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현장에서 수업을 진행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질문하고 내가 답하는 경우 가끔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상, 미래상을 갖고 우리 아이들이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어떤 것을 질문할 것인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런지? 세계적 석학 피터 드러커의 이야기이다. 그가 15살 때 선생님이 했던 질문이 자신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너희들은 세상을 떠난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느냐?”이 질문에 아이들은 멍하니 아무 대답도 못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웃으며 “나는 너희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너희들이 50이 될 때까지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정도에 이르지 못한다면 인생을 잘 못 산 것이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후 동창들이 함께 모였을 때 동창들 중 성공한 삶을 산 동창들은 똑같이 “이제까지 선생님이 그때 질문한 교훈대로 살았다. 그래서 이렇게 살게 되었다”라고 했다는것이다. 세상살이에는 세계와 자신에 관한 질문이 많다. 그러나 정답이 없는 것 또한 많다. 그런가 하면 정답이 있더라도 나이가 들지 않으면 도저히 깨닫기 어려운 질문도 많다. 우리 아이
대한민국 교육열은 미국 대통령도 부러워 할 정도로 뜨겁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몇 번이나 한국의 교육을 거론한 것이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가 걷기 시작할 때부터 무엇을 어떻게 가르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남보다 좀 더 빨리 많이 배워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면 나중에 사회적으로 성공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남보다 더 빨리 배우고 공부를 잘 하면 우리 자녀들은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일까? 얼마 전에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한 고등학생이 엄마가 요구했던 성적에 도달하자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다. 그 학생의 유서에는 “이제 됐어?” 라는 단 네글자만 적혀 있었다고 하니 너무도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이러한 일이 아직도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 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왜냐하면 학업에 관한 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학업에 치여 살아가는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성공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물론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부를 무시하긴 어렵다. 남보다 뛰어난 성적도 중요하다.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날이 갈수록 우리 교육이 한결같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교육의 수장들이 인권조례를 만들고 교육다운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노력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지 의문이 간다. 어른들이 중심이 되어 정한 문서상의 자료가 마음을 움직일수 있는가? 말이다. 일차적으로 교육은 가정에서 출발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출발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듯이 품격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교육이라 하면 우리는 흔히 칠판 앞에 서 있는 선생님과 그 말을 조용히 듣는 학생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쉽다. 그래서인지 자녀를 키우는 방식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교육의 본질이 아니며, 원래 교육이라는 말은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 되었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가르치는 사람의 역할은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그 내용에 대해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자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하기보다 자녀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자신 안의 답을 끄집어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교육이란 격려를 이끌어 내는 것이며, 평생 배움
어느 날 늦은 오후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하면서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천천히 들어봤더니 바이올린 수업을 하는 특기적성 과목 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상화을 들어보니 그녀는 키가 작은 편으로 목소리도 작은 편인데.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그를 “존만한 X”이라고 부르면서 이야기를 했다. 욕을 한 아이는 지나가는 “담탱이(담임 선생님)한테 걸려 많이 혼났지만 재미있었다”고 했다. 한 초등학교 부근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 3명의 아이(6학년)는 단짝 친구. 방과후엔 늘 함께 지낸 사이로 쉴새 없이 떠들었다. “X새끼, 존니 쳐먹네, X발!” “존나 맛있다, X발!” 주위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가게 주인에게 물었더니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주인 아줌마도 덤덤하다. “친구에게 욕하면 쓰냐”고 말하자 “왜요, 왜요? 맨 날 쓰는데… 재미있잖아요.” 하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 아이들의 세계는 ‘욕하는 것이 재미로 느껴지는세상'이다. 아이들은 그냥 말하는 법이 없다. 호칭과 부사, 끝말은 모두 욕이다. 남학생이 더 심하다. 그러나 여학생은 속도가 빠르다. 좋아도 “존니 좋다.” 친구는 무조건 “X새끼” “개새끼” “미친 새끼” 다. “재미
우리가 태어나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무엇일까? ‘공부하라’ 이다. 이제 공부는 학생이라는 특정 계층만 특정 시기에 하는 일이 아니다. 공부는 우리의 삶과 동일시 되는 일, 인생 전반에 걸친 삶 그 자체가 되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교육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고, 자기 계발서가 무섭게 팔려 나가는 것만 보아도 이를 실감하게 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세상이 무섭게 변하고 있고,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진열대에는 ‘살아남으려면 공부해야 한다’ 등 처방서가 즐비하다. 그래서 많은 분야에서 놀라운 진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크게 변화를 보이지 않은 곳이 있다. 학교현장의 학급경영 분야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퇴보한 느낌을 느낄 때도 있는 것은 나만의 감각일까? 교사는 학급 경영자로 리더이다. 학급경영을 통하여 자기의 구상하는 교육철학을 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담임이 아니면 이런 기회는 오지 않는다. 