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생활 내내 교무실 문을 제일 먼저 여는 사람이었다.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복도를 지나 열쇠를 돌리고, 어둑한 교무실에 첫 불을 켜는 일. 누가 시킨 것도,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고요한 아침의 몇 분이 좋았다. 오늘 만날 아이들의 얼굴을 미리 그려보는 시간이었고, 수업을 머릿속으로 한 번 더 굴려보는 시간이었다.
36년을 뒤로 한 마지막 출근
그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침, 제일 먼저 문을 열던 사람이 이제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왔다. 36년 6개월. 훈장 하나가 돌아온다지만, 그것이 이 세월을 다 대변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세월을 대변하는 것은 훈장이 아니라, 그 문 안쪽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얼굴들이다.
처음 부임하던 날의 초심은 ‘공부하는 교사가 되자’였다. 그 초심 때문에 멈추지 못하고 계속 배웠다. 현장 경험만으로는 아이들의 상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전문상담교사 자격을 얻었고, 교실에 늘어나는 이주배경 아이들을 보며 다문화 교육으로 두 번째 석사를 마쳤다. 그리고 퇴직을 앞둔 나이에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누군가는 이제 무슨 공부냐고 웃었지만,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첫날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었다.
교사는 학생과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고 훈육하며 기다리는 사람이다.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를 깨우는 방법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었다. 톰 소여가 담장 페인트칠을 즐거운 놀이로 바꾸었듯, 공부도 게임처럼 하자면 다가앉는 게 아이들이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가 어느 날 가해자가 되어버린 아이, 매시간 무기력과 잠으로 하루를 버티던 아이, 커터칼을 쥐고 자신과 세상을 함께 놓아버리겠다던 아이. 그 아이들 앞에서 배운 것은 하나였다. 학생은 미성숙하다는 것, 그러나 그 미성숙은 결함이 아니라 성장과 성숙을 향해 가고 있다는 현재진행형의 방증이라는 것이다. 조바심 내지 말고 그 과정을 계속 반복해 주는 사람이 교사다.
초심 지킬 수 있어 감사해
의외로 아이들은 잘 지켰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믿고 기다려 주는 대상이라는 사실에 아이들은 만족했고, 조금씩 자랐다. 교권이 추락했다고, 교실이 살벌해졌다고들 하던 세월에도 내 교실이 가장 안전하고 평안한 곳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기다림 덕분이었을 것이다.
퇴임 인사말을 쓰며 가슴이 벅차 긴긴 글을 썼다가 다 지웠다. 머릿속에 남은 것은 결국 두 단어, 사랑과 감사. 숱한 날들 동안 나를 동료로, 선후배로 인정해 주고 사랑과 신뢰로 함께해 준 선생님들, 그리고 나를 믿고 따르며 배움의 길을 성실히 걸어와 큰 감동과 기쁨을 안겨준 아이들. 이제 그 자리는 떠나지만, 함께 나눈 시간과 배움과 사랑은 평생의 축복으로 남을 것이다.
제일 먼저 교무실 문을 열던 사람은, 이제 다른 문 앞에 서 있다. 인생의 두 번째 앞에서 다시, 1990년 그 3월의 아침처럼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