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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안녕하세요, 여러분! 상상의 도가니탕의 주방장 이지혜입니다. 오늘은 점점 멍이 들어가고 있는 한국의 여성인권에 대해 요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성피해 3가지 사례를 재료 삼아 여성단체 상담선생님과 함께 요리합니다. 여성피해 상담사례와 요리방안까지 이어지는 후식 웃음의 도가니탕에서는 여러분들을 시원하게 해드릴 음식으로 즐거움을 드리겠습니다.” 이지혜 양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상상의 도가니탕’은 mp3 음악파일 다운로드의 핵심인 소리바다 서비스 문제, 개고기 문화 찬반논쟁, 미군 장갑차에 치어 숨진 여중생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이슈들을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는 시사 프로그램. 내용상 지루하고 딱딱해지기 쉬운 프로그램이라 어떻게 하면 좀더 편안한 느낌으로 방송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는 지혜는 아나운서의 꿈을 갖고 있다. 지혜는 지난해 스스로넷에서 개최한 라디오 웹자키 선발대회에서 금상으로 입상해 웹자키로 활동중이다. 어려서부터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DJ란 직업과 라디오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지혜는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방송반에서 활동한 경험을 갖고 있어 방송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고 한다. 동아리 형태로 방송에 직접 참여 스스로넷은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청소년 인터넷 방송국으로 2000년 문을 열었다. 최첨단 디지털 영상·음향·편집 장비와 종합 스튜디오를 갖추고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제작한 뉴스, 영화, 다큐멘터리, 라디오, 뮤직비디오, 청소년 드라마 작품은 물론 게임 및 플래시, 웹에 관련한 동영상 강의 등 다양한 분야의 방송활동과 미디어 관련 교육활동이 동아리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스스로넷 활동의 또 하나의 큰 특징은 오프라인 모임과 연결된 온라인 활동이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청소년들이 만든 모든 작품은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다. 현재 전체 방송의 80%가 청소년들의 직접 참여와 제작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프로그램의 제목을 정하는 일부터 시작해 콘티 짜기, 대본 작성, 선곡 등의 과정에 센터의 이름처럼 학생들 ‘스스로’ 참여하고 있다. 학교생활이나 일상의 에피소드를 음악과 함께 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까마귀 기르기’를 진행하고 있는 이하나(인천 인일여고 2) 양은 “까마귀는 한마디로 아직 완전한 것 없는, 그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우리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코너를 소개하면서 “대본을 쓰기 위한 자료를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방송을 듣고 또래 친구들이 게시판에 올려주는 방송평과 격려글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밝혔다. [PAGE BREAK]체험활동 프로그램으로 인기 짱 스스로넷에서는 올 2월 청소년들이 방송제작과정이나 디지털 공간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스스로넷 미디어텍'을 열었다. 미디어텍에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가 마련되어 있어 학생들이 직접 MC, 출연자, 카메라맨이 되어 방송 제작에 직접 참여해 볼 수 있다. 스튜디오 옆에 마련된 에디트존에서는 또한 오픈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녹화하고 편집해 송출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러한 체험들을 즉석에서 디지털 사진에 담아 디지포토존에서 그 즉시 출력해 볼 수도 있다. 미디어텍은 학교나 학급 단위의 일일 체험활동과 학교 특별활동 형태로 일년 내내 운영되고 있어 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체험활동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스스로넷 교육문화사업팀 여수미 주임은 “방송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고가인 방송장비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이 현실”이라며 “프로그램을 제작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창조적인 자기표현력과 미디어 수용 자세를 기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제작 아카데미 과정 운영 뿐만 아니라 스스로넷에서는 미디어 대전, 시나리오 공모제, 만화·사진공모전, 고딩영화제, 웹자키 컨테스트 등 청소년들을 위한 공모전으로 미디어에 대한 숨겨진 ‘끼’를 찾을 수 있는 공모전을 열고 있다. 또한 영상캠프 미디어캠프, 데이캠프, 미디어텍 체험캠프 등 다양한 캠프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참여욕구를 만족시키고 있다. 그중 미디어 캠프는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미디어 문화를 경험하게 하고자 전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매달 실시되는 미디어 상담 프로그램이다. 사진, 영상, 홈페이지, 그래피티, 만화 등의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체험활동과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넘쳐나고 있는 유해 미디어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건전한 문화활동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다. 스스로넷에서는 미디어 제작에 관한 아카데미 과정도 마련했다. 방송, 영화, 웹 만화, 플래시, 프리미어, VJ, 사진, 기자 등의 과정을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2개월 과정으로 가르친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방송과 영화. 각 과정당 15명 내외의 소수로 운영하기 때문에 인기 있는 강좌의 경우 몇 개월을 기다려 수강하는 경우가 많다. 수료한 후에는 지속적으로 작품 제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비를 지원 받고 스스로넷의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스스로넷은 더욱 많은 청소년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개성을 맘껏 발산할 수 있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곳. 오늘도 스스로넷을 찾는 청소년들의 발길은 계속되고 있다.
김정대(서울강북청소년수련관 관장·교육학박사)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의 상호 작용 일반적으로 리더십에 관한 관심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분야에서 성공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리더십 유형과 특성에 대한 관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즉 리더십을 단지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가고 지도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2002 한·일 윌드컵 축구경기는 히딩크라는 명감독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기업가들이 히딩크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희딩크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는 농담조의 말도 있다. 희딩크의 리더십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있다. 흔들리지 않은 리더십, 과학적 분석과 시스템적 접근, 경쟁을 통한 다 기능 선수 육성, 글로벌 스텐다드의 적용 등 찬사가 이어진다. 4강의 신화를 만든 명감독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찬사일 것이다. 그는 한국의 축구대표선수들은 자신의 이해를 따지기보다는 선수로 뽑힌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는 점을 크게 칭찬했다. 4강에 오른 것은 선수들의 노력도 크다. 대한축구협회가 외국감독을 영입하고 그의 자율성과 계약기간을 보장해주지 않았다면 이러한 성적은 가능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들의 공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월드컵 기간 중에 보여준 '붉은악마', '길거리 응원'과 같은 자발적 참여의 열기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국민의 성원도 또한 중요한 원동력일 수 도 있다. 즉 한국의 축구가 4강에 오르도록 한 리더십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정한 상황과 환경에서 감독과 선수들간의 상호 역동적으로 작용한 과정의 결과이다. 리더십에 대한 정의가 여러 측면에서 다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누가 영향력을 발휘하며 그 영향력의 의도된 목적은 무엇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어떤가 등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주요한 논쟁점은 리더십을 명확한 현상으로서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하나의 관점은 모든 집단에는 특정한 리더십의 역할의 전문성(role specialization)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다른 구성원 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 한사람이 있다는 전제이고 별 관심 없으면서 동의하는 마음이나 내키지 않는 복종과는 달리 추종자들의 열성적인 헌신을 가져오도록 하는 영향력의 행사를 리더십으로 정의하자는 뜻이고 이는 리더십의 의미를 국한하려는 입장이 강하다. 그러나 리더십은 사회체제 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며 그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사회적 과정으로 보게 되면 리더십은 개인의 자질이라기보다는 조직의 과정이다. 리더십은 사람들이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이고 열성적으로 노력하도록 그들에게 주는 영향력, 기술 또는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을 4강으로 올리게 한 리더십은 감독인 히딩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독과 선수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 역동적 상호 작용이 주요 관심사가 되어야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자발적이고 열성적으로 노력하도록 그들에게 영향력을 준 리더십이고 사회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여건과 환경 또한 그들에게 미친 영향력일 것이다. 자발적인 노력 이끌어 내는 영향력 리더십은 어떤 특정한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감독을 포함한 선수 모두에게 더 나아가 축구협회 관계자 모두가 구성원인 동시에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영향을 끼친 요인들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리더십은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참가하는 모두에게 필요한 영향력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리더십에 대한 이론적 연구들의 경향을 보면 사회 심리학적 접근으로 특성이론과 상황이론이 있다. 특성이론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지닌 특성을 중심으로 리더십을 연구해온 이론으로 대인관계와 같은 사회적 측면에 대한 고려 없이 개인의 인성특성에 초점을 두고 설명한 초기 이론이다. 상황이론은 지도자로서의 일정한 자질이나 특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도자가 등장하게 되는 상황을 분석하여 리더십을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1950년대 이후 리더십에 대한 행동과학적 접근은 리더가 어떠한 특성을 가진 사람이냐보다 리더가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어 리더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 연구였다. 그러나 리더십에 대한 행동이론적 접근은 리더십을 조직성과나 조직성원의 만족도 같은 효과성 차원과는 연결시키지 못하였다. 따라서 보다 기술적이며 설명력을 가진 대안으로 상황중심이론적 접근이 시도되었다. 그것은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으로 특성, 상황, 행동, 효과성 사이의 상호관련성을 설명한다. 1990년 초 변형적(transformational) 리더십 이론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변형적 리더십은 교섭적, 정치적 리더와 같은 형태로 예를 들 수 있으며 투표를 하는 일이나 선거운동에 기부하는 것 등 추종자들이 제공한 것에 대하여 보상함으로서 그들의 동기를 유발시킨다. 변형적 리더십은 요구되는 행동을 위하여 리더와 구성원간에 동기를 교환하는 것이다. 변형 리더들은 조직의 목표를 위해 위원회를 만들고 추종자가 이러한 목표를 완수하도록 격려한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추종자들이 자신과 타인의 개발을 위해 책임지도록 만들어 주고 추종자가 리더가 되고 리더가 행위자가 되어 결국 조직의 변형을 도모한다.[PAGE BREAK] 이와 같이 리더십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오늘날 리더십에 관한 문제는 리더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뿐 만 아니라 모든 조직의 관리자들이 광범위하게 관심을 갖는 주제이다. 리더십의 문제는 넓게는 국가통치로부터 좁게는 소규모집단의 관리까지 광범위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리더십에 관심을 갖는 주요분야는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효과적인 조직관리에 필요한 것이다. 즉 무엇이 어떤 사람을 효과적인 리더로 만드는가, 그리고 효과적인 리더는 어떠한 능력을 갖추어야하며 관리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등이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리더십을 집단과정 또는 사회과정이라고 보는 측면에서 리더십은 변화와 도전에 직면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획득해야할 생활기술이다. 또한 리더십은 사회·문화적 요인에 크게 영향받는다. 이는 집단과 문화가 달라짐에 따라 리더십에 대한 개념과 구성요소가 달라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리더십에 대한 정의도 그 문화를 떠나서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청소년에게 리더십은 생활의 기술 대통령에게 필요한 리더십과 축구감독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같을 수 없다. 얼마 전 여성계의 지지와 일부 정치권이 환영하는 가운데 한국 최초의 여성 총리서리가 지명되고 인사청문회가 열렸으나 인준이 부결되었다. 다른 정치적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부결된 근본 원인은 지도층이 가져야할 덕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올바른 역사인식과 도덕성은 책임 있는 고위공직자 선출에 있어 일차적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사회전체의 기강과 가치관의 측면에서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인 히딩크 감독이 부인을 두고 젊은 애인과 공공연하게 동행하는 모습을 보이자 일부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꿩 잡는 것이 매'라고 월드컵에서 4강을 이룩한 뒤 당당하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가 그의 능력과 똑같은 수준의 리더십을 갖는 한국사람이 대표팀의 감독이었다면 선수들과 국민들의 신뢰를 받으며 4강에 오를 수 있었을까는 의문이다. 교육은 사람이 대상이고 지식뿐만 아니라 가치를 내용으로 하고 인성의 개발을 목적으로 한다. 당연히 교사의 리더십과 정치인의 리더십은 다르다. 또한 청소년의 리더십과 기업인의 리더십은 다르다. 청소년의 잠재능력의 개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청소년지도 및 청소년개발 교육(youth development education)이 하나의 독특한 학문영역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청소년지도 및 청소년개발 교육은 청소년의 잠재적 능력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이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기술(social skills) 혹은 생활기술(life skills)의 개발을 강조한다. 이러한 생활기술 중 리더십 기능과 관련된 리더십생활기술은 청소년기에 요구되는 발달과업 중 매우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그것은 리더십 발달을 위한 결정적인 시기가 청소년기이며 청소년기에 리더십을 개발하는 것이 청소년들의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원만하고 진취적인 생활을 이루어가고 위험 행동을 예방하며 성공적인 성인기를 위한 도약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리더십 생활기술에 대한 학자들의 개념 정의는 대체로 생활기술의 하위영역 중에서 리더십과 관련한 자아(self)에 대한 기술과 조직이나 집단과 관련된 기술들을 강조하고 있다. 생활기술(life skill)은 변화와 도전에 직면한 상호의존적이며 복합적인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유용하고 필요한 공통된 핵심 수단을 말한다. 이를 감안하면 리더십 생활기술은 조직의 관리나 기업에서의 경영과 관련된 관리기술로서의 리더십이 아닌 실제 사회생활 속에서 발휘되는 리더십으로 청소년에게 있어서는 청소년들이 직면한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현재의 사회에 적응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문제를 예견 방지하여 청소년의 정신적 건강을 도모하고 사회적 역할을 키워나가는데 필요한 기술이라 하겠다. 리더십 생활기술은 생활기술 중에 자기 평가적이고 조직과 관련된 실제 생활 속에서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도록 영향 지우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기술을 지칭한다. 몇몇의 학자들의 의견을 정리하면 리더십 생활기술의 하위 요소들을 살펴보면 커뮤니케이션, 의사결정, 인간관계, 학습능력, 조직관리, 자기이해, 집단활동기술 등과 같은 영역들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기술인 한편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리더십 기술이기도 하다. 누구나 경험적 학습으로 터득 가능 리더십은 바라보는 관점에 의하여 특히 문화적 영향이나 세대적 차이에 의하여 상이하게 정의되어 질 수 있으며 리더십 생활기술의 요인에 관한 논의에도 크게 영향 을 줄 수 있다. 리더십이 발휘되는 장은 조직이나 사회처럼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라야 한다. 그곳엔 다양한 사회적 과정이 개입하게된다. 어느 조직에서든지 만병통치약 같은 하나의 리더십은 없다. 다양한 상황이 효과적인 리더십에 영향을 준다. 리더십의 효과성은 리더의 특징과 행동 및 상황적 변수 사이에 적합성에 달려있다. 주어진 문화적 환경과 조직의 다양한 모습에서 리더십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성인과 청소년의 세대차이에서도 그들의 다른 관심 속에서 리더십을 다르게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에게 있어서 리더십은 그들의 사회의 구성원의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하며 집단활동의 과정 속에서 터득되는 생활기술이다.[PAGE BREAK] 리더십생활기술이 청소년활동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청소년은 청소년기가 갖는 신체적, 인지적,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는 발달과정 상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과 청소년활동이 대부분 또래끼리의 집단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야 한다. Linden과 Fertman은 청소년기에 리더십을 개발하는 것이 청소년들의 자아존중감을 높이고 성공적인 성인기를 위한 도약의 발판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같은 민주사회는 개인적 카리스마와 초인적 능력을 가진 영웅적 리더와 제도적·관습적 권위에 의지하는 리더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구성원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모든 일에 함께 참여하고 친구처럼 동료처럼 이끌어주는 리더를 원한다. 리더십은 일상생활 속에서 발휘될 수 있는 리더십으로 누구나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획득할 수 잇는 리더십이다. 다시 말하면 리더십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나는 것도 그리고 특정인이 소유하는 것도 아닌,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경험을 통하여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자 기술로서 직접적인 참여와 체험적·경험적인 학습을 통하여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영역의 공존과 각기 다른 주장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데서 그 타당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정된 개념으로 사용하던 리더십을 재 규정할 필요가 있다. 소수의 강한 영향력을 가진 힘있는 리더십에 의존하는 약한 소외된 추종자가 아니라 구성원 다수가 서로 연결된 강한 개인을 생산하는 구성원 모두의 리더십이 이상이다. 청소년활동에 있어서 핵심적인 과제는 청소년 자신들의 상호관계와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청소년 리더십'의 구축일 것이다. 그 리더십이야말로 청소년들의 주체적 집단활동의 구심점이 되며 기성세대와 차이가 나는 청소년들의 새로운 가치관이나 문화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리더십은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아끼고 더불어 살아가는 나와 같은 다른 인격체인 타인을 존중하는 가운데 생활기술로서 개발되어야 한다.
