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협력의 필요성 학교는 교육공동체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발전해 간다. 학부모회와 운영위원회 등의 학교 내 협의체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협의체나 각종 인적 · 물적 자원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시민단체와 협력을 통해 학생들의 체험활동을 활성화한다든지, 지역사회의 특기를 가진 인적 자원을 통해 동아리 활동이나 특기 · 적성 교육을 활성화한다든지, 지역의 기업 등을 통한 장학금 조달, 그리고 전문직업인을 통한 진로 적성 교육을 활성화하는 등 지역사회와의 협력은 학교 발전의 기본이 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를 통해서는 학력향상이나 방과 후 학교 운영 및 기숙사 시설 구비 사업 등에 대한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고, 학교 주변 환경 정화 및 유해업소 정비, 도로 안전 정비에 대한 상호 협조를 강화할 수 있다. 또한 학교 주변 학생 안전 관련 제반사항에 대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기관과 협의할 수 있고, 사회적 소외계층 학생 및 급식지원 필요학생에 대한 지원 방안 등을 협의할 수 있다. 학부모의 교육과정, 학교 교육활동, 제도개선 등에 대한 주도적인 참여를 보장해 학부모가 학교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고 학교 발전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1. 사람의 생애 리듬을 인식하는 말 중에는 재미난 것이 많다. 모범생처럼 인생을 살던 사람이, 마치 그렇게 살아온 것이 후회라도 되는 양, 늘그막에 바람나는 것, 그것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그 정도가 맹렬했는지 ‘늦바람은 아무도 못 말린다’는 말로 경구를 삼았다. 중년 이후 잘못된 생애 리듬을 관찰한 데서 얻은 인식론을 극명하게 반영한 속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쪽의 말도 있다. ‘인생 초년의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은 성실이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아주 건강한 통찰을 담은 생애 인식론이다. 사람마다 인생 성장의 중요한 변곡점(變曲點)이 있다. 세속적으로 말하면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거나 권력 자리에 나아가거나 승진하거나 하는 것 등을 그 변곡점(變曲點)의 자리에 놓을 수 있다. 그것을 나이로 말하면 ‘몇 살쯤 될 무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직업과 소득으로 말하면 ‘그때 그 일을 해서 돈을 좀 벌기 시작했을 때’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인생 경로에 여러 번의 변곡점을 겪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내 인생의 분수령(分水嶺)’이라고 붙일 만한 것이 있는 것이다. 사회적 경력이 좀 쌓이고,
진로의 의미 진로의 의미를 학자에 따라서 직업에 관련한 일의 총체로 국한해 정의하기도 하고, 가정적 역할, 여가활동 등을 포함한 포괄적 개념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필자는 진로의 개념을 정의할 때 우선 그 어원을 살펴보고자 한다. 진로(Career)의 어원은 ‘수레가 길을 따라 굴러간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Carro’에서 유래한 것이다. 영어 사전에서는 진로(Career)가 경력의 의미 외에도 ‘한 인생의 전 과정’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그 외에 진로를 의미하는 ‘a way’, ‘a root’, ‘a course’ 등도 같은 맥락으로 ‘인생의 길’, ‘인생의 경로’로 해석이 가능하다. 한자에서도 ‘進路’란 말 그대로 ‘나아갈 길’을 의미한다. 진로를 뜻하는 단어의 의미를 종합해 보면 인간이 살아가는 방향, 행로로 설명할 수 있으며, 이는 일생 동안 한 사람의 출생, 학업, 일, 직업, 결혼 등 인생의 모든 경로를 포함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진로와 직업과의 관계 많은 사람들이 필자에게 “왜 진로 책에는 직업에 대해서만 나오나요?”라고 질문을 한다. 그러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진로 즉, 인생의 방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
