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라는 말은 항상 나를 살짝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어쩌다가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정식으로 문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듯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치약이나 약 상자에 씌어 있는 사용법에서부터 광고 문구에 이르기까지 글자로 씌어 있는 모든 것을 허겁지겁 읽었으며, 특히 소설책이나 시집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일은 아니지만, 지속해서 일기 비슷한 것을 썼다. 내가 문학교육이라는 걸 받았다고 우기자면 아마도 이것이 전부일 것이다. ‘무엇이든 읽기’ 그리고 ‘생각나는 대로 쓰기’. 무엇이든 읽기 무슨 책이든 다 재미있다고 말했던가? 당연히 거짓말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랬다. 책이든 포장지든 가게 앞에 붙어 있는 간판이든, 글자로 씌여 있는 모든 것이 재밌었다. 처음으로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책은 아마도 교과서일 것이다. 수업시간 내내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들여다봐야 하고, 선생님이 읽으라는 부분을 읽어야 하고, 읽으면서 외워야 하고, 외운 것을 시험까지 봐야 하니까.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특히 독서는
얼마 전 ‘선생님…. 저 생리대 살 돈이 없어요’(스브스뉴스, 2016.05.28.)라는 기사를 읽으며,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 엄청난 사실 앞에서 너무 혼란스러웠다. 생리대 하나만 빌려달라는 아이들의 부탁을 너무 매몰차게 거절한 건 아닌지, 내가 거절했던 아이 중에 이런 아이가 속해있었던 것은 아닌지 미안했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생리대를 자주 갈지 못해서 주위 아이들로부터 냄새난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아이였어요”라는 어느 자원봉사자의 한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우리 학교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혹시나’하는 마음과 함께. 유난히 냄새가 나는 아이들이 있다. 적어도 한 반에 1~2명은 있다. 더운 날 밖에서 운동을 해서 나는 땀 냄새가 아니다. 머리를 안 감고, 잘 씻지 않고, 옷을 자주 빨아 입지 않아서 나는 냄새이다. 교복은 꼬질꼬질하고, 거친 손과 얼굴엔 각질이 피어올라 와 있다. 1평 남짓의 개인상담실 문을 열자마자 ‘불편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어휴, 선생님이 갱년기인가. 왜 이렇게 덥다니. 문 좀 열고 하자”며 창문을 열어야만 상담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이다. ‘냄새 난다’는 말을 하자니 아이가 상처받을 것 같고,
교실 안에 괴물이 있다. 학생의 모습으로 아이들 속에 앉아 있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눈치를 본다. 아이가 언제 괴물의 본색을 드러내고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과장된 이야기 같지만 과장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어떤 아이는 분명 괴물처럼 보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뭇사람을 괴롭히고 상처 입히곤 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 아닐 것이다. 그 아이들의 처음 또한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누구보다 소중한 한 가정의 아이였을 것이다. 해맑은 미소로 엄마와 아빠를 행복하게 했던 평범하고 귀여운 아이였을 것이다. 어떻게 된 걸까. 그 귀엽던 아이가 왜 지금과 같은 괴물로 변할 걸까. 아무도 모르게, 아이가 괴물이 되기까지 승민(가명)이 아버지는 매우 엄격한 교육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아이가 자신의 방식대로 모든 걸 해내길 원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승민이에게 숙제를 내주었고, 퇴근 후에는 검사하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술에 취해 새벽에 귀한 날에도 어김이 없었다. 승민이는 숙제 검사를 통과해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준에 맞게 숙제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성에 차지 않
슬프게도 이제 우리는 술과 담배, 컴퓨터 게임, 인터넷, 스마트폰, 야동 등에 중독된 아이들을 쉽게 만납니다. 중독은 나약한 의존적 성격 때문일까요? 유전자 또는 잘못 들인 습관 탓일까요? 도대체 왜 거의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걸까요? 강제로 끊게 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중독,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갈망 미국의 경우 고교생의 24%가 마약을 포함한 불법 약물을 사용한 경험이 있고, 약 9%가 물질 남용이나 의존현상을 보입니다. 한국에는 마약과 술 같은 물질보다는 컴퓨터 게임과 도박 등 행동에 중독된 경우가 흔합니다. 행동중독에도 물질중독처럼 뇌 보상 중추에서 도파민이 활성화되며 충동성과 인지적 오류가 개입됩니다. 통제 불능의 욕구도 똑같이 나타나기 때문에 물질중독만큼 심각한 문제입니다. ‘마약이 아니니 다행’이라는 식으로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중독매개는 중독자의 의식과 의지를 지배하며 결코 자연스럽게 소멸하지 않습니다. 중독을 끊도록 야단도 치고, 격려해주거나 보상을 약속해도 별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문제입니다. 중독자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요? 사람이 산길에 잘못 들어가서 헤매고 있다면 회귀하기
교과전문성으로 교육현장에 새로운 활력소 올해로 교직 3년 차인 A 교사, 누구나 선망하는 선생님이 됐지만 마음 한구석 회의감을 느낄 때가 많다. 수직적 학교 문화 속에 학부모에 치이고 학생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임용 시험 때의 패기와 열정은 오간데 없이 무력감에 빠져있다. 교과 수업은 갈수록 어렵고, 각종 교수법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어떤 것이 우리 반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것인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할 뿐이다. A 교사처럼 수업의 전문성을 높이고 학교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찾고 싶은 교사들이 ‘광주 초등수석교사회’로 몰려들고 있다. 창의적인 수업방법과 다양한 수업기술, 그리고 교직생활의 어려움을 함께 풀어나갈 멘토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이들은 새내기부터 40대 후반의 고경력 교사까지 다양하다. 회장을 맡고 있는 송미나 수석교사(광주 수문초)는 “교직생활의 새로운 방향 전환을 모색하고 전문성 향상을 통해 보람과 만족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 수석교사들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 4월 광주초등수석교사회 주최로 열린 수업혁신 위크숍에서 그대로 그러났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광주지역 초등교사 2백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날 행사는 ‘역량