강성오 /서울 청파초 교감·한국교육평가관리연구회 회장 1. 들어가는 말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사람들의 마인드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경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한층 불꽃 튀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학부모들은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는 것을 최대의 과제로 삼고 공교육을 아예 외면하고 있으며 학원이나 '족집게 과외'를 통해 '시험 보는 테크닉'만을 지향하고 있다. 의대나 한의대, 치대, 교대 등 당장 취업이나 돈벌이가 괜찮은 대학을 가는 것이 지상 목표이고 인성이나 예절 교육은 안중에도 없다. 결국 교육이 설 곳이 없어진 것이다. 물론 교육당국이 다양한 교육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교육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교육개혁을 시도하며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로서 대변되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교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그 어느 때보다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교사의 태도 변화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교사상과 이에 따른 교사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 여기에 맞추어 갖추어야 할 교사의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 교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나 '가르치는 것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요, 배운다는 것은 성실을 가슴에 새기는 것'(김정아, 사랑과 존경, 서울독립문초등학교 교사)이라고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신약성서 히브리서 11장 1절)라고 했다. 그렇다. 교사는 금방 그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교육적 노력에 대한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사는 인간이 바라는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은 이러한 믿음을 실상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여기에 교사가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 비전을 제시하여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는 성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사려 깊은 눈으로 자기 자신을 살피면서 자신이 평소에 무엇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고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모르는 것을 알아보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 아는 것에서 희열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넓은 생각과 긴 안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교사는 오고가는 것이 순수해야 한다. 남을 진심으로 칭찬해 주고 기쁨과 함께 슬픔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운 눈매, 인자한 미소,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으로서 주는 일을 인색하지 않고 사랑하는 일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오직 바른 길을 생명처럼 여기며 의(義)로움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아이들의 가슴을 잔잔하게 감동으로 데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늘 범사에 감사할 줄 알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3. 학교 환경은 어떻게 변화하나 이제 학교는 변화와 혁신 그리고 위기에 대처하는 난국돌파의 리더십, 수평적 조직의 운영으로 조직원의 자발적인 참여를 촉진하는 리더십,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는 다수의 리더십, 네트워크 공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이버 리더십이 강조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리더십 패러다임의 전환과 함께 교사의 의식과 경영 방향 또한 다음과 같이 새롭게 재정립되어야 한다.[PAGE BREAK] 가. 자율성과 책무성 강조되는 교실 최근 교사 중심체제, 학교 자율 경영제 등의 용어로 지칭되고 있는 학교 단위 책임 경영제가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에게도 학급운영에 있어서 더 많은 자율성이 부여되고 이와 동시에 책무성이 강조되고 있다. 나. 아이디얼 리더를 요구하는 사회 과거처럼 전통과 권위적인 태도로 단순히 학급을 관리하는 관리자(manager)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학급 경영을 하기 어렵다. 지도자(leader)로서의 교사는 현실에 도전하고 변화를 선호하여 변화의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 학급 조직의 문제를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요구되는지 늘 탐구해야만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귀 기울이며 이것을 실제 현장에 적용해 보는 과감성 있는 아이디얼 리더여야 한다. 다. 애정을 바탕으로 한 인간 관계 학교는 인간개발이라는 전문적 과업을 수행하는 곳이다. 학교 조직은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교실마다 교사의 창의성과 교육애가 넘칠 때 자율적이고 진취적인 인간 교육이 이루어진다. 진정한 인간 교육이 성공하려면 교사와 학생간에 먼저 신뢰를 바탕으로 원만한 인간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학생 개개인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줄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창출될 수 있고 급우들간의 협력 관계도 강화된다. 라. 자율과 개방 중심의 학급 경영 교육은 외부의 간섭이나 부당한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고도의 창의적인 활동이므로 교사의 전문적 책임 하에서 학습이 자율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학급은 자율성을 회복하여 개성 있게 움직여야 하며 교사들의 전문적 자율성도 함께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마. 열린 공간으로의 교실 환경 교사는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는 인내력과 성실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열린 마음을 바탕으로 해서 창의적인 제안을 적극 수용할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만 학생들에게서도 창의적인 사고가 나올 수 있다.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에 기대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알며 가능성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심어줄 때 학생은 어떠한 과업에 열성으로 임한다. 4. 교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훌륭한 사람 뒤에는 언제나 훌륭한 교사가 있다고 한다. 이는 훌륭한 교사의 노력과 희생이 곧 훌륭한 사람의 인격과 능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교사의 덕목이란 어떤 것일까? 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전문가 교사는 추상적인 덕목은 물론 구체적인 지식에서도 확신에 차 있어야 하며 자기의 전공에 열성적이어야 한다. 자기 전공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때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학교는 학문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자기 전공에 대한 열성과 확신이 없다면 자기 일을 사랑 할 수 없는 것이다. 전문가로서의 자신과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학생을 지도할 때 교사는 존경과 신뢰를 받게 된다. 나. 학생 능력을 알고 자신감 줘야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일정 수준의 능력이 있고 그것은 개인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하게 나타난다. 또 사람의 소질과 능력은 학문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방적인 기준에 의하여 사람을 한 가지 잣대로 매김 하지 않고 그 사람만이 가진 독특한 능력과 소질, 그 사람 아니면 할 수 없는 영재성(이를 그 사람의 excellence라고 부른다)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하여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다. 학생에게 최고를 요구할 수 있어야 훌륭한 교사는 학생이 수용할 수 있는 이상(비전)을 주고 그 이상에 도달할 수 있도록 능력을 최대로 발휘케 해 주는 교사이다. 목표를 높이 올릴수록 학생들은 그것을 뛰어 넘는 시도를 하게 되고 또 그것을 뛰어 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vision)을 제시해 주고 조절하는 것이 교사의 능력이다. 교사는 가능하지 않은 이상(목표)을 설정(제시)해서도 안되고 또 너무 낮게 이상을 잡아서도 안 된다. 라. 배우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가짐 만일 모르는 것이 나타나면 '함께 찾아보는' 교사가 더 매력적이다. 인간은 배우고 노력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같은 일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곧 가르치는 것이다. 가르칠 때 모르는 것이 나타나면 다시 배우는 자세로 찾아보고 모르는 것을 학생들과 함께 풀어보면 스스로 깨닫게 된다. 마. 학생의 욕구를 알아채는 직관력 교육은 똑같은 원리가 모든 학생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좋은 교사는 학급이 아니라 학급 내의 개개인을 이끌고 개개인의 개성과 소질과 적성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교사이다. 보편적인 교육적 원리를 기초로 한 구체적인 기준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리 적용되어야 한다. 교사는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학생 각자에게 처우(處遇)해야 한다. [PAGE BREAK]바. 전문가로서 진정한 실력 갖춰야 군나 미르달(G. Mirdal 1937∼1995, 199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그의 유명한 저서 아시안 드라마(Asian Drama)에서 국력의 상징을 군사력, 경제력, 정치력이라고 했다. 이를 개인에게 비유하면 체력(건강), 능력(작은 의미의 실력), 그리고 양심(따뜻하고 떳떳한 마음)이 될 것이다. 아무리 학생들이 재미있는 교사를 좋아한다 해도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한낱 코미디언에 불과하다. 날로 변화하고 발전하여 사람들의 생활 수준과 삶의 여건이 바뀌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교사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전문가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다. 교사를 인기 있고 존경스럽게 하는 것은 실력이다. 사. 학생을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야 우리 사회는 빈부 격차와 가정 형편 등으로 인하여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소년소녀 가장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는 아이들도 많다. 이러한 불우한 학생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가슴 훈훈한 애정을 베풀어줌으로써 교사는 어디까지나 주는 사람이라는 희생과 봉사정신을 아끼지 않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 외에도 교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많을 것이다. 사명과 긍지로 임하는 진지한 태도, 사랑과 대화로 지도하는 성실한 마음, 그리고 옳고 그른 것을 분명히 하고 모든 것을 공명정대하게 실천함으로써 정의가 어떤 것인가를 확실하게 가르치는 일 등등.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교사가 갖추어야 할 추상적이고 필요한 요건은 될지언정 구체적이고 충분한 요건은 아니다. 5. 교사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새로운 시대의 학교 문화를 이끌기 위해 교사는 학급을 관리하는 '관리자(manager)'가 아니라 전문적 자질과 경영 철학을 지닌 '지도자(leader)'로서 학급을 경영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생각된다. 가. 과거와 다른 학급 문화를 창조해야 지도자는 집단 성원들의 행동 변화를 이룩하는 사람이라고 정의 할 때 교사는 환경 변화의 특징과 내용을 이해하고 교육 관련 정책을 분석하여 중·장기를 내다 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통찰력과 판단력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끊임없는 연수와 폭넓은 독서가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나.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자세 필요 학급의 주체는 학생이고 학생을 위하여 교사가 있다. 따라서 교사는 의사 결정과정에 있어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자세를 지양하고 학생의 창의적인 의견과 아이디어를 최대한 수렴 반영하고 유도해 나가야 한다. 일방적인 강요와 명령이 아닌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 문화를 형성하여 학생들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다. 권위를 회복하는 학급 경영을 해야 교사는 권위를 버려야 하는 한편 잃어버린 교육적 권위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사는 권위주의를 강조하는 풍토에서 권위가 살아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소신 있게 학급 교육의 전 과정을 리드하고 학생들이 알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자신 있게 제시함으로써 자연 발생적인 존경심을 유발하게 하여야 한다. 교사는 자신이 지시자·명령자로서 보다는 학급 경영을 위한 봉사자라는 인식을 항상 가져야 한다. 라. 자발적인 학생참여 위해 힘써야 교사는 팀웍 구축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교육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필요하다면 위험까지도 감수한다. 학급이 늘 새로워지도록 기존의 관행을 과감하게 타파하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학생들 모두를 교육활동의 주체로서 존중하고 인정하며 사기를 북돋아 줌으로써 학급은 즐겁고 생동감 넘치는 교육의 장이 되게 한다. 마. 인간 존중의 학급경영 실천해야 교사가 학생들의 활동에 일일이 개입하는 것은 지도가 아니라 간섭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율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소질과 적성능력을 개발하고 진로를 도와주며 치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가급적 대화의 기회를 자주 갖는 등 활기찬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또한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 주인의식을 고취시켜서 자율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학생들이 민주적 생활태도를 형성하고 건전한 민주시민 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여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그들의 의사를 제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여 스스로가 학급경영의 주체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 집단사고 과정을 중시하는 자세 탁월한 식견과 판단력을 가진 교사라 할지라도 독불장군처럼 혼자 결정하고 발표하고 추진을 강요한다면 학생들은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집단사고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상당한 애로를 느끼게 하지만 잃는 것 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고 학급 분위기도 활력을 갖게되는 좋은 의사결정 과정이 된다. 사. 공동이익을 위해 힘쓰도록 조장 다양한 학생들 사이에 있어서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학습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교육목적과 경영방침을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교사가 모범적인 행동을 보임으로서 구성원의 폭넓은 참여를 조장할 수 있을 것이다.[PAGE BREAK]아. 변화의 촉진자로서의 역할 수행 새로운 리더로서의 교사는 목표 달성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학생들의 사고, 가치, 행동변화에 많은 관심을 보일 뿐만 아니라 현실에 도전하고 변화를 선호하며 혁신을 추구하는 변화의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 자. 학생·학부모와의 만남을 즐겨야 교사는 학생을 사랑하고 학생들과 면담을 즐거워하고 학생들이 말하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귀담아 듣고 실행에 옮길 줄 아는 세심한 배려와 그들의 신념과 이상을 펼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성어린 지도에 골몰하는 자상함이 있어야 한다. 한편 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자신의 입장을 속 시원하게 밝혀야 한다. 교사는 대화의 창구를 항시 개방하여 대화에 응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한다. 교사야말로 교육에 관해서는 최고의 조언자요, 정보제공자 여야 한다. 6. 맺는 말 교육에 관한 한 우리들처럼 돈과 시간, 열정을 쏟아 붓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지난해 우리 학부모들이 부담한 교육비는 국내총생산(GDP) 8.4%에 해당하는 39조74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토록 엄청난 국부를 쏟아 붓고 있지만 우리 교육시스템이 배출하는 인재들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교사는 교육의 성패를 좌우한다. 따라서 교사의 리더로서의 결격은 그 자신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국운을 좌우한다. 최근 다이앤 래비치(Daine Ravitchi, 콜럼비아·뉴욕대 교수, 브르킹스연구소 연구위원)는 그의 저서 '레프트 백(LEFT BACK)'에서 지난 100년간 온갖 교육개혁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항상 '뒤에 처져 있다'고 했다. 그는 교육에서 '무슨무슨 운동'이란 교육을 망치는 전염병일 수도 있다고 하면서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훌륭한 교사'이라고 단언했다. 