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가을이다. 단풍도 절정이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결혼청첩장도 연달아 날라온다. 토요일인 오늘 비가 내린다. 그런데 예식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오후 1시,또 하나는 오후 5시 30분. 앞에 것은 고교 동창이자 교직동료 아들 혼사이고 하나는 우리 학교 교직원이다. 중국에서 날라온 미세먼지 농도가 짙으니 하늘이 뿌옇다. 비가 내리니 그 비 그대로 맞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그러나 기꺼이 예식장으로 향해야 한다. 예식장에서혼주와 결혼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하객들에게 직접 들려 주니 결혼의 뜻이 깊다. 앞서가는 결혼 풍속도다. 귀가하여 뒷베란다 일월저수지를 내려다 본다. 가을 풍광이 아름답다. 이 비가 그치면 이제 저 단풍도 이제 끝이라 생각하니 카메라를 잡는다. 8층에서 보는 풍경이 너무 익숙하여 19층으로 올라가 조망해 본다. 마치 낮게뜬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기분이다. 일월저수지. 방죽 둑에서 한 바퀴 돌면 1,900m이다. 빨리 걸으면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가까이 있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산책할 수 있다. 그러나 출퇴근이 정해져 있는 공무원이라 토요일이나 일요일밖에 시간이 없다. 일부러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부
교사들더러 해적이 되라고? 헉, 도둑이 되라는 말인데 맞는 말인가? 자세히 보니 교사들에게 해적처럼 가르치라는 말이다. 더 자세히 보니 교사들에게 해적정신을 가질 것을 말하고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을 보니 해적(PIRATE)의 첫글자에 해당된다. 얼마 전 학교 교장실에 책 한 권이 도착하였다. 제목은 '무엇이 수업에 몰입하게 하는가'다. 데이브 버제스가 저자인데 한국판이 나온 것이다. 원제는 'TEACH LIKE A PIRATE'(해적 같이 가르쳐라)다. 출판사 대표가 보내 준 편지를 읽고 나니 교사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적이 실패를 두려워 하는가? 실패하지 않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해적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 도적질에 나선다. 해적은 모험과 도전을 즐긴다. 그들은 도적질이 성공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지도 모른다. 목숨을 담보하고 도적질에 나선다. 교사도 목숨을 내걸고 수업에 임한다면? 부장회의에서 충격적인 두 문장을 소개하였다. "학교 출석이 의무사항이 아니라면 내가 들어간 교실은 텅 비어 있지 않을까?" "내 수업은 학생들이 티켓을 구입해서 들어올 만한 수업인가?" 학생들에게 출석을 자유 의지로 맡기고 티켓을 구입해서 수업
조선시대의 시(市)인 여주목(牧)에서 군(郡)으로 강등되었다가 118년 만인 2013년 9월 23일 시로 승격한 여주시 천송동 물가에 영릉의 원찰이었던 사찰 신륵사(神勒寺)가 있다. 이곳의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남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은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될 만큼 운치가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한 근거가 없고, 고려 말인 1376년에 나옹 혜근이 머물렀으며, 한때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자 영릉의 원찰로 보은사(報恩寺)라 불렀다. 이곳에서 입적하며 신륵사를 대찰로 만든 나옹선사는 무학대사의 스승으로 읽어볼수록 가슴에 와 닿는 ‘청산은 나를 보고’를 남긴 고승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생략 ~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도 몇 가지 전해진다. 미륵 나옹선사가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고, 건너 마을에 나타난 사나운 용마를 인당대사가 신력(神力)으로 제압하여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곳에 조사당(보물 제180호),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다층전탑(보물 제226호),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누구나 한 번쯤은 흥얼거려봤을 법한 이 노래의 주인공, 가수 윤형주 씨가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경기 기흥초(교장 이진건)의 로고송을 제작·기증해 화제다. 기흥초는 1일 전교생 예능발표회 ‘한마음 대잔치’에서 학생과 학부모, 주민을 대상으로 로고송 발표회를 열었다. “지난 3월 손주 입학식에 와서 학교 교가를 들었는데 너무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노랫말이 아이들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교가와는 별개로 요즘 트랜드에 맞는 의미 있고 신나는 학교 주제가가 있으면 아이들 정서에도 좋고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직접 노래를 만들 결심을 했다고. 며칠 후 학교를 찾아가 제작 의사를 밝혔고 학교 측에서도 윤형주 씨의 ‘노래’ 기부를 대환영했다. 실제 기흥초는 1945년 개교해 역사가 깊은 만큼 ‘활기찬 고속도로’ 등 교가의 가사 중 일부가 다소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8개월에 걸쳐 두 종류의 가사를 만들어 학교에 전달해 의견을 받고 채택된 가사에 또다시 두 종류의 곡을 붙여 편곡·녹음해 학교에서 최종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는 전교생에게 음원
가을밤이 깊어지는 것도 잊은 채 학생들은 꿈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달 25일 밤 경기 금곡중(교장 강기욱) 다목적실의 풍경이다. 금곡중은 25일 오후 7시부터 26일 오전 7시까지 ‘온밤 진로비전 UP 나의 꿈을 디자인 하다’ 행사를 실시했다. 참여를 신청한 학생 53명이 학부모, 선배 멘토, 지역 멘토 등과 함께 온밤을 새우며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프로그램은 총 3부로 진행됐다. 1부는 모둠별로 선배 멘토와 ‘꿈이 왜 필요한가’, ‘선배멘토의 꿈 실현과정’ 등을 주제로 꿈과 직업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했고 2부는 와이즈멘토 학습멘토링을 통해 자신만의 학습 방법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3부는 ‘꿈을 요리하다’를 주제로 학부모와의 즐거운 간식 시간과 함께 친구들과 각자의 꿈을 발표하는 꿈나무 만들기 활동 등이 이어졌다. 금곡중은 졸업생을 섭외해 학급별 멘토로 정해 진로 특강 등의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국제변호사, 기업 대표, 교수, 병원 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을 보며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직업인의 자세, 진로 설계에 대한 마인드를 갖게 됐다. 올해 3회째 실시
