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에 도입된 ‘윈-윈’ 전략 오늘날 기업경영에서 금과옥조처럼 강조되는 ‘윈-윈(win-win)’ 전략은 이미 500년 전에 우리 선조들의 자녀교육에서 강조되었다. 수백 년 전 선조들은 삶의 주도적인 원리로 ‘상호 이익을 도모하라’는 인간관계 기술의 핵심원리를 가르쳐왔던 것이다. 이는 조선 최초의 ‘여중군자(女中君子)’를 며느리로 두었던 운악 이함 가문의 ‘지고 밑져라’라는 가풍에서 대표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이는 ‘대접 받고 싶거든 먼저 대접을 하라(마태복음 7장 12절)’는 성경구절을 연상케 한다. 이 구절은 세계 최대 부자들을 배출한 유대인들의 자녀교육에서 고전으로 통하는 바로 그 율법이다. 삼보컴퓨터를 창업한 이용태 박사(박약회 회장, 퇴계학연구소 이사장)는 이 가문의 17대 종손이다. 이 박사의 할아버지는 당시 어린 손자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과 사귀거나 일을 할 때는 네가 지고 밑져야 한다”고 반복해서 가르쳤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남을 밟아야 내가 산다”고 생각하는데 이 박사의 할아버지는 그와 정반대로 가르쳤던 것이다. 이 박사는 ‘지고 밑져라’ 가풍을 기업 경영에 적용해 위기를 극복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알려진 대로 이
박현정 |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지난 2005년도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60년째를 맞이하는 해였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 4.19 혁명, 군사정권 주도하의 고도성장기,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의 급속한 민주주의의 진척,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그리고 92년 문민정부,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 현재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련을 딛고 발전성과를 이루며 급속히 성장해왔다. 이제 우리나라는 GDP 규모가 6790억 달러로서 세계 11위에 이르고 있다(World Bank, 2005년 7월). 과거 해방 직후, 즉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2005년도에는 거의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경제의 양적, 질적인 성장 못지않게 해방 이후 60년 동안 교육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우리나라는 2004년도에 중학교까지 전국적으로 무상의무교육을 실시하게 되었으며, 사실상 거의 모든 학생들이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이수할 뿐만 아니라 대학 진학률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OECD 2006 교육지표). 그리고 지난 2003년도에 실시된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조혜영 | 한국청소년개발원 부연구위원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없는 사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단지 한 세대 이전의 청소년들이 겪었던 것보다 더 많은 모험과 위기 그리고 요구 및 기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이동하는 경로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있다. 몇 가지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10년이나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더 훌륭한 것 같다. 청소년의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청소년 문제와 살인사건은 약물남용이나 청소년 비행 그리고 청소년 임신과 함께 다소 줄어들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성인들과 대중매체가 묘사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청소년들은 그들이 유능한 성인이 되는데 필요한 적절한 기회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10년 또는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덜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높은 이혼율, 청소년층의 높은 임신율, 그리고 가족의 잦은 이사는 청소년들의 삶의 안정
근자에 들어 공무원 장외투쟁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을 꼽는다면 1998년 11월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린 ‘교원정년단축 반대 전국교육자 총궐기대회’가 아닌가 싶다. 7만여 명도 더 되는 교원들이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 초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쿠데타적 정년단축 철회’를 외쳤다. 교원들의 처연하기까지 한 공분(公憤)이 표출됐지만 언론은 짐짓 이를 외면했다. 조선일보에 사진 한 장 달랑 실린 것이 전부인 것으로 기억된다. 신문․방송은 연일 ‘노령교사 1명을 퇴출하면 젊은 교사 2.5명을 채용할 수 있다’는 앵무새 같은 보도를 내보냈다. IMF사태로 경제는 파탄 나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때에 이보다 더 확실한 여론몰이는 없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심리를 부추긴 행태는 교육계의 어떠한 논리와 주장도 먹혀들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 당시 이해찬 장관과 교육부 고위관료들의 언론플레이가 무용담처럼 넘쳐나기도 했다. 교육계는 대패(大敗)했고 정년은 3년이나 싹둑 잘려나갔다. 물론 교단을 뒤로한 교원들 대신 젊은 교사가 2.5배로 충원되지도 않았다. 정년단축의 결과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우리 교단을 황폐화시켰으며 지금까
박준용 | 한양대 강사, 영화평론가 도라, 조슈에와 세상에 나서다 전직교사 출신의 도라는 브라질의 대도시 리우 데 자네이루의 중앙역에서 글 모르는 이들을 위해 편지를 대필해 주는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다. 사랑을 호소하는 이, 아들에게 관심을 촉구하는 늙은 아버지, 받을 돈을 독촉하는 사람, 헤어질 것을 통보하는 연인 등 중앙역을 가득 메운 사람들처럼 그네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고된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도라의 유일한 즐거움은 친구와 함께 편지를 뜯어 읽어보고 자신이 보기에 쓸데없는 소리를 적어놓은 편지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머지 편지들은 그냥 서랍 속에 넣어두는 것이다. 편지를 부탁하는 이들이야 절박할지 몰라도 그녀에게 있어 이 모든 일들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한 기계적인 직업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계나 자본과 같은 비인간적인 대상을 다루는 직업과 달리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편지’를 써 주는 도라의 직업은, 학생이라는 살아있는 대상과 관계를 맺고 이를 토대로 성장과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일인 그녀의 전직이었던 교사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도라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