따라서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을 바꾸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새로운 교육방법과 기술은 교육을 보완할 뿐이고 결코 학급을 대신하거나 교사를 대체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렇다. 교육의 핵심은 교사이다. 교사는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마 이 세상의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교사만이 우리 교육의 유일한 희망이고 병들어 썩어 가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온갖 부패로 발전보다는 퇴보의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국가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양승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교육 '재구조화'의 필요성 커져 20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지식정보화사회로의 진입이 가시화 되면서 소위 선진국을 중심으로 국가발전에서의 교육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더욱 강화되었고 교육개혁에 대한 사회 전반의 요구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특히 1980년대 이후는 가히 교육개혁의 시대라고 할만큼 전 지구촌 곳곳에서 교육개혁이 앞 다투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0년대 들어 지금까지 추진되어온 교육개혁의 성과에 대한 의문과 어떤 학교가 과연 효과적인 학교인가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현장 연구 결과가 집약되면서 세계 교육계와 산업계에서 학교의 급진적 변형을 요구하는 집단이 나타나 교육 및 학교 재구조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동안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진 다양한 정책들은 여러 차원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갱신(Renewal)은 조직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잘 하도록 돕는 활동 즉 '새롭게 하기' 차원이고, 개혁(Reform)은 조직으로 하여금 새로운 환경과 요구에 부응하여 기능할 수 있도록 현존하는 절차와 규정을 바꾸는 활동 즉 '고쳐하기' 차원이다. 반면에 재구조화(Restructure)는 학생의 다양한 교수-학습 활동을 개선하기 위하여 조직 내적으로나 조직과 외부 환경과의 관계에 내포된 근본적인 가정, 관행, 관계 등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틀 다시 짜기'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재구조화의 특성은 첫째는 과거 교육활동에 내재된 근본적인 가정이 도전을 받는다는 것, 둘째는 교원·학생·학부모·교육행정가 등 교육활동 참여자의 역할을 재구조화 하는 것, 셋째는 가장 주요한 핵심요소로서 모든 학생의 다양한 학습 성취도 향상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논의를 공유하고 이러한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역할과 관행을 총체적으로 재구조화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본연의 교육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모든 학습자의 다양한 학습활동의 효과성을 제고시키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 동안 우리의 학교가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성취보다는 관리와 행사위주로 운영되어왔다는 비판에 대해 새겨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구조의 틀을 바꾸지 않은 채 부분 수정이나 보태기 차원의 개혁이 수행되어 옴에 따라 개혁은 항상 대증요법의 특성을 갖게 되었으며 개혁의 목표는 주로 교육의 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측면이나 요소를 바꾸는데 두어져 왔다. 그러나 우리의 현 교육적 상황을 되짚어 보고 미래 세계 체제 및 교육 환경변화에 처한 한국 교육의 비전을 조망해 볼 때 이제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한 재구조화를 이루어야 할 때이다. 교육활동의 파트너인 학부모 교육은 학교만의 기능이 아니라 교육공동체의 몫이다. 학부모, 고용주, 지역사회 인사들이 그 지역사회의 교육에 관한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권리와 함께 교육을 지원하고 모니터 할 책무도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는 학부모와 지역인사를 교육활동에서 동등한 파트너로 인지하고 학습자가 성장하는 가운데 만족도가 높은 경쟁력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산업계와 학교간의 동반자적 관계 구축도 필요하다. 이러한 세계적 요구는 미래 교육체제 발전의 추진력이 교육수요자 중심에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리더십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리더는 물론 교장이다. 그러나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아무리 혜안을 가진 특출난 교장이라고 하더라도 학생 개개인의 교육 요구에 부응하면서 지역과 세계 교육 환경 변화를 꿰뚫는 동시에 교육성과에 대한 책무성을 가지고 학생 모두에게 적합하고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시대는 특히 학부모가 교육의 리더로서 그 몫을 해내기를 요구하고 있다. 리더란 교육을 주어진 상황에서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수용자가 아닌, 교육 현실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도록 문제해결과정에 동참하면서 교육 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는 교육의 주체를 의미한다.[PAGE BREAK] 우리 대한민국의 학부모가 자녀에 대한 관심과 학교에 대한 열의가(학교열) 대단히 높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문제는 학습 또는 교육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일류대학, 성적 좋은 학교에 자녀를 들여보내기 위한 열의로 치우친다는 것이다. 흔히들 학부모가 자녀의 교육에만 관심을 갖는 자기 자녀위주의 개인적 교육열을 비판하면서 사회의 부모가 되자고 외친다. 그러나 학부모의 자녀 학교열을 교육열로만 바꾸어도 사회의 부모가 되는 일에 열 걸음 중 아홉 걸음은 다가가는 셈이 될 수 있다. 학부모는 이제 교육을 대학 입학이나 출세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도구적 교육관과 학교열에서 벗어나 자녀의 머리 몸 마음의 성장을 돕는 교육 그 자체에 관심을 두어 교육발전을 위한 새로운 교육열을 가져야한다. 학부모는 누구보다도 자녀와 가장 오랜시간 가장 가까이 에서 접하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과 요구 그리고 소질과 적성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게 된다. 따라서 학부모는 이러한 정보를 교원과 공유하도록 하고 또래 집단을 동시에 다수 접하는 교원이 교수-학습활동 과정에서 이러한 정보를 참고하여 전문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협동적 과정에 참여하여야 한다. 학부모와 교원은 학습자가 소질과 적성, 요구, 성향, 능력에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함께 노력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동반자가 되려면 학부모는 자녀교육에 관심을 갖고 변화를 관찰해야 하며 학교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효과적인지, 학교의 교육환경이 학습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떤지 등 자녀를 비롯한 교육 내·외적인 환경에 대해서도 섬세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동반자로서의 학부모는 최상의 교육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수용자로서의 역할 벗어나야 사실 지금까지 학부모는 대체로 주어진 학교교육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자로서의 역할에 그쳤기 때문에 학교 교육방침, 교육내용, 교수-학습 방법 등에 대하여 이해하고 관심을 기울여 교원들과 논의하고 건의할 것은 건의하기보다 학교 이외의 다른 사교육기관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교육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교육요구를 채우면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교육기관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에는 소홀했다. 다시 말해 학부모는 주어진 학교교육 그대로를 받아드리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을 주로 학교밖에 맡기려 함으로써 공교육 자체의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역량을 결집시키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학교 밖에서의 교육도 학습자의 재능에 맞는 수준별 교육이 아니라 학교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데 쏠려 우리의 성장세대는 학교 안에서 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학습의 즐거움을 갖지 못한 채 이중고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부쩍 리더라는 용어가 사회 여기저기에서 자주 쓰인다. 리더십 있는 리더의 역할이 한 조직의 성취와 흥망성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카리스마 있는 한사람의 보스보다는 다수의 중간 리더가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리더십이란 지도자인 리더가 조직의 목적을 효율적, 효과적, 효능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조직구성원의 협동적 노력을 유도하고 촉진하는 기술 또는 영향력이다. 학부모가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학부모회 회장이 되어야 한다거나 학교운영위원회를 비롯한 학교내 단체의 위원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학부모는 스스로 노력할 뿐만 아니라 이웃 주변 학부모들과 연계를 통하여 학습자의 성장을 위하여 제안하고 지원하며 모니터링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기반사회의 학부모는 자식 볼모로 맡긴 죄인이나 치맛바람, 바짓바람 펄럭이는 대리만족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자녀들의 성장에 기여하는 리더로서의 역할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보스는 조직원을 내모는 반면 리더는 이들을 이끈다. 보스는 권위에 의존하는 반면 리더는 협동에 의지한다. 보스는 공포를 조성하는 반면 리더는 신뢰를 조성한다. 보스는 어떻게 하는지 아는 반면 리더는 어떻게 하는지 보여준다. 보스는 일을 지루하게 만들지만 리더는 일을 재미있게 만든다. 학부모는 교육공동체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리더로서의 자질 발휘가 가능하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동시에 주변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리더는 혼자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합심해서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교사나 자녀와의 교육 논의 공유, 다른 학부모들과의 연대노력 등 학부모에게 새로운 역할 도전이 던져졌다. 편협한 학교열에 머물러 있던 방관자에서 벗어나서 교육개혁의 주체로서 리더로서의 학부모로의 역할 전환에 전 사회가 동참할 때가 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학부모가 관행의 틀을 벗고 진정한 교육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학부모가 지녀야 할 리더십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이것은 어떻게 함양시킬 수 있는 것인가? [PAGE BREAK]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 중요 학부모가 지녀야 할 리더로서의 자질 중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은 현재 문제가 되는 교육 쟁점 아젠다를 나의 노력, 우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다. 학부모로서의 노력이 작지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은 학부모 스스로가 리더로서의 능력을 갖추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불합리한 학교의 관행이나 수요자로서 이해가 안 되는 학교방침과 규칙, 불만족스러운 교육결과 등에 대하여 문의하고 논의할 수 있는 교육청구권에 대한 인식도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학부모의 신념과 새로운 학교 문화가 어우러질 때 학교 외부에 의존하여 문제를 풀기보다는 학교 내부에서 해결하고자하는 역동성이 발현되어 학교위기관리능력이 향상되고 학교 개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학부모 스스로가 학교에 대한 주인의식 없이 내가 해서는 학교가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포자기적인 마음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희망이 있는 마음가짐과 생각이 분명 조금씩 학교 내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학부모가 리더로서 지녀야 할 중요한 자질은 바른 교육관과 교육철학을 갖는 것이다. 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는 식으로 접근하여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하겠다는 생각으로는 학습자의 소질과 적성 요구가 다양한 상황에서 적합한 교육을 찾아낼 수도, 요구할 수도, 제공할 수도 없다. 리더로서 학부모는 책임져야 할 고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그 부피가 커짐을 실감하지만 이러한 고민을 떨쳐내기보다는 고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학부모들과 다른 교육공동체 구성원들과 기꺼이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세 번째 학부모가 지녀야 할 리더십은 학부모 스스로 솔선 수범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학부모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자녀와 같이 배운다면 자녀 또한 교육을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닌 부모와 함께 배우며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함께 배우며 즐기는 교육은 부모와 자녀간에 교육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이러한 공감대는 의사소통의 통로를 열어준다. 기성세대가 느끼지 못하는 성장세대의 학교에 대한 불만과 불신 등 이제까지 또래끼리만 고민해 온 여러 문제들을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교육 효과성 저해의 요인이 될 수 있으나 기성세대에게는 익숙한 관행이라 민감하지 못했던 학교교육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제공된다. 이런 정보를 가진 학부모는 교원과 학생의 매개가 되어 성장세대의 고민과 시각을 학교에 알려 학교교육의 동반자로서 학교교육의 효과성 증진에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학부모 리더십은 저절로 개발되는 것은 아니다. 평생학습 차원에서 공식적 비공식적인 다양한 방법의 학부모 교육과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 기회 확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학부모라면 모두 다 안고 있는 고민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즉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주위에 뜻이 있는 학부모들과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공론화 하는 것 자체가 학부모 리더십 훈련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웃에 사는 인접 지역에 거주하는 학부모들과 자신의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사와 의문점을 털어놓고 차 한잔 나누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자발적인 학습 조직을 구성할 수 있다. 정보 공유하고 공론화 거쳐야 처음에는 각자 자신의 자녀와 학교에 대한 관심이 동기가 되어 학습조직이 결성되었겠으나 모임에 따라서는 그 횟수가 거듭될수록 관심의 폭이 내 자녀에서 우리 자녀로, 일류 학교에서 좋은 교육으로, 그리고 우리 지역사회로 번져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적극적이고 열린 사고의 학부모가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학부모가 거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학습조직을 통하여서는 자녀들의 교육에 앞서 각자 부모 자신의 성장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 훈련이나 감수성 훈련, 자아개념 검사, 자신과 남의 마음 읽기 등의 여러 가지 훈련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여러 사람 가운데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도 성찰할 수 있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성찰은 자녀와의 대화법의 문제를 인식하게 할 수 있으며 부모교육 등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동기를 부여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학습조직은 자신의 이야기보다 주변 학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머문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으므로 새로운 문제의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다른 학부모들의 다양한 학교 참여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 교육활동에 성공적으로 참여하는 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면서 자신의 시야를 넓혀 갈 수 있다. 시민사회에서 자발성의 힘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이제는 학부모가 보여 줄 때가 되었다. 이러한 자발적인 노력 자체가 리더로서의 학부모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우리 교육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다. 이미 학부모들 사이에서의 품앗이 과외도 생겼다. 좋은 부모가 되고자하는 사람들도 갖가지 이름으로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학습조직에서 교육 쟁점에 대한 토론회나 캠페인 활동을 기획한다면 학교 교육 현장에 대한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러한 학습조직에의 지속적인 참여를 통해서 그 동안 교육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갖지 못한 채 인기 좋은 학원을 찾아다니기에 여념이 없었던 학부모는 학습조직, 학습 공동체를 통 [PAGE BREAK] 이외에도 대학이나 지역 평생교육기관, 지역교육청 시민단체 등에서 개설하는 전문적인 학부모의 리더십 향상 프로그램을 통해서 리더로서의 학부모 자질을 함양할 수 있다. 모든 학부모를 위한 평생 학습 활동으로서 부모교육이 보다 광범하게 확산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내에서의 학부모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일터의 학부모를 위해서는 이미 잘 구축된 산업체 연수 인프라를 활용하여 학부모 교육프로그램을 가동한다면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관심은 많지만 일과 중 일터를 벗어나서 학부모 리더십 훈련에 참여하기가 여의치 않았던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이제는 학부모가 나서야 할 때 또한 학교교육에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직접적인 체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물론 지금까지처럼 학부모들의 후원과 봉사차원의 참여도 필요하다. 바자회, 교통지도, 도서실 사서 봉사, 급식 봉사, 시험감독 등등 우리의 학교는 지금까지 특히 어머니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왔으며 이를 주로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은 반드시 자발성을 가져야 한다. 의무로서 특정집단에게만 기회를 주거나 돌아가면서 당번식으로 하여 부담을 주어서는 곤란하다. 