마다 할말이 없었는데, 이제는 누군가 미영이의 안부를 물으면 아니 묻기 전에 내가 먼저 당당하게 신나게 "가슴 아픈 이야기의 주인공이던 그 제자는 이제 완쾌되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수능이 끝나면 시간을 내어 산세 좋고 물 좋은 환경에서 근무한다고 한번 꼭 방문하라고 하던 그의 말에 따라 그곳에 방문을 할 것이다. 쪽(藍)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니 이건 분명 청출어람(靑出於藍)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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