따라서 경영자는 수준에 맞는 학급 경영 목표를 정하고 이에 따른 아이들의 행동변화를 지켜보면서 계속적으로 실천이 되는가를 확인하는 눈과 노력이 필요하다. 2, 30년 전에는 학급당 학생수가 많았어도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녀 1명을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2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80% 이상이 대학가는 사회가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지를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자녀를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부모들은 이 거액의 돈을 벌기 위해서 아이들을 돌볼 틈도 없이 열심일 일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벌어서 학교나 학원을 보내는 것이 부모로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가? 학교와 학원은 가정에서 만들어 놓은 틀 속에 지식을 채워가는 공간에 속한다. 진정 자녀의 인생 기틀을 세워줘야 하는 사람은 학교나 학원과외 선생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 부모라는 것이다. 이런 부모 역할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서 부모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교육은 부모 어느 한쪽의 몫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버지는 바깥에서 돈벌어다 주는 사람이고 자녀교육은 엄마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가 편식을 하면 부족한 영양소 때문에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어머니와 아버지 즉 부부가 함께 힘을 합쳐 자녀교육을 할
요즘 아이들 가르치기가 점차 어렵다고 하소연 하는 선생님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교사의 가르침,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학생인권 조례를 제정하면서부터 학생과 교사간의 갈등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분명히 아이들은 엄청난 변화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흥미로운 자극을 주는 요소는 학교가 아니라도 세상에 널려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정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도와주면서 살아본 경험의 결핍은 학교라는 공동생활을 하는데 여러 가지로 연결되지 못하는 점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선생님들의 아이들에 대한 이해 수준의 차이와 과거에 가르쳤던 아이들 생각이 머리 속에 차 있으니 갈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제하기 어렵다. 그래서때로는 감정의 폭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도 하나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에서 이긴 선생님은 수업목표를 제대로 달성한 것이다. 게임은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학교에서도 무수하게 일어난다. 운동장 뒤뜰, 사무실, 교실, 식당 등... 그러나 승리가 이루어지는 곳은 단 한 곳 뿐이다. 바로 승자, 교사의 마음 속이다. 선생님이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면
저성장 경제 속에 젊은이들의 취업난이 가중되고 불안정 고용이 확대되면서 안정적인 교사직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교육대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줄을 잇고,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실력이 있다는 고등학교에서도 최고 수준의 성적을 받아야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의 직업적인 자부심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올라갔다. 이같은 배경에는 교원들에 대한 처우가 많이 개선된 것도 일정 부분 작용할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교육의 질적인 향상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요즈음 교사들은 진정으로 행복한가. 수업을 진행하고 아이들을 만나는 일에서 기쁨을 얻고 있는가.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교사는 많지 않은 듯하다. 수업 이외에 처리해야 하는 사무의 과중함, 사교육 중심의 입시 공부에서 무시되는 학교 교육, 교사의 권위가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느낌 등이 교직의 보람을 반감시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교사들은 단지 직장의 안정성에 만족하면서 큰 보람을 찾기보다는 일상적인 자세로 교육에 임하고 있는 현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교사 노릇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맥락을 짚어보자. 그것은 근본적으로 사람들 사이
필자는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우리나라 민족운동을 공부하면서, 인도 민족운동의거장 마하트마 간디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나 '위대한 영혼'이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은 성장기를 보냈다. 19세기 후반 인도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난 간디는 13세에 결혼해 성에 눈을 뜨면서 향락에 빠져들게 되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당시 인도의 금기였던 육식과 음주를 하면서 마약에 손을 대는가 하면 돈을 훔치기도 했다. 이처럼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배경엔아이들 간의분위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어떤 친구들과 사귀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곧 그는 자신의 지난날을 고백하고 뉘우치는 장문의 편지를 아버지께 쓰고 용서를 구했다. 보통의 부모라면 심하게 꾸짖을 상황에서 간디의 아버지는 그를 조금도 야단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편지를 찢어버리고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아들을 껴안았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간디는 마음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 이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가 없었다면 아마도 세계적인 비폭력주의자 간디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크나큰 시련도 극복할 수 있다.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도 있고, 강한 적을 무찌르기 위한 비책을 강구할 능력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일을 하나씩 차례대로 해나가야 한다.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면 쉽게 용기를 잃는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과중한 부담이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행동에 장애가 된다. 특히 요즘 학생들의 행동 가운데 손 꼽을 수 있는 것이 정리 정돈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지럽게 흩어진 교실과 좁은 책상위에 높게 쌓여진 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와같은 혼돈된 상태라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게 되며, 필요한 물건을 찾느라고 시간만 낭비하고, 머릿속에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 뒤엉켜 혼란만 겪게 될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가정에서부터 기본적으로 청소하는 것도, 정리 정돈하는 것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학교에 와서 이 일을 잘 수행할리가 만무하다. 주변을 혼란스럽게 해놓는 것과 학업에 임하는 태도는 매우 상관 관계가 높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인간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지저분한 곳에는 더 쓰레기를 버리게 되고, 깨끗한 곳에는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양심이다. 주변이 지저분하면 결정을 뒤로 미