한 걸음 나아가 학교 교육활동과 관련된 제안을 하거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최근에는 학교운영위원회 제도가 도입되어 교원, 학부모, 지역사회인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교육활동 전반을 심의하고 자문하는 기회를 갖게되었다. 시범실시 기간을 포함하여 도입 8년째를 맞는 학교운영위원회는 지역과 학교에 따라서 차이가 있으나 아직은 초기 도입단계로서 활성화되지 못한 경우가 드물지 않은 실정이다. 그 동안 교육청을 중심으로 학교운영위원에 대한 연수가 행해져 왔고 교육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반 학부모 대상 홍보활동도 이루어져 왔으나 아직도 학교운영위원회의 기능과 역할 등 구체적인 이해가 미흡한 편이며 일부에서는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권 보유 등으로 인하여 정치성이 짙어져 우려가 확산되기도 하였다. 이 제도의 성공여부도 교육공동체의 몫이며 학부모의 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2002년 현재 대한민국 학교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학교교육의 질 제고를 위한 교육재구조화는 소수의 교육학자, 정치인들이 이루어내는 것이 분명 아니다. 교육만족도도 소수의 교원이나 정부가 절치 부심해서 높아지기는 어렵다. 학교교육현장에 새바람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교육공동체 모두가 교육개혁의 주체로 동참하여야 하고 그 중심에 학부모가 서야한다. 학부모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녀들의 몸, 마음, 머리가 균형 있게 성장하는 것이고 나아가 그들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하여 이제는 학부모가 나서야 한다. 세계는 리더로서의 학부모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권영정 /충북 충주 야동초 교장 관행에서 탈피하는 용기 필요 약 6500만년 전 중생대말 백악기에 사라져버린 공룡, 그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공룡의 전형인 평균 체중 30톤의 브론토자우르스는 다른 공룡 무리들보다 더 일찍 없어져 버렸다 한다. 그 이유가 운석에 의한 기상의 급변으로 소멸되었다는 추측도 있지만 흥미 있는 일설에 의하면 이 브론토자우르스는 특히 신경이 둔해서 꼬리를 물려 아픔을 느끼는데 무려 20초나 걸렸다고 한다. 이런 형편이었기 때문에 힘이 약한 작은 동물에게 먹혀버려 없어졌다는 것이다. 개인이나 조직체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 동물처럼 변화에 무디어 외부로부터 자극에 대한 발빠른 반응(변화)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냉엄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운 일이다. 위와 같은 경우는 무한하다. 영하 20도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는 보리는 유전자를 자체적으로 생성해내며 일부 나비류의 애벌레는 놀랍게도 '글리세린'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월동기에도 살아 남는다. 이것이 대자연의 섭리에 대한 순응이며 대응이다. 플라타너스의 나무 체온도 광합성작용이 왕성한 여름철에는 24도 가까이 올라갔다가 추운 겨울에는 영하 5도까지 내려간다. 그러니까 자연기상에 따라 변온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CEO(최고경영자)는 근대적 산업혁명에 물든 관념을 떨쳐버리고 자율권을 행사하기 위한 시기를 포착하자. 과거에 아무리 소중하고 유용했던지 간에 묵은 이념, 고질화된 관행에서 탈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통과 보수가 우세했던 일본의 교육도 최근에는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학교 선택제'다. 전적으로 학교장의 경영에 의해 입학생의 적고 많음이 좌지우지되고 있으니 여간 골머리가 아픈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교육내용, 교육환경의 특장점을 세일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 불똥이 한국에 튀지 않는다고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모한 고집은 스스로를 파산 내고 만다. 경영체제의 일면에서 개미나 벌의 사회는 특별나다. 총수(總帥)인 왕(王)을 구심점으로 맡은바 직무에 충실하다. 생존하는데 필요한 사태가 일어나면 개별로 언제고 왕에게 중요한 정보를 직접 보고한다. 흐트러짐 없는 이 수평적 사회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인간 조직 사회가 평사원, 대리, 계장, 과장, 부장, 국장, 최종결재의 삼각사다리를 꾸며놓고 스스로를 구속당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재와 협조를 받는 것은 주로 정보습득 처리, 공동사고의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다는 명분이다. 규모와 사안에 따라 필요 불가결할 때가 있지만 대부분은 요식 행위로 옥상 옥이다. 자기 할 일을 원칙에 준하여 창의적으로 처리하려고 하지만 중간 지위의 사람에게 본의 아닌 비위를 다 맞추어야 하고 설사 내 기안(起案)이 옳다고 하여도 상대가 반대하면 어려움에 봉착한다. 조직의 흥망은 리더에게 달려 그런가 하면 중간 계급의 자리를 올라타기 위해 소모적 노력과 비용이 상상외로 많이 든다. 반드시 그 자리가 모두 있어야 하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급속도로 밀려오는 지식·정보 물결에 얼마나 지탱할지는 의문이다. 학교의 경우 참모 조직으로 부장교사, 계선 조직으로 교감과 행정부장이 위치해 있는데 실은 학생들의 교육력 제고를 위한 보조 지원수단이다. 학교장의 권한은 교육본질의 교수-학습권, 교직원의 임용·상벌 등 인사권, 학교회계 집행의 재정권이 국가로부터 부여되어 힘을 받는다. 아놀드 토인비 '역사연구'에서 세계 문명을 선도했던 21개국의 쇠퇴원인을 살펴보면 자연적 재앙이나 외부의 침입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조직 내부의 리더십 결여, 경직성, 자기만족, 나태함에 기인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국운을 흥하게 하였던 배경은 그 체제와 관습들이 궁극적으로 조직의 리더에 의해 적극적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2002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 축구가 4강에 들어가 그 신화를 창조하였던 것도 히딩크 감독의 변화적 전략전술이 특별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훈은 학교 경영자 리더십에서도 마찬가지다. [PAGE BREAK] 학교 CEO가 조직의 변화를 통하여 사막화되어 가던 학교를 되살려 낸 대표적인 실화가 있다. 'Lean On Me'라는 시네마다. 1967년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시에 위치한 동부고등학교가 그 주체다. 이 학교는 한 때 미국의 일류학교 이었으나 섹스·마약·폭력이 일상화 되어버렸다. 학교환경은 엉망이고 학생은 교실에서 소란을 일삼고 교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인종차별이 극심한 난장판이었다. 학생들의 성적은 말할 것도 없이 바닥을 밑돌았다. 연방정부에서는 학교의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정부에서 접수하겠다는 통보를 한다. 패터슨시의 시장은 선거를 의식하여 이 학교의 교장을 교체한다. 당시 진보적 교육관을 가졌고 언론에 오르내리던 초등학교의 조 클라크(Joe Clark) 교사를 교장으로 선임한 후 학업성취도를 끌어올리도록 요구한다. 신임 교장은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교사들을 질책하고 마약거래와 폭력을 일삼는 학생들의 이름을 써내게 한 후 취임식 때 모조리 퇴학시킨다. 학생들 스스로의 책임을 강조하고 2주 후 학력고사를 본다고 발표한다. 방침을 따르지 않는 학생들은 퇴학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성과가 신통치 않은 교사도 바꾸어 버린다. PTA에서 퇴학조치에 항의하자 부모가 솔선하도록 강조하면서 교장이 학교를 주도적으로 변화시키겠다고 하자 학부모들은 열렬히 환영한다. 결국 엉망진창이었던 이 학교를 일류학교로 되돌려놓는다. 이 영화는 당시 미국의 교육 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베스트 시네마가 되었다. 여기서도 학교 CEO의 리더십이 학교교육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기업보다 심한 경쟁하는 학교 신 사고의 리더는 획일화, 집체화, 설명식, 교과서식, 무질서, 냉소주의를 싫어한다. 사람들이 변화에 거부하고 저항하는 데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현재 상태의 유지와 안주하려는 경향, 변화에 따른 불안 심리, 개인 이기주의, 현 자리에 대한 보신주의, 시기심과 자기 동참 세력의 와해(瓦解) 염려, 자신감의 결여, 참신한 아이디어 부족, 자극에 대한 감각의 무딤, 당위론의 부족과 경쟁능력 결여, 기존 우위 체계의 파괴 우려, 가치 신념체계의 혼돈, 관료·권위주의 팽배 등이다. 학교 경영 혁신의 주요 단계는 먼저 자기 처지의 인식이다. 변화를 감지하고 발상을 전환하는 역할적 변화다. 이어서 경쟁적 측면에서 차별화된 전략을 꾀해야 한다. 겸하여 학내 조직의 구조, 운영시스템 등에 대한 혁신이다. 마지막으로 구성원 모두의 구체적인 행동과 사고의 변화를 유도하는 일이다. 학교경영자는 학교교육의 독립성과 세계적 시조류와 사회적 연결 고리를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것 중의 하나가 인류의 최대 숙제인 지구환경을 살리는 길이다. 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의 가속화로 대기중에 '갈색연막산성구름층'이 자주 형성되어 게릴라성 폭우가 빈발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적도지방은 비가 오지 않아 사막화 현상이 확산되어 지구재앙을 경고하는 것도 예사롭지가 않다. 자연을 살리는 지름길은 체계적인 체험탐구학습프로그램을 종횡으로 투입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가치갈등을 불러오게 해야 가시적인 성과를 거양할 수 있다. 최근에 대두된 멀티교육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여 학교교육이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회단체교육과 병행하는 운용체제다. 학교교육은 기초·기본학력을 신장시키는 교육과정운영에 중점을 두고 교실 밖에서는 질 높은 체험적 특기·적성교육을 원하는 때에 언제고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약정에 협조하는 일이다. '학교는 열린 체제가 되어야 한다. 그것도 가능하다면 완전하게다. 연령의 제한이나 또는 전 단계 교육의 이수(履修) 여부에 관계없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무작위 접근(random access)' 심하게 말하면 '닥치는 대로'의 교육이 가능하게 하는 교육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도처에서 학교들은 학교 교육의 제공자로서 누리던 독점적 지위를 이미 상실하고 있는 중이다. 학교들은 언제나 서로 경쟁하여 왔다. 선진국에 있어서 기업들 간의 경쟁마저도 '뛰어난 학교들' 사이의 경쟁만큼이나 철저한 혹은 무지비한 경우는 거의 없다. 리더십을 가로막는 여러 요인 학교장의 리더십에 한계를 가져오는 요인이 있다. 먼저 심신의 병약과 질병이다. 둘째가 현재로는 어쩔 수 없는 제도적 상황이지만 공립학교에서 나타나는 잦은 인사이동이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회피하는 학교와 학생 학교장에게 특별한 보수 환경 등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셋째가 일하면 감사의 지적이 되고 안 하면 편하고 중간이나 간다는 인식이다. 넷째가 학교장의 실질적인 독립권과 자율권이 부족하다. 다섯째가 정부의 교육정책이 학교장 등 교단에 의한 의사결정으로부터 떨어져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여섯째가 학교장이 새로운 역량을 터득하고 발휘할 수 있는 공부하는 기회를 스스로 갖는 풍토 조성이다. 일곱째가 교장을 사회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는 트렌드다. 한가지 예로 교육에 관한 기관·단체의 토론광장에서 학교장이 참여하는 비율이 타직에 비해 현저히 낮다. 충북 오석초등학교의 경영기법은 매우 독특하고 이채롭다. 아동들이 학교에 등교하면 정규수업 이전 이후의 특화학습시간표에 의한 찾아가는 학습이 유난스럽다. 컴퓨터, 공차기, 봉사활동, 영어비디오시청, 발명교실, 자연탐구, 방송리포터 등의 다양한 학습블록시간대를 자신이 정해놓고 활동한다. 어른들의 카테고리에 얽매이거나 간섭을 되도록 배제하면서 자율을 강조한다. 아동들은 독립적이면서 상호 유기적이며 진도도 학습자 속도다. 특화학습시간에 아나운서로 학습경험을 희망하는 아동은 처음에 교사의 안내를 받는다. 희망자 모두가 방송실로 모인다. 녹화 테이프에 의해 뉴스시간대의 남녀 아나운서의 뉴스진행을 눈여겨보면서 억양, 몸가짐, 말의 속도, 내용, 수준, 시청자에게 미치는 효과 등을 파악한 후 상당기간의 실습기간을 준다. 학생은 뉴스를 만들어와서 테스트 통과 후 아나운서로 활약한다. 전 단계에서 기사를 수집하고 제작하기에 분주하며 연습에 불이 붙는다. 식견이 넓어지고 논술력이 향상되는 등 시너지 효과가 크다. 이는 사회적 연계형 교육의 한 장르다.[PAGE BREAK] 불변에 가까운 교육철학이 존재한다. 정치 체제의 이질성과 인종, 역사의 원근에도 무관하다. 그 철학은 외길의 인생으로 걸어온 교육 석학들의 논조다. 죤 듀이(John Dewey)가 많이 익힐수록 많이 배운다는 경험주의 교육철학으로 '가장 좋은 교육은 체험이다'라고 한 말. 피아제(Jean Piageet)가 학습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아동중심 철학인 '학생 입장에서 생각하자'라고 한 이야기. 미우라 겐지(Miura Genjy)가 마음이 서로 통하는 따뜻한 교육으로 '마주보고 이야기하자'라고 한 말 이다. 이 세 사람의 교육사상이 열린교육 사상의 큰 줄기다. 학교경영의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학습지도다. 이 점에서 디지털·네트워크의 학습방식을 피력한 탭스캇(Tapscott, D.)의 8가지 근간을 요약해 보면 한국에서 한창 열기를 가져왔던 열린교육의 맥락과 흡사하다. 학교장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 첫째, 하이퍼미디어 학습으로의 전환이다. 책과 같은 인쇄매체가 제공하는 선형적 정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읽어 내려가는 순차적 학습에서 하이퍼미디어를 통해 링크된 다양한 정보에 무선적으로 접근, 비선형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학습방식으로의 멀티교육으로의 변화다. 둘째, 참여와 발견학습으로의 변화다. 책과 같이 일방적으로 내장되어 있는 고정 불변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주입식 교육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유동적인 디지털형 정보를 학습자 스스로 가공, 편집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으로 창출하는 참여적 체험학습으로의 변화다. 셋째, 학습자 중심 교육으로의 변화다. 학습자에게 전달할 정보를 사전에 가공하여 교사가 일정시간 동안 일정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교사중심 교육에서 학습자가 학습활동의 주체가 되어 주도적으로 학습활동을 전개하는 변화다. 넷째, 학습방법을 배우는 교육으로의 변화다. 전문가가 사전에 가공한 결과로서의 내용을 전달하는 주입식 교육에서 다양한 학습자원을 탐색, 가공, 편집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으로 창출하는 학습방법을 스스로 배우는 것이다. 다섯째, 평생교육으로의 변화다. 모든 지식과 정보를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충족하던 공식적 제도적 학교교육에서 폭증하는 다양한 정보를 일상적인 삶과 연계해서 끊임없이 습득해야 하는 평생학습으로의 변화다. 여섯째, 다수의 학습자를 동시에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실시하던 획일화된 교육에서 학습자 개개인의 흥미와 관심, 요구에 부응하는 맞춤화 된 교육으로의 변화이다. 일곱째, 누군가가 시켜서 마지못해서 전개하는 괴롭고 지겨운 학습에서 학습자 스스로 동기가 유발되어 자신의 학습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학습으로의 변화다. 마지막으로 완제품으로서의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로서의 교사의 역할이 아니라 학습자의 학습활동을 촉진시키고 조력하는 학습촉진자로서 교사의 역할이다. 신물질의 창조는 기초과학탐구에서 정보 물결을 타려면 컴퓨터를, 세계인과 함께 가려면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수업에 최대의 비중을 두면서 학생중심의 자기 주도적 학습, 속도차를 인정하는 개별 학습, 다양성의 추구로 창의력을 계발하는 7차교육과정의 패턴과 물리적 환경 개선에 오늘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적 구도가 요구된다. 정도(正道)로 열린교육을 운영한 학교가 있다. 설사 그 명제는 달지 않았더라도 그 학생들의 학력이 최상치를 유지하고 오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로 변하였다. 비행학생은 도태되고 인간 본성이 살아나 지역사회와 교육수요자의 신뢰를 듬뿍 받고 있다. 좋은 학교들의 공통적 특징은 학교급, 학교규모, 학교의 전통과 역사, 가정과 지역사회의 환경에 좌우되지 않았다. 본보기적 아름다운학교는 학교장의 교육관·패러다임·리더십과 조직의 역동성이 절대적이었고 독자성을 추구하였다. 이것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과 같지 않는가. 신 문명사의 새로운 이정표는 '교육의 변화로 신지식을 만드는 것'이 금세기에 사는 우리들의 숙제다. 교육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외톨로 존재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래서 교육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더군다나 과거와는 너무나 다른 세기에 살면서 교육을 한다는 것이 더욱 어렵다. 교육의 실체가 무엇이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조금은 더 알려고 공부해야 한다. 교육의 정체는 삶의 쉼표이고 교육의 변화는 삶의 진보다.
최상훈(서원대 교수) 역사교육의 목적 학교에서 역사를 왜 가르치는가? 이 질문은 역사교육의 목적을 의심하는 저의가 담겨 있다. 근래에 들어 학계나 학교교육 현장에서 역사학과 역사교과의 위상이 실추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반성과 대안 모색을 위한 노력이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대개 집안 잔치로 끝나버리고, 역사학이나 역사교육의 가치를 수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역사의 가치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그리 소용이 없을 것이다. 몇 년 전인가 어느 교육부장관이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한 이후, 학생들은 더더욱 기본적이고 폭넓은 공부를 하기 싫어하였고, 그 결과는 말초적이고 즉각적이며, 기계적이고 도구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현상을 낳게 되었다. 그에 따라 골치 아프고 공부할 양이 많은 역사교과는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실용성이 모든 가치의 근본인 양 행세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역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역사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일종의 신념이나 종교와 같은 것으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의 가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거나 늘어나게 해서는 인간의 삶이 점차 황폐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포교를 하는 심정으로 역사의 가치를 강조하고 유용성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역사교육은 여러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은 현재의 뿌리가 되는 과거를 알고 싶어했다. 따라서 현재에 남아있는 과거의 갖가지 흔적을 더듬어 과거의 모습을 밝혀내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였다. 과거를 기록하는 행위는 역사의 출발점이었다. 역사는 현재 문제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지식이므로, 인간은 역사를 통해 현재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게 되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문제 상황에 접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인간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과거의 많은 사례를 통해서 교훈을 얻고, 바람직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동일한 사건은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역사학도 사건의 일회성이나 특수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현재와 똑같은 과거의 사례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은 재발하지 않지만 사건이 처한 상황이나 특성은 다시 나타날 수 있으므로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구석기 시대 이래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고 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 도움을 얻으면서 생활해 왔다. 