우리말에는 ‘음매[소], 매매[염소], 히히힝[말], 꿀꿀[돼지], 찍찍[쥐], 야옹[고양이], 멍멍/왕왕/컹컹[개], 캥캥[여우], 짹짹[참새], 지지배배[제비], 개굴개굴[개구리], 앵앵[모기] 등과 같이 각종 동물들의 울음소리, 곤충들의 떨림소리를 가리키는 의성어들이 발달해 있다. 소를 부릴 때 쓰는 다양한 의성어 이와 함께 우리말에는 가축을 부리거나 동물을 부를 때 쓰는 말도 따로 발달해 있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대표적인 가축은 소와 말이다. 우선 소나 말을 몰 때 쓰는 말에 ‘이랴’ 혹은 ‘이랴이랴’가 있다. 같은 ‘이랴’라 하더라도 소와 말을 부릴 때 사용하는 용법이 조금씩 다르다. 소 등에 올라타서 천천히 걸으면서 ‘이랴’하는 것은 걸음을 재촉하는 경우이고 말 등에 올라타서 ‘이랴’하는 것은 말을 바삐 몰 때 쓴다. 소에게 쓰는 ‘이랴’는 ‘걸어라’의 어감을 지니고 말에게 쓰는 ‘이랴’는 ‘뛰어라’의 어감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랴’와 비슷한 말로 ‘이러’도 있는데, ‘이랴’가 주로 소나 말을 타고 몰 때 쓰는 말인데 비해 ‘이러’는 소나 말을 타고 몰 때뿐만 아니라 소나 말을 내려서 끌 때도 쓴다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서 ‘이랴’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사당놀이는 우리 민족의 민속놀이 중 가장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남사당놀이는 조선시대 말엽부터 천민들에 의해 놀아지던 것으로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놀음) 등 음악과 소리(노래), 춤을 곁들인 갖가지 곡예와 탈놀이, 인형놀이까지 함께 어우러진 종합 예술로 우리나라 민속 예술의 큰 맥을 이어오고 있다. 남사당패는 유랑연예집단으로 갖가지 재주부리기를 일삼던 무리로 본디는 독신 남자들로 이루어졌으며 여자가 들어가게 된 것은 1900년 이후부터인 남사당 말경의 일이라고 알려졌다. 남사당놀이는 관아나 부유층 등 지배 계층으로 불려 다니던 광대놀이와는 달리 서민들의 욕구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민중놀이이다. 남사당패는 성 밖이나 농 · 어촌을 돌며 주로 서민들이 사는 곳을 찾아 공연했는데 마을에 들어가 공연하는 것은 양반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다. 남사당패의 구성을 보면 우두머리인 꼭두쇠를 정점으로 공연을 기획하는 화주, 놀이를 관장하는 뜬쇠, 연희자인 가열, 새내기인 삐리, 나이든 저승패와 등짐꾼으로
칠흑같은 밤,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짧지만 강력한 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후 쨍쨍하게 얼어붙은 밤하늘을 날카롭게 가르며 번득이는 칼날을 움켜쥔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던 사내는 오랜 세월을 준비한 듯, 철저하게 계산된 움직임으로 왕의 이름을 외치며 근정전을 향해 날아오른다. 무슨 일인가? 도대체 저 사내는 누구이기에, 문무대신이 조회를 하는 근정전 앞에서 감히 왕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질주하는가? 의문이 해소되기도 전에 호위무관들과 궁녀들이 왕을 에워싸며 보호한다. 하지만 복수심으로 단련된 사내는 한 마리 매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정확하게 목표 지점에 내려앉는다. 그 순간 멀리서 날아온 화살 하나가 사내의 발목에 꽂힌다. 날렵했던 움직임이 둔해지고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직감한 사내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진다. 안타까운 눈길로 사내를 지켜보던 왕의 눈동자에 회한의 고통이 아로새겨진다. 사건은 그렇게 시작됐다. 훗날 ‘성군(聖君)’으로 추앙받을 조선 왕조의 세종대왕 ‘이도(한석규 분)’가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전 7일 동안 벌어진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역사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이정명 원작, 김영현 · 박상연 극본, 장
학교의 언어순화 교육 필요 학교에서는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일만도 벅차기 때문에 언어 순화 지도나 생활지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힘들다. 특히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수시로 주고받는 정보 속에는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분별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때로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것들이 청소년들을 멍들게 하고 있다. 부모는 물론 학교 선생님들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대책이 서질 않는다. 교육과정에 우선해 지도하기도 어렵고, 누가 음란물을 갖고 다니는지, 또는 누가 보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도 힘들다. 학교가 학교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 노출되는 극히 일부, 또는 노출되지 않고 있는 많은 음란 영상물을 단속하기란 극히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고 교육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육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정보다는 학교가 학생들을 바람직한 쪽으로 안내하기 쉬운 위치에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입장에서 어려움에 부딪히고, 싫은 소리를 들을 각오로