장홍훈 충북 양업고 교장은 지난달 28일 교정에서 ‘WGI 좋은 학교 인증 선포식’을 개최했다. WGI 인증은 윌리엄 글라써 연구소가 제안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관계, 총체적 학습 수행능력 향상 등 6가지 좋은 학교 기준을 부합하는 학교에 수여되는 것으로 양업고는 아시아 최초 인증 사례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학기 중 기간제교사로 바꿔졌다고 생각해봐라. 문제될 거 없나? 담임선생님은 단순히 아이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들의 소질과 특성을 파악하고 꿈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잘못을 바로잡아주고 성장을 도와주는 멘토의 역할까지 한다. 그런데 학기 중에 바꿔진다면 바람직한가. 학기 중 어쩔 수 없이 기간제 담임교사를 써야 하는 경우는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기간제 담임교사를 써야한다. 언론에 보도된 기간제 교사 담임 비율이 15%라고 하나 훨씬 높은 학교도 있다. 대다수 도시 학교는 여교사들이 몰려있다. 그런데 젊은 여자교원의 경우 산가, 육아휴직 등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공무원 육아휴직 기간도 확대 실시되었다. 그렇다고 아이 낳는 일자를 조사하는 것은 개인 신상과 인권의 문제이고 법적 보호를 받는 문제여서 쉽지 않다. 학교 관리자의 입장에서 휴가를 학생들의 학기와 동일하게 강요할 수도 없다. 그래서 중간에 기간제 담임교사로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연세가 많은 여교사들이 몰려있는 학교는 6학년 담임 기피현상이 심각하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6학년 아이들, 인권의 잣대로만 가르쳐야 되니 힘이 부쳐서 ‘6
조선 왕조는 고려 왕조가 막을 내린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오랫동안 나라를 이끌었다. 500여 년의 역사를 지킨 조선 왕조의 무덤 119기를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왕릉(42기),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묻혀 있는 원(13기), 대군·공주·옹주·후궁·귀인이 묻힌 묘(64기)로 구분하는데 왕릉 42기 중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조선 왕릉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조선의 27대 왕과 왕비 및 추존왕과 왕비의 무덤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유적지로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큰 봉분과 많은 석물들이 엄숙한 분위기를 만든다. 또한 자연을 중시하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아 자연친화적인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조선 왕릉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능(陵)이 여럿이다. 그중 영릉은 3기나 있다. 바로 4대 세종의 영릉(英陵), 17대 효종의 영릉(寧陵), 21대 영조의 맏아들로 사후 왕으로 추존된 진종의 영릉(永陵)이 그러한데 우리나라 역대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긴 세종의 능이 영릉을 대표한다. 세종대왕은 22세에 임금으로 등극한 1418년부터 1450년까지 32년간 재위하였다. 영릉(세종대왕릉)은
세종대왕릉 영릉(英陵)과 효종대왕릉 영릉(寧陵)은 한글 이름이 같은데다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자락의 좌우에 자리하고 있어 세종대왕의 영릉만 기억하기 쉽다. 세종대왕릉을 돌아본 후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만끽하며 산책길을 걸으면 가까운 곳에 꾸미지 않아 순수하고 소박한 효종대왕릉이 있다. 효종대왕릉인 영릉(寧陵)은 조선 17대 임금인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쌍릉으로 세종대왕릉과 함께 사적 제195호로 지정되었다. 효종대왕은 북벌이라는 큰 꿈을 이루지 못한 채 41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였지만 대동법 실시와 화폐단위 개혁은 물론 양란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바로잡는 기틀을 마련한 업적 또한 작지 않다. 효종대왕은 16대 임금인 인조의 차남으로 맏이인 소현세자가 급작스럽게 죽자 세자로 책봉되어 1649년부터 1659년까지 재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아버지 인조는 청나라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세 번 찧는 굴욕을 당하였다. 당시 봉림대군이었던 효종대왕도 이듬해 형 소현세자와 함께 볼모로 잡혀가 청나라에 8년간 머물렀다. 이때 청나라에 원한을 품게 되어 왕위에 오른 후에는 김집, 송시열, 송준길 등 청나라에 강경한 입장을
주말을 맞아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사진 찍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하는 여행은 늘 신선하고 가슴이 설렌다. 오전 여덟시. 서산을 떠난 우리의 애마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9시30분쯤 서울 갈림길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오토크루즈 컨트롤을 시속 100킬로미터로 설정해놓고 끊임없이 스쳐지나가는 아름다운 산야를 흥미롭게 감상한다. 유난히 습하고 무더웠던 여름이 이곳 강원도 접경으로 들어서자마자 이미 저만치 뒷걸음질을 치는 듯하다. 아니 오히려 세상은 온통 가을색으로 가득하다. 아, 좋다! ‘좋다’는 말 이외에 또 어떤 형용사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핸들을 잡은 손은 가볍고 엉덩이는 들썩여진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풍광이 바뀔 때마다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그랬다. 강원도로 가는 길은 정말 산세가 수려하다. 칼날 같은 능선과 능선이 겹쳐지며 푸른 녹음을 만들어내고 그 녹음은 다시 뭉게구름이 되어 능선을 타고 피어오른다. 산들은 녹음의 구름이요 녹음의 양탄자다. 겹쳐지고 포개어진 산세는 다시 하나로 흐르고 흘러서 영월로 집중된다. 세상의 그 어떤 솜씨 좋은 화가가 저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청량한 강원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