가정부터 국가까지 인간이 형성한 사회는 나름대로의 유산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의 사회는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구성원의 동질감과 정체성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사회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조상들의 유산을 전수할 필요가 있어서 역사를 통해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였다. [PAGE BREAK]이러한 목적을 지녔던 역사학은 19세기말까지만 하더라도 실용적이고 진보적인 학문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렇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역사학은 방법론 면에서 특별한 진보를 거두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구식의 학문으로 치부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역사학계에서도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도입하여 경제사, 사회사, 심리사 등을 연구함으로써 변신을 꾀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역사의 본질이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그리고 근래에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는 역사학 자체의 존립 근거를 비판함으로써 역사학의 입지를 크게 손상시켰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인간과 역사의 꾸준한 진보를 의심하고 부정하였으며, 역사는 역사가가 구성한 작품일 뿐이므로 역사적 진리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포스트모더니스트 중의 한 사람인 화이트는 역사적 진리의 허구성을 밝히고 문학과 역사 간에는 실제로 뚜렷한 경계가 없다고 말하였다. 화이트는 역사의 사실이 발견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역사가의 활동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역사학의 고유한 특성이라 믿어온 실재적인 연구 대상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주장이 한 시기를 풍미하였지만, 역사학의 학문적 성과와 존립가치를 무너뜨리지는 못하였다. 역사학자들은 여전히 진실이 존재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고 믿고 그들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 역사교육의 목적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역사적 사고력의 육성이다. 역사적 사고력은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역사문제에 관하여 가설을 설정하고 사료를 수집하여 가설을 검증하면서 역사이해에 도달하려는 의도적이고 복합적인 정신활동을 수행하는 정신적 조작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고력은 연대기 파악력, 역사적 탐구력, 역사적 상상력, 역사적 판단력이란 하위영역으로 구성된다. 연대기 파악력은 시간에 따른 변화를 중시하고 인간의 삶과 여러 현상을 연대기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능력을 말하고, 역사적 탐구력은 역사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문제인지, 가설설정, 사료수집, 사료비판과 해석, 가설검증, 결론도출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는데 발휘되는 능력을 뜻한다. 역사적 상상력은 역사증거의 단편성과 불완전성을 극복하는 능력으로 부족한 증거를 메우거나 증거에 빠져있는 부분을 보완하는 능력을 말하고, 역사적 판단력은 사료를 선택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가치판단을 함으로써 종합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능력을 뜻한다. 역사적 사고력의 신장을 통해 학생들은 오늘날의 사회가 직면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획득할 수 있고, 한 개인이 사회 속에서 맞부딪치게 될 중요한 문제에 관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적 성숙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학교에서 역사교육을 실시할 때 역사적 사고력의 육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역사교육의 내용 역사수업 시간에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역사 교사나 역사학자 및 역사교육연구자들은 모두 중요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라는 다음 질문에 이르면 답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에 대해 합의된 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PAGE BREAK]대체로 중요성이란 본질적 중요성과 도구적 중요성으로 구분된다. 본질적 중요성은 사실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 가치 때문에 중요시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도구적 중요성은 다른 사건이나 후대에 미친 영향 때문에 중요시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중요성이라는 말은 가치 판단을 내포하는 용어이므로 사람들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관해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다시 말해 국가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고 역사교사들은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이에 대한 반발이 전국역사교사모임을 통해 나타나게 되었고,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라는 대안 교과서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사 배움책’이라는 교재를 둘러싼 파동도 생겼다. 이러한 현상은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역사교사의 고민과 주장이 표면으로 나타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제 역사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수해주는 과거의 수동적인 처지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 동안의 역사수업이 죽은 지식만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과정이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리하여 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지식을 학생들이 스스로 습득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을 위주로 학생의 눈높이에서 교과서를 구성하려고 시도하였다. 그 결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무엇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인가? 역사는 과거를 다루지만 항상 현재와 긴밀한 관계를 지닌다. 현재가 고려되지 않은 역사는 무의미하다. 따라서 현대사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현대사는 매우 민감한 부분이 많고 왜곡되어 있는 부분도 많으므로 다루기가 쉽지 않다. 최근의 한국 근현대사 파동이나 현대사 배움책 파동 역시 이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학계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교과서 내용을 재구성하여 학생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대사 이전의 역사를 다룰 때에도 현재와의 관련성과 역사적 사건의 현재 의미를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두 번째 답은 신문화사나 미시사에서 찾을 수 있다. 20세기 후반에 서양에서 등장한 신문화사, 혹은 미시사의 분야는 종래의 정치사나 전체사에서 경시하였던 새로운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새로운 분야는 그 동안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피지배층, 약소 민족 등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부각시켰고, 보통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도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역사가 지배층 중심의 정치사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학교의 역사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역사에 대해 지루해 하고 관심이 멀어졌던 원인 중의 하나는 역사에서 다루는 인물이 자신과 너무 동떨어진 뛰어난 인물인 데다가,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학생들을 역사수업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학생들 자신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역사 관련 소품이나 문화재를 통해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역사가 인간의 삶을 다루는 이야기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PAGE BREAK] 역사교육의 방법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역사교과뿐만 아니라 근래에 학교에서 교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화두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하게 가르칠 수 있을까?’일 것이다. 역사교사들은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말로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온갖 소도구를 동원하여 ‘쇼’를 하고,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다양하고 화려한 수업을 하며, 채찍과 당근을 활용하여 아이들을 수업에 참여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세대의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기 때문에 금방 싫증을 내고 무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역사수업의 방법은 학생들을 활동시키는 것이고 다양한 수업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능력과 취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양한 수업방식을 통해 그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 근래에 등장한 구성주의 학습이론에 따르면 학습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교사가 어떤 내용을 열심히 가르친다고 할 때 모든 학생들이 그것을 맹목적으로 똑같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수학습이나 선행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에게일방적으로 지식을 전수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지식을 스스로 구성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역사교사는 다양한 자료와 견해를 제시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에 적절한 수업방식은 어떤 문제에 관하여 시책이나 개혁방안 등을 작성하는 글쓰기 수업이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발표수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을 역사교육에 도입하여 학생들이 역사를 직접 작성하는 수업을 강조하기도 한다. 역사는 역사가의 작품이므로 학생들도 역사가처럼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학생들의 사고와 자료 해석이 미숙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활용할 필요가 있지만, 역사가 해석의 학문이고 항상 새로운 견해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인식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역사는 가치와 판단을 다루는 교과이다. 따라서 교사는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투입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학생들에게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횡포이다. 물론 구성주의 관점에 따르면 학생들은 알아서 나름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교사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지만, 영 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절한 자료를 제시하고, 학생들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에 적합한 수업이 토론 수업과 사료를 통한 탐구학습이다. 이 때 교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과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되 다른 견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료학습을 통해서 학생들은 사료의 의미와 취급방법을 숙지함으로써 역사학이 어떻게 연구되고 사실을 밝혀내는가를 알아야 한다.[PAGE BREAK] 역사교육의 미래 인간이 존재하는 한 역사는 존재한다. 혹시 타임머신이 발명되어 인간이 과거로 가서 과거의 모습을 샅샅이 뒤지고 과거의 인물과 인터뷰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역사는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가 올 때까지는 인간에게 역사가 관심의 대상이고 필요한 학문의 영역이다. 역사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역사가 필요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실용성 지상주의가 판을 치더라도 역사는 여전히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학습을 통해 학생들에게 인내심을 길러 주고 지혜를 얻게 하며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알게 해준다. 오늘날과 같은 경박한 세태 속에서도 신중하고 사려깊은 인간이 되게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영상화되는 속에서도 역사학습을 통해 정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고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해주고 어떤 정보가 가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 제7차 교육과정이 시작된 것이 3년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제8차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과정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과거의 예처럼 몇몇 사람이 밀실에서 만들어 공포함으로써 많은 반발을 사게 되고 졸속으로 수정하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할 것이다. 교육과정의 제작은 공론화되고 장기간에 걸쳐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튼 다음 교육과정에서는 지금까지의 추세로 볼 때 국사도 1종에서 2종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파동 때문에 1종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다양성의 사회이고 구성원들이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민주사회이므로 1종 교과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따라서 국가는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최소한의 교육과정만을 제시하고, 교과서 제작이나 교육 자체를 학교와 교사에게 맡겨야 한다.
송상헌(공주교대 교수) 역사교과서 문제는 대체로 교과서가 담고 있는 내용을 둘러싼 논의와 교과서가 가지는 교육학적 제반 문제를 둘러싼 논의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세간의 관심을 끄는 주제는 역시 역사교과서의 내용에 관한 것으로서 국내에서의 논란은 물론, 국제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교과서를 놓고 흔히 진보와 보수로 표현되는 역사관이나 특정 정권에 대한 서술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하고, 국제적으로는 역사 서술이 민족간, 인종간, 국가간에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것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다. 최근에 국내외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의 서술에 대한 논란은 다양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서 역사교과서 관련 논의의 현실을 진단해 보고 논의 방향과 교과서 서술의 방향을 간단히 모색해 보려 한다. Ⅰ 역사교과서 내용을 둘러싼 논의는 본질적으로 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는 역사상을 둘러싼 문제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역사상이란 본래 다양한 것이고, 역사 연구의 최종 단계에서 역사가가 역사서술을 통해 드러내는 것으로서 일반인들의 예상처럼 그리 단순 명료한 것은 아니다. 역사가가 어떤 한 시대나 한 지역의 역사상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방대한 규모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어야 한다. 또한 그것을 다루는 역사가가 발휘할 수 있는 역사적 통찰력의 깊이가 학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그려내는 역사상은 각인각색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어떤 역사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의 바탕이 되는 근거가 객관적인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절대적인 역사상을 주장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역사상을 비판하는 경우 그 비판의 근거를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실에서 찾고 있고, 구체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을 객관적인 것으로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이어서 절대적인 역사상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는 역비판을 받을 만하다. 이런 점에서 역사교과서 내용에 대한 보다 적절한 논의를 위해서는 역사의 본질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국사교과서 발행에 관한 논의도 중요한 면을 간과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돌이켜보면 국사교과서 발행에 전면적인 변화는 1974년 국정화로 이루어진다. 그 이후 국정교과서의 폐해와 문제점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가 있어 왔고, 정부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수긍하고 비록 본질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1종 교과서 제도로 정책을 전환한 바 있다. 여기서 문제의 초점이 된 것은 정부가 유일본으로 발행하는 국사교과서였다. 국정(1종)교과서의 문제점은 다양한 역사의 서술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서 획일적인 역사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정권적 차원의 이데올로기 주입에 활용된다는 점이었다. [PAGE BREAK]따라서 당연히 교과서 문제의 해결방향은 검인정제도로의 환원이었다. 이런 입장에서 학자나 교사들은 끊임없이 검인정제도로의 환원을 주장하여 왔고, 그것이 국사교과서 문제 해결의 관건처럼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정치의 민주화나 사회상황의 변화로 말미암아 과거와 같이 검인정으로의 전환이 교과서 문제 해결의 관건이라고 하기 어렵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단순히 국정이나 1종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검인정 제도를 고려하는 것은 정치적·사회적인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어서 재론의 여지가 있다. Ⅱ 역사교과서 내용을 비판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비판의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통 내용 서술의 문제를 지적할 때 역사적 사건의 객관성을 근거로 내세운다. 