전 세계가 온통 혁신과 열정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애도 열기에 휩싸여 있는 요즘, 그의 경험과 통찰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애플에서 쫓겨났을 때 실리콘밸리에서 도망갈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서서히 내가 하는 일을 아직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중략)…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 필자는 선생으로 살아오면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우리 아이들의 삶의 결정적 혹은 절망적 순간에 많은 개입을 해왔고, 문제 해결을 위해 부모들과 문제인식을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부모와 타인의 욕망에서 벗어나 아이들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서도록 하자는 얘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지난 7월호의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라는 글에서 ‘인생의 의무는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이라는 헤세의 노래를 이야기하면서 ‘시시한 배우는 있어도 시시한 배역은 없다. 자신이 맡은 역할이 주역이냐 조역인가 보다 중요한 것은 알맞은 배역이다. 행복의 기준도 적재적소다.
학교 교실 풍경 하나 요즘 아이들은 럭비공 같아서 어디로 튈지 예측 불가능하며, 감성과 표현력이 강한 영상 세대, 인터넷의 가상 세계에 탐닉하는 N세대의 특성을 보인다. 최근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과 한자녀 가정의 확대, 핵가족화에 따른 자녀이기주의, 과도한 교육열에 기초한 학부모의 치맛바람 등 학교교육현장에서 교사의 교육권 보장이 위축되는 요인도 병존하고 있다. 실제 학교현장의 한 풍경을 지켜보자. 열정적으로 교사는 수업을 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사와 눈을 마주치며 열심히 수업을 받는다. 그런데 저만큼 교실 뒤편에서 책상 위에 머리를 뉘인 채 잠을 자는 학생이 있다. 교사는 그것이 신경 쓰였고 학생 곁으로 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A야, 이제 그만 자고 수업에 집중하면 좋겠다. 오늘 배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란다. 자 그만 자고 일어나라. 자세 바로 하자!” “아, 선생님, 공부하기 싫어요. 그리고 지금 너무 피곤해요. 제가 조용히 자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의 수업을 방해한 것도 아니잖아요. 상관마세요.” “A야, 너 참 문제로구나, 지금은 수업시간이잖니? 선생님의 말씀을 왜 안 듣는 거니? 더구나 이 교실에서 다른 학생은 지난번에 선생님이 과제를
“엄마, 이거.” 아이가 내미는 가정통신문을 받아 읽어보는 어머니는 한동안 곰곰이 생각에 젖습니다. 가정통신문에는 영재교육 대상자 선발 과정에 대해 학부모의 이해를 돕고 자녀가 영재교육 받기를 희망하는지 조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만,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 지역공동 영재교육원, 대학부설 영재교육원 등의 영재교육기관에 추천할 학생을 학교에서 먼저 1, 2단계의 관찰 추천에 의해 선정한다고… 이게 무슨 말이야?” 순간 ‘영재교육은 무슨? 모두가 다 영재라고 난리인데. 또 그동안처럼 시험을 봐서 점수가 좋으면 뽑으면 되지 뭘 부모한테 이런 것을 물어 보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선발 영역이 수학, 과학, 정보, 미술, 음악, 문예창작이라고… 우리 아이가 영재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분야에 영재 특성이 있는가?’ 등을 따져보며 아이의 면면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Q 영재교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요즘은 영유아인 아주 어린 시기부터 영재교육이란 타이틀을 가진 기관을 찾아 영재판별을 해본다든가 영재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하지만 영재교육은 적합하지도 않은 아이에게 신겨야만 하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