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사회에 부자열풍이 불면서 우리는 재테크기사를 읽고 재테크 책을 통해 부지런히 돈 되는 방법을 찾았다. 때로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강의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부지런한 부자열풍에 비해 우리 일상에서의 구체적인 돈 관리는 대단히 게을러졌다. 펀드투자에 과감해지고 20년, 30년 장기 대출을 끼고 아파트에 투자하기도 한다. 펀드열풍이 한 풀 꺾이고 난 후이지만 장기대출 상환원리금은 여전히 가계에 부담을 주고, 결국 생활비가 부족해 마이너스 통장을 월급통장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러다 보니 생활비도 빠듯한데 모기지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의 이자까지 더해져 금융비용으로 생활비에 더욱 부담을 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잡동사니 소비로는 만족감 얻을 수 없어 부부교사로 맞벌이를 하면서도 생활비와 외식비, 아이 교육비로 한 사람 소득이 바닥나고 대출원리금까지 갚고 나면 한 달에 몇십만 원 저축하기도 빠듯하다고 하소연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교사는 평달의 소득이 상당히 적은 편이다. 결국 상여금이 없는 달은 저축은커녕 생활비가 모자라 마이너스 통장을 유지하는 가정이 적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일상적으로 신용카
“최초의 사회주의체제 파리코뮌, 티에르의 중앙정부와 싸워 결국 승리하다.” 가정의 이야기일 뿐 파리코뮌은 2개월여 만에 사라졌다. 파리코뮌의 뿌리는 프랑스 • 프로이센전쟁이었다. 독일 통일을 주도한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전쟁(1866)에서 승리한 후 통일의 완성을 위해 계획한 그 다음 일은 프랑스와의 전쟁이었다. 당연하지만 프랑스는 자국의 동쪽에 통일된 독일이 등장하는 것을 우려했고, 따라서 오스트리아를 꺾은 후 프로이센이 결성한 북독일연방에 저항한 남독일의 영방들과 유대를 강화하는 등 독일의 통일을 가능한 막으려 했다. 통일과업 시작 때부터 프랑스와의 일전이 불가피함을 인지하고 대비해온 비스마르크에게 프랑스 • 프로이센(보불)전쟁의 직접적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스페인왕위계승 문제였다. 스페인인들이 1868년에 그들의 여왕을 몰아낸 후 왕위가 비어 있었는데, 1870년에 이르러 프로이센 왕가 호엔촐레른가의 레오폴드 공(公)이 국왕 물망에 올랐다. 빌헬름 1세하지만 레오폴드는 스페인 국왕이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프랑스가 결사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반(反)독일적 정서가 강했던 프랑스에서 반(反)레오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