예컨대 우리 정부와 북한, 중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문제된 역사교과서에 대해서 구체적인 수정 조항을 제시한 바가 있는데 이는 결국 사건 자체의 객관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그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역사학자들 역시 잘못된 사실인식, 실증적 오류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지적했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을 잘못 기술하고 있다는 사실 오류론에 근거하여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오류론은 객관적 근거로서 한계가 있다. 후쇼사 교과서의 검정 전략이 ‘전체적인 컨셉에 지장을 받지 않는 한, 문구의 수정쯤은 감수하겠다’는 것이었다는 지적은 사실오류론에 한계가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교과서가 표방하고 있는 ‘역사를 고정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지 말자’는 주장은 사실오류론에 근거한 비판이 초점을 벗어난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기술적으로 사실오류론에 의한 비판의 불가피성은 인정할 수 있으나, 정확한 비판을 위해서는 이른바 교과서 집필의 컨셉을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점이 나오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역사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 규정이 논자에 따라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사회과 통합론에서 다른 교과 내용과 역사를 통합해서 단원을 구성할 때 과거 사실이 곧 역사라고 오해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즉 과거의 사실이 역사이기 때문에 통합단원에 과거 사실이 들어가면 역사와 다른 교과를 함께 다루는 것이 되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역사가조차 역사교육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곧 과거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역사교육에서 과거 사실은 역사를 구성하는 요소에 불과하고 그것 자체가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사실 위에서 구성되는 담론(談論)의 성격이 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탈근대론자들이 역사의 담론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도 역사의 담론 구성적 성격을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담론적 성격과 관련하여 과연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가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친다고 말하지만 기실 그 역사란 아주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크게 보아 그것은 과거의 사실일 수도 있고, 역사가가 구성하는 담론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교육은 객관적 대상(과거 사실)을 가르치는 교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더욱이 지금까지 역사교육은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점을 무언의 전제로 여겨왔다. 그리고 교과서에 실린 서술 내용은 모두가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믿음도 광범하게 퍼져 있다. [PAGE BREAK]이런 입장에 서면 교과서 서술이 대단히 중요한 교육내용이 되며, 만약 교과서에 담겨 있는 내용이 오류이거나 왜곡된 것이라면 이는 본질적으로 잘못된 교육을 하는 것으로서 심각한 문제로 여기게 된다. 즉 잘못 서술된 근현대사 교과서를 배운 학생은 필연적으로 잘못된 근현대사상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역사를 교육하면 학생들이 교육받는 대로 수용하는 것일까? 이 점은 대단히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전달된 역사상을 수용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그것을 비판하는 능력도 스스로 키워나간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사례에서 이런 비판 능력이 길러지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런 예는 역사를 가르치는 현상 속에서 어떤 것이 학습되고 학생의 머리에 정착되는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가필요함을 알려준다. Ⅲ 역사의 담론적 성격과 관련하여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말한 컨셉을 가진 교과서와 컨셉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교과서는 같은 교과서이지만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 역사왜곡의 문제를 기화로 우리의 교과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경우, 일면 타당한 지적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문제는 예의 일본 교과서와 우리 교과서가 종류가 다른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일본 교과서는 이른바 역사에서의 담론을 실어놓은 교과서이지만, 우리 교과서는 그런 담론이 부분적으로만 실려 있거나 전체적으로 담론으로 이루어진 교과서가 아니다. 일본의 문제된 교과서나 우리 나라의 한국사 대안 교과서가 일반 서점에서 관심을 끄는 이유는 담론을 싣고 있는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의 교과서는 일정한 컨셉이 없이 여러 역사상이나 시대상을 조합, 편집하고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충실이 담은 교과서에 불과하다. 이런 점을 간과하고 일본 교과서와 우리 교과서를 수평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담론을 담은 교과서는 일반인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그리고 독자에게 주는 감흥도 커서 그 책을 읽거나 배운 사람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클 것으로 생각된다. 후쇼사 교과서가 나오자마자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는 사실이 우려되는 것은 그 책이 감흥을 줄 수 있는 역사 담론이 실려있는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만약 우리의 교과서가 민족 담론 일색으로 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면 이 책을 통해 역사를 배운 학생들은 민족 의식으로 무장되어 강한 민족 의식을 지닌 세대로 나타나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학생들이 역사를 가르치는 대로 수용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담론화 되어 있지 않은 교과서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이유이든 결과적으로 우리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민족 의식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혹자는 월드컵의 붉은 악마의 행동을 애국심으로 보지만 이는 역사교육과는 무관한 것으로서 교과서에서 강조한 민족 의식은 영향력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과서의 담론에 대한 비판은 정곡을 찌른 비판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좀 더 다각적인 각도에서 연구와 논의가 요청되는 부분이다. [PAGE BREAK]그렇다면 학생들에게 감흥을 줄 수 있다는 면에서 볼 때 담론으로 구성된 역사교과서가 바람직한 교과서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쉽게 말해서 일본 후쇼사의 교과서는 교과서로서는 성공한 작품이라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교과서가 담고 있는 담론 자체이지, 담론을 담고 있는 사실 자체는 아니다. 그렇다면 실려 있는 담론의 종류가 문제되는데 그것은 결국 교과서가 어떤 역사담론을 담아내야 바람직한지, 그리고 담론을 판단할 근거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밝혀내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Ⅳ 교과서 발행제도를 둘러싼 논의에서 검인정 제도로의 환원에 대한 주장도 변화된 상황에 맞지 않는 문제점을 가진다. 일본에서는 과거에 교과서 재판이 있었다는 사실과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교과서가 검정에 통과되었다는 사실을 대비해보면 검인정제도라는 것이 가지는 문제가 확연히 드러난다. 교과서 재판이란 정부의 검정제도를 대상으로 소송을 한 것으로서 주요 논쟁점은 검정 기준의 강요에 반대하고 필자의 의지대로 쓰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왜곡 교과서의 경우에는 관계 당사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검정 기준을 강화하여 문제의 교과서를 통과시키지 말라는 압력을 넣은 셈이다. 이처럼 둘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30 여 년만에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검인정화 되어 검정이 시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또 다시 역사서술을 둘러싼 문제가 불거졌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역사교과서 검정 제도가 다양한 역사를 서술할 수 있게 하는 순기능을 하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이미 검인정 제도가 시행되어온 세계사 교과서는 다양한 서술은커녕 오히려 역사서술의 질적 수준을 고양시키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교과서 발행을 자유발행제로 하자는 것은 자유발행제가 시행되는 나라의 사정을 확대 해석한 면이 있다. 어느 나라든 교과서로 채택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검토 절차를 거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 교과서 발행에 대한 논의의 방향은 어떻게 하면 국정(1종)교과서와 검인정 교과서(자유발행제 교과서)의 이분법적 구도를 타파하고 바람직한 교과서를 발행할 수 있는지 강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Ⅴ 교과서의 서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교육에서 다루어지는 역사의 성격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역사는 사실로서 구성되는 담론이다. 따라서 역사교육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크게 보아 역사적 사실과 그에 바탕한 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교과서는 사실을 충실히 전달하는 구실은 했지만 그 사실에 바탕한 담론을 서술하는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교과서가 흥미롭게 읽히는 역사책이 아니라 버려지는 참고서로 간주된 이유는 역사담론 서술이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달리 보자면 역사교과서 서술의 컨셉이 부재했기 때문에 초래된 현상이다. 따라서 앞으로 역사교과서는 역사담론이 담겨 있는 역사책의 면모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 역사교과서 서술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PAGE BREAK]그렇다면 가장 큰 고민은 역사교과서에 누구의 어떤 담론을 담아야 하고 실린 담론의 비판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이 문제이다. 우선 누구의 어떤 담론을 실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본질적인 문제이면서도 바람직한 역사교과서 발행 제도를 모색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1종 교과서 제도는 합의된 담론을 만들어 내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처럼 정부가 서술 내용에 대하여 강력한 통제를 가하고, 특정한 담론을 강제한다면 훌륭한 교과서가 될 수 없지만, 열린 자세로 합의된 담론을 도출할 수 있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직한 교과서 제작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운용하기에 따라서는 관련학회가 광범하게 참여하는 합의체의 운영으로 1종교과서도 훌륭한 교과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검인정제도가 정착된다면 그 또한 다양한 담론을 담은 교과서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다양한 담론을 담은 교과서를 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순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검인정 제도가 반드시 유일한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훌륭한 담론을 담은 교과서를 만드는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참여하여 만들려고 하는 학계와 관계자들의 의지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 제기되는 문제는 바람직한 담론이라면 그것을 구성하고 평가·판단하는 근거가 있으며 가능하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역사담론은 과거의 사실, 즉 역사를 왜곡하지 않아야 하고, 사실에 충실해야 하며, 누구에게나 수긍이 가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획기적인 연구를 다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역사학자들의 기존의 업적을 재구성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국사든 세계사든 일정한 컨셉을 가진 정합성(coherence) 있고, 적연성(plausibility)이 있는 담론을 채택하면 될 것이다.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날로 좁아지는 환경 속에서 동아시아 역사와 세계사와의 관련성도 빼놓을 수 없다. 앞으로 언젠가는 유럽과는 다르겠지만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교과서를 집필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에 대비해서라도 모든 나라에 통용될 수 있는 기준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한·중·일의 경우에 역사교과서에 실리는 역사상이 미래의 역사와 어떻게 관련이 되는가를 판단 기준으로 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국의 중화주의적 역사 인식이나 일본의 우파적 역사 인식은 미래의 동아시아나 세계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우위와 배타적인 역사를 꾸려나가겠다는 것이므로 당연히 배척되게 된다. 이런 기준을 만들어 교과서 역사담론의 기준으로 축적해 나간다면 흥미 있고 가치 있는 역사책을 만드는 기초 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담론이 실린 교과서가 필요한 핵심적인 이유는 학생들이 그 담론을 그대로 전수 받아 바람직한 역사인식을 갖게 되어서가 아니다. 담론으로 구성된 역사책(교과서)를 통하여 역사담론도 배우지만 학생 스스로 담론을 구성하는 사고를 계발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쇼사 교과서는 적연성이 떨어지고, 배타적인 역사 담론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교과서이며, 올바른 역사담론을 구성하는 인식 방법을 계발하기 위한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강선주(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 학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 실제 교사와 학생들 간에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교수-학습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데 교사의 능력과 전문적인 지식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교사가 어떤 내용을 선정하고 조직하는가, 그리고 그 내용을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고 평가하는가에 따라, 학생들이 그 교과에 대해서 느끼는 흥미의 정도, 그 교과에 대한 이해 정도, 그 교과를 자신의 삶에 체화시키는 정도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우수한 교사를 양성할 수 있는 효율적인 교사양성체제를 정립하고, 현직 교사들에게 그들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자질을 함양시킬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연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사양성체제의 문제와 역사교사 교육 역사교사의 양성교육, 임용, 재교육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교사양성체제 자체의 문제점, 교원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의 문제점과 같은 궤도에서 논의되고 있다. 교사양성체제의 문제로서 자주 거론되는 것이 교육대학원이나 일반대학의 교직과정을 통한 중등교원 양성이 지나치게 팽창됨으로써 교사자격증 소지자의 과잉공급뿐만 아니라 질적 저하 문제가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질적 통제뿐만 아니라 수급상의 불균형 및 신축성 있는 운영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대학의 교직과정이나 교육대학원의 교사양성을 위한 교육내용의 전문성 또한 제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교사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교육기관들은 각과의 특성과 요구에 맞게 교수진을 구성하고, 각과 교사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도록 국가가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반면, 일반대학이나 교육대학원은 반드시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최근에 사범대학이나 교육관련 학과가 없는 일반대학 가운데 교육대학원을 설치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 교육대학원은 주로 외부 강사에 의존하면서 강좌를 개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교육내용 또한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사교육전문기관으로서 교육대학원이 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교육대학원에 교과전문가들을 확보하고, 교육과정을 교육현장과 밀접하게 하고 체계화함으로써 내실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역사교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의 문제점 교원양성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각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 내용의 적합성과 전문성 문제가 논의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역사교사 양성의 문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전문적인 지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PAGE BREAK]하나가 가르쳐야 할 학문에 대한 지식이라면 다른 하나는 효과적인 수업을 하기 위한 교사의 교육학적 지식과 기술이다. 여기에는 교사가 수업을 계획하고, 내용을 조직·제시하고, 학생들과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학생들의 학습 성취 정도를 검사할 때 필요한 교육학적 지식이 포함된다. 교사양성기관들은 이러한 지식을 크게 전공과목과 교직과목으로 나누어 개설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에게 요구되는 학문 지식은 국사와 세계사이다. 대학에서는 이러한 학문 지식을 전공 강좌로 분류하고,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강좌로 개설하고 있다. 대학에 따라서는 한국사개설, 동양사개설, 서양사개설 등의 개론적인 강좌를 개설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한국고대사, 한국중세사, 동양근대사, 서양근대사 등의 지역과 시대별로 분류된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이러한 전공과목 개설 양상은 인문대학의 사학과와 별 차별성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범대학의 전문성과 정체성에 대한 제고 필요성의 근거가 되고 있기도 하다. 