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 감사용 골수팬은 아니지만 자칭 ‘가늘고 긴’ 야구팬인 필자에게,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은 ‘한 해를 결산하는 한국시리즈’라는 대작을 통해 늘 짜릿한 기억을 남겨 준다. 올해는 특히 정규 시즌 내내 하위권을 맴돌던 ‘롯데 자이언츠’가 하반기에 무시무시한 상승세를 보이며 8년 만에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 해라 더 흥미진진했다. 어렵사리 4강에 진입했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고 결국 무릎을 꿇은 롯데팀의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머릿속에 영화 한 편이 맴돌았다. 2004년 가을, ‘한국 스포츠 영화의 편견을 무너뜨린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상영된 슈퍼스타 감사용. 실존 인물인 전직 야구 선수 ‘감사용’을 주인공으로 한, 소재 자체가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세대들에게는 그 이름조차 낯선 ‘감사용’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는 16연패라는 무시무시한 대기록(?)을 남긴 팀이다. 그 엄청난 기록에 일조한 ‘패전 처리 전문’ 투수 감사용, 프로야구 초창기 5년 동안 1승 15패 1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마운드를 떠난 그를 스크린에 불러들인 이는 ‘김종현’이라는 신인 감
가슴과 머리에서 손으로 당연한 이야기에 대해 사람들은 두 가지로 반응한다. 하나는 무 반응이요, 다른 하나는 놀라움이다. 반응이 없는 사람은 그저 지나가고 놀라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는다. ‘글은 손으로 쓴다’는 말도 그렇게 엇갈리는 반응을 가져오리라. 자율신경계의 활동은 대개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심장의 박동, 폐의 호흡, 장기들의 연동운동, 눈 깜박임 등은 그 운동을 의식한다는 것이 오히려 몸에 이상이 있다는 증좌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일 또한 그러하다. 손으로 펜을 잡고 글을 쓰면서, 혹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 손의 동작이나 움직임을 일일이 마음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인다. 그런 움직임이 반복되고 지속되는 동안, 우리는 글을 쓴 종이를 들고 읽고 검토하고 교정을 한다. 한데 정작 그러한 일을 손으로 한다는 생각은 깊이 하지 않는 편이다. 손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 글의 소재는 가슴으로 온다. 가슴으로 온다는 말은 감동으로, 충격으로 온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느 아침에 문득 보니 단풍이 깨어질 듯한 빛깔로 물들었다. 드디어 가을인 것이다. 공연히, 나도 모르게 ‘아!’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면 그게 감동이고 충격이다.
누구나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든 낙엽을 보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고들 한다. 장례식장에 가면 평상시 생각도 않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특정한 날씨, 장소 등의 영향으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우리는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들 중에 어떤 상황과 사건이 맞아떨어지는 경우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일이 예민한 부분으로 작용하여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경험과 정보가 부족한 청소년들에게는 이러한 상황들이 더욱 불리하게 작용할 때가 많다. 교실 내 위기상황은 증가 추세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남학생 한 명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죽겠다고 되뇌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학생은 바로 전 수업시간에 반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한테 혼이 났다고 했다. 그러더니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창문으로 뛰어내리려는 시늉을 하면서 죽겠다며 칼을 달라고 소리를 질렀고 바닥에 드러누웠다고 한다. 아이들은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선생님도 이 학생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보건실로 학생을 옮긴 후 응급차를 불러 그 학생을 인근 대학병원 정신과로 보냈다. 이런 경우는 병원에서도 특별한 조치를 취
“민주당 대통령 후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낙선해 뉴딜정책을 펼 수 없었다.” 아니다. 당선된 루스벨트는 후보 때 구상한 뉴딜(New Deal)을 중심으로 대공황 타개에 전력을 쏟았고, 결국 공항을 극복하고 미국은 다시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가 낙선했거나 법원의 위헌결정 등 이런저런 이유로 뉴딜정책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다면 미국은 언제 공황에서 벗어났을까? 과연 미국과 세계가 공황을 극복할 수나 있었을까? W. G. 하딩의 급서로 1923년부터 1929년까지 미국을 이끈 C. 쿨리지 대통령은 이른바 ‘쿨리지의 번영’을 자랑했다. 쿨리지 시대의 전설적 번영은 주식시장 성장을 살펴보는 것으로 족하다. 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증권거래소에 드나들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쿨리지는 “미국이 해야 할 일은 경제 활동뿐이다”라고 자랑했다. 미국은 본격적 대량생산 - 대량소비 시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급성장한 자동차 산업은 도로망의 건설을 촉진했고 철강·유리·고무 공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당연하지만 국제교역에서의 미국의 지위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어떤 나라도 미국의 경쟁국이 될 수 없었다. 고작 7개월 뒤면 닥쳐 올 대공황을 상상도 못한 H.
교권은 학생의 인권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특히, 학생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유네스코의 ‘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 68조에서도 ‘교원은 전문직상의 책임 문제에 대해 불공정한 간섭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며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결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옛선현들은 ‘스승은 은인 중의 은인’이라며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 번째는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강조하는 의미로서 ‘그림자조차 밟지 말아야 한다’이고 두 번째는 ‘그림자’를 스승의 올바르지 못한 허상(虛像)으로 여겨 스승의 나쁜 점을 배우지 말라는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스승이 나쁜 그림자를 드러내게 되면 제자는 그것을 밟으며 따라가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도(師道)로서 사람이 사람을 참되게 가르친다는 것은 그 어느 일보다도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8년 오늘의 한국 사회는 스승에 대해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보호받아야 할 교권(敎權)이 침해되면서 ‘스승의 그림자’가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몇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