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앞둔 시점에서 호적정정을 한 경우 정년 산정의 기준 시점 최근 대법원에서는 공무원이 호적을 정정해 출생일을 변경한 경우 정년도 이에 맞춰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원심에서는 정년퇴직일은 생물학적인 연령이 아니라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원고가 지방공무원으로 임용된 이래 약 36년간 신규임용 당시 호적상 생년월일이 기재된 공무원인사기록카드의 내용에 대해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이를 기준으로 산정한 정년퇴직일을 약 1년 3개월 앞둔 시점에 이르러 호적상 생년월일을 정정하고 호적정정 후의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해 정년의 연장을 요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공무원의 인사사무 처리규칙에는 인사기록 변경 신청기간을 제한하지 않고 있고 원고가 신의성실의 원칙을 어겼다고 볼 수 도 없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아울러 대법원은 "지방공무원 인사기록 및 인사사무 처리규칙 [별표 3]이 지방공무원의 정년퇴직 시 구비서류로 가족관계기록사항에관한증명서 중 기본증명서 1통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지방공무원법상 정년은 지방공무원의 정년퇴직 시 구비서류로 요구
+ 소록도역사관, 한센병 자료관 지난 호에 이어 소록도를 찾아갑니다.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검시실과 감금실 맞은편에는 자료관이 있습니다. 자료관은 제1관 소록도역사관과 제2관 한센병자료관으로 나뉩니다. 소록도역사관은 병원 현황, 원생의 생활 모습, 영부인 기념대, 사건과 인물,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고 한센병자료관은 한센병 관련 역사적 인물, 치료기구, 문예작품, 도서, 한센병의 과거와 현재, 한센병치료제 등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건물은 작지만 소록도와 한센병에 대한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어 소록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곳입니다. 소록도역사관에서는 소록도 사람들이 쓰는 말에 대해 정리해 놓은 패널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소록도에서 생활하는 환우들을 일컬어 ‘문 씨(文氏)’ 또는 ‘한 씨(韓氏)’라고 부르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예전에 한센병 환우들을 비하해 문둥이, 나환자 등으로 부른 것에 대해 자신들을 좀 더 높여 부르는 의미로 문 씨라고 불렀고 이후 한센병의 원인을 발견한 학자의 이름에서 한 씨라는 성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답니다. 또, 이 섬에서 ‘모집(募集)’이라는 말은 1930년대 병원 확장 당시 전국에서 수차에 걸쳐
케인즈“이리 떼의 자유가 양 떼에게는 죽음을 뜻하듯 경제적 자유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무제한적 경쟁은 승자의 탐욕과 패자의 굶주림으로 양극화될 뿐이다.” 이 말은 자칫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케인즈는 공산주의가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던 당시에도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대표적인 경제학자입니다. 다만, 그는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인간의 축재욕은 제한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그가 자본주의를 통해 ‘선한 삶’을 실현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 친교와 사랑, 미의 추구, 지성의 훈련, 경제적 안정이 필요한데, 시장이 조장하는 배금주의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므로 어느 정도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선한 삶’의 추구에 필요한 경제적 안정을 위해 최저임금제와 같은 사회적 안정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1차 대전 후 독일에 대한 배상금 요구 문제에 있어서도 독일을 지나치게 압박하면 또 다른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짧은 설명으로 케인즈를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제학자 5명이 논쟁을 벌이면 그 중 2명은 케인즈의 이론을 놓고
노래방에도 시가 있어 젊은 시절에 시인이 아니었던 사람 누가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대개는 시를 잊고 산다. 시와 담을 쌓고 산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시를 써 보겠다는 의욕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이따금 만난다. 반가워서, 시를 써 본 적이 있는가 물으면 대개는 고개를 가로 젓거나 초등학교, 중학교 정도에서 시를 써 본 적이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로 얼버무린다. ‘글은 손으로 쓴다’는 화두를 잊은 것이다. 시를 써 본 적이 까마득하다는 이들에게, 다시 시를 자주 읽는가 묻는다. 답은 아주 당연하기라도 한 것처럼, 시간을 못 낸다고들 한다. 시간을 내어 시를 읽을 정도면 시에 가까운 사람이다. 아무튼 시는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시를 이야기하고 시를 써 보는 나로서는 이따금 아득한 느낌에 빠지곤 한다. 시가 뭐기에 이렇게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간 것인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를 쓰고자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간단하다. 시는 우리 주변에 널리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이미 우리들 삶이 시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