시대별로 심화된 한국사와 세계사 지식은 역사교사들이 역사 전개과정의 복잡성과 역사적 동인(動因)들의 다양성을 파악하여, 학생들에게 각 시대의 모습을 정교하게 제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학과정에서 한국사와 세계사의 모든 시대를, 그리고 세계 여러 지역의 모든 역사를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소속 교수의 전공 분야에 따라 시대와 영역이 한정되어 강좌가 개설되고, 그러다 보니 좀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한국사와 세계사의 전반적인 전개과정을 이해하고, 쟁점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함양시키는데는 소홀한 것이 현실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이미 한국사와 세계사의 개설적인 내용을 학습하였으므로, 대학과정에서는 그보다 심화된 차원의 역사 강좌가 개설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사범대학 역사과 과정에서 한국사와 세계사의 전반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강좌 개설에 제동을 가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중·고등학교 역사 과목이 역사교사의 양성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모든 사람들의 교양 교육의 목적을 위해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역사교육과는 역사교사를 양성을 그 주요 기능으로 한다. 따라서 전공 강좌에는 중·고등학교 교육과정과의 연관성 하에 한국사와 세계사를 체계적이면서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강좌가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동양사’, 또는 ‘서양사’의 구분이 없이 ‘세계사’라는 이름으로 과목이 개설된다. 동양사와 서양사를 합쳐 놓은 것이 세계사가 아니라면 전공 강좌에 ‘세계사’가 포함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 역사 강좌와 교육학 이론 강좌는 항상 별개의 지식과 기능을 가르치는 강좌로 개설되고 있다. 교육학 이론이 역사교사들에게 얼마나 유용한 지식과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현장교사들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교육의 강좌가 역사 강좌와 교육학 강좌 사이를 연결시키는 연결 고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역사교사들에게 직접적으로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은 역사학을 교육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교육과정이 가르쳐야 할 내용의 기본 골격을 제시하고, 교과서가 그 내용과 관련된 자료를 제시하지만, 실제로 학생들과의 인간적인 접촉을 통해서 그들의 관심과 그들의 필요에 맞게 내용을 재구성하여 제시하는 사람이 바로 교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를 교육적으로 재구성하는데 기초가 되는 지식과 능력에 초점을 둔 역사교육에 대한 강좌의 중요성은 굳이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PAGE BREAK]이러한 이해 하에 최근 역사교사의 전문적 지식 영역으로서 역사교육론이 강조되고 있다. 1997년에 배포된 ‘중등교원양성기관 교육과정 개선 권장 사항 통보’라는 교육부 공문에서 교과교육학의 강좌 및 학점수를 현재보다 상향조정하는 내용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 그러한 추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교육과 관련된 프로그램에서는 아직 많은 문제가 발견된다. 첫째는 배당된 시간 수의 문제이고, 둘째는 그 과목내용 체계의 문제이다. 역사교사 양성 프로그램에서 기본적으로 이수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교과교육 강좌는 ‘역사교육론’과 ‘역사과 교재연구법 및 지도법’이다. 다수의 국립 사범대학이 역사교육 관계 강좌를 4학점에서 9학점 사이에서 편성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립 대학이 ‘역사교육론’과 ‘역사과교재연구법 및 지도법’을 각각 3학점씩으로 편성하고 있다. 그리고 많지 않지만 대학에 따라서는 ‘역사과 교재연구 및 지도법’을 분리하여 ‘역사교육론’에 ‘역사과교재론’, ‘역사과 지도론’을 더하여 9학점으로 역사과 교육 강좌를 개설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립 사범 대학이나 일반대학의 교직과정에서는 각각 2학점씩 총 4학점만을 이수하도록 편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강좌의 중요성에 비해서 배당 시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그 강좌 내용 또한 학교별로 체계화되어 있지 못하다. 많은 일반대학과 교육대학처럼 역사교육 강좌를 전공자가 가르치지 않는 경우는 특히 역사교육 강좌내용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역사교육과 관련된 책들이 몇 권 출판되었지만 아직까지 역사교육 강좌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역사교육학이라는 학문이 아직 성숙된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역사교육전공자들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문제는 우선 역사교육강좌를 전공인에게 맡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역사교육과 관련된 강좌의 시수를 확대하고, 역사교육 강좌를 역사교사들이 역사를 교육적으로 재구성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강좌로 내실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교사 교육은 교사의 실천적 측면에 대한 교육조차도 이론에 거의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실제 경험을 통해서 획득될 수 있는 지식이나 기능 교육은 교육실습으로 끝나고 있다. 그 교육 실습도 짧은 시기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경험에서 얻어질 수 있는 지식이란 한정되기 마련이다. 경험에서 얻어질 수 있는 지식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학에 따라서는 팀 티칭(Team teaching)의 방법으로 현장 교사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현장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데는 턱없이 소홀하다. 교사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교육내용 못지 않게, 교육경험의 질 또한 중요하다. 제도적 차원에서든, 각 과의 교육과정 차원에서든 교사교육에서 현장과의 연계를 강화하여, 교사로서 학생들 앞에 서기 전에 학생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역사교과의 현장적인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역사교사연수 프로그램의 문제점 교사연수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과내용과 관련된 연수 기회가 적다는 것이고, 둘째는 프로그램 편성이 교사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현재 중학교에서 국사는 독립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시간과 교과서가 편재되어 있으나, 세계사는 일반사회, 지리와 함께 사회의 일부로서 가르쳐지도록 시간과 교과서가 편재되어 있다. 따라서 실제로 중학교 역사 교사에게 요구되는 학문 지식은 역사 지식 이외에 사회과학 지식과 지리 지식이 더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PAGE BREAK]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예비 역사교사들에게 정치학, 경제학, 지리학 등의 관련 강좌를 이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인근 영역 과목 중에서 예비 역사교사들이 이수하는 것은 불과 2∼3 과목 6학점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은 역사를 전공한 교사가 중학교 사회를 가르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중학교 사회의 세계사 부분이 비전공자에 의해서 가르쳐지게 되는 왜곡된 현상을 만들고 있다. 설령 역사교사가 사회를 가르치더라도 세계사 이외의 부분에 대한 비전문성이 가져오는 문제를 회피할 수가 없다. 사회과와 관련된 이러한 비전문성의 문제는 일반사회를 전공한 교사들이나 지리를 전공한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로서 이는 근본적으로 통합사회과와 교사교육기관의 교육과정의 괴리에서 야기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해결은 중등학교 사회과 교육과정과 교사교육기관의 교육과정의 연계적인 개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결국 교사연수 프로그램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중학교 사회와 고등학교 사회 과목의 통합적 접근이라는 현실에 부응하여 1997년 이후 공통사회 전공이 만들어졌다. 공통사회를 전공한 교사가 앞으로 중학교 사회와 고등학교 사회를 가르치는데 투입된다고 하더라도, 당분간 교사의 수급 문제 때문에 기존의 역사교사들이 그 과목들을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기존의 역사교사들이 사회과목을 가르칠 수 있도록 연수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 대학 졸업 이후 교사들이 전공과 관련하여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연수는 1급 정교사 연수이고 이 외에는 자발적인 참여 연수이다. 교사연수에서 역사교사들이 지리나 일반사회에 대한 연수를 받을 기회가 있다. 그러나 역사교사들이 지리나 일반사회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그 내용은 턱없이 부족하며 부적절하다. 물론 대학교육과 교사연수 프로그램이 중·고등학교 사회과의 방대한 내용을 심도있게 다 다룰 수도 없고, 실제로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역사교사들이 일반사회와 지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과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대학의 교육과정과 연수 프로그램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사연수에서 역사교사에게 주어지는 일반사회와 지리 강좌는 한 강좌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한 강좌를 통해서 비전공자에게 일반사회, 지리와 관련된 새로운 지식과 기능을 제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일반사회와 지리교육에 관련된 강좌는 거의 담당한 강사의 전공이나 관심과 관련하여 그 강의의 내용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연수 프로그램의 비적절성 문제는 단지 역사교사를 위한 일반사회나 지리 강좌와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때로 역사교사들을 위한 역사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적된다. 최근 서울 두 군데서 시행된 역사 1급 정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보면,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한 곳(A 연수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사, 서양사, 동양사, 아프리카사, 라틴아메리카사, 그리고 역사교육의 전반적인 동향을 소개하는 방향에서 프로그램을 마련되었고, 역사 프로그램과 역사교육 프로그램이 각각 절반씩을 차지하도록 구성하였다. 역사 강좌는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 흐름’ ‘한국중세사 연구의 새 흐름’ ‘동양고대사 연구의 새 흐름’ 등 적어도 프로그램 상으로 보면 시기와 지역별로 다양하게 편성되었다. 역사교육에서도 ‘역사교육의 새 동향’에서, ‘수업 방법’, ‘자료 활용’, ‘평가’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고, 일반사회와 지리 강의도 각각 한 강좌씩 개설하였다. 강사도 교수진과 현직 교사들로 구성되었다. 이 연수 프로그램에서는 역사와 역사교육에 같은 비중을 두고 역사교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PAGE BREAK]그러나 다른 한 곳(B 연수 프로그램)에서는 총 강좌 가운데 1/3이 한국사 프로그램이다. 한국사에는 고조선·진국사, 삼국시대, 통일신라, 발해에서 한국 현대사까지 모든 왕조와 시대를 망라하여 강좌를 개설하고, 사학사와 정치사, 경제사 특강까지 별도로 개설하였다. 동양사와 서양사의 경우도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고대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가지 시기별로 강좌를 개설하였고, 일본사와 러시아사도 별도로 편성되었다. 그런데 역사교육과 관련된 강좌는 세 강좌에 불과하여 전체 강의의 약 1/10 정도밖에 차지하지 못하였다. 즉, 분야별로 균형있는 강의배분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역사교육 강좌의 내용 또한 이론에 치우치고 있고, 강사들은 모두 대학교수로 구성되어 있어, 현장 교사들이 가려워 하는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 줄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즉, 새로운 학습자료와 교수-학습방법, 평가 방법 등에 대한 소개를 원하는 현장 선생님들의 요구를 이 연수는 적절하게 채워주지 못한 것이다. 1급 정교사 연수 프로그램이 현장 교사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을 때, 연수는 실제 교사들의 교수설계에 도움이 되기보다 연수 점수를 올린다는 의미밖에 주지 못한다. 따라서 1급 정교사 연수 프로그램이 현장의 요구에 맞게 체계화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는 자기 연수를 위해 연수 프로그램을 찾아 자발적으로 등록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교사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의 개발 또한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교사연수 프로그램의 체계화를 위해서 연수 프로그램이 중·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밀접한 연관성 하에서 내실화될 필요가 있다. 교사에게 필요한 역사 지식은 전문가적인 수준에서 요구되는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많은 지식이 반드시 ‘좋은’수업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교사연수 프로그램은 역사교사들이 지금까지 가르쳐 온 내용과 방법에 대해 실제로 성찰해 보고, 새로운 정보를 얻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교육에 유용하게 응용될 수 있는 역사학과 역사교육학의 최신 연구성과뿐 아니라, 다양한 교수자료, 새로운 교수-학습 방법, 평가방법 등이 소개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현장 선생님들에 의한 교수-학습방법, 교수-학습 자료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으므로 현장 선생님들이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확대될 필요도 있다.
윤종배(서울 가락중 교사) 극화학습, 할 만한가요? 필자는 해마다 학년말에 설문조사를 한다. 그런데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가장 재미있었던 수업은?’의 대답은 극화학습으로 했던 수업이다. 최근에 교사들의 자주적인 연구단체인 전국역사교사모임에 발표된 수업사례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극화학습을 원용한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극화학습이 학생이나 교사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는 뜻인데, 무엇이 가장 큰 매력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학생들이 직접 내용을 구성하고 발표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교실 수업이 강의 위주로 진행되고 있고, 가끔 멀티미디어 기기를 이용한 수업이 곁들여지고 있는 형편이어서 상대적으로 극화학습의 체험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지 않았나 싶다. 더욱이 열린교육에서 7차 교육과정의 기본 정신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창의적인 학습을 요구하는 추세와 맞물려 극화학습의 가능성과 현실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극화학습의 가장 큰 교육적 효용성은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학생들은 각기 맡은 배역에 따른 연기를 통해 수업을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극중의 역사적 인물과, 다른 학생들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이입, 공감, 분노 및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또 학생들이 익숙한 주제이거나 호기심이 가는 상황을 설정하면 학습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한편으로 기초 사료가 학생들에게 주어져야 대본을 구성할 수 있으므로 사료 학습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며, 나름대로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역사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고력(상상적 이해, 사실에 대한 추체험)이 가능하므로 수업내용의 가치와 의미를 내면화하게 된다. 나아가 대본 제작, 연습과정에서 민주적 토론을 거치면서 협동심을 높이는 파급효과를 지닌다. 극화학습, 엄두가 안나요! 극화학습이 결코 간단한 방법으로 진행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내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스토리 구성을 할 수 있고, 적절한 대사를 쓸 수 있으며, 상황에 걸맞게 인물과 사건이 잘 어우러져야 명확하게 역사의 흐름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기초 학습의 과정, 자체 논의의 과정, 실제 연습의 과정 등 3단계는 거쳐야 한다. 이처럼 덩치가 큰 극화학습을 매 시간 한다는 건 불가능할뿐더러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극화학습의 종합적인 성격상 단원 마무리에 실시하면 가장 무난하다. 미리 연간계획을 세워서 언제쯤 극화학습을 실시할 것인지 시간을 확보해두고, 적어도 한 달 전에는 학생들에게 예고를 해주고 그에 따른 과제도 제시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적어도 3시간 정도는 진도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대략 한 달간 배운 학습 내용을 다시금 정리하는 시간, 그것을 가지고 극으로 구성하는 시간, 발표하는 시간 정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PAGE BREAK]이 가운데 연습 시간은 잡혀 있지 않다. 일주일에 한두 번 들어있는 수업시간에 연습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 대목에서 교사들은 힘들어서 망설이게 되는데, 방과후나 쉬는 시간에 따로 학생들을 불러 연습한 것을 점검해 주어야 한다.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채 실연(實演)을 하면 수업이 엉망이 되기 일쑤이다. 자주 하는 것이 아니라 1년에 몇 번 하는 것이니만큼 제대로 된 극화학습을 위해서 교사가 약간의 수고는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매끄러운 강의를 듣고 시험의 끝나면 잊어버리는 것보다는 약간 엉성하더라도 교사와 학생이 함께 씨름을 해서 뭔가 만들어 낸 것이 훨씬 오래 마음에 남을 터이다. 그래서 일단 한 번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한두 번의 실패는 있겠지만, 금세 교사도 학생도 나름의 노하우를 갖게 된다. 같은 학생이라도 1학기보다 2학기는 훨씬 준비가 수월하고 내용도 괜찮아지는 법이다. 극화학습, 어떻게 할까요? 극화학습에 관계된 논의를 적은 지면에 다 보여드릴 수 없어서 참고할 만한 형식과 자료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나온 극화학습 형식으로는 모의재판, 역사 뉴스, 모의선거유세, 모의 국회, 영상극, 노래극, 마당극 등이 있다. 그리고 극화의 소재가 되었던 단원은 역사적 갈등이 깊어지는 전환기, 왕조 교체기가 많았다. 삼국통일, 후삼국 시기, 나말여초, 양란, 세도정치 시기, 개항기, 무단통치기, 박정희 정부 시기 등이다. 모쪼록 극화학습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때로는 낄낄거리고, 때로는 뭉클한 느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경훈(강원 원주 대성고 교사) 재미있는 역사수업을 위한 글쓰기 수업 역사 선생님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과연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역사수업을 할 수 있을까?”이다.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역사수업이 재미만을 추구할 수는 없지만 수업에 재미가 없다면 교사가 아무리 교재연구를 열심히 해서 수업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와 닿지 못한다. 90년대 후반부터 교육은 다양하고 많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서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되어 가는 추세이고 대부분의 교사들도 이런 변화에 공감을 하고 있다. 수업하는 과정에서 학생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칠판과 분필을 넘어서서 다양한 수업방법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 들여야 할 것이다. 이런 고민 속에서 제기된 수업방법 중 하나가 역사 글쓰기 수업이었다. 