친구들과 어울려 딱지치기를 하거나, 함께 몸을 부대끼고 뒹굴며 놀던 ‘놀이 문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서울가동초등학교의 점심시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했다. 학교 공간마다 아이들의 건강한 호흡과 티 없는 웃음소리로 온 학교가 들썩거린다. 이 아이들을 웃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여럿이 함께 신나게 뛰어노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서울가동초등학교의 가장 대표적인 감성교육프로그램은 ‘즐겁게 함께 놀기’이다. ‘우리’라는 말보다 ‘나’라는 말이 익숙한 학생들에게 올바른 심성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여럿이 함께 신나게 뛰어노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서울가동초 학생들은 중간놀이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교실에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전통놀이를 하며 옛 멋을 즐기는가 하면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야구·농구·축구·배드민턴 등 다양한 스포츠클럽 활동에 구슬땀을 흘린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운동장 걷기’이다. 땀 흘리기 싫어하는 여학생들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산책하듯 운동장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역시 풍요롭고 따뜻한 감성은 ‘좋은 친구와 어울려 놀 때’ 가장 왕성하게 싹튼다. 36.5℃ 따스한 감성으로 ‘365일 행복한
최근의 ‘평가 패러다임’은 평가를 교수·학습과 분리하기 보다는 교수·학습의 한 과정으로 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교육부 역시 ‘과정중심평가 확대 시행’을 추진하면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현장 교사들도 과정중심평와 관련, 정책의 총론과 방향에는 대체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정중심평가에 담겨있는 세 가지 의미 우리는 어떤 교육정책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뜻을 표하기에 앞서, 그 정책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것을 추진하기에 적합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먼저 과정중심평가의 의미를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평가가 지닌 본연의 기능에 다시 주목하려는 움직임이다. 과정중심평가는 ‘학습 결과에 대한 평가(assessment of learning)’에서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 또는 ‘학습으로서의 평가(assessment as learning)’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평가를 교수·학습과 연계된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며, 모든 단계의 교육활동이 그렇듯 교수·학습의 극대화라는 평가가 지닌 본연의 기능에 다시 주목하려
‘사이버인성이 뭐지?’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인성’과 ‘사이버인성’은 하나라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인성이 함양된다면 온라인에서도 인성이 함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학교폭력은 현실 공간보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사이버공간에서 더욱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교육부, 2016). 사이버블링(cyber bullying)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이버폭력은 ▲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접속할 수 있어 24시간 학교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 ▲ 익명성으로 인해 과격한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한다는 점 ▲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 ▲ 온라인상에 일단 한 번 게시된 욕설과 비방은 많은 사람이 복제를 하면서 순식간에 퍼져나가 2차, 3차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 등으로 인해 그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크다. 따라서 사이버공간에서도 인성교육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개인의 도덕성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공교육을 통해 사이버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해주어야 한다. 다음은 사이버공간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올바른 정보를 선택·분석·활용하는 리터러시(literacy) 능력을
‘구교육’, 혹은 ‘헌교육’에 대한 ‘새교육의 반란’은 미군정과 함께 시작되었다. 3년간 지속되었던 ‘새교육의 반란’을 진압하고 ‘구교육의 복원’을 꾀하려 했던 최초의 인물은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 문교부 장관에 임명된 안호상이었다. 그는 백과사전에서 민족사학자, 철학자, 대종교인, 정치가, 그리고 파시스트라는 다양한 명칭을 부여할 만큼 경력이 화려했다. 그는 1920년대 초에 일본에서 영어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을 거쳐 독일에서 유학하였다. 독일 예나대학교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이 1929년이었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일본 교토제국대학교, 독일 훔볼트대학교, 경성제국대학교에서 연구생으로 경력을 쌓은 후 1933년에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이듬해에 이광수의 소개로 시인 모윤숙과 결혼하였으나 후일 헤어졌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해방과 함께 민족주의 계열의 다양한 학술단체, 문화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자 초대 문교부 장관이 되었다.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의 일민주의 안호상은 단군을 숭상하는 민족종교 ‘대종교(大倧敎)’의 열렬한 신도였다. 단군의 피를 이
윤동주의 ‘서시’, 이육사의 ‘광야’,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40년대에 쓰인 시구가 아직도 가슴에 치명적인 감동을 주는 것은 아마도 이들의 시가 단순히 예술을 추구한 것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는 ‘자기 삶의 지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자기 성찰적 시를 쓴 윤동주는 그 살벌한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역사가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을 따르고자 애썼는지 느낄 수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2016년 초 개봉한 영화 동주는 윤동주의 생애와 시를 딱딱한 교과서의 몇 문장으로만 배우고 가르쳐왔던 우리들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시라는 언어를 통해 깊은 사유를 전달하고, 시대의 아픔을 시어 하나하나에 담아내고 있는 윤동주의 삶과 시를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시를 막연하고 어렵게 느끼는 아이들도 낮게 읊조리는 시인의 이야기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 영화 동주 줄거리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 시인을 꿈꾸는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