대한민국은 한 마디로 ‘공부 공화국’이다. 공부의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밤낮없이 공부한다. 이들뿐이랴. 대학생은 취업을 하기 위해, 직장인은 자기 분야에서 마이스터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 공부에 몰입한다. 게다가 이제는 책으로만 공부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걸어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렇게 온 나라가 교실이고 공부방인 이 시점에 우리는 한 번쯤 공부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공부(工夫)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도구를 쓰는 위대한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좀 더 풀이하면 ‘머리라는 도구를 써서 일하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런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여러 가지 구분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캐기’와 ‘짓기’로 나눌 수 있다. 땅속 깊이 묻힌 것을 뻘뻘 힘들여서 캐내는 일이 곧 공부다. 추리 소설의 주인공이 작은 단서들을 오랫동안 캐고 따진 끝에 마침내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내는 것과도 같은 일을 공부는 해내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원인
인간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정부는 꼭 필요한 조직이다. 그래서 정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가 있어야 질서, 재산, 생명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마다 역할이 달라서 정부가 커야 하느냐, 작아야 하느냐, 이 일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이런 논쟁들이 계속적으로 있어 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우리가 하는 교육은 무엇을 핵심으로 가르쳐야 하는가를 중심으로미래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살펴 보고자 한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고, 삶의 방식이 변하고, 일하는 방식이 변하는데, 정부는 어떻게 변할까?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지역간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2030년의 뉴욕과 로스엔젤레스는 ‘살고, 일하고, 다니고, 놀고’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될 것이라는 것이 미래학자들의 예측이다. 일하고, 다니고, 놀고, 이런 것들이 융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은 일하는 임무와 장소라는 전통적인 관계로부터 해방 될 것이라는 것이다. 유비쿼터스로 재택 근무가 가능해지면서 정부 부처, 회사, 대학이 거의 없어지는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사이버 대학이 많이 생기
유럽의 청년세대가 분노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가 긴축정책을 펴면서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이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의 최대 피해자이다. 길거리로 나온 이들은 미래의 희망이기는커녕 절망의 세대다. 영국 칠레 등 유럽과 중남미에서 일어난 폭동의 중심엔 분노한 청년들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 백수들이 늘고 있는 우리 사회도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분노 바이러스’가 내포되어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같은 대규모의 폭동과 시위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음을 볼 때, 개별 국가의 문제로만 볼 수 없고 우리나라도 상당히 우려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큰 빈부 격차, 재정 악화, 높은 청년 실업률 등 구조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형편이 영국 등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유럽 국가들이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복지 정책을 펴면서 파탄에 이른 재정 적자는 청년 세대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전가되고 있다. 최근 우리 정치권에서도 표를 의식한 과도한 복지정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결국 유럽과 같은 청년 분노라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떨쳐버리기 어렵다
폭염가운데서도 지금 달구벌에서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한창이다. 세계 202개국에서 1945명이 참가하여 자기 나라의 명예와 개인의 성취를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니다. 이런 대회를 보면서 예기치 못한 사고로 갈고 닦은 실력이 하루 아침에 쓸모없는 쓰레기가 된 것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볼트 선수가 실격당한 것을 보면서 출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 마디로 출발의 규칙을 어긴 것이 그 이유이다. 무엇보다도 스포츠에 있어서 지켜야 할 것은 규칙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준 사건이 되었다. 스포츠는 우리 인간의 삶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인생은 가끔 마라톤에 비유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삶에도 이와같은 것들이 적용되는 것은 아닐런지? 스포츠 선수들은 누구나 목표가 있다. 목표가 뚜렷하기에 고된 훈련도 마다하지 않고 견디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도 일단 선수에 선발되면 게으름을 떨치고 이른 아침부터 훈련에 임한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출생이라는 라인 선상에서 목표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 마라톤 선수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마라톤 선수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인생의 마라톤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최근 우리 나라 아이들의 특징은 다른 나라 학생과 비교하여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한글만 깨우치면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다. 학교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과외 수업을 받으러 간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아이들 성적은 향상되지 않는다. 아이도 최선을 다하는 것 같지만, 성적은 제자리이고보니 학부모도 아이들 자신도 답답하다. 이러한 원인은 학습에 대한 자기 책임의식 즉, 자기주도의 학습이 없기 때문이다. 소위 학습에서 학(學)만 있고, 습(習)이 없다. 많이 배우면 학생은 학습결과가 좋을 거이라 생각하는데 이같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인간의 뇌는 뇌간, 대뇌변연계, 대뇌신피질의 3중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두뇌는 생명을 주관하는 뇌간에 최우선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다음으로 감정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의 욕구를 충족시킨 후에 비로소 인간적인 특성인 지성, 이성, 사고, 언어 등을 관할하는 대뇌신피질에 에너지가 공급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학습은 지적인 능력으로만 이루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이러한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 많다. 물론 학습에서 지적 능력이 중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