글쓰기 수업은 주어진 자료나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글을 쓰는데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되며, 아이디어를 조직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직관, 창의력을 표현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역사수업을 하는데 유용한 수업방법이다. ‘글쓰기’라고 하면 아이들은 일단 따분하고,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 수업은 아이들을 그 시대의 역사 속으로 끌어들여 그 시대의 인물이 되어 보게도 하고 스스로 그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을 기르게 하는데 효과적인 수업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수업의 교육적 의미와 사례 역사 글쓰기 수업은 먼저 주어진 자료, 또는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정보를 추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의 역사를 현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현재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감정이입)를 거두어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 역사 글쓰기 수업은 첫째, 역사를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고, 둘째, 학생 스스로 역사적 행위를 상상을 통해 재구성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가의 역할을 경험해 볼 수 있게 한다. 셋째, 역사적 사실을 전달받는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역사를 인식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한다. 넷째로는 강의식 수업이나 교사주도의 수업에서 소외되는 소극적인 학생들을 수업의 주체로 끌어들여 수업에 교실 구성원 모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역사 글쓰기 수업은 처음에는 교사가 제시한 자료와 학생의 과제수행의 방법으로 이루어졌지만 현재에 와서는 많은 기자재를 통해 자료를 제시하고 아이들과 함께 역사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수업방법으로는 일기쓰기·자서전쓰기·편지쓰기와 같은 체험글쓰기, 답사보고서·가상여행계획서와 같은 보고서 쓰기, 시무책 작성·역사재판 판결문·선거유세문과 같은 주장문 쓰기, 역사신문 만들기, 관광안내용 팜플렛 만들기 등이 있다. [PAGE BREAK]이러한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한 역사수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역사를 효율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학생들의 흥미나 능력을 파악하고 이해도에 따라 수업활동의 형태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 수업은 위와 같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글쓰기 수업을 하려면 먼저 교사에게 평소보다 몇 배의 교재연구 시간이 필요하다. 역사의 대상이 인간이라는 것은 유사한 조건을 갖추어도 여러 가지 행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평소의 관점이나 사상, 성격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하여 제시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업하는 학생들의 수준을 잘 맞추어서 교사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자료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수업받는 학생의 수준을 넘어서거나 만족시키지 못하여 오히려 관심을 떨어뜨릴 수 있다. 글쓰기 수업을 하기 전 사전학습은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히 일기쓰기나 신문 편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역사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전에 충분히 자료에 대한 공부를 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양질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고, 학생들의 참여도 또한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적은 수업 분량에 비해 수업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참고로 모둠수업을 할 때 성격이 소극적인 학생은 소외되기 십상이고,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모둠 학습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교사는 모둠학습을 할 때 항상 주의깊게 학생을 관찰하고 학습의 진행상황을 체크해야 하며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 밖에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수업을 좀더 재미있고 발전적으로 하기 위해 몇 가지 점이 반드시 따라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일단 학생들이 수업준비를 하기 위한 자료를 다양하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학교 도서관이나 지역사회의 도서관 확충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또 하나는 학생들의 결과물을 편집해서 전시하고, 책자로 만들어 모아둔다면 학생들이 스스로 성취감을 맛볼 수 있고, 해가 바뀌어도 글쓰기 수업의 경험을 발전시켜서 좀 더 나은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학교의 지원(책자 편집을 위한 예산편성, 교과실 마련 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에 교과 홈페이지 개설을 통한 학생과의 연계는 수업을 충실하고, 밀도있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글쓰기 과정이나 발표장면을 캠코더나 사진기로 촬영하여 해마다 기록물로 남겨놓는다면 생생한 자료 구실을 할 수 있다. 즐거운 수업시간을 만들기 위해 역사 글쓰기 수업은 학생들에게 역사를 보다 생생하고 의미있게 가르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다. 앞서 말했지만 글쓰기 수업은 교사의 성실한 교재연구와 자료준비가 필수적이며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수업방법이다. 역사 글쓰기 수업은 역사적 사실을 보다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하고, 시대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며 현재와의 연관성도 생각하게 해준다. 또한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안을 찾도록 도와주는 수업방법이라는 점에서 역사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수업방법이라고 본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 시도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충분한 자료준비와 사례를 살펴보고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한두 가지 사례를 그대로 따라해 보면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수업을 진행해 나가면서 조금씩 고쳐 나가면 된다. 그리고 매번 이런 수업으로 1년을 꾸려갈 수도 없다. 욕심을 버리고 일년에 한두 번 한다고 생각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더 인간적이고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김재일(두레생태기행 회장) 모래땅이기에 식물 살아남기 어려워 신두리 해안은 황촌 양쟁이에서 방파제까지 4㎞ 남짓하다. 썰물 때 드러나는 모래밭은 폭이 무려 500m에서 1㎞에 이른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어 어디까지가 바다이며 뭍인지 분간이 어렵다. 그나마 사구에는 숲이 그득하여 어디까지가 사구이며 산인지도 구분이 명확하지가 않다. 사구지역까지 포함하면 모래밭 면적은 60여만 평을 넘는다. 모래밭 뒤쪽으로는 해송 숲이 그득한 사구가 끝없이 이어져 있다. 모래밭과 모래언덕 사이를 비포장 바닷길이 운치 좋게 나있다. 사초 군락이 잔디처럼 깔린 모래벌에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사구에는 해안사구와 내륙사구 두 종류가 있다. 중동이나 몽골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내륙사구이며 우리 나라 사구는 모두 해안에 위치해 있다. 태안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구를 지닌 지역이다. 그 중 신두리 사구가 가장 규모가 크다. 특히 사구들이 끝없이 이어진 사구열이 멋지다. 사구는 바닷가라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우선 모래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그것도 바람에 잘 날리는 미사(微砂)라야 한다. 그리고 바다로부터 모래를 실어 올리는 파도가 있어야 하고 그 모래를 다시 이동시킬 수 있는 강한 바람이 있어야 한다. 모래는 강한 북서풍이 운반해준다. 태안 바닷가는 옛날부터 눈뜨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모래바람이 유명했다고 한다. 신두리 사구에서 볼 꺼리는 단연 샌드험목(Sand Hummock)이다. 샌드험목이란 사구 위에 풀이 자라고 그 위에 다시 모래가 덮이고 거기에 다시 풀이 자라 덮이고 하는 활동이 반복되어온 지형을 말한다. 샌드험목은 모래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아서 멀리서는 사구임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사구는 토양이 척박하고 수분을 머금지 못하는 모래땅이기 때문에 식물들이 살아남기 어렵다. 수분이 없기 때문에 씨앗을 떨구어도 싹이 쉽게 트지 않고 어쩌다 용케 비를 만나 싹이 텄다 해도 계속 자라기가 어렵다. 그나마 모래바람에 시달리다가 모래에 묻혀버리기 일쑤이다. 사구의 식물들은 이러한 악조건 때문에 일단 훼손되면 원상태로 복원되기가 무척 어렵다. 사구의 식물들은 서로 군락을 이루어야 살아남는다. 악조건에서도 견디는 식물들의 지혜 모래에 묻혀 죽은 것은 살아남은 종들의 거름이 되고 지하에서 수분을 저장해주는 역할도 한다. 샌드험목이 바로 그러한 곳이다. 사구의 식물들은 내륙의 식물들보다 비교적 뿌리가 깊고 넓게 발달되어 있다. 그래야 바람에 쉽게 뽑히지 않고 건조하고 척박한 모래밭에서도 영양분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구의 식물들은 대체적으로 몸집이 작다. 갯메꽃도 유난히 작아 보이고 키다리 소리를 듣는 달맞이꽃도 키를 절반이나 낮추었다. 해당화도 몸을 반쯤이나 모래 속에 묻었다. 거센 모래바람과 척박한 지질 앞에 스스로 욕망을 비운 것이다. 식물만큼 지혜로운 것도 없다. 팔은 햇볕 많은 쪽으로 내밀고 발뿌리는 물기가 많은 쪽으로 뻗는다. 또 땅 속에서 바위를 만나면 그것을 타 넘어갈 줄 알고 추우면 잎을 떨굴 줄을 알고 바람이 불면 고개를 숙일 줄 안다. 우주의 질서에 순종할 줄 아는 지혜와 인내는 인간보다 더 하다. 사구의 식물로는 통보리사초, 밀사초, 갯그령, 왕잔디, 모래지치, 갯완두, 갯방풍, 갯금불초, 갯쇠보리 등 주로 여러해살이풀이 많다. 목본류로는 순비기나무, 해당화, 해송 등이 자란다. 신두리 사구에는 통보리사초, 갯메꽃, 갯방풍, 갯지치, 갯장구채, 솔장다리, 더위지기, 갯쇠보리 등이 상대적으로 많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질경이, 망초, 환삼덩굴, 달맞이꽃, 갯쑥부쟁이, 자리공 등의 귀화식물도 이곳에서는 맥을 못 추고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있다. 이곳 사람들은 통보리사초를 '삐비'라고 부른다. 같은 과의 보리사초는 주로 산지에 살고 통보리사초와 좀보리사초는 바닷가 모래밭에 군락을 이루며 산다. 단단한 목질의 뿌리는 땅속으로 넓게 뻗고 길게 휘어진 잎은 뿌리에서 난다. 잎의 가장자리는 톱날처럼 날카롭다. 열매는 마치 보리나 밀처럼 생겨 단단한 껍질에 쌓여있다. 통보리사초는 모래의 이동에서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깊이 박는다. 어떤 것은 거의 1m까지 깊이 박혀있다. 샌드험목 주위로 해송 숲이 그득하다. 이 해송 숲은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썩 좋은 방풍방사림이다. 이 해송 숲이 있기에 사구 너머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PAGE BREAK]왕쇠똥구리는 꼭 만나고 가야할 곤충 식물의 종들이 단순한 만큼 이곳에 서식하는 곤충의 종들도 단순하다. 기껏해야 메뚜기과와 나비과에 속하는 몇 종에 불과하다. 그걸 노려서 도마뱀들이 이따금 샌드험목을 어슬렁거린다. 아직 겨울잠을 자기에는 이르고 해서 슬슬 기어나와 힘 빠진 곤충들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꼭 만나고 가야하는 곤충 친구가 있다. 바로 왕쇠똥구리다. 쇠똥구리라는 이름 그대로 쇠똥을 먹고산다. 쇠똥구리가 쇠똥을 경단처럼 뭉쳐 모으는 것은 집으로 운반해가기 쉽고 또한 갈무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쇠똥구리는 모래 속에다 깊이 20㎝ 가량의 구멍을 파놓고 그 안에서 생애의 절반을 산다. 그 안에서 짝을 짓고 알을 낳고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어른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온다. 쇠똥도 그 안에다 저장해놓고 먹는다. 왕쇠똥구리는 쇠똥구리와 달리 경단 같은 쇠똥 안에다 구멍을 파고 산란을 한다. 지열을 받아 부화된 새끼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쇠똥벽을 갉아먹으면서 자란다. 예전에 이 모래풀밭에는 소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소를 기르는 집이 크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해수욕장 유흥업소에서 소를 사구에 풀어 먹이지 못하도록 잔소리를 하기 때문에 최근 들어 왕쇠똥구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왕쇠똥구리는 사람 똥은 먹지 않는다. 정말 더러워서(?) 먹질 않는다. 그 속에 온갖 방부제와 항생제와 오염물질이 섞여 있다는 것을 왕쇠똥구리도 알 것이다. 그 밖에도 모래 속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고 있다. 길앞잡이 애벌레와 애명주잠자리 애벌레도 모래 속에서 반생을 지낸다. 개미귀신도 모래 속에다 함정을 만들어놓고 숨어 있다가 함정에 빠진 곤충들을 귀신처럼 잡아먹는다. 드넓은 초원 곳곳에 진주 같은 습지가 숨어있고 그 습지 가장자리로 백로들이 화려하게 날아들고 있다. 태안반도는 어딜 가나 새들이 많다. 신두리에도 사구와 인접한 숲에 박새, 까치, 직박구리, 굴뚝새, 딱따구리, 붉은머리오목눈이와 같은 텃새들이 살고 있다. 여름이면 종달새, 청호반새, 동박새, 후투티, 제비, 귀제비, 휘파람새, 호랑지빠귀, 물총새, 유리새, 꼬마물떼새 등이 쉽사리 관찰된다. 개발바람 타고 풍전등화 운명에 놓여 새들이 지나간 발자국들이 여기저기 총총 나 있다. 바닷가 모래밭을 주무대로 하는 중부리도요도 가끔 모래언덕으로 올라와 사냥을 한다. 신기한 것은 신두리 사구에 멧토끼와 족제비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구를 넘어 샌드험목지대와 습지를 잇는 발자국들이 바람이 만들어놓은 물결모양의 바람모래밭에 뚜렷이 남아있다. 그런가하면 똥도 여기저기 앙큼하게 싸놓았다. 산으로 이어진 곳에는 노루 발자국까지 나 있다. 누룩뱀과 도마뱀 같은 파충류도 신두리 사구에 기대어 사는 식솔들이다. 표범장지뱀은 모래 속에 은신해 있다가 곤충이 지나가면 잽싸게 공격해서 낚아챈다. 사구의 배후에 습지가 몇 곳에 자리하고 있다. 비가 잦은 여름철에만 물이 고였다가 사라지는 늪지도 있지만 일년 내내 물이 고여 있는 늪지도 남아있다. 습지 주위로 갈대, 물억새, 갯버들과 같은 습지식물이 자라고 있다. 물속에는 물자라, 물장군, 왕잠자리 애벌레, 달팽이 등을 비롯하여 몇 종의 물고기들도 어울려 살고 있다. 이따금 백로, 황로, 왜가리, 농병아리, 흰뺨검둥오리도 날아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습지에 와서는 금개구리를 꼭 만나고 가야한다. 금개구리는 초록색 등짝에 두 줄의 굵은 황금색 줄이 있다. 금개구리는 환경부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희귀종이다. 암수 구별은 배의 색깔로 알아내는데 유난히 노란 녀석이 암컷이다. 맹꽁이는 이 습지에다 산란한 후 금개구리와는 달리 산이나 모래언덕 풀밭으로 사라진다. 그나저나 이 광활하고 신비한 사구도 개발 바람에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여 있다. 신두리 사구는 원래 마을 공동소유였으나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개인 소유가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이 지역에 있던 군사시설들이 다른 데로 옮겨가자 사구의 새 주인들은 온통 모래뿐인 언덕에다 나무 몇 그루를 심어놓고 농림지와 준농림지로 바꾸었다. 이미 상당한 면적은 부동산에 눈 밝은 기업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환경단체들이 사구의 개발을 반대하고 나서자 일부에서는 생태계보전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임전무퇴를 외쳤다. 다행히 환경부가 보전지구로 지정하는 바람에 싸움은 수그러들었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는 귀한 손님" 등·하교 시간이면 어김없이 교문에 서서 아이들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교감 선생님이 있다. 서울 성원초등학교 홍진복(洪鎭福) 교감. 2000년 9월 성원초에 부임한 홍 교감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아이들은 학교에 오는 귀한 초대손님'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재잘대며 웃는 모습으로 교문을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큰 행복"이라는 홍 교감은 "오랫동안 하다보니 이제는 36학급 아이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표정만 봐도 그들의 기분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얼굴이 밝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손을 잡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 '오늘 즐겁게 하루를 보내자'는 등의 격려로 금세 표정을 바꾸어 놓는다. 아이들을 초대손님으로 생각하는 홍 교감은 교문에서 인사하는 것 말고도 초대손님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남다른 노력을 하고 있다. 홍 교감은 급식 시간이면 항상 아이들을 둘러본다. 맛있고 즐거운 식사를 하는지 살피고 식탁에 물기나 오물이 묻어 있으면 직접 닦아준다. 물론 '편식하면 균형적인 성장에 좋지 않으니 골고루 먹어야 한다' '음식을 입에 넣고 큰 소리를 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간다'는 등 기본적인 식사예절을 일러주는 것도 빠트리지 않는다. 홍 교감은 또 매주 토요일 방송시간을 활용, 인성교육을 실시한다. 재미있고 사실적인 훈화자료를 활용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 시간을 기다린다. 효, 양보, 질서 등의 주제를 정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즐거운 주말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초등교육은 사랑으로, 중등교육은 훈화로, 대학교육은 지식으로 해야한다"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홍 교감은 "교감이라는 자리는 아이들의 수업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저것 스스로 모범을 보여 교사들이 따라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것이 그의 '교감관(觀)'이기도 하다. 초대손님에게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학교는 즐거워진다. 어린이들이 학교 가는 일을 즐거워하면 학부모들은 학교를 신뢰하고, 학부모들의 신뢰는 교사에 대한 믿음으로 나타난다. 홍 교감은 '행복한 학교'라는 노랫말도 지었다. "새들이 노래하고/ 고기 춤추는/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 아이들은 달리며/ 노래 부른다/ 어느새 우리는 하나가 된다/ 우린 여기서/ 사랑을 배우는 거야/ 더 큰 삶을 찾아서/ 얘들아 함께 가는 거야/ 손 내밀어봐/ 내가 붙잡아줄게/ 엄마가 있잖아/ 용기를 내어봐/ 노래를 불러봐/ 반듯이 하늘은 내편이 되는 거야…" 홍 교감은 이 노랫말에 곡을 붙여 곧 CD로 낼 생각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홍 교감은 올 입학식에서 삐에로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갓 입학하는 어린아이들에게 학교는 즐거운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다. 밤새 직접 울긋불긋한 천을 붙이고 바느질을 해 옷과 모자를 만들고 화장을 했다. 사탕목걸이도 만들었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서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달려들었다. 늘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무엇인가를 해 주고 싶어하는 홍 교감은 요즘 마술(魔術)을 배우고 있다. 실력이 쌓이면 아이들 앞에서 공연도 해 볼 계획이다. 홍 교감은 "교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학교생활이 즐거웠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다"며 "귀한 손님에게 융숭한 접대를 하듯 모든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대접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이낙